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화
<치열한 눈치 싸움>
임창현의 등장과 함께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갔다.
의도치 않게 서로 연합해서 오크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물론, 강준우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저들의 의도가 뭐든 민노식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임창현과 그 무리들이 다른 뜻을 품는다면 민노식을 도우면 될 일이었고, 민노식이 다른 뜻을 품으면 임창현과 연대해서 그를 견제하면 될 일이었다.
'둘이 싸우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
반면, 민노식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 새끼를 여기에서 죽여야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방해자가 나타난 게 문제였다.
50명 가까운 사람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임창현에게 주도권이 돌아갔다.
물론, 그런 주도권은 강준우의 뜻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직 저들의 힘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무서운 것은 수가 아니라 빠르게 성장할 강준우였다.
이제는 그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 그들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다.
오크를 상대로 싸워야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물론이고, 민노식과 무리들은 임창현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낄 수 없었다.
"괜히 끼어들어봤자 방해만 될 겁니다. 따로 움직이죠."
임창현은 그들을 배제했다.
지금까지 손발을 맞춰 온 사람들 사이에 끼워줄 수도 있겠지만, 어설프게 연계하면 피해가 생길 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민노식이라는 자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지금도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결정을 내리는 듯한 임창현의 통보에 민노식의 얼굴에 노골적인 불편함이 드러났다. 하지만 기꺼이 그의 뜻에 따르는 강준우의 모습에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이 미친 새끼.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임창현의 뜻에 따르며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강준우의 모습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강준우를 노려보는 민노식의 살기 어린 눈빛.
그런 민노식을 무시하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강준우의 태도.
임창현은 그들의 관계를 의아해했다.
사람들의 수만 놓고 본다면, 민노식이 훨씬 유리했다.
자신감이 가득 드러난 그의 태도에서 적잖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오히려 강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관계지?'
강준우와의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두 사람의 상태가 눈에 보였지만, 지금은 정예 오크를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그들이 어렵게 상황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오크들의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다.
후두두두.
어느새 다리를 건넌 오크들은 그 앞에서 진형을 갖춰 나갔다.
곧바로 화살이 날아들자, 임창현은 뒤에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전투준비!"
그의 외침과 함께 대기하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방패를 든 사람이 앞을 가렸고, 마법사들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널따란 공간을 빼곡히 채우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뒤로 물러났다.
민노식은 그런 강준우를 뒤따랐다.
"뭐냐?"
"뭐긴 뭐야? 저놈들과 따로 움직이는 거지."
"…… 꺼져."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려고? 저놈들을 모두 적으로 돌릴 생각은 아니지?"
"……."
민노식은 해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말했다.
어느새 그와 함께 움직였던 놈들은 다시 통로 쪽으로 움직였다.
여차하면 퇴로를 막으려는 모습인 것 같았지만, 임창현과 남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흐음. 아무 의심도 없는 건가?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임창현과 그 일행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따르는 민노식을 견제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콰과광.
밀고 나오는 오크들과 그들을 막으려는 임창현과 일행들.
예의 마법이 두 세력 사이를 흔들었지만, 임창현이 이끄는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그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정 하사. 파이어 월!"
"예."
임창현의 말에 정 하사로 불린 남자가 캐스팅한 마법을 쏟아냈다.
정확히 오크 전사들의 중간에서 솟아오른 불길에 그들의 대열이 무너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정 하사를 뒤로한 그들은 임창현의 지시와 함께 마법을 쏟아냈다.
일전에 본 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시의적절하게 공격을 이어가는 그 모습에 민노식이 놀란 듯 뇌까렸다.
"완전히 군대잖아?"
마법이 쏟아지고, 곧장 대기하고 있던 무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비틀거리는 오크 전사들을 마무리지으면서 곧바로 되돌아왔고, 다시 날아드는 공격은 방패를 든 사람들이 막아냈다.
오크들도 그런 상황을 마냥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전력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오크 전사의 수가 반토막이 나자, 뒤에 있던 놈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주술을 준비하는 샤먼을 대신해서 사냥꾼들이 화살을 날렸다.
빠르게 쏟아지는 공격에 몇몇이 화살에 꿰이며 쓰러졌고, 그들은 뒤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과 자리를 바꿨다.
곧바로 치유를 이어가면서 다시 싸움에 투입되는 일이 반복됐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노식은 굳은 얼굴로 강준우를 향해 물었다.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거냐?"
"……."
"씨발! 저 새끼들이 다 처먹잖아! 이대로 포인트를 넘길 거냐?"
"그래서? 어떡하라고?"
"……."
그는 담담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민노식은 선심을 쓴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 휴전하는 건 어때?"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너도 저놈들한테 포인트를 다 뺏기는 건 싫을 거 아니야?"
"…… 글쎄."
"여기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는 거로 하자. 어때?"
민노식의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차라리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게 더 나아보였다.
당연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먼저 말한 놈이 안 지키지는 않겠지?"
"그럼, 나도 남잔데!"
"……."
그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지켜보는 것도 좋지만은 않았다.
그 역시도 포인트가 필요했다.
오크들이 빠르게 쓰러져 나가고 있었다.
전보다 배로 늘어난 사람들은 확실히 더 뛰어난 능력으로 오크들을 상대했다.
내부에서 그들을 뒤흔들던 강준우가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오크들도 잘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괜찮겠지?'
어차피 다른 오크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포인트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보상이 더 중요했다. 당연히 정예 오크를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상황을 살피던 그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노식은 그런 강준우의 뒤를 쫓았다.
