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5화
<미친 사냥법>
"그게 무슨 소리지? 요르문이 뭐야?"
"당신들 쪽에도 한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있다니? 뭐가?"
"뱀파이어."
"……."
강준우의 말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안드레이는 그의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그 말. 책임질 자신이 있는 건가?"
"확인해 보면 알겠지."
"우리 모두와 싸우겠다?"
"뱀파이어를 처리하려는 거다."
"……."
단호한 그의 말에 오히려 안드레이가 당화했다. 하지만 그 말을 허투루 흘러 들을 수가 없었다.
'요르문? 요르문이 누구지?'
그조차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당황한 그가 일행들을 바라보자, 모두의 표정이 그와 다르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마리나가?'
옆에 있던 마리나의 표정이 어색했다.
평소에 그가 알고 있던 표정이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의 시선이 다시 강준우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역시 마리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침음을 삼켰다.
- 눈치챈 건가?
"……."
- 어떻게 할 생각이지?
- 만약에 마리나가 아니라면?
- 내 동료의 목숨을 걸지.
"……."
정작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말은 없었지만, 안드레이는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다.
잠깐 고심하던 그는 흥분한 듯이 소리쳤다.
"우리 중에 뱀파이어는 없다!"
"그럼 말해 봐. 요르문 개새끼라고."
"요르문? 그 개새끼가 누군데?"
안드레이는 스스럼없이 그 말을 토해냈다.
그의 거친 말에 강준우는 마리나라는 여자의 반응을 살폈고, 역시나 굳은 그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놈들이었지. 이런 식으로 욕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다는 건가?'
이런 반응이 황당했지만,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었다.
뱀파이어는 유독 자부심이 강한 놈들인 것 같았다.
일전에 마주한 놈들을 떠올리며 즉흥적으로 이런 방법을 떠올렸지만, 제법 효과가 있었다.
안드레이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남은 일행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요르문? 나도 그런 새끼 이름은 처음 듣는데?"
"그 새끼 욕하는 걸로 뱀파이어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요르문 개새끼! 그럼 나는 뱀파이어가 아닌 거네?"
"요르문 개새끼. 됐지?"
저마다 처음 듣는 이름을 욕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 쉽게 입을 열지 못 했다.
"마리나?"
"뭐해? 이름도 모르는 놈이잖아? 그냥 시원하게……"
"마, 마리나?"
그녀의 반응이 너무 이상했다.
점점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힐을 이용해서 분명히 확인을 했는데?'
"자, 장난 하는 거지? 이런 장난은 더럽게 재미 없어!"
"마리나? 뭐해? 요르문이라는 놈을 그냥 욕……"
"닥쳐! 그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짓은…… 흐읍!"
흥분한 그녀가 소리치기 무섭게 강준우가 들이쳤다.
그대로 검을 뻗어내는 그의 행동에 마리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검을 뻗어냈다.
쉬이익. 터엉.
갑작스러운 대응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다.
이미 예상을 했다는 듯한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강준우가 놀랐다.
'정말로 이런 방법이 통한다고?'
정작 본인이 말해놓고도 황당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리나라는 여자였다.
확실히 느껴지는 힘에 비해서 더 강한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한 반발력을 느낀 그는 다시 보법을 밟으며 손을 뻗었고, 물러나던 마리나의 몸이 멈칫거렸다.
'크윽.'
천마군림보였다.
상대의 움직임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멈칫거리는 그녀를 향해 강준우의 일검이 날아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일격이었지만, 마리나는 오히려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검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다른 자들과는 또 다른 대처였다.
허점을 파고든 모습에 오히려 강준우가 당황했지만, 커다란 굉음과 함께 그녀가 튕겨져 나갔다.
콰앙.
어느새 안드레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강준우가 아닌 마리나의 가슴을 후려치며 그녀를 떨쳐냈다.
강한 굉음과 함께 튕겨져 나간 그녀가 피를 뿜어내며 바닥을 굴렀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던 그녀의 몸에 예리함 검격이 날아들었다.
서걱.
"까아악!"
마리나는 겨우 바닥을 기며 공격을 피해냈지만, 그녀의 팔이 잘려나갔다.
강준우는 그 여세를 몰아서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그때, 안드레이가 그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잠깐!"
"뭐지?"
"내가 확인하겠다."
"…… 저년을 그냥 넘겨라?"
"빚! 빚을 졌다고 치자."
"……."
"언젠가 이 빚을 갚는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비장한 그의 말에 고민하던 강준우는 뒤로 물러났다.
당장이야 마리나라는 여자의 힘과 포인트를 얻는 게 좋을 것 같았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이런 인연을, 빚을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빚이라.'
이 사람들 역시 나름대로 임무를 완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빈 틈을 파고든 요르문이라는 놈의 의도를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강준우의 모습에 안드레이는 눈짓을 보내며 고마움을 표했고, 곧 쓰러진 마리나를 향해 다가갔다.
"아, 안드레이. 뭔가 오해를……"
"만약 오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저놈들을 죽인다! 그리고 나도 죽는다!"
"……."
아주 사소한 것에서 드러난 진실에 안드레이는 무력화 된 마리나를 처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말을 잇지 못 했다.
"아, 안드레이? 왜 그래?"
"괜찮은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그의 기색을 살폈다.
그 와중에도 강준우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안드레이는 힘겹게 몸을 추스르며 강준우를 바라봤다.
"요르문이라는 놈은…… 누구지?"
"나도 몰라. 그 뒤에 숨어있다는 것밖에는."
"그런 건가?"
"……."
"큰 빚을 졌다. 말했다시피 언젠가 갚을 날이 올 거다."
"그랬으면 좋겠군."
