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화
<새로운 도시>
강준우는 의도적으로 도시의 외곽을 돌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하급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면서 착의 숙련도를 올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간간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그들을 피하며 마찰을 만들지는 않았다.
무작정 그들을 처리한다고 좋을 것은 없었다.
일전에 처리한 그 사내도 포인트를 제외하고 좋은 것을 남기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굳이 놈들을 상대할 사람들의 줄여서 수고를 늘릴 필요가 없었다.
오크와 웨어 울프들을 상대하면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 위협이 없다면 되도록 그들을 이용해서 마지막에 남은 놈들의 수장을 처리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게 좋았다.
'근처에는 다른 놈들은 없는 건가?'
착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 너무 시간을 끈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급 뱀파이어를 대부분 처리했는지 주변에는 다른 놈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만히 주변으로 기감을 퍼뜨리던 그는 방향을 정했다.
도시의 외곽에는 하급 뱀파이어라는 놈들이 한 놈만 돌아다녔지만, 점점 더 안으로 들어서자 두어 놈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빼곡한 건물들.
낮고 조잡한 집들이었지만, 이곳에도 어떤 문명이 자리한 것 같았다.
그 건물들 사이를 걷던 그는 막다른 골목에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 도와줘요! 이놈들 뱀파이어에요."
"……."
서로 무기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었다.
강준우를 발견한 여자는 다급하게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했고, 강준우는 비교적 뒤에 있는 놈을 향해 다가가며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채앵.
삼재검법의 궤적은 너무나 단순했다.
큰 힘이 실리지 않은 검은 하급 뱀파이어의 손에 막혔지만, 생각보다 강한 힘이 실렸는지 공격을 받아낸 뱀파이어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가 한 놈을 막아내는 사이, 다른 뱀파이어가 움직였다.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달려드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문제는 도움을 요청한 여자였다.
그 여자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놀란 눈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이상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하압!"
커다란 기합과 함께 남은 놈도 곧장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쉬이익.
상대의 도가 그대로 목을 벨 듯이 날아왔다.
섬광이 번뜩이며 빠른 도격이 날아들었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피해냈다.
제때 밟은 귀음신법으로 뒤로 물러나자, 상대의 도가 허공을 갈랐다.
그 틈을 노린 한 놈이 다시 검을 뻗으며 그를 노렸다.
채앵.
다시 그 검을 받아낸 강준우가 착을 펼치자, 공격을 감행한 놈이 당황했다.
그 틈을 노리고 다른 놈이 다시 도를 뻗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착을 이용해서 묶은 검을 움직이며 놈의 공격을 막아냈다.
"크윽."
오히려 동료의 검에 공격이 막히자, 그들이 당황했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는 그 모습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그대로 바닥을 박찬 그녀는 검을 뻗으며 거리를 좁혀왔다.
'참나. 어이가 없네.'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황당해했다.
곧바로 두 뱀파이어의 뒤를 잡을 것 같았던 여자가 오히려 그의 목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불시에 이루어진 기습이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그 공격을 받아냈다.
"크윽, 어떻게?"
"최소한 같은 무기는 쓰지 말았어야지."
"……."
"줄줄 흐르는 살기는 어떡하고?"
"체엣. 죽어라!"
앞에 있는 여자도 하급 뱀파이어인 것 같았다.
황당하게도 세 놈은 서로 연기를 펼치며 그를 꿰어냈다.
이들의 수작에 휘말렸다고 하더라도 실력 차가 있었기 때문에 큰일은 없었겠지만, 놈들의 행태가 고약했다.
'방심할 수가 없겠는데?'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목숨을 잃을 판이었다.
악랄한 놈들의 행태만 봐서는 차라리 웨어 울프처럼 단순한 놈들을 상대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였다.
사람과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 놈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불신이 쌓이면 쉽게 힘을 합칠 수가 없었다.
힘들게 무리를 이루고, 연합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이런 놈들이라면 그 틈에 섞여 있을 지도 몰랐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만은 않겠는데.'
