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화
<미친 사냥법>
일전에 만난 러시아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그들은 한데 모인 뱀파이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근처에 있던 놈이 전음을 보내더라고."
"일부러 저들을 상대했다는 거야? 나는 저 사람들을 못 봤는데?"
"집 안에 있었나 봐. 뱀파이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데 움직이는 미친 짓은 하지 않겠지."
"……."
정작 그 미친 짓을 두 사람이 하고 있었다.
주변의 뱀파이어들이 모두 모여서 움직이는 모습을 안드레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강준우와 다이스케가 놈들을 끌어들이면서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뱀파이어들도 그에 관한 대책을 세운 마당에 그들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일전에 빚을 갚겠다고 저러는 거야?"
"빚이라니?"
"그 요르문하고 관련된 여자를 처리하면서 빚을 졌다고……"
"고작 이런 걸로 빚을 갚는다고?"
강준우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저들의 도움은 충분히 고마워할 일이었지만, 그는 크게 고마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확실히 생각하는 게 다른 건가?'
그래도 이런 생각은 기발했다.
스스로 미끼를 자처하면서 뱀파이어의 시선을 붙잡는 것을 보면 그렇게 이기적인 놈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종잡을 수가 있어야지.'
다이스케는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냈다.
앞에 있는 강준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은밀하면서도 빠른 움직임은 그대로였다.
쉬이익. 서걱. 서걱.
그가 움직일 때마다 하급 뱀파이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이스케도 조금씩 차오르는 마나를 확인하며 놈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끼라는 역할을 자처한 만큼, 그에 따른 보상도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었다.
콰과광.
"물러나라! 뒤로 물러나!"
굉음에 휩쓸리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에 그들을 이끌었던 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안에서는 강준우와 다이스케가 강력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고, 밖에서는 다른 인간들의 파상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오히려 함정에 빠진 쪽은 뱀파이어들이었다.
그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크윽. 이놈들!"
그 사이에서 사라지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상급 뱀파이어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런 그의 시선에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크으! 죽인다!"
그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앞에 있는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빠르게 뱀파이어들의 수를 줄이고 있는 사람.
바로 강준우였다.
앞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에 강준우는 시선을 돌렸다.
흐릿한 형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며 그를 노렸다.
쉬이익. 터엉.
그대로 검을 뻗자, 달려들던 뱀파이어의 손이 검을 후려쳤다.
검기가 가득 실린 일격이었지만, 놈은 수월하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상급 뱀파이어?'
손톱을 세운 놈의 손에는 검은 기운이 잔뜩 뭉쳐 있었다.
그 기운 역시 강준우가 사용하는 검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검격을 쳐낸 놈은 오히려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압!"
순식간에 안으로 파고드는 놈의 모습.
기민한 움직임에 강준우는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터엉. 쉬이익. 채앵.
천마군림보를 펼치면서 상대를 옭아매고 곧바로 목을 노렸지만, 상급 뱀파이어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나름 잘 통하는 수법이었지만, 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놈은 오히려 그와의 거리를 더욱 좁히려는 듯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검을 휘두를 간격을 지울 생각인 것 같았다.
'확실히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니까.'
본능적인 건지 따로 이 상황을 염두에 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앞에 있는 놈의 행동은 놀라웠다. 하지만 강준우도 마냥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다시 기운을 흘렸다.
쿠웅. 쿠웅.
계속해서 파고드는 은밀한 기운.
마력을 뒤흔드는 강준우의 천마군림보에 상급 뱀파이어의 얼굴이 구겨졌다.
강준우는 의도적으로 귀음신법을 펼치면서 천마군림보의 힘을 쏟아냈다.
그는 일부러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유령보를 펼치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간다면 앞에 있는 놈이 쫓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적당히 피해를 입히면서 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보법으로는 귀음신법이 제격이었다.
"크아아."
쌓이는 충격에 상급 뱀파이어는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빨을 앞세우면서 달려들었다.
뱀파이어들의 본성이었다.
우선 이빨이 박히면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갈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뱀파이어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준우는 그 점을 이용했다.
콰직.
혈수마공의 힘을 끌어올린 그는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일부러 팔을 내어주며 뱀파이어의 강력한 무기를 묶었고, 상급 뱀파이어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됐다! 이제 네놈의 피를…… 뭐, 뭐지?'
하지만 상황은 그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터억.
강준우는 곧장 상급 뱀파이어의 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흡기공을 펼치며 기운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크흡!'
한 곳으로 모이는 마력이 상대에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놀란 상급 뱀파이어의 눈이 커다래졌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으며 들어오는 마력을 사용했다.
쿠웅.
다시 발을 구르자 강력한 힘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인근에 있는 뱀파이어들이 그 힘에 휩쓸리며 휘청거렸다.
광범위한 곳에 펼친 천마군림보였다.
쿠웅. 쿠웅.
그는 상급 뱀파이어를 통해서 뽑아낸 마력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소진한 힘이 많았다.
