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화
<다시 맞은 낯선 환경>
강준우는 소리가 난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괜히 모습을 드러내봤자 좋을 것은 없었기 때문에 유령보를 펼치며 은밀하게 움직였다.
상황을 살피는 게 먼저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비명을 내지른 것을 보면 좋은 상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점점 소리가 가까워졌다.
누군가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소리를 들은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회복! 회복이 필요하다고."
"히카루가 죽었어. 더 이상 회복은…… 가능하지 않아."
"좋아. 그럼 흩어지자! 각자 살 길을 도모하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제 와서…… 쇼, 쇼타! 쇼타!"
한 사람이 남은 둘을 내버려 둔 채, 빠르게 내달렸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의 모습에 남아 있던 여자가 소리쳤지만, 그는 개의치 않으며 물러났다.
조금 전에 들렸던 비명의 주인공은 남은 여자인 것 같았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일본 사람들인가? 근데, 나는 왜……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분명히 일본어였지만, 그는 모든 뜻을 알아듣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말을 알아듣는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같은 국가에 속한 사람들뿐이었다.
군인인 임창현도 그렇고, 여배우로 유명한 백선화까지 다 같은 국적이었다.
'따로 한국에 있었던 사람들인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일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괴상한 일을 겪는 곳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겪고 있는 일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들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떠오른 궁금증을 떨쳐낸 그는 남아 있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괴로워하고 있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여자가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뭐지? 뭔가에 할퀸 것 같은데.'
남자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주변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긴 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무리를 이루고 있는 그들을 습격한 것 같았다.
'저 정도의 발톱을 가진 놈이라면…… 곰인가?'
나무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에 처한 무리와 그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동료.
극한 상황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문득 권우철을 비롯한 세 사람과 임창현의 행방이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아우우우우.
예의 늑대소리가 들려왔다.
문제는 그 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린다는 점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강준우는 불안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사삭.
누군가가 주변을 빠르게 배회하고 있었다.
수풀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강한 살기가 느껴졌고, 그 소리를 들은 남은 여자 역시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사사삭. 사사삭.
마치 그런 불안함을 더욱 극대화 시키려는 듯이 놈은 빠르게 주변을 내달리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괴로워했고, 여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공포가 극에 달하자, 구석의 풀이 들썩이며 숨어 있던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 거리를 도약한 놈은 겁에 질린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기겁한 여자는 급하게 몸을 비틀며 손을 뿌렸다.
쉬이익. 채앵.
섬광이 번뜩이며 여자의 손에서 뭔가가 뿌려졌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겁에 잔뜩 질린 상황에서 반격을 가했지만, 달려든 놈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그것도 모자라서 곧바로 발을 휘두르며 물러난 여자를 노렸다.
촤아악.
"흐윽!"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몸을 할퀴자, 여자는 신음을 토해냈다.
꽤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며 바닥에 내려선 놈을 향해 비도를 뿌렸다.
"죽어!"
날선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품에서 빠져나온 비도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상당히 고절한 무공이 분명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가던 비도들이 방향을 바꾸며 놈을 향해 날아갔지만, 정작 공격을 감행한 그녀는 피를 뿜으며 힘들어했다.
감당할 수 없는 과한 내공을 사용하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되도록이면 지양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앞에 있는 괴물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써보지도 못할 수법이었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나마 작은 상처라도 남기는 게 현명했다.
그녀는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을 펼쳤다.
비처럼 변한 비도가 그대로 거친 털을 가진 놈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놈도 마냥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크아아!"
포효한 놈의 발톱이 더욱 길게 자라났다.
어지간한 단검보다 더 길어진 발톱이 주변을 휘젓기 시작했다.
티디딩. 티디딩.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든 비도가 튕겨져 나갔다.
공격을 받아낸 놈의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공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조법을 펼치는…… 늑대인간인가?'
늑대인간.
앞에 있는 놈의 외형은 매체에서 접했을 법한 늑대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양발로 걷는 놈의 대가리는 늑대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일전에 들렸던 울음은 아마도 앞에 있는 놈이 내지른 소리 같았다.
모든 공격을 무력화 시킨 놈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걸음을 옮겼다.
"크흑. 쇼타. 이 개자식!"
"크르르."
남은 여자는 먼저 도망간 놈을 욕했다.
이미 체념을 했는지 절망 어린 표정이 가득 들어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준우는 고민했다.
혹시라도 주변에 남은 자가 없는지 살피던 그는 이내 결정을 내리며 유령보를 펼쳤다.
나무를 박찬 그의 몸이 빠르게 쏘아졌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의 모습에 겁에 질린 여자의 눈이 커다래졌다.
우연찮게 그의 모습을 발견하며 놀란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이상함을 느낀 늑대인간은 곧장 몸을 돌렸다.
"크르르."
갑자기 날아든 인형이 손을 뻗었고, 은밀한 기운이 늑대인간의 몸에 적중했다.
강력한 음기가 그의 몸을 휘저었다.
절로 몸이 꺾일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놈은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크아아!"
크게 포효한 놈은 용기를 얻으며 바닥을 박찼다.
그대로 도약한 놈이 강준우를 노리며 팔을 뻗었다.
콰과광.
그런 놈의 몸이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늑대인간의 발톱을 확인한 강준우는 그대로 철사장을 뿌리며 놈을 떨쳐냈다.
