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화
<어색한 동행>
쉬이익. 콰과광.
"아아악!"
"기, 기습이다."
"공격해! 저놈을 잡아!"
뒤에서 터져나가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강준우는 그들이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뒤를 잡았고, 너무나 쉽게 마법사들을 쓰러뜨렸다.
그의 기습에 마법을 준비하던 사람 셋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뿜어져 나온 검기는 그만큼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켜! 저놈은 내가 상대한다!"
"네 상대는 나야! 하압!"
유키코는 강준우를 막기 위해 움직이려는 유타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투명한 손을 앞세우며 뛰어드는 그녀의 모습에 유타로우는 이를 악물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감히 조국을 버려?"
"흥! 여기에서 그런 말이 왜 나와? 이거나 받아라!"
투명한 손이 유타로우의 가슴을 노렸다.
하지만 그 역시도 기운을 끌어 올리며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콰앙. 츠츠츠츠.
피처럼 붉게 변한 유타로우의 손과 투명하게 변한 유키코의 손.
두 손이 부딪치자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내 소수를 받아내?'
'내 혈수를?'
상반된 두 기운이 격돌하자 주변이 휩쓸려나갔다.
뿌연 수증기를 내며 격돌한 둘은 서로의 무공이 깜짝 놀랐다.
소수마공과 혈수마공.
극음과 극양의 기운을 가진 무공이었다.
장력을 마주하고 있는 둘은 서로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숙명의 라이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부딪친 둘은 서로의 손을 떼지 않은 채, 힘겨루기를 이어갔고, 유키코는 뒤늦게 상대가 그렇게 자신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크으윽.'
수공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있는 무공이 바로 소수마공과 혈수마공이었다.
극성에 이르면 양 손이 도검불침 상태가 될 정도로 단단해진다는 극상의 무공이었다.
그녀 역시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유타로우의 내공이 그녀보다 앞서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녀가 밀렸지만, 초조한 쪽은 유타로우였다.
콰앙.
힘겨루기를 이어가던 그는 그녀를 떨쳐냈다.
계속 힘을 쏟아내면 그녀를 몰아붙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보다 남은 자들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너희들이 저년을 맡아. 저 새끼는 내가 잡는다!"
"아, 알았어."
강준우는 마법사들 사이를 누비며 그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몇몇이 그를 잡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그는 그들의 공격을 피해내며 집요하게 마법사들만 노렸다.
검기를 앞세운 그의 공격에 마법사들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날리는 마법도 허공에서 터져나가며 제 위력을 내지 못 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유타로우가 힘을 끌어냈다.
"개자식! 죽인다!"
그는 붉게 변한 손을 앞세웠다.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며 장력을 뿌리자, 핏빛 장력이 그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여러 빛무리에 막혀 사그라들었다.
콰과광. 콰과광.
"뭐, 뭐야?"
"매직 미사일이라는 거다!"
"미친! 고작 이런 허접한 공격으로…… 흐읍!"
다이스케가 날린 십여 발의 매직 미사일에 혈수마공의 장력을 막아냈다는 사실에 말문이 턱 막혀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당황할 겨를이 없었다.
앞에서부터 강력한 살의가 전해졌다.
지금은 강준우의 공격을 받아내는 게 먼저였다.
쉬이익. 터엉.
작정을 하고 펼친 검격이 막혔다.
'맨손으로 내 검을 막아?'
놀란 강준우는 상대도 절정에 오른 실력자라는 것을 떠올렸다.
나름 상당한 기운을 흘리며 날카로운 검초를 뿌렸지만, 유타로우는 맨 손으로 그의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양 팔을 엑스자로 교차하며 공격을 막아낸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크윽."
힘겹게 공격을 막아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충격이 더 컸다.
'이 정도로 기운을 쏟아냈는데도, 내가 밀린다고?'
말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놈은 처음이었다.
스스로도 엄청난 역경을 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만큼 위험을 겪으면서 얻은 것이 많았지만, 앞에 있는 놈이 자신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것 같았다.
유타로우는 그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
괴성을 내지른 그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릿한 잔영을 남길 정도로 짧은 순간 굉장한 속도로 움직인 그는 강준우와의 거리를 좁혔다.
'붙으면, 가까이 붙으면 내가 이긴다!'
극양의 기운을 가진 혈수마공.
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거리를 좁혀서 놈이 공격을 피해내지 못 하게 만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쉬이익. 채앵. 채앵.
강준우는 달려드는 그를 피해서 검격을 뿌렸다.
유령보를 밟으며 그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계속해서 그를 두드렸지만, 유타로우는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채앵.
마치 금강불괴라도 되는 것처럼 단단한 팔을 방패삼은 그가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고, 강준우는 뒤로 물러나며 계속해서 그의 팔을 두드렸다.
채앵.
"크윽."
공격을 받아내면 받아낼수록 충격이 쌓였다.
아무리 내기를 가득 머금은 공격이라고 하지만, 내부가 흔들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놈이 왜 저렇게 물러나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내부는 더욱 진탕됐다.
날아드는 공격도 점점 적응이 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끌어올리는 기운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채앵. 투욱.
채앵. 투욱.
유타로우는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다.
연신 물러나며 검을 뿌리는 강준우의 모습은 그에 밀리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가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 이유가 단순히 받아내고 있는 검격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쉬이익. 파앗. 투욱.
"이런 개자식이!"
