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화
<미친 사냥법>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떡하긴? 다시 움직여야지."
"……."
무뚝뚝한 그의 말에 안드레이는 강준우를 바라봤다.
조금 친해진 것도 같다고 생각했지만, 혼자만의 착각인 것 같았다.
"어차피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거라면 함께 움직이는 건 어때?"
"글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던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일전에 봤던 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번 싸움에 참여한 상태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강준우의 시선에 안드레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모두 확인한 상태야. 요르문 개새끼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지."
"……."
일전에 알아낸 방법으로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연찮게 발견한 수단이었지만, 힐을 이용해서 확인을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효과적이었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 더 좋지 않겠어? 어차피 쓰러뜨려야 할 적은 정해진 것 같은데."
"……."
안드레이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을 확실히 확인하며 침묵했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옆에 있던 다이스케가 민망했는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저 때문일 겁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미안합니다."
"……."
그런 그들의 반응에 뒤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안드레이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우리 정체가 불안한가 보군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들 중에 뱀파이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요르문 개새끼!"
확신을 주려는 듯이 말하는 그 모습에 다이스케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뱀파이어라고 생각도 안 했습니다. 하하하."
"…… 아직도 확신이 안 서는 겁니까?"
"어차피 고성에서 다시 만날 텐데. 굳이 함께 움직일 이유가 있을까요?"
"그래도 둘 보다는 여럿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럿보다는 둘이 더 좋은 것 같아서."
내켜하지 않는 강준우의 모습에 입을 열었던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름 호의를 보였지만, 상대는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안드레이와는 밖에서부터 알고 있는 사이입니다. 저는 니콜라이라고 하죠."
"저 사람하고도 친하다고는 할 수 없어서요."
"……."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강준우의 냉담한 말에 다이스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사회성 결여된 새끼.'
자신보다 더한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경직된 분위기에 다이스케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이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때, 힘을 합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요. 그렇게 하죠."
"그럼 우리는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인사를 건넨 다이스케는 강준우를 이끌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드레이는 그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역시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불편한 감정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꽤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뭐가 문제지?'
아무리 둘이 편하다고 하지만, 이런 호의를 저런 식으로 거절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드레이는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뿐만 아니라 자리한 모두가 그들의 모습을 살폈다.
그만큼 강준우가 뱀파이어들과 싸우면서 보인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다이스케가 마법을 펼치면서 뱀파이어들을 몰아온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명이서 이 정도의 뱀파이어를 상대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실제로 이들은 두어 번의 몰이사냥을 마친 이후였다.
안드레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아쉬워했다.
여전히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강준우와 함께 물러나던 다이스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뭐가?"
"아무리 내키지 않아서 거절을 한다고 해도 그런 식을 무뚝뚝하게 말을 건넬 필요는 없었잖아?"
"……."
"그런 태도가 적을 만드는 거라고! 굳이 각을 세울 필요는 없……"
"익숙한 놈이 있더라고."
"익숙한 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
다이스케는 강준우의 뜬금없는 말에 놀라며 되물었다.
'익숙한 놈?'
강준우에게 익숙한 놈이라고 해봐야 좋은 감정이 남은 사람일 리가 없었다.
아마도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좋지 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게 분명했다.
'좋은 감정이 남은 사람이라면 먼저 아는 체를 했을 텐데.'
뒤늦게 그가 그들과의 동행을 거절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성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익숙한 사람이 적이라는 거야?"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뒤늦게 그가 거절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차라리 먼저 해결하는 건 어때?"
"저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자는 거냐? 괜찮겠어? 나는 상관없는데."
"……."
다이스케는 말을 잇지 못 했다.
뒤늦게 강준우가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걸림돌이 된 것 같았다.
"이런 츤데레 새끼."
"무슨 개소리야?"
"고맙다고. 그것도 더럽게!"
***
뱀파이어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그 무리들 중에 한 축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굳은 얼굴로 움직였다.
그들이 향한 곳은 강준우와 다이스케가 움직인 쪽이었다.
"확실한 거야?"
"맞아. 확실하다니까! 내가 그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확신하는 사내의 말에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이 류웨이를 죽인 놈이라고?'
함께 하고 있는 자를 통해서 강준우의 정체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가 웨어 울프를 상대하면서 류웨이를 쓰러뜨렸다는 것을 알아냈다.
류웨이와 각별한 사이인 그녀인지라 그 사실을 확인한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강준우라는 놈의 실력이 문제였다.
잠깐 마주한 놈의 실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혼자서 쓰러뜨린 뱀파이어들의 수는 그들 모두가 처리한 뱀파이어 수와 비슷했다.
'류웨이를 죽인 놈이라면 당연한 건가?'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게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류웨이 역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전해들은 말로는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서 움직였다고 했으니, 그들을 모두 이끌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저런 놈이 류웨이를 죽인 원수라니.'
당연히 복수를 할 생각이었지만, 류웨이의 복수를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야?"
"우선 상황을 지켜봐야지."
"차라리 조금 전에 놈들이 지쳤을 때 처리했다면……"
"그전에 우리가 죽었을 거야. 모두 정상이 아니었잖아?"
"……."
"거기에 남아 있던 러시아인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는 없었을 테니까."
안드레이와 니콜라이가 이끌고 있던 자들도 만만치 않았다.
조금 전에 보인 그들의 태도라면 강준우라는 놈을 도왔을 게 분명했다.
리단양은 신중하게 움직였다.
류웨이의 복수도 중요했지만,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 역시 중요했다.
