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화
<고성에서의 임무>
강준우와 다이스케를 확인한 자들이 멈칫거렸다.
흉흉한 그들의 기세에 뒤에 있던 다이스케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던 일…… 마저 하세요."
"……."
혹시라도 시비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는 앞으로 나섰다.
괜히 부딪쳐봐서 서로 좋을 게 없었다.
적극적인 그의 말에 나타난 무리들은 앞에 있는 뱀파이어를 처리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남은 놈을 처리한 걸로 봐서는 앞에 있는 사람들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수적으로는 확연히 열세라는 것이 드러났다.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두 무리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 앉았다.
다이스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고, 강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고성으로 가는 겁니까?"
"서로가 목적은 똑같지 않을까요?"
"하긴, 근데…… 두 명이서는 힘들지 않겠어요?"
"근방에 힘을 합칠 사람이 있을 겁니다. 거기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아, 일행?"
"뭐…… 그런 셈이죠."
다이스케는 안드레이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괜히 얕보여봤자 좋을 게 없었다.
옆에 강준우가 있었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겠지만, 뱀파이어라는 공통된 적을 놔두고 굳이 싸울 이유가 없었다.
'싸운다고 하더라도…… 나만 죽어나겠지.'
강준우야 걱정이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었지만, 다이스케는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남은 사람들도 이곳에서 싸워봤자 좋을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후우."
다행히 강준우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는 자들보다 강준우가 먼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지만, 그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네가 다 참을줄 알고."
"명분이 있어야지."
"며, 명분?"
"보는 눈이 많거든. 실드나 준비해 둬."
"……."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다이스케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쉬이익.
갑자기 허공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귀신 같은 움직임에 헛바람을 집어 삼켰지만, 나타난 자의 검이 허공에서 가로막혔다.
채앵. 콰앙.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의 움직임과 보이지도 않은 검격이었다.
다행히 강준우가 그 공격을 받아냈지만, 쏟아진 여력이 다이스케의 실드를 두드렸다.
제때 실드를 펼치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강준우의 말을 듣고 곧바로 마법을 펼친 게 목숨을 살렸다.
"이걸 막아?"
기습을 감행했던 자는 놀란 기색이 역력한 말투로 외쳤다.
하지만 그보다 뒤에 나타난 다섯 명의 사람들이 더 큰 문제였다.
그냥 물러난 것 같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주변을 포위했다.
놀란 다이스케는 급하게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마법을 펼쳤다.
'플라이!'
마법을 크게 영창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메모라이즈해 둔 마법을 펼치자, 그의 몸이 떠올랐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은밀하게 이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최소한 강준우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갑자기 떠오르는 그의 모습에 남아 있던 자들이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들은 안으로 파고드는 기운에 움직일 수 없었다.
"크윽. 이게 뭐지?"
"저놈이다. 조심해!"
누군가가 바닥을 딛고 있는 강준우를 가리켰다.
더 강한 힘을 쏟아내며 놈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의 부딪침에 주변에 숨어 있던 자들이 눈치를 살폈다.
'기회를 엿보는 건가?'
숨어 있는 사람들도 견제해야 했다.
놈들이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몰랐다.
무엇보다 이들을 통해서 이번에 손에 넣은 배진격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날아드는 검격과 함께 사라졌다.
쉬이익.
상대의 검을 막아내기 무섭게 다시 예리한 일격이 날아들었다.
소리도, 그림자도 없이 날아드는 검격이 너무나 익숙해 보였다.
'무영검?'
은밀하게 기습을 한 사내의 공격은 그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검법이었다.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지만, 강준우는 곧장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해냈다.
"이걸 피해?"
오히려 공격을 펼친 자가 당황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작정을 하고 모든 힘을 끌어낸 쾌검이 너무나 쉽게 읽혔다.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강력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쐐에엑.
미간을 노리며 쏘아지는 검격에 기겁한 그가 고개를 숙였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공격에 피가 튀었지만, 다행히 큰 사단은 피할 수 있었다.
'뭐야? 이 검술은?'
갑작스러운 검격에 깜짝 놀랐다.
상대의 무공 역시 자신이 사용하는 무영검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 걸렸나?'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채앵.
다시 날아드는 검격에 그는 무영검을 다시 극성으로 펼치며 공격을 받아냈다.
묵직한 충격이 남았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받아낸 그의 검이 크게 밀려났고, 강준우의 검이 그의 살갗을 베어냈다.
"크윽!"
고작 두 번 정도 부딪쳤지만, 상대와의 격차를 확인할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힘에 부쳐하던 그는 뒤에 있는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해? 빨리 도…… 크흡."
동료의 도움을 통해서 이 상황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온 은밀한 기운이 그를 흔들었다.
강한 충격에 멈칫거리기 무섭게 예리한 검격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푸욱.
"끄아악!"
다시 날아든 검격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인지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공격을 피해냈지만, 완전히 피해낼 수 없었다.
간신히 몸을 비틀었지만, 강준우의 검은 그대로 그의 어깨에 꽂혔다.
극렬한 고통에 처절한 비명을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괴성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서걱.
비명을 내지르기 무섭게 시야가 달라졌다.
묘하게 어긋나는 광경에 사내는 자신의 몸이 기울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하기 무섭게 온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무영검을 획득하였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이미 익힌 무공은 숙련도로 대체됩니다.]
[무영검이 4성으로 올라섰습니다.]
'4성의 무영검!'
생각지도 못한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다행히 성취가 올랐지만, 아직도 다섯 명이 남아 있었다.
"리, 리쿠토!"
쓰러진 자의 모습에 남은 다섯이 흥분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공격이 날아들었다.