앞으로가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앞에 있는 셋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다시 미간을 노리며 날아드는 검을 확인한 그는 다시 착으로 묶은 뱀파이어의 검을 움직였다.
채앵.
"뭐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이 새끼가 이상한 술수를…… 끄윽."
여성 뱀파이어의 날선 외침에 검을 쥔 뱀파이어가 변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말을 마치지 못하고 그의 몸이 까만 재로 변한 채, 흩날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은 두 뱀파이어는 말을 잇지 못 했다.
"뭐, 뭐냐?"
"……."
앞에 있던 강준우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쓰러지는 동료의 모습에 그들은 당황하며 주변을 살폈다.
강준우는 그런 둘을 일깨웠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다른 놈은 없으니까."
"네가 이 짓을 벌였다고?"
"내가 아니면 이놈을 누가 죽였을까?"
"……."
태연한 그의 말에 남은 두 뱀파이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뒤늦게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인지한 것이다.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은 그들은 곧바로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압!"
"하앗!"
날카로운 기합을 내뱉은 두 뱀파이어가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쇄도했다.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섬광.
채앵.
하지만 울려 퍼지는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이런 개 같은!"
"잘 버텨!"
처음 연기를 했던 여성 뱀파이어는 그대로 바닥을 박차며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강준우는 그런 뱀파이어의 모습에 황당해했다.
'완전히 사람들하고 똑같잖아?'
동료를 배신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그들이 보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대하는 놈들이 이 정도로 약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저 적의만을 드러내며 공격을 감행하던 놈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급 뱀파이어라지만 지성을 가지고 움직인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선 앞에 있는 놈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이익!"
내지른 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하급 뱀파이어는 그의 검을 떨쳐내기 위해서 미친 듯이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강준우의 검은 아교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황당한 상황에 눈치를 살피던 놈은 그대로 도를 내던지며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걸음을 떼기 무섭게 그의 몸이 꺾었다.
"크흡."
어느새 강준우는 장력을 날리며 그의 움직임을 막아냈다.
몸속을 파고드는 낯선 기운에 놈은 잘게 몸을 떨었다. 그래도 그 충격을 버텨낸 놈은 다시 바닥에 힘을 주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순간 더 강한 기운이 파고들었다.
"커헉!"
바닥을 통해서 들어온 기운이 그의 몸을 헤집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뱀파이어는 그대로 쓰러졌고, 강준우는 일양지를 사용하며 놈의 미간을 꿰뚫었다.
[하급 뱀파이어를 처치했습니다. 2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흡기(吸氣)에 관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흡기(吸氣)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뭐야? 실마리?'
생각지도 못한 실마리를 손에 넣었다.
하급 뱀파이어를 통해서 이런 단초를 얻을 거라고는 예상도 못 했다.
지금까지 여러 놈들을 처리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얻어낸 실마리가 이미 손에 넣은 '흡기'라는 게 아쉬웠지만, 이런 식으로 무리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웨어 울프들과는 다르게 얻을 게 더 많은 것 같았다.
비록, 같은 포인트를 주는 놈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새로운 무리에 대한 단초를 주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다고 흡기에 관한 실마리만 주는 건 아니겠지?'
흡혈귀라면 그에 비슷한 단초만 건넬 지도 몰랐다.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린 그는 그런 상념을 떨쳐내며 주변을 살폈다.
새로운 무리를 줄 지도 모르는 놈을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 정도로 약은 놈을 놓친다면 앞으로 큰 희생이 생길 게 분명했다.
도망간 하급 뱀파이어의 위치를 확인한 그는 곧장 바닥을 박찼다.
강준우는 곧장 도망간 여성 뱀파이어를 쫓았다.
일섬을 섞은 귀영신법만으로도 빠른 움직임이 가능했다.
***
"허억. 허억."
빠르게 도망가던 하급 뱀파이어는 차오르는 숨을 헐떡이며 연신 뒤를 돌아봤다.