"뭐하자는 거냐?"
"내가 가는 길에 네가 있었을 뿐이야."
"그럼, 먼저 움직이던가."
"…… 쫄보 새끼."
민노식은 그런 강준우를 비웃으며 앞장서서 걸었다. 하지만 뒤에 있는 강준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롯이 그에게 집중됐고, 뒤늦게 강준우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저 새끼 무슨 보법을 익히고 있는 거야?'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그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있을 수 없는 움직임에 급히 주변을 둘러보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달리는 강준우의 모습에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는 크게 우회하며 오크들에게 접근했다.
아마도 임창현의 무리가 싸우고 있는 곳을 피해서 움직일 생각인 것 같았다.
이상한 점은 근처에 있는 오크들이었다.
그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도 놈들은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은밀한 움직임이었지만, 멀리서는 그의 움직임이 눈에 보였다.
그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민노식의 눈은 그를 좇았지만, 주변에 있는 오크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 했다.
"씨발!"
계속해서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민노식은 욕설을 내뱉었다.
강준우가 검을 뿌리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는 오크 사냥꾼들이 쓰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었지만, 오크들은 그를 쉽게 찾지 못 했다.
뒤늦게 그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근접한 그에게는 화살을 날릴 수 없었다.
검이 번뜩일 때마다, 오크 사냥꾼의 목이 빠르게 떨어져 나갔다.
가까이에서 유령 같은 움직임으로 놈들을 상대하니, 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쉽게 그들을 처리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민노식은 이를 악물었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지!"
특히나, 그 상대가 앞으로 적이 될 놈이라면 더더욱 막아야만 했다.
묘한 패배감을 느낀 그는 그대로 바닥을 박쳤다.
제운종을 펼친 그의 몸이 오크 전사들의 머리를 뛰어넘고 곧바로 강준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표횰한 그의 움직임에 뒤에 있던 자들이 감탄을 자아냈지만, 정작 그 모습을 발견한 강준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미친 새끼.'
민노식은 곧장 그를 향해 다가왔다.
당연히 그에게 오크들의 공격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그것을 감내하며 강준우와 가까워졌다.
"기다려라! 내가 도와 줄게."
"……."
말은 도와준다고 내뱉었지만, 하는 행동은 명백한 방해였다.
날아드는 많은 공격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을 방해하려는 민노식의 심보에 강준우는 실소를 흘렸다.
콰과광.
그런 민노식을 노리며 오크 샤먼의 공격이 쏟아졌다.
광범위한 곳에 쏟아진 공격에 민노식과 강준우가 휩쓸렸다.
쏟아지는 공격은 많아졌지만, 정작 민노식의 표정은 꽤나 밝아보였다.
"뭐하고 있어? 그러다 뒈진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재미있는 새끼네."
"내가 조금 유머러스하지. 크큭."
자신이 가지지 못할 바에는 남도 가지지 못 하게 만들려는 민노식의 심보.
강준우는 그 모습에 웃음을 보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잠깐 휴전하자는 거. 잊지는 않았지?"
"안…… 잊었지."
"잊었으면 곤란할 걸? 저놈한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잖아?"
오크들 사이로 파고든 그들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민노식은 강준우를 자극했다. 오히려 그를 도발하면서 임창현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만드는 게 더 나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런 그를 무시했다.
그리고 유령보 대신, 삼재보법에 일섬을 섞으며 오크 사이를 파고들었다.
"미친놈. 무슨 생각을…… 뭐, 뭐야?"
갑자기 무모해진 그의 모습에 민노식이 당황했지만, 뒤늦게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
오크들을 약 올리듯 상처만 만들어낸 강준우가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동시에 급하게 장력을 뻗으며 민노식을 노렸다.
콰앙.
갑작스러운 공격에 민노식이 본능적으로 반격을 감행했다.
그대로 주먹을 뻗으며 날아오는 장력을 쳐낸 그는 크게 소리쳤다.
"씨발! 뭐하자는……"
그는 오히려 그의 행동을 반기며 소리쳤지만, 강준우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그의 장력에는 큰 힘이 실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그 충격을 이용해서 방향을 바꿨다.
마치 처음부터 모든 게 계산된 행동인 것 같았다.
뒤늦게 이상함을 느낀 민노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뒤늦게 강준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준우가 사라지는 순간, 그를 향해 수많은 화살이 날아들었다.
"미친 새끼!"
일부러 오크 사냥꾼들에게 자잘한 상처를 입히며 놈들을 도발했던 것은 결국 이런 상황을 위해서였다.
강준우를 욕한 그는 곧장 기운을 쏟아내며 검을 휘둘렀다.
티디딩. 티디딩.
다급히 끌어 올린 내공으로 검술을 펼치자, 전방을 가득 채우며 날아들던 오크 사냥꾼들의 화살이 튕겨져 나갔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되돌려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임창현의 눈치만 살필 거라고 예상했던 그의 생각이 다시 틀린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어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그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저 새끼가!"
다시 유령보를 밟으며 빠르게 모습을 감추는 강준우의 모습.
그런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조금 더 깊숙한 곳이었다.
후미에서 오크들을 지휘하고 있는 정예 오크를 노린 것이다.
그의 행동에 민노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뒤늦게 그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의 앞은 오크 사냥꾼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거기에 오크 샤먼들까지 그를 노렸다.
"씨발!"
너무 깊숙이 들어온 게 문제였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그는 제운종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정예 오크와 가까워지는 강준우와는 다르게 그는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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