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1화
<고성으로 향하는 길>
"만독불침은 무슨 소리야?"
"……."
다이스케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리단양이라는 여자가 괜한 말을 내뱉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로 만독불침인 거냐?"
"그랬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강준우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 걸린 녹색 액체가 다이스케의 눈을 사로잡았다.
투욱. 치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그라드는 그 모습에 다이스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저 인간이 만독불침이라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은데.'
정작 본인 입으로 그게 아니라는 말을 내뱉는 것을 보면 아직 그 상태에 이른 것 같지는 않았다.
담담한 강준우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상황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 몫은 없는 거냐? 마법사라도 남겨주지!"
"그랬다면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없었겠지. 쓸만한 마법이나 만들어 놔. 매직 미사일로 뭘 하겠다고."
"……."
"등급 높은 게 깡패더라."
아무리 기본적인 무공을 대성한다고 해도, 높은 등급의 무공과는 비교를 할 수 없었다.
물론, 두어 등급 위에 있는 낮은 성취의 무공과는 견줄 수 있었지만, 등급 외로 분류된 무공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건곤대나이도 그렇고, 천마군림보도 그렇고 등급 외로 분류된 이유가 있었다.
독에 당했다지만, 그것 역시 건곤대나이의 공능으로 어렵지 않게 떨쳐낼 수 있었다.
강준우의 충고에 다이스케는 말을 아꼈다.
그 역시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확실히 등급이 높으면 그만큼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뒤로한 강준우는 이번에 겪은 일을 떠올렸다.
이번 일을 통해서 얻은 것은 만천화우와 같은 무공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 싸움으로 조금 더 보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조금 더 방어에 신경을 써야 하나?'
아무리 만천화우라는 무공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서 펼쳐진 무공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일섬을 섞은 무영검을 극성으로 펼치면서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지만, 날아드는 공격을 받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에 독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공격까지 상대해야만 했다.
천마신공과 건곤대나이가 없었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게 분명했다.
독기를 억누를 수 있는 천마신공의 공능이 제 역할을 다했고, 건곤대나이로 독기를 빼낼 수 있었다.
'그나마 반탄기가 있어서 중한 상처를 피할 수 있었던 건가?'
철포삼이 12성으로 올라섰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조금 더 방어에 관해서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다시 비슷한 공격을 받아낸다면, 더 완성에 가까운 공격을 받아내게 된다면 중한 상처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심하던 그는 상점창을 확인했다.
아직 익히고 있지 않은 무공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몸을 보호하는데 적절한 무공을 확인한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천마반탄기(天魔反彈氣)라.'
역시나 등급 외에 등재되어 있는 무공이었다.
천마신공을 이용해서 펼칠 수 있는 초식들 중에 하나였지만, 익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반탄기하고, 발경은 이미 손에 넣었는데……'
문제는 천마신공이었다.
천마반탄기를 익히기 위해서는 천마신공이 10성에 올라야만 했다.
'호신강기겠지? 아직도 2성이나 더 올려야하는데.'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보법의 성취를 올려서 공격을 피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일섬이랑 무영검 성취를 더 올려야하나?'
강한 공격을 받아내는 게 어렵다면 쳐내거나 피하면 될 일이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호신강기를 배울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방어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마냥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콰앙. 콰앙.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강준우는 정신을 일깨웠다.
고성과 가까운 곳에서 계속해서 강한 폭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그곳까지 움직인 것 같았다.
'고성이라.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그곳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고성이라는 곳이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아직 방어와 관련해서 보완할 점을 발견한 상황이라 더더욱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 그게 있었지.'
번뜩 스치는 생각에 그는 다시 상점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남은 포인트를 확인하며 귀물들을 살폈다.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는 귀물들을 손에 넣을 수는 없었지만, 낮은 등급의 귀물을 손에 얻을 수 있을 정도의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방어. 방어라.'
가만히 그 목록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교룡피의(蛟龍皮衣)?'
말 그대로 교룡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었다.
상체를 보호할 수 있는 옷으로 가지고 있는 포인트로 겨우 얻을 수 있을 정도의 귀물이었다.
현철보검의 능력을 확인한 만큼 다른 귀물들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귀물이라면 부족한 방어력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없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
교룡피의(蛟龍皮衣).
교룡의 가죽으로 만든 의복으로 외부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일반적인 병장기로 입을 피해를 막아낼 수 있지만, 유형화 된 기운까지 막아낼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손상된 부분을 스스로 복구된다.
상당한 포인트가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경천동지할 위력을 가지고 있는 귀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진 포인트로 얻을 수 있는 것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능력을 가진 귀물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교룡피의를 손에 넣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다른 무공을 익힐 생각이 없었다.
가진 무공의 성취를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설프게 성취가 낮은 무공을 손에 넣느니 지금 가지고 있는 무공들을 먼저 올리자.'
임무를 통해서 보상을 얻으면 마음을 졸여야만 했다.
무작위로 숙련도가 오르는 무공들 중에서 등급이 낮은 것이 오르면 그만큼 손해였다.
남은 무공들 대부분이 A등급 이상으로, 성취를 올리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것들 위주로 먼저 올리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강준우는 손에 넣은 교룡피의를 걸쳤다.
그냥 거죽대기 같았지만, 그의 체형에 맞게 알아서 크기가 조절됐다.
'귀물이라서 다르다는 건가?'