회색의 기운이 장력으로 변하며 늑대인간을 향해 쏘아졌다.
그 강력한 공격에 늑대인간은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쉽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끼이잉. 끼이잉."
괴로워하는 놈이 특유의 신음을 흘리며 힘들어했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등장에 여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 감정을 느끼기 무섭게 음기가 그녀의 몸을 잠식했다.
'흐읍!'
여자는 사시나무 떨 듯이 잘게 몸을 떨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점점 가까워지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개…… 자식!"
"……."
자신을 살려줄 은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먼 거리를 날아오며 늑대인간을 물리칠 정도의 실력자의 등장을 반겼지만, 결국 그의 목적은 늑대인간이 아닌 자신이었다.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그 말이 그녀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퍼엉.
회색의 장력이 그녀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허공을 격하고 날아든 힘에 그녀는 피를 뿜으며 튕겨져 나갔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 어차피 죽을 상황이었잖아?"
[연비도를 획득하였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된 건가?'
죽은 여자가 가진 무공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굳이 이런 상황에 끼어든 이유는 내던진 비도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어차피 늑대인간에게 죽을 상황이라면 포인트라도 넘기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다행히 새로운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무공을 획득한 것을 확인한 강준우는 아직도 몸을 가누지 못 하는 늑대인간을 향해 눈을 돌렸다.
"크르르."
놈은 잠깐 사이에 많은 회복을 한 것 같았다.
으르렁거리던 놈이 곧장 바닥을 박차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힘을 쥐어짠 놈의 발톱이 더욱 예리하게 변했다.
길게 돋아난 발톱에 검은 기운이 어렸다.
"검기?"
앞에 있는 놈도 검기상인의 경지가 가능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운의 크기가 그렇게 선명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억지로 힘을 끌어내면서 비슷한 경지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
나름 사력을 다하며 달려들었지만, 놈이 손을 뻗기도 전에 강한 일격이 꽂혔다.
콰앙.
캐앵!
장력에 적중당한 놈이 바닥에 처박혔다.
잠깐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끝내 그 힘을 버티지 못 했다.
[웨어 울프를 처치했습니다. 1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웨어 울프?'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늑대인간이 분명했다.
웨어 울프는 웨어 비스트에 속한 놈들이었다.
변신을 통해서 인간과 동물의 형태를 오고갈 수 있는 존재로 흔히 말하는 수인(獸人)의 일종을 말하는 것이 바로 웨어 비스트였다.
늑대인간 역시 이들의 범주에 드는 존재였다.
이런 놈들이 있다는 것은 크게 어색하지 않았지만, 놈의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맷집이…… 엄청나잖아?'
그가 쏟아낸 장력은 유형화 된 기운이었다.
흔히 말하는 검기상인의 경지를 이용하며 놈을 공격했지만, 놈은 몇 차례 그 공격을 받아냈다. 그것도 맨 몸으로.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쓰러진 놈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그 힘을 버텼다는 게 놀라웠다.
일전에 싸웠던 오크라는 놈들보다 더 강한 맷집이었다.
"고블린하고 오크에 이어서…… 늑대인간하고 싸워야하는 건가?"
점점 더 강한 놈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 끝에 어떤 놈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놈들을 처리하면서 힘을 키워야만 했다.
쓰러진 놈을 바라보던 그는 손에 넣은 무공을 확인했다.
하지만 야생의 감각이 경종을 울려댔다.
이미 죽어버린 웨어 울프와 쓰러진 여자를 뒤로하고 위협이 될 존재는 없었다.
'설마? 도망간 놈이?'
강준우는 급히 기운을 끌어 올리며 철포삼에 힘을 더하고, 유령보를 밟아나갔다.
촤아악.
짧은 순간에 움직이며 자리를 벗어났지만, 무언가가 그의 종아리를 스쳤다.
"뭐야? 이빨?"
날카로운 송곳니에 옷이 찢겨나갔다.
철포삼을 운용한 그의 피부에 작은 생채기가 생겼다. 그만큼 놈들의 송곳니와 손톱은 날카로웠다.
문제는 그런 상처를 남긴 놈이었다.
그에게 상처를 남긴 놈은 놈은 조금 전에 괴로워하던 남자였다.
중상을 입은 그의 형태가 왠지 사람과는 달랐다.
돌출된 입과 온 몸에 돋아난 거친 털들.
그는 조금 전에 죽인 웨어 울프와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었다.
충격적인 모습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어지는 알림이 그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만월의 저주를 이겨냅니다.]
'마, 만월의 저주?'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어떤 건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개처럼 변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같았다.
"이제는 별의별……"
누군가를 감염 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탓하는 것보다 앞에 있는 자를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그는 곧장 장력을 뿌리며 흉측하게 변한 자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뻐억.
아직까지 제대로 된 변신을 이루지 못 했는지,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며 움직임을 멈췄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최소한 포인트라도 남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설픈 변화는 그를 웨어 울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왔다.
그렇다고 가지고 있는 무공이나 포인트를 남긴 것도 아니었다.
이도저도 아닌 자를 처리한 그는 찝찝해하며 손을 털었다.
'그래도 하나는 건진 건가?'
이름을 모르는 일본 여자를 처리한 그는 손에 넣은 무공을 떠올리며 그녀가 남긴 비도를 회수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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