쐐에엑.
새하얀 섬광이 그들을 노렸다.
기겁한 사내가 급하게 공격을 날리며 마법을 쳐냈지만, 터져나간 라이트닝 볼트의 여력이 그를 휩쓸었다.
"크으윽."
꽤나 강력한 위력에 사내는 신음을 흘렸다.
그렇다고 막아내지 못할 공격은 아니었다.
강력한 위력은 상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전격에 노출된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받아라! 라이트닝 볼트 3연발!"
"미친!"
세 줄기의 빛이 쏘아졌다.
기겁한 그를 돕기 위해서 주변에 있던 자들이 힘을 모았지만, 그런 그들에게는 다른 공격이 날아들었다.
"매직 미사일 12연발!"
콰과과광.
적들을 견제하기 가장 좋은 마법이 바로 매직 미사일이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12개가 날아들자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지 않게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지만, 상대의 마법은 끊이질 않았다.
콰지지직. 콰과광. 콰지지직.
멈추지 않고 날아드는 마법에 그들은 점점 지쳐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강준우가 끼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다시 움직였다.
서걱. 서걱.
지친 사람들이 빠르게 쓰러져 나갔다.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이스케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내 몫은?"
- 마법사를 잡으면 되잖아.
"…… 미리 말이라도 하든가!"
투덜거린 다이스케는 잔뜩 겁에 질린 채로 굳어 있는 마법사를 바라봤다.
강준우는 일부러 마법사만 남긴 것 같았다.
그가 무공을 배운 자들을 쓰러뜨린다고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포인트밖에 없었다.
따로 마법을 얻으라는 생각인 것 같았지만, 마법사가 마법사를 처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콰지직. 파바바밧.
쏘아낸 라이트닝 볼트는 상대 마법사의 실드에 가로막혔다.
계속해서 실드를 만들어내며 물러나는 그들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이를 악물었다.
'더 강한 마법이 필요한가?'
정작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결정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부족했다.
다시 한 번 마법을 만들어내던 그는 당황한 두 마법사의 모습에 곧바로 마법을 쏘아냈다.
쐐에엑. 콰지지직.
"아아악!"
이번에 날린 마법은 상대의 몸에 적중했다.
미리 강준우가 손을 썼는지 그들은 실드를 만들어내지 못 했고, 기회를 잡은 다이스케는 연신 마법을 날리며 그들을 쓰러뜨렸다.
"후우. 후우."
- 내려 와서 호흡이나 골라.
다이스케는 그의 말에 따랐다.
짧은 순간에 많은 힘을 쏟아내면서 상당한 마나를 소모했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뭐 좋은 거라도 얻은 거냐?"
"운이 좋았어."
"그래?"
생각보다 괜찮은 것을 얻은 듯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다이스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남은 놈들도 거뜬하겠네."
"남은 놈들이 더 있다는 거야?"
"지금 고민 중인 것 같아. 곧바로 움직일지 조금 더 기다릴지."
"……."
다이스케는 강준우의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뱀파이어들보다 사람들이 더 위험했다.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다행히 별다른 기습은 없었다.
두 사람이었지만, 여섯 명을 수월하게 쓰러뜨린 모습에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던 자들은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그들을 뒤로한 두 사람은 복잡한 골목길을 벗어났고, 넓은 공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끝에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이 두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엄청 높네."
"……."
점점 가까워지면서 제대로 된 성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까마득한 높이의 성벽과 그 뒤로 드러난 몇 개의 첨탑들.
넓은 공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건물을 확인한 그들은 골목 끝에 모여 있는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가 그 끝에 자리를 잡은 채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몇몇은 공터에 있는 뱀파이어들과 부딪치면서 힘을 회복하고 있었고, 몇몇은 그런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며 각자를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
"……."
"이제 오는 거냐?"
뒤늦게 도착한 두 사람을 반기는 사람은 안드레이였다.
그가 환한 얼굴로 강준우를 찾았다.
익숙한 얼굴들이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뒤에 있던 다이스케는 강준우를 대신해서 환한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
"오랜만입니다."
"아, 그래. 자네도 오랜만이네."
다이스케의 인사를 받았지만, 그의 시선은 강준우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인사를 건네는 그보다는 앞에 있는 넓은 공간과 그 뒤에 자리 잡은 성벽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밖에 있는 놈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간 것 같더군."
"……."
"따로 밖에 자리를 잡은 놈들은 없는 것 같아. 지난번처럼 뒤에서 움직이는 놈들은 없다는 소리지."
그는 알고 있는 상황을 전해줬다.
이미 강준우가 함께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이곳에 모인 사람들끼리 약속을 정했어."
"약속?"
"뱀파이어들을 상대할 때까지 서로를 공격하지 않기로."
"……."
뜬금없는 말이었다.
이런 약속을 갖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들은 여기 도착하기 전까지도 기습을 받은 상황이었다.
"약속한 게 맞는 겁니까? 여기 오기 전까지도 싸웠는데."
"모두가 따르지는 않겠지. 하지만 성을 공격할 때는 그렇게 하기로 정했어. 따르지 않는다면 모두의 공격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걸로."
"뭐…… 나쁘지는 않는 것 같네."
오히려 수가 적은 그들로서는 반길만한 일이었다.
절대적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 약속이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강준우는 안드레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놈도 그쪽하고 같이 움직였으면 하는데. 어때?"
"우리하고 같이?"
"마법을 쓰니까 도움이 될 거야."
"지금 빚을 갚으라는 건가?"
"고작 이런 걸로?"
황당해하는 강준우의 반응에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래도 작은 힘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좋아. 잘 부탁하지."
그래. 당분간은 잘 부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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