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63화 (63/254)

제 63화

<각색(各色)>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인다!"

"예!"

"대열을 갖춰. 개인행동은 절대 금한다."

딱딱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사람들은 처음 나타난 자들의 배가 넘었다.

40명의 사람들.

개중에 절반은 얼마 전까지 오크들과 싸웠던 자들로, 그들은 새롭게 나타난 20명의 뒤를 따랐다.

'마저 여기를 끝내려고 온 건가?'

이미 상황을 끝낸 마당에 새롭게 나타난 사람들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물러났던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정예 오크를 처리했던 모습을 본 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면 불안해 하는 게 맞았다.

강준우는 몸을 숨긴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미 이상한 소리를 확인하자마자 다리를 건넌 상황이었다.

괜히 안에 있어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오크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다리가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안쪽에 남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미 다 죽었잖아?"

"……."

남은 오크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움직인 그들은 이미 남아 있지 않은 놈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놈들의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난 만큼, 남은 오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혹시, 그 사람이 아닐까요?"

"…… 정예 오크를 처리했다는 사람?"

"예. 그 사람이 마저 정리를 한 것 같습니다."

"……."

처음 무리를 이끌었던 남자의 말에 함께 온 사람은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일행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혼자서 저놈들을 다 쓰러뜨렸다고?"

"완전 날라다니더라니까!"

"대박이었어! 무슨 무협영화 찍는 줄 알았다니까."

"어쩌면 임 대위 님보다도 더 강할……"

"조용! 뭐가 이렇게 소란스럽나?"

"……."

남자의 외침에 그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단단히 군기가 잡힌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40명의 사람들이 그의 말에 잘 따른다는 사실은 몰래 지켜보고 있는 강준우로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뭐야? 이 사람들? 무슨 군대도 아니고…… 구, 군대? 군인?'

문득 떠오른 생각에 모여 있는 사람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군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모습이었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무리를 이끌고 있는 사람과 조금 전에 20명이 움직였던 모습을 보면 잘 훈련된 군인들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통일된 모습들과 지금 도열해 있는 모습까지.

그가 이미 경험을 한 단체를 모를 리 없었다.

'설마, 군인들인가?'

문득 이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지만,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대학생이었던 그들과 군인이었던 자들이 여기까지 불려왔다는 게 이상했다.

'그냥 같은 인간이라는 걸 빼면…… 딱히 겹치는 게 없잖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앞에 있는 자들의 의도가 중요했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접근을 했다면 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따로 움직여서 정예 오크의 목을 땄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소린데."

"……."

"오크들은 그 사람을 눈치 채지 못 했고?"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되묻는 남자의 말에 처음 움직였던 자는 명확한 답을 전했다.

가만히 고민하던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이 근처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린데."

"잘못들었습니다?"

낮은 목소리에 그가 되묻자, 강준우는 확실히 깨달았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은 분명히 군인이라는 것을.

'그놈의 다나까. 저 사람이 사람들을 모은 건가? 그게 가능했나?'

특유의 말투를 모를 리가 없었다.

대충 저들이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이 고민을 하던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있는 겁니까?"

"……."

갑작스러운 외침에 함께 온 자들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걸로 알고 말하겠습니다."

"……."

"우리도 이곳으로 넘어왔습니다. 3사단 23연대 3대대 2중대. 전술 훈련 도중에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밝혔다.

뜬금없는 행동이었지만, 계속 이어지는 말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힘을 합쳐서 고블린을 처리했습니다. 지금도 각자 역할을 맡아서 주어진 상황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

"만약 함께 할 뜻이 있다면 모습을 보이십시오! 백골의 명예를 걸고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외치는 사람의 뜻은 명확했다.

힘을 합쳐서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가자는 거였다.

저렇게 많은 수가 함께 하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힘을 합쳐서 고블린을 상대했다. 그 중심에는 훈련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처음 오크들과 싸우면서 전략적으로 움직인 것은 고블린을 상대하면서 세운 전술이었다.

가만히 그 말을 듣던 강준우는 씁쓸해했다.

'저런 식으로 힘을 모았으면 많은 사람이 살아남았으려나?'

그도 딱히 이런 상황이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 말만 믿고 움직이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만에 하나라도 거짓일 경우를 염두에 둬야만 했다.

무엇보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그에게도 부담이었다.

아무리 여러 명이서 행동한다고 하지만, 강압적인 상황이 없을 리가 없었다.

'군대 특유의 문화라면…… 썩 내키지도 않고.'

그는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만에 하나라도 다른 마음을 품으면 저들과 상대해야만 했다.

상당히 분업이 잘 이루어진 자들이었다.

마치 진을 이루고 있는 듯한 자들과 싸워서 좋을 건 없어보였다.

"……."

"아무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흐음."

"생각이 없거나, 이미 이곳에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쉽네. 기동타격대로 운용하면 딱 이었는데."

"……."

아쉬워하는 그는 다시 무리를 이끌었다.

이곳에 계속 지키고 있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강준우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런 상황에서는 군인들이 더 유리하려나?'

함께 움직인다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그들의 뒤를 쫓아가려던 생각을 접었다.

크게 적의가 없는 자들이었다.