다행히 강준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안드레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믿었던 마리나가 뱀파이어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르문이라는 이름에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상념을 떨쳐낸 그는 강준우와 다이스케를 향해 물었다.
"함께 할 생각은?"
"우리는 우리끼리 움직일 거다."
"그렇군. 행운을 빌지. 나중에 그 요르문이라는 놈을 죽일 때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희들도."
"이번에 진 빚은 반드시 갚겠다."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남자다운 안드레이의 모습에 강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마리나라는 여자를 넘긴 것은 잘한 선택인 것 같았다.
남아 있던 다른 일행들도 충격을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안드레이는 그들을 이끌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이스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일이 잘 풀려서."
"그래. 새로운 판별법도 알아내고, 나쁘지는 않네."
***
고대하던 플라이를 처음 시연해 보는 상황.
천천히 떠오른 다이스케의 얼굴이 밝아졌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설마, 이럴 생각으로 포인트를 몰아 준 거였냐?"
"언젠가 보답을 하고 싶다며?"
"…… 하아. 너를 믿었던 내가 미친놈이었다."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미친! 이 짓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다."
"……."
뻔뻔한 그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혀왔다. 하지만 그 말을 거절할 자신이 없었다.
강준우의 도움으로 힘을 키운 건 사실이었다.
뱀파이어와 뒤엉킨 상황에서 라이트닝 볼트를 날리며 놈들을 처리한 다이스케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그래. 네가 잘만 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니냐?"
"어떡하라고? 네가 잘해야 하는 일인데."
"후우."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굳이 이런 미친 짓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강준우가 아무런 대책 없이 움직이는 놈은 아니었다.
"지금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알았어. 간다! 가! 내가 다음부터 네 도움을 받으면…… 젠장!"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강준우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마나를 모으며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조심해."
"그런 말을 할 거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안 시키면 되잖아!"
"보답을 한다고 한 건 너였잖아? 싫으면 말고."
"……."
계속 말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다이스케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캐스팅을 완성한 그는 곧장 플라이 마법을 사용했고, 그의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처음 쓰는 마법이 왜 이렇게 마법이 잘 써지는 거야!'
어두운 하늘 위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놈들에게 라이트닝 볼트가 날아들었다.
콰지지직.
"크아아!"
공격을 허용한 놈들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의 모습을 발견한 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빼곡히 들어찬 놈들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우, 살 떨려!'
달려드는 놈들은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맹수들 같았다.
조금만 삐끗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것 같다는 긴장감에 다이스케의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그나마 공격이 없다는 게…… 크윽.'
쉬이익. 콰앙. 콰앙.
허공에 떠 있던 그는 갑자기 날아드는 마법에 기겁하며 고도를 높였다.
그가 있던 곳으로 마법이 터져나갔다.
뒤늦게 놈들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기겁하며 속도를 높였다.
'이 새끼는 어디 있는 거야?'
분주히 움직인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강준우를 찾았다. 그리고 멀리서 손짓을 하는 그를 발견하며 빠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잡아라!"
그런 다이스케를 잡기 위해 뱀파이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붕을 박차며 그를 잡기 위해 뛰어 올랐고, 일부는 모습을 바꾸며 그를 따라왔다.
"바, 박쥐?"
몇몇 뱀파이어들이 모습을 바꿨다.
까만 박쥐로 변하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박쥐로 변한 놈들도 날카로운 송곳니를 앞세웠지만, 다이스케는 물러나는 와중에 라이트닝 볼트를 뿌리며 놈들의 움직임을 막아섰다.
콰지지직.
그 충격에 일부가 떨어져 나갔지만, 큰 충격을 줄 수는 없었다.
콰앙. 콰앙.
그 와중에 그를 노리며 마법이 날아들었다.
위협적인 공격에 휩쓸리며 미리 펼쳐놨던 실드가 깨져 나갔다.
'이대로라면 죽겠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 여기다. 내려 와!
두리번거리는 그의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다이스케는 그 모습을 찾아내며 고도를 낮췄다.
그런 그에게 몇몇 뱀파이어들이 달려들었지만, 놈들은 아래에서 날아드는 검기에 휩쓸리며 튕겨져 나갔다.
콰앙. 콰앙.
아래에서 날아든 강력한 검격.
강준우는 달려드는 놈을 견제하며 떨쳐냈고, 다이스케는 다급하게 그의 뒤로 물러나며 새로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괜찮겠어? 근처에 있는 놈들은 다 몰려든 것 같던데!"
"……."
다이스케는 걱정이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막상 놈들을 몰아왔지만, 그 수가 너무나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현철보검을 손에 쥔 채로 기운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쿠우우우우.
그의 주변에 있는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캐스팅을 이어가던 다이스케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뭐야? 이 힘은!'
그저 기운을 끌어 모으는 것만으로 주변의 마나가 동요하고 있었다.
불안함을 느낀 그는 더 뒤로 물러났다.
이전과는 또 달라져 있는 강준우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 그는 강준우와의 거리를 벌리며 다시 캐스팅을 이어갔다.
그런 다이스케의 눈에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인근에 있던 뱀파이어라는 놈들을 모두를 끌은 것 같았다.
상당히 많은 놈들이 다이스케의 뒤를 쫓아서 그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앞은 강준우가 기운을 끌어모은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크아아!"
피를 갈구하는 놈들이 거칠게 소리치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모여든 놈들이 순식간에 강준우와 가까워졌다.
동시에 놈들을 확인한 강준우는 끌어 모은 힘을 쏟아내며 빠르게 손을 뿌렸다.
쉬이익.
하나 둘 떠오르는 반월의 검기들.
허공을 가득 채운 검기들에 전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콰과과광.
커다란 굉음과 함께 주변이 쓸려나갔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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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