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3화
<내성의 괴물>
놈이 내뱉은 괴성이 주변에 퍼져나갔다.
동시에 만만치 않은 알림이 전해졌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진혈의 뱀파이어 요르문의 마력에 저항합니다.]
'흐음.'
거리가 있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피어를 내뱉는 놈의 마력에 저항하는 천마신공을 확인한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8성이 천마신공이 겨우 저항을 한다고?'
나름 강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요르문이라는 놈은 더한 괴물인 것 같았다.
"크윽. 몸이 굳었어!"
"……."
옆에 있던 다이스케는 경직된 몸에 당황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 역시도 요르문의 힘을 여실히 느낀 것 같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확인해 봐도 놈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까만 망토를 뒤집어쓴 중년의 신사.
매체에서 자주 접한 뱀파이어의 모습에 부합하는 외형이었다.
"키가 2m는 넘겠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머리통이 두세 개는 더 있는 것 같았다.
육체적인 능력도 대단할 것 같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놈의 마력이었다.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느껴지는 놈의 마력은 일전에 상대한 볼로쟈라는 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강력한 마력도 놀라웠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들이었다.
"아아악!"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원찬아, 너 왜……"
"조심해. 뭐에 쓰인 것 같으