굳이 뒤따르면서 마찰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셋은 언제 도착하려나? 잘 버티고 있겠지?'

어쩔 수 없이 갈라진 세 사람을 떠올린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무영검까지 얻은 만큼 조금 더 많은 오크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

스으윽.

낯선 형체가 뒤에 나타났지만, 오크는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 했다.

몸속을 파고드는 차가운 날붙이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소리도 없이 꽂히는 예리한 일격.

힘을 잃은 오크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확실히 귀음신장을 사용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쓰러지는 오크의 뒤에 서 있던 그는 과감하게 옆으로 빠져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쉬익. 파바밧.

가볍게 손을 떨쳤지만, 무리를 이루고 있던 오크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순식간에 셋을 더 쓰러졌다. 하지만 혼자 남은 오크 전사는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 했다.

투둑.

처음 쓰러뜨렸던 오크가 바닥으로 쓰러지고 나서야 이상함을 느낀 오크 전사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그런 오크 전사의 눈동자에 날붙이가 가득 들어왔다.

"크륵!"

"어우, 미안! 너무 얕았나?"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았다.

얕게 목이 베인 오크 전사가 고통스러워했다. 목에 가득 차는 핏물에 절로 얼굴을 구기며 힘들어하자, 강준우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서걱.

쉽게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쾌검이 그대로 오크 전사의 목을 베어냈다.

뒤늦게 고통을 줄여준 그는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다른 놈들은 어디 있는 거지?"

또 다른 정예 오크를 찾기 위해서 동굴로 들어섰지만, 원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길을 찾던 그는 근처에 있는 오크들을 상대해 나갔다.

이제는 무영검이 제법 손에 익고 있었다.

아직까지 거리를 맞추지 못 하는 때도 있었지만, 조금 더 경험을 쌓으면 원하는 대로 검술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빨라서 더 어려운 건가?'

그가 펼치고도 빠르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 힘들었고, 가끔 허공을 베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에도 깔끔하게 끝을 내려고 했지만 원하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상당히 좋은 무공이었다.

손에 넣은 유령보와도 상성이 잘 맞았고, 암습이 아니더라도 성취가 높아지면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쓰러진 다섯 마리를 확인한 그는 다시 길을 찾았다.

여전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굴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 가다보면 나오겠지.'

자신이 이렇게 길을 찾지 못 할 거라고는 생각 못한 강준우는 벽을 박차며 위로 뛰어 올랐다.

순식간에 천장에 닿은 그는 흐릿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는 종유석 인근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까드득.

내기를 머금은 검이 천장에 박혔다.

손목을 비틀자, 주변이 떨어져 나갔고, 그 모습을 확인한 그는 곧장 아래로 내려섰다.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지나왔던 길은 이런 식으로 표시해두면서 나중을 대비했다.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들면 확신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흔적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다시 방향을 잡았다.

어차피 길게 이어진 통로는 한 쪽으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통로를 벗어나기도 전에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이제는 익숙해진 야생의 감각과 천마신공의 힘이 본능적으로 그들의 정체를 가늠하게 만들었다.

'오크는 아닌데.'

오크들에게서 느껴지는 그 기운과는 차이가 있었다.

동굴에서 오크를 제외한다면 남아 있는 생명체는 사람 밖에 없었다.

그가 움직이려고 하는 방향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다섯 명 정도 되는 남자들로,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서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껄렁껄렁하게 걸어오는 그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좋은 의도로 저렇게 나타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우와. 혼자 다섯 마리를 처리했나 봐?"

"새끼. 좀 치나보네."

"……."

두꺼운 도신을 한쪽 어깨에 걸치며 걸어오는 남자가 강준우를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좋아 보이지 않는 웃음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 그의 모습.

여차하면 공격을 할 것 같은 강준우의 행동에 껄렁하게 걸어오던 그들이 걸음을 멈췄다.

"덤빌 거냐?"

"덤빌 거냐? 말이 짧다?"

"먼저 말을 짧게 한 건 그쪽이고. 보아하니 일부러 시비를 걸려는 것 같은데……"

"시비? 이 새끼, 어이없네."

"……."

"그냥 대화 좀 나누자고 한 게 시비냐?"

"지금 걸고 있네. 시비."

"……."

냉랭한 말투에 사내의 표정이 달라졌다.

여유롭게 웃고 있던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양아치들인가? 아무리 그래도 생각없이 움직이는 건 뭐지?'

아무래도 좋은 쪽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무리를 이룬 채 움직인 그들은 강준우의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용건만 간단히 해라."

"이 새끼. 눈에 뵈는 게 없지?"

"……."

상당히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사내의 태도에 강준우는 의아해했다.

'뭐지? 이 자신감은?'

이미 그의 주변에 다섯 마리의 오크가 쓰러져 있었다.

따로 일행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경계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앞에 나타난 놈들은 오히려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시비를 거는 느낌이 강했다.

딱히 강렬한 기세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자, 이제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다섯 명 모두가 일류를 넘어선 것 같지만, 이만한 자신감을 갖기에는 과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동료로 보이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유를 확인한 강준우는 곧장 다섯을 향해 달려들었다.

괜히, 끌려 다녀서 좋을 것은 없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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