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화
<새로운 도시>
'겨우 200포인트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획득한 포인트가 더 적었다.
웨어 울프 전사를 처리했을 때와 같은 포인트였지만, 앞으로 마주할 놈들을 생각하면 많은 포인트는 아닌 것 같았다.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놈들이었다.
무공과 다르지 않은 검술을 펼치는 놈들 치고는 포인트가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능력을 준 것도 아니었다.
"흐음."
쓰러진 하급 뱀파이어를 확인한 그는 침음을 흘렸다.
죽은 놈의 몸이 까만 재로 변하면서 흩어졌기 때문이다.
기존에 상대했던 놈들과는 다른 형태의 죽음이었다.
사뭇 다른 죽음에 놀라워하던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
본능적으로 그곳이 이 지역의 목적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곳까지 얼마나 많은 놈들이 적으로 남아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저 정도로 약은 놈들이 모여 있으면…… 쉽지는 않겠는데.'
하급이라는 놈이 보인 행동에 범상치 않았다.
지능을 가진 놈들이라면, 그것도 연기를 하면서 상대를 등쳐먹으려고 한 놈이라면 그들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상념을 떨쳐낸 그는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작정하고 올리려고 했던 초식의 상태를 확인했다.
'착(8成) - 23%'
의식적으로 이 힘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었다.
앞서 상대한 하급 뱀파이어를 통해서 숙련도를 올릴 생각으로 놈을 처리하지 않았고,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
놈을 상대하면서 숙련도가 꽤나 많이 오른 것 같았다.
상대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겹게 착만 사용했다지만, 이런 식으로 숙련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다행이었다.
"이대로 숙련도만 올려도 충분할 것 같은데."
당장은 S등급에 있는 흡기공을 염두에 두고 착의 성취를 올릴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에 그는 흡족해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우선 다른 일행들의 행방을 찾는 게 먼저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들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
채앵. 채앵.
근처에서 들려오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강준우는 걸음을 옮겼다.
아직 일행들 중에 한 명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그들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판단에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물론, 착을 올리기 위해서 하급 뱀파이어들을 상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귀음신법을 펼친 그는 소리가 나는 근처로 움직였다.
등급은 낮았지만 11성에 이른 귀음신법만으로도 은밀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다행히 상대하는 자들이 그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은밀히 구석에 자리를 잡은 그는 부딪치고 있는 자들을 주시했다.
"제법인데?"
"그러는 너야 말로!"
"뱀파이어 주제에 무공을 익히고 있다니!"
"……."
사내는 이미 많은 놈들을 상대한 것 같았다.
뱀파이어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남자는 꽤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주변으로 강한 공격이 휩쓴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다른 뱀파이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놈들이 죽으면 재가 돼서 흩어졌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멀리서 느껴지는 남자의 힘은 앞에 있는 하급 뱀파이어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압!"
다시 힘을 끌어 올린 그는 앞에 있는 하급 뱀파이어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수많은 창영이 생겨나며 뱀파이어를 노렸지만, 하급 뱀파이어도 만만치 않았다.
놈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받아냈다.
'보법까지?'
이미 오크나 웨어 울프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확인했었다.
마력을 사용하면서 더욱 강한 힘을 끌어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앞에 있는 뱀파이어의 모습은 그들과는 또 달랐다.
체계적인 무공을 익힌 게 분명했다.
그저 무작정 마력을 끌어올려서 육체적인 능력을 향상시킨 게 다가 아니었다.
놀란 강준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채재쟁. 채재쟁.
놈은 연신 날아드는 창두를 쳐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완벽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확실히 둘 사이에는 실력 차가 존재했다.
"죽어라!"
"크윽."
크게 외친 사내의 창에 결국 뱀파이어의 몸이 꿰뚫렸다.
힘을 잃고 늘어진 놈의 모습에 사내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망할 흡혈귀 새끼들!"
그는 복부를 꿰뚫은 창을 빼들며 헐떡이는 뱀파이어를 향해 다가갔다.
싸늘한 외침과 함께 창을 들어 놈의 머리를 노리며 마지막을 장식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힘겨워하던 뱀파이어가 마지막 힘을 끌어 올렸다.