작은 변화였지만,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상의에 걸친 것을 확인하던 그는 옆에서 들려오는 다이스케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독식한 포인트로 혼자만 옷을 사셨겠다?"
"……."
"좋겠네. 나는 거지같은 옷으로 계속 버티는데."
"부러우면 너도 사라."
"살 포인트가 있어야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하아."
아쉬움이 가득한 다이스케의 말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이스케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름 기회를 줬지만, 제 밥을 제가 찾아먹지 못한 탓이 컸다.
굳은 강준우의 표정에 다이스케가 움찔거렸지만, 그는 그 자세를 고수했다.
그만큼 억울한 것도 사실이었따.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냥 농담이라고! 칼까지 꺼낼 필요는 없……"
당황한 그가 소리쳤지만, 다행이 그를 향해 적의는 아닌 것 같았다.
검을 꺼내든 강준우는 한 쪽 방향을 확인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소리치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강준우가 아니었다.
다이스케는 곧장 마법을 준비했다.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강준우는 조금 더 기운을 구체화시키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그의 행동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만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
그의 견제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서 나타난 사람은 갈색 머리를 휘날리는 여자였다.
등에 메고 있는 무언가가 유난히 눈을 사로잡았지만, 그녀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지?"
"그냥 궁금해서 왔을 뿐이에요. 큰 소란이 있는 것 같아서 확인을 하려고. 싸움이 있었나보네요?"
"……."
당당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오만하게 보일지도 몰랐지만, 정작 낯선 여자를 대하는 강준우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은신에 특화된 사람인가? 아니면 그와 비슷한 무공을 익힌 건가?'
가까이 접근했을 때까지 별다른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주 희미하게 들려온 낯선 소리가 아니었다면 그 정체를 확인하지 못할 뻔했다.
공간에 대한 무리를 얻으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기감을 확실히 알아낼 수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상대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뜻했다.
가진 무공이 특별하다거나 가진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시할 수 없는 상대의 모습에 그는 앞선 여자를 살폈다.
'한국 사람인가?'
외형은 그가 알고 있는 한국인이었다.
그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 혼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혼자서 여기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정도면 충분히 확인한 것 같은데?"
"……."
그만 가보라는 듯한 말이었지만, 정은수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쓰러진 사람들 중에 한 명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 사람을 왜 죽인 거죠?"
"……."
쓰러진 리단양을 가리키며 묻는 그녀의 말에 강준우는 천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아무래도 죽은 리단양과 인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강준우의 반응에 뒤에 있던 다이스케가 입을 열었다.
"우리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이 여자가 먼저 공격을 했다고요?"
"예. 뱀파이어를 상대한 이후를 노리고 공격했죠. 무리들과 함께."
"……."
"문제가 있나요? 아니면…… 아는 사람인가요?"
오히려 그들과의 관계를 묻는 다이스케의 말에 정은수는 고심했다.
죽은 리단양과 잠깐의 인연이 있었다.
웨어 울프를 상대하면서 힘을 합친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각별한 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심성이 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멀리서 일어난 소란에 조심스럽게 주변만 살피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름 신중하게 움직였지만, 이런 식으로 들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다.
그만큼 앞에 있는 자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뜻했고, 그 사실에 고민하던 정은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잠깐 스친 인연이에요. 각별한 사이는 아니에요."
"그럼 문제 될 게 있나요?"
"아니요. 그냥 호기심이……"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강준우의 모습에 표정을 굳혔다.
자연스럽게 발을 내디딘 그의 행동에 그녀는 그대로 바닥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무슨 짓이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
뻔뻔한 그의 모습에 정은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가벼운 발걸음일 뿐이었지만, 상대는 분명히 기운을 움직였다.
그녀는 바닥을 타고 은밀하게 흘러들어오는 기운을 인지했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암습을 당했을 게 분명했다.
'엄청 뻔뻔한 사람이잖아?'
문제는 앞에 있는 자의 실력이었다.
조금만 방심했다면 큰 낭패를 봤을 법한 파동이 느껴졌다.
이미 리단양과 힘을 합쳐서 웨어 울프를 상대한 경험이 있던 만큼, 그녀와 그 무리를 처리한 강준우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대로 부딪쳐봤자 좋을 건 없겠지?'
그녀가 놀란 것처럼 강준우도 내심 놀랐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은밀하게 기운을 흘리며 앞에 있는 여자를 노렸다.
천마군림보를 펼치면서 우선 상대가 기운을 움직이지 못하게 방해할 생각이었지만, 기운이 전해지기도 전에 상대는 그 움직임을 눈치챈 것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고수가 분명했다.
그를 잔뜩 경계하는 정은수의 모습에 강준우도 천천히 기운을 끌어 올렸다.
여차하면 공격을 하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은수가 먼저 뒤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싸울 생각은 없어요. 그냥 상황을 확인하고 물러날 생각이었으니까."
"은밀하게 접근했으면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글쎄. 오해였을까?"
"……."
강준우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그녀 역시 그와 비슷하게 행동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과 부딪쳐봤자 좋을 건 없었다.
대충이나마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던 그녀는 가진 힘을 드러내며 말을 이어갔다.
"나와 상대하려면 저 사람 목숨을 걸어야 할 거예요!"
"……."
강준우를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뒤에 있는 다이스케는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호한 그녀의 말에 다이스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그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걸어보지. 그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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