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화
<고성에서의 임무>
"뭐야? 어딜 갔다 온 거야?"
"정의구현."
"저, 정의구현?"
"그런 게 있어."
"……."
잠깐 마실이라도 나갔다 온 느낌이었다.
평온한 그 모습에 다이스케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어떻게 저 입으로 정의구현을 말할 수 있지?"
지금까지 보인 행동만 보면 정작 정의구현을 당할 사람은 강준우였다.
괜히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를 묻는다고 말해줄 사람은 아니었다.
'별 일 없겠지?'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뱀파이어들이었다.
상념을 떨쳐낸 그는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음 같아서는 플라이를 이용해서 체인 라이트닝을 꽂아넣고 싶었지만,이 상황에서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매직 미사일!"
"……."
콰과광.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뭐하냐?"
"응? 뭐하긴 뱀파이어들을 상대……"
"좋은 마법 놔뒀다가 뭐할 거야?"
"그게 눈치가 보여서."
"이런 병……"
말도 섞기 싫다는 듯한 강준우의 반응에 다이스케는 고개를 떨궜다.
뒤늦게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다시 캐스팅을 이어가며 마나를 모았다.
콰과광. 콰과광.
그가 준비를 갖추는 사이 곳곳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성문에서는 꽤 많은 뱀파이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는 사람들 역시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효과가 좋은 편은 아니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쏟아내는 공격에 비해서 쓰러지는 뱀파이어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하급이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자의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강한 마나의 유동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하며 분주히 몸을 날렸다.
그런 움직임은 희생을 줄였고,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확실히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콰앙. 콰앙.
선두에 서서 공격을 받아내는 안드레이는 날아오는 공격을 쳐냈다.
강한 충격이 손에 남았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뒤에 있는 일행들이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있게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무공을 익히고 있는 그와 일행들은 앞장서서 뱀파이어들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크윽."
어느샌가 날아든 검격에 피가 튀었다.
일격을 허용한 그는 검을 뻗은 뱀파이어를 후려치며 떨쳐냈고, 그런 그에게 새하얀 빛이 날아들었다.
"힐! 괜찮아?"
"괜찮아."
뒤에 있던 니키타가 그를 치료하며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아직까지는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이대로는 힘들겠어. 교대를……"
"우선 내가 맡고 있지."
"네, 네가?"
안드레이는 뒤에 대기하고 있는 일행을 불렀다.
하지만 그들이 나서기 전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너무 의외의 인물이었다.
강준우의 모습에 안드레이는 깜짝 놀랐지만, 그는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 눈치 보지 말고 공격해.
귓속을 파고드는 강준우의 말에 다이스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앞장서는 모습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 놈들을 쓰러뜨리면서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게 중요했다.
강준우는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이 다이스케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기회에 다시 포인트도 채우고, 부족한 무공의 숙련도를 올릴 생각이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기 무섭게 기다리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몸을 날렸다.
"죽어!"
그의 목을 노리며 검을 뻗는 그 모습에 강준우는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티잉.
혈수마공을 펼치며 어렵지 않게 공격을 받아낸 그는 착을 이용해서 상대를 끌어당겼다.
어렵지 않게 뱀파이어의 목을 틀어쥘 수 있었고, 곧바로 흡기공을 펼쳤다.
"크윽."
빠져나가는 마력에 뱀파이어의 눈이 커다래졌지만, 그런 그의 몸을 뚫고 날카로운 검첨이 강준우를 노렸다.
푸욱. 푸욱.
'지독한 새끼들.'
동료라고 할 수 있는 놈을 스스럼없이 찌르며 공격을 감행하는 놈들의 마음에 그는 손에 잡힌 놈을 쳐내며 발을 내디뎠다.
콰과광.
바닥을 타고 흘러나간 강한 기운이 앞선 뱀파이어들을 휩쓸었다.
천마군림보의 위력에 휩쓸린 놈들이 그대로 재로 변하며 흩어졌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강한 위력에 놀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마법을 캐스팅했던 다이스케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조심해. 체인 라이트닝!"
쐐에엑. 콰지지지직.
"미친!"
근거리에서 날린 그의 마법에 강준우와 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갔다.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이 강한 힘에 휩쓸리며 사그라들었고, 강준우 역시 그 힘에 휩쓸렸다.
가까운 곳에 동료가 있었지만, 다이스케는 스스럼없이 마법을 날렸다.
멍청한 그의 행동에 안드레이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지만, 마법에 휩쓸린 강준우는 멀쩡했다.
그는 오히려 파고든 전력을 뿌리며 다른 뱀파이어들을 공격했다.
"저게 가능한 거야?"
"…… 가능하니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우와. 도대체 뭘 익히고 있는 거지?"
거침없이 마법을 날리는 다이스케.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 뱀파이어들의 목을 틀어쥐며 마법을 반사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콰지지지직.
이전과는 다른 강렬한 충격에 강준우는 이를 악물었다.
라이트닝 볼트와 체인 라이트닝의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배진격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날아든 마법의 방향을 되돌리며 오히려 뱀파이어들을 공격하자, 포인트가 빠르게 올랐다.
반사하는 마법 역시 그의 힘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 같았다.
뒤에서 열심히 마법을 날리고 있는 다이스케는 그 사실을 알지 못 했다.
그 역시도 빠르게 포인트를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미친듯이 마법을 날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그만 물러나.
"여기에서 멈추라고?"
- 모든 힘을 쏟아내지 말라고. 어느 정도 대비할 힘은 가지고 있어야지.
뒤늦게 그 뜻을 인지한 다이스케는 다시 뒤로 물러났다.