'놈들이 지친 상황을 노려야 하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른 놈들과 힘을 합치지 않고 둘만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놈들이 사냥을 끝내고, 지친 상황을 노린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우선 따로 움직인 두 놈들 뒤를 쫓자."
"괜찮을까?"
"멀리서 움직이면 놈들도 눈치채지 못 하겠지."
"한 놈은 하늘을 날던데?"
"당연히 건물 안으로 숨어서 쫓아야지. 최대한 모습을 감추고 움직여야겠지."
"알았어. 그게 좋겠네."
***
콰앙. 콰앙.
'크윽.'
날아드는 마법에 다이스케는 침음을 삼켰다.
의도적으로 고도를 낮추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받아내야만 하는 공격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전처럼 많은 놈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따로 강준우의 언질을 받은 그는 전보다 작은 수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노력했다.
연신 날아드는 마법에 실드가 깨져나갔지만, 다이스케는 곧바로 실드를 만들어내며 그들을 끌어 모았다.
몰이는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처럼 수많은 놈들을 끌어 모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지만, 오히려 소수의 뱀파이어들을 몰아오는 게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무슨 마법이 끊임없이 날아오는 거지?'
계속되는 뱀파이어들의 공격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이전과 다르게 놈들의 움직임이 또 달라진 것 같았다.
터엉. 파삭.
다시 깨져나가는 실드를 뒤로한 그는 앞에 보이는 강준우의 모습을 반기며 곧장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후우. 후우. 그냥 전처럼 한 번에 몰아오는 건 어떨까?"
"……."
별다른 대꾸가 없는 강준우의 모습에 멋쩍어하던 다이스케는 뒤로 물러나며 마법을 준비했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 다수의 뱀파이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 살기를 뿜어내는 놈들이었다.
날선 눈빛이 다이스케를 좇았지만, 그 앞을 강준우가 가로막았다.
근처로 모인 놈들을 확인한 강준우는 곧장 발을 내디뎠다.
쿠웅.
기운을 끌어올리며 천마군림보를 펼치자, 앞에 있던 뱀파이어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안으로 파고드는 낯선 기운에 당황한 놈들이 멈칫거렸고, 강준우는 다른 발을 내디디며 놈들을 공격했다.
쿠웅.
5성에 오른 천마군림보.
내부를 공격한 그는 다시 외부로 힘을 쏟아냈다.
발을 내디딘 곳을 중심으로 기운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과 함께 멈칫거린 뱀파이어들의 발밑에서 강력한 기운이 치솟아 올랐다.
콰과광.
커다란 굉음과 함께 강한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뒤에서 마법을 준비하던 다이스케가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치솟아 오른 기운이 터져나갔다.
그 범위에 들어온 뱀파이어들이 휩쓸렸고, 충격을 버티지 못한 놈들이 재로 변하며 흩어졌다.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치솟아 오른 기운에 놈들이 터져나갔다.
이 일의 원흉이 앞에 있는 강준우라는 사실을 인지한 그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 몫은?"
"그러게."
"뭐야? 그 무책임한 말은? 고생은 내가 다했는데!"
"나도 이렇게 위력이 좋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해서."
"미친!"
정작 천마군림보를 사용한 강준우도 놀랄 정도로 강한 위력이었다.
그저 어느 정도의 충격만 남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천마군림보의 위력은 그의 예상보다 더 강력했다.
천마신공을 토대로 사용하는 천마군림보.
상대의 내부로 파고들어가는 힘과는 또 달랐다.
세밀함이 요구되던 것과 다르게 거칠게 몰아치는 힘이 외부의 폭발로 나타나자 강한 위력을 내보였다.
'이정도 내공이라면 그렇게 부담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시험 삼아서 사용한 5성의 천마신공은 꽤나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강준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허억. 허억."
"뭐야? 갑자기 왜 이래?"
"……."
"…… 괜찮은 거야?"
"잠깐만…… 흐읍. 쉬자."
"……."
갑자기 달라진 강준우의 반응.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놈이 꽤나 지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전에 한 말을 떠올린 다이스케는 이상함을 뒤로하고 남은 뱀파이어들을 바라봤다.
놈들도 꽤나 놀란 듯한 모습이었지만, 곧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졸지에 놈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다이스케는 곧장 캐스팅한 마법을 날리며 기운을 쏟아냈다.
"라이트닝 볼트!"
콰지지직.
"매직 미사일!"
콰과과광.
그는 계속해서 매직 미사일을 날려대며 시간을 벌었고, 달려들던 뱀파이어들이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다시 쏟아낸 라이트닝 볼트에 놈들이 결국 재로 변했지만, 새로운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뭡니까?"
"……."
기운을 쏟아내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일련의 무리들.
일전에 수많은 뱀파이어들을 상대했을 때, 마주했던 그 사람들이었다.
러시아인들 사이에 끼어있던 동양인들로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온 것 같네."
"……."
"그 정도로 힘을 쏟아냈다면 멀쩡한 게 더 이상하겠지?"
"뭡니까? 당신들은?"
다이스케는 놀란 듯이 그들의 정체를 물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온 리단양은 그런 그를 무시하며 뒤에 있는 강준우를 바라봤다.
"류웨이를 알고 있겠지?"
"류웨이?"
"그 중국 놈! 웨어 울프와 싸웠을 때 그……"
"네놈도 그때 있었던 거냐? 흥! 차라리 잘 됐군."
"……."
"류웨이를 복수를 하러 왔다. 이 자리가 네놈들 무덤이 될 거다!"
리단양은 강한 살기를 뿜어냈다.
앞에선 다이스케는 이를 악물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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