아무리 안드레이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많은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우선은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게 먼저였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줘서 상대하기 편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물론, 천마군림보의 성취를 올리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쿠웅. 쿠웅.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그 힘에 휩쓸린 놈들이 비틀거렸다.
몸 안으로 파고든 기운을 떨쳐내지 못한 놈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고, 그런 놈들에게 다이스케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체인 라이트닝!"
콰지지직.
그도 마력을 아끼지 않았다.
강준우와 함께 움직였던 만큼 지금이 기회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콰앙. 서걱.
강한 폭발과 함께 상급 뱀파이어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 충격에 휘청거리는 놈에게 강준우의 검격이 꽂혔고, 일격을 허용한 놈은 곧 재로 변하며 흩어졌다.
[상급 뱀파이어 크르투아를 처치했습니다. 6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후우.'
전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지만, 확실히 평범한 뱀파이어들과는 달랐다.
그래도 큰 피해 없이 놈을 처리한 그는 호흡을 고르며 남은 뱀파이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남아 있는 뱀파이어들을 모두 처리했을 때는 모두가 지쳐 있었다.
안드레이를 비롯한 일행들은 물론이고, 그 와중에 새롭게 합류한 다른 무리들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공통된 적을 상대로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둔 그들은 꽤나 고무돼 있었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풀지는 않았다.
뱀파이어라는 놈들도 위험했지만, 함께 자리한 다른 사람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걸로 빚은 갚은 건가?"
"빚을 갚다니? 오히려 빚을 더 진 것 같은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우리 덕에 많은 포인트를 얻은 것 같은데. 아닌가?"
"……."
황당해하던 안드레이는 강준우의 표정에 말을 잇지 못 했다.
꽤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나름 도움을 주기 위해서 움직였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런 움직임이라면 우리가 아니었어도 놈들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으려나?'
그가 몰이사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확인한 강준우의 모습은 또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붙는다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뱀파이어와 싸우던 그의 모습을 확인한 지금은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도 우리가 조금의 도움이라도 준 것 같은데?"
"그저 시간만 단축시켰을 뿐이지."
"흐음."
안드레이는 침음을 흘렸다.
나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움직였지만, 정작 상대는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그들이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쉽게 뱀파이어들을 처리한 만큼 그는 강준우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콰앙. 콰앙.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싸움이 한창인 것 같았다.
정작, 강준우가 있는 곳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급작스럽게 모인 그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고, 다이스케는 소진한 힘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이 끝났으면 여기에서 그만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
다이스케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같이 자리하고 있어봤자 좋을 건 없을 것 같았다.
"다음에…… 그 빚을 갚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안드레이는 인사를 건네며 물러났다.
그와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도 남은 자들을 경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두에게 낯선 소식이 전해졌다.
[뱀파이어 토벌이 완료되었습니다.]
[고성의 문이 개방됩니다.]
"뭐, 뭐야? 임무가 완수됐다니?"
"아직 뱀파이어들이 많은데?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아직도 많은 뱀파이어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도 놈의 기척이 느껴졌고, 곳곳에서는 희미한 괴음이 들려왔지만, 임무가 완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뭐지? 이런 다른 전개는?'
문제는 이상한 시점에서 열린 고성의 성문이었다.
아직 남은 뱀파이어들이 많은 상황에서 고성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상황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에는 고성이라는 곳으로 움직여야겠지만, 이런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아직 밖에 있는 놈들도 다 상대하지 못한 마당에……"
"설마, 안에 있는 놈들이 밖으로 나오는 건 아니겠지?"
모두가 불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으로 떨어지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걱정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개인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정 무공의 성취가 100% 상승합니다.(무작위)]
'무작위로 상승한다라.'
일전에 한 번 얻었던 보상이었다.
성취가 100%상승한다는 것은 좋았지만, 무작위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무작위로 오른 무공이 낮은 등급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천마군림보가 5성으로 올라섭니다.]
[천마군림보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다행히 등급 외로 구분되어 있는 천마군림보의 성취가 올랐다.
하지만 5성으로 올라선 천마군림보는 생각지도 못한 다른 변화를 보였다.
[5성의 천마군림보. 발산하는 기운의 형태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형태를 조절해?'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발산하는 기운의 형태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부로 침투하던 힘을 외부로 방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새로운 사실을 확인한 강준우는 가만히 기운을 흘렸다.
은밀하게 발에 힘을 주며 한쪽 방향을 주시하자 강한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콰앙.
마치 강력한 마법에 적중된 듯한 느낌이었다.
따로 내부로 침투해서 타격을 가했던 천마군림보였지만, 이제는 다른 형식으로도 충격을 줄 수 있었다.
'저게 진정한 천마군림보였나?'
사실 지금까지 펼쳤던 천마군림보는 기대했던 것이 미치지 못 했다.
내부로 파고들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강한 충격을 남길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생각했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5성으로 올라서면서 나타난 변화는 그가 상상했던 그 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5성의 천마군림보라. 사냥이 더 쉬워지려나?'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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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