상대도 되지 않을 강한 놈을 잡으려고 했으니, 이런 파탄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다른 놈에게 그 괴물 같은 놈을 떠넘기고 도망을 올 수 있었다.
'문제는 그놈이 쫓아오는 경우인데.'
최대한 빨리 다른 놈들과 합류를 해야만 했다.
이대로라면 그놈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익숙한 놈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여유롭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강준우의 모습이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끈질긴 자식!'
꽤나 지친 상황이었지만, 이대로 놈을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그녀는 다시 힘을 끌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한 사람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를 확인한 그녀는 가까워지는 강준우의 모습을 확인하며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 살려주세요!"
"으응?"
"살려주세요. 배, 뱀파이어!"
"……."
"뱀파이어가 쫓아와요! 저 좀 도와주세요."
앞에 있는 놈은 인간이 분명했다.
뱀파이어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몇몇 뱀파이어들이 별다른 기운을 흘리지 않았지만, 그런 자들은 그녀로서는 넘볼 수 없는 고위급 뱀파이어들이었다.
앞에 있는 놈이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서 머리를 썼다.
갑자기 달려온 여자의 모습에 사내는 그녀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곧장 캐스팅한 마법을 펼치며 그녀를 경계했다.
"자, 잠깐만요! 뒤에 뱀파이어가 있어요!"
"…… 움직이지 마세요. 거기 멈춰요."
"제발요! 지금 뱀파이어가…… 와, 왔어요!"
그녀는 겁에 잔뜩 질린 채 소리쳤다.
어느새 그 뒤로 강준우가 나타났고, 그를 가리킨 그녀는 잘게 몸을 떨쳐 말을 이어갔다.
"같이 있던 동료들을 죽였어요. 그들 목에 이빨을 박아 넣고, 피를……"
"다이스키?"
"다이스키가 아니라 다이스케다. 다이스케!"
"……."
두 사람의 대화에 하급 뱀파이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놀란 그녀가 뒤를 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자, 그녀를 향해 십여 개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이런 젠장!"
콰과광. 콰과광.
생각보다 강한 충격에 하급 뱀파이어가 튕겨져 나갔다.
운이 없었는지 둘은 알고 있는 사이 같았다.
그 사실이 이를 악문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지만, 그런 시선도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가로채는 거냐?"
"그, 그럴 리가!"
"비켜 봐. 시켜볼 게 있어."
"시, 시켜 볼 거?"
갑작스러운 말에 다이스케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 강준우는 검을 겨누는 하급 뱀파이어를 향해 말했다.
"덤벼."
"이, 이놈!"
자신을 무시하는 인간의 모습에 하급 뱀파이어는 그대로 검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남은 마력을 모두 쏟아내며 그대로 강력한 일격을 뿌렸다.
채앵.
하지만 이번에도 예의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미 죽은 다른 한 놈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검도 강준우의 검에 딱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크윽."
안간힘을 써보며 팔을 흔들었지만, 검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낑낑대던 그녀는 이를 앞세우며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도드라져 보였지만, 날아오는 것은 붉게 변한 손바닥이었다.
뻐억.
일격에 떨어져 나간 하급 뱀파이어의 몸이 잘게 떨렸다.
이렇게 무기력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푸욱.
그런 그녀의 앞에 조금 전에 내팽개쳤던 검이 꽂혔다.
"조금 더 힘을 내 봐."
"……."
"뱀파이어라더니 별 것도 아니네."
"이, 이놈!"
종족을 무시하는 발언에 그녀는 힘을 쥐어짜며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강준우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어렵지 않게 검격을 받아내며 다시 착을 사용했고, 미친 듯이 휘두르는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내며 숙련도를 끌어 올렸다.
'미, 미친. 도대체 무슨 짓이지?'
일방적으로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그런 강준우의 모습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다이스케는 그만큼 안도할 수 있었다.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장 든든한 놈을 만날 수 있었다.
'설마 나를 내치지는 않겠지?'
불안한 그를 뒤로한 강준우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하급 뱀파이어를 처리했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보였다.
[착(着)이 10성으로 올라섰습니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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