그는 의도적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쉽게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일격에 귓불이 베이며 피가 튀었지만, 그 충격보다 바닥을 타고 올라온 이질적인 힘이 그의 내부를 진탕 시키고 있었다.
"눈치 챈 거냐?"
"죽인다!"
천마군림보였다.
일부러 위력을 죽이면서 보법을 밟는 와중에 공격을 흘려보낸 것이다.
검을 뿌리면서 펼치는 천마군림보는 상대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를 뒤흔드는 힘이 그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고,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이미 내상을 입은 유타로우는 핏발이 선 눈으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입과 코에서는 연신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강준우를 향한 분노 때문에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죽어!"
막무가내로 달려든 그의 손이 전방을 가득 채웠다.
날아드는 핏빛 장력에 강준우는 곧장 일섬을 섞은 검격을 뿌리며 모든 장력을 받아냈다.
콰과광. 콰과광.
허공에서 부딪치는 회색의 검기와 핏빛 장력들.
두 공격이 터져나가며 주변을 휩쓸었고, 유타로우의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팔뚝까지 붉게 변한 양팔을 교차하며 앞을 가로막은 그는 이를 악물며 강준우와의 거리를 좁혔다.
상대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움직였다.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는 그의 모습에 강준우는 더욱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굳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티디딕. 채앵.
장력을 터뜨리던 검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어가던 공격이 끊겼다. 그리고 기회를 잡은 유타로우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위기 끝에 잡은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던 그는 필사적이었고, 결국 그의 손이 강준우의 손과 부딪쳤다.
'됐다!'
검을 주력으로 쓰는 놈이었다.
자신이 우위에 설 것을 확신한 유타로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대로 내력을 끌어올린 그는 혈수마공의 힘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강준우를 압박했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혈수마공의 양기를 억누릅니다.]
치이이익.
뜨겁게 달아오르는 손에 그의 피부가 점점 익어가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에 유타로우는 더욱 힘을 끌어 올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건곤대나이가 힘의 일부를 돌려줍니다.]
"끄으으윽!"
강준우가 더 힘들어야만 했다. 그게 당연했다.
마공들 중에서도 수위로 꼽는 마공이 바로 혈수마공이었다.
그 양력의 기운을 버텨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람은 그가 아닌 유타로우 본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내부로 극양의 기운이 파고들었다.
건곤대나이가 상대의 힘을 돌려주면서 내상을 입은 유타로우를 더욱 괴롭혔다.
"크헉!"
결국 참지 못한 그가 피를 토해내며 무릎을 꿇었다.
아무리 혈수마공이 상위를 다투는 마공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마공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천마신공을 이길 수 없었다.
천마신공은 혈수마공의 힘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유타로우는 자신하던 힘에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유, 유타로우가 쓰러져?"
"마, 말도 안 돼!"
모두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믿었던 그가 이런 식으로 꺾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 했다.
강준우는 그런 그들에게 경고라도 하려는 듯이 무릎을 꿇은 유타로우를 가격했다.
콰앙.
철사장을 허용한 그의 몸이 튕겨져 나갔고, 강준우는 곧장 그를 향해 지력을 날렸다.
쉬이익. 푸욱.
붉은 기운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이미 저항을 할 기력도 남지 않은 유타로우는 그대로 꿰뚫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혈수마공을 획득했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혈수마공!'
생각지도 못한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정도 되는 고수라면 따로 무리(武理)를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무리를 얻을 수는 없었다.
혈수마공이라는 무공도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철사장의 상위 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몇 단계를 건너 뛴 장법을 얻은 강준우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지금은 그것에 기뻐할 겨를이 없었다.
아직도 적은 많이 남아 있었고,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그는 남은 내공과 자신의 상태를 가늠했다.
유타로우와 부딪치면서 손바닥에 큰 화상이 생겼지만, 그는 만월의 축복을 떠올리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파츠츠츠.
본능적으로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운을 끌어올리자 손바닥에서 느껴졌던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사용되는 내공은 엄청난데 효과는…… 별로네.'
아직 성취가 낮아서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한 건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기대했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유타로우라는 놈을 처리하면서 남아 있는 자들의 기세가 꺾인 것 같았다.
유키코는 소수를 앞세우며 상대를 압박해 나갔고, 권우철은 마법사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적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김연희와 백선화는 좋은 호흡을 보이며 그를 보조하고 있었고, 남은 두 일행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이스케라는 남자였다.
매직 미사일을 주력으로 펼치는 그는 쉬지 않고 적들을 공격했다.
기초적인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매직 미사일이었지만, 모든 포인트를 그것에 쏟아 부은 것 같았다.
작정을 하고 펼치자 한 번에 열 개가 넘는 빛의 구체가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콰과과광.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공격에 권우철을 뛰어넘으려는 자들이 밀려나며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따로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검이 사라졌다는 건가?'
유타로우라는 만만치 않은 적을 상대하면서 검이 부서졌다.
주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을 펼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다른 자들을 처리하면서 상대의 검을 뺏을 수도 있었지만, 이 기회에 다른 무공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음풍퇴(陰風腿)였던가?'
그는 얼마 전에 얻은 퇴법을 떠올렸다.
일전에 상대한 카에데라는 일본인과 그 무리를 처리하면서 얻은 무공으로 맨손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이었다.
퇴법은 물론이고, 장법까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혈수마공과 철사장, 귀음심공을 떠올린 그는 목표했던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작품 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