강준우도 뒤로 물러나며 안드레이와 일행들에게 바통을 넘겨줬다.
"고, 고생했다."
"들러붙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을 거다."
"그래. 노력해 보지. 우선 쉬고 있어."
자리를 바꾼 강준우는 뒤로 물러났다.
힘겨울 정도로 강한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일부러 힘을 아꼈다.
"힐! 괜찮아요?"
"……."
그런 그에게 니키타의 힐이 쏟아졌다.
따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위태로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호의를 뒤로한 그는 획득한 포인트와 오른 숙련도를 확인하며 소진한 체력과 내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만은 않았다.
낯선 소리가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띠리링. 콰과과광.
그와 다이스케가 주변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쓰러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땅이 울릴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저 여자는? 그때 우리와 부딪쳤던 그 여자잖아?"
"……."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은 정은수였다.
기다란 금을 꺼내든 그녀는 지붕 위에 앉아서 금을 뜯고 있었다.
띠리링. 콰과광.
'음공인가? 저것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금을 뜯을 때마다 강한 기파가 퍼져 나갔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소리에 강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특히, 앞에 있는 뱀파이어들에게 흘러가는 음파 속에는 검기처럼 강렬한 기운이 가득했다.
콰과광.
다시 터져나가는 공간과 함께 꽤 많은 뱀파이어들이 재로 변하며 흩어졌다.
가공할 위력이었다.
일전에 보인 강준우의 공격보다 더 많은 놈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공격은 다수를 상대하는데 더 큰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대단하네. 그냥 줄만 뜯는데도 저런 공격이라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거겠지."
"그, 그렇겠지? 하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겠네."
"특별한 무기도 필요할 것 같고."
사용하고 있는 악기도 평범하지 않았다.
귀물들 중에서도 작지 않은 포인트가 필요한 물건 같았다.
심상치 않은 위력을 내는 정은수. 그리고 곳곳에서 강한 위력을 쏟아내는 사람들.
누구하나 쉬운 상대는 없을 것 같았다.
'저런 사람들하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건데.'
이번에는 요르문이라는 놈을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금은 임창현이나 권우철 같은 확실한 편이 없었다.
그나마 다이스케가 남아 있었지만, 그가 얼마나 큰 힘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떠오른 상념을 떨쳐낸 그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어딜 가려고?"
"네 옆에서 뭘 하라고?"
"……."
"눈치 보지 말고 움직여. 네가 힘을 내보인다고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알았어. 조심해!"
"……."
그의 말을 뒤로한 강준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고 정은수의 주변을 살폈지만, 그녀는 어느 정도의 힘을 쏟아내며 기운을 갈무리했다.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불미스러운 일을 사전에 차단할 생각인 것 같았다.
나름 원칙을 세우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쉽네.'
틈을 보이면 빈틈을 파고들 생각이었지만,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뜻을 함께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 무슨 일이죠?
그런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정은수가 까칠한 목소리로 물었다.
꽤나 거리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 무슨 뜻이지?
- 그런 시선…… 부담스럽네요.
- 그냥 신기해서 본 것뿐이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분명히 좋은 의도를 가지고 본 게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 꼬투리를 잡기에는 상대하는 놈이 너무 괴물이었다.
'끈질긴 놈이잖아? 계속 저렇게 기회를 노릴 것 같은데.'
그녀 역시 그가 했던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뱀파이어들을 공격하면서 놈들을 통해서 이득을 취했던 놈들을 처리한 사람이 바로 강준우였다.
모두가 쏟아져 나오는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강준우에게 향해 있었다.
유령보로 모습을 감춘 그를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리라는 남다른 방법이 있었다.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통해서 상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강준우를 주시하고 있었던 만큼, 소리로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약속을 듣고도 대담하게 움직이는 놈이라면……'
이후에도 계속 그녀를 노릴 것이 분명했다.
비교적 힘이 부족한 그녀로서는 고민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 달려들지 모를 맹수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신중한 놈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는 강준우를 바라보며 마음을 굳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 원하는 게 뭐죠?
"……."
- 말해 봐요. 원하는 게 뭐죠? 어떻게 하면 그 오해를 풀 수 있는 거죠?
생각지도 못한 정은수의 반응에 강준우는 그녀를 바라봤다.
꽤나 진지한 모습이었다.
- 원하는 거?
- 계속 나를 노릴 것 같은데. 말했다시피 일전에 있었던 일은 오해였어요.
"……."
- 그렇다고 당신한테 손해가 난 것도 아니잖아요?
정은수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실제로 잠깐 겨룬 것을 제외하고 크게 손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억울함이 잔뜩 묻어나는 그녀의 말에 강준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 그냥 두면 언제고 뒤통수를 치더라고.
-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 계속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걸 보면……
- 그거야 그쪽이 나를 노리니까, 그런 거죠. 당연한 거 아닌가요?
- 나도 그쪽이 나를 주시하니까 그런 거지. 당연한 거 아닌가?
"후우."
한 말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강준우의 말에 정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교적 힘이 부족한 그녀는 말을 아꼈다.
그저 그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침묵하며 물러나는 그녀의 모습에 강준우는 고민했다.
'말만 하면 원하는 걸 준다는 건가?'
정은수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그 모습을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뱀파이어들과의 싸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놈들을 처리하면서 포인트를 획득하고, 숙련도를 키우는 게 먼저였다.
은밀하게 움직인 그의 장력이 뱀파이어들을 노렸다.
투욱. 투욱.
은밀한 장력.
귀음심공을 통한 귀음신장이 뱀파이어들의 몸을 두드렸다.
그리고 기다렸던 소리가 들려왔다.
[귀음심공이 12성으로 올라섭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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