터엉.
대뜸 바닥을 후려친 놈은 그 반동을 이용해서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상대 역시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곧바로 반응을 내보인 그는 그대로 창대를 들어 올리며 놈의 몸을 후려쳤다.
뻐억.
멀리서도 묵직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꽤나 강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하급 뱀파이어는 그 고통을 이기며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고, 그대로 그의 몸에 이를 박아 넣었다.
"크윽."
바닥으로 떨어지던 뱀파이어의 이빨이 그대로 사내의 허벅지를 물었다.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지만, 짧은 신음을 내뱉은 그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 했다.
'뭐지?'
"끄으으으!"
사내는 잘게 몸을 떨며 괴로워했다.
그 와중에 뱀파이어는 사내의 허벅지에 이빨을 박아넣으며 피를 탐했다.
생소한 모습이었다.
강준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고, 점점 말라 비틀어가는 사내의 모습에 절로 얼굴을 찌푸렸다.
'고작 하급 뱀파이어한테 저렇게 당한다고?'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지금 눈앞에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뱀파이어의 능력이 더 대단한 것 같았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치열하게 싸우는 둘을 향해 다가갔다.
"끄으윽."
모습을 드러낸 그의 행동에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뭔가에 저항하려는 듯이 잔뜩 얼굴을 구긴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도, 도와……"
마저 말을 끝내지는 못 했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강준우를 발견한 하급 뱀파이어는 불안해하며 빠르게 흡혈을 이어갔다.
간절한 사내의 눈빛에 강준우는 팔을 뻗었다.
푸욱.
내지른 검이 순식간에 사내의 고통을 줄여줬다.
오히려 사내를 목숨을 취하는 강준우의 행동에 하급 뱀파이어는 깜짝 놀랐다.
놈은 쓰러진 사내를 뒤로하고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
그대로 강준우의 몸에 이빨을 박아넣으려고 했지만, 강준우는 달려드는 놈을 후려쳤다.
콰앙.
붉은 장력이 달려드는 하급 뱀파이어의 몸을 때렸다.
작지 않은 충격에 떨어져 나간 놈의 얼굴이 구겨졌다.
본능적으로 앞에 있는 강준우가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놈은 황당해 할 수밖에 없었다.
투욱.
"뭐, 뭐냐?"
"덤벼라.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 봐."
"……."
대뜸 검을 내던지는 강준우의 행동.
평범한 인간과는 많이 다른 놈의 행동에 하급 뱀파이어는 이를 악물었다.
놈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에 치욕을 느꼈다.
하급 뱀파이어는 곧장 검을 손에 쥐며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만한 인간의 목에 검을 꽂아 넣고 그의 피를 취할 생각이었다.
"하아!"
남은 힘을 모두 끌어 올린 그의 검이 섬광을 만들어냈다.
쉽게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그대로 강준우의 미간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하급 뱀파이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공격은 지금까지 펼친 검술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검격이었다.
죽음 앞에서 펼친 검술은 그만큼 강한 집중력을 내보였고, 엄청난 속도로 상대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그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채앵.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받아냈다.
문제는 다시 떨어지지 않은 검이었다.
검을 회수하며 다음 상황을 노리려던 하급 뱀파이어는 딱 달라붙은 검신에 당황하며 안간힘을 썼다.
"흐읍!"
"……."
남은 힘을 끌어내며 발버둥을 쳤지만, 그의 검은 강준우의 손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힘에 놈은 그대로 검을 내던지며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짧은 순간 과감한 판단을 내렸고, 그대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강준우의 품을 파고들었다.
이대로 이를 박아 넣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상대를 물어뜯으면서 상대의 몸에 마력과 타액을 흘러 넣으면 놈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콰앙.
하지만 달려든 그의 몸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곧바로 바닥에 처박힌 뱀파이어는 놀란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봤다.
몸에서 느껴지는 충격보다 담담한 상대의 눈빛이 더 큰 충격이었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검으로 덤벼."
"……."
다시 검을 던져주는 강준우의 행동에 뱀파이어는 모멸감을 느꼈다.
무기력한 먹잇감의 조롱에 잘게 몸을 떤 그는 다시 검을 주워들며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처절한 외침과 함께 남은 힘을 끌어낸 그가 다시 예리한 검격을 날렸다.
이전보다 더 빨라진 일격이었다.
그만큼 하급 뱀파이어의 분노가 크다는 것을 알려왔지만, 그의 분노도 강준우를 어쩔 수 없었다.
채앵.
"크윽."
"……."
다시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은 검.
이번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검을 떨쳐내는 것에만 최선을 다했다.
놈을 상대하는 강준우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미 지친 놈이라 드러난 빈틈이 많았지만, 그는 그저 상대의 검을 묶는 것에만 최선을 다했다.
"이놈! 감히 우리를 무시해?"
"더 힘을 내 봐. 무시하지 않게."
"끄아아아!"
광분한 뱀파이어는 남은 마력을 쥐어짰다.
어떻게 해서든 검을 빼내려고 사력을 다했다. 지금은 죽음보다 검을 떨쳐내는 게 우선이었다.
'단순한 놈들. 종족에 대한 자부심만은 더럽게 강하네.'
놈들의 이런 모습이 그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력을 다하며 검을 떨쳐내려는 놈들의 행동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점점 무뎌지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는 손목을 비틀었다.
스르릉. 터엉.
작은 움직임을 내보인 것뿐이었지만, 하급 뱀파이어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왔따.
그대로 바닥에 꽂히 검이 부르르 떨렸다.
꽤 큰 충격을 받았는지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런 감정도 길지 않았다.
쉬이익. 푸욱.
쏟아진 지력이 그대로 하급 뱀파이어의 미간을 꿰뚫었다.
놈의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그 충격과 함께 재로 변한 몸이 흩어졌다.
[하급 뱀파이어를 처치했습니다. 2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착(着)이 9성으로 올라섰습니다.]
들려오는 알림을 뒤로한 강준우는 떨어진 검을 주워들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꽤나 많은 놈들을 상대했다.
계속해서 착만 사용하고 있는 만큼 숙련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그대로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제 1성만 더 올리면 되는데.'
문제는 9성에서 10성으로 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
쉬이익. 퍼억.
후려친 둔기에 상대하던 놈의 머리통이 깨져나갔다.
치명상을 입은 놈은 움직임을 멈췄고, 그 뒤로 모여 있는 놈들에게 강한 마법이 날아들었다.
콰앙. 화르르르.
폭발을 일으킨 불덩이가 터져나가며 주변을 불태웠다.
강한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지만, 놈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놈들은 불타오르는 몸을 이끌며 다시 움직였다.
"그어어어!"
"어후! 지긋지긋한 새끼들. 포인트도 얼마 안 주는 놈들이 끈질기기는 더럽게 끈질겨요!"
"그럴 말을 할 시간에 다시 마법이나 날려!"
"캐스팅을 해야 다시 마법을 날리지!"
"……."
투덜대는 김연희를 뒤로한 권우철은 다시 둔기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놈을 후려쳤다.
퍼억.
큰 힘을 들이지 않았지만, 그의 둔기는 근접한 놈의 머리통을 가볍게 깨부쉈다.
"나한테는 완전히 천국인데?"
"……."
권우철은 신나 있었다.
그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죽은 자들의 도시를 선택한 것이 나한텐 신의 한수였어!'
그의 힘이 가장 잘 통하는 곳이었다.
신성력을 덧댄 둔기는 좀비로 보이는 놈들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리고 있었다.
김연희의 마법이나 백선화의 정령도 놈들을 이렇게 쉽게 쓰러뜨리지 못 했다.
다시 만난 유키코와 하야테도 앞에 있는 놈들을 힘겹게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는 강력한 힘으로 놈들을 쓰러뜨렸다.
그에게는 최적의 장소였지만, 정작 강준우를 만나지 못 했다.
그를 쫓아가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을 택했다.
강준우라면 이곳으로 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와 엇갈린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권우철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좀비들.
그에게는 이곳이 광란의 축제가 벌어지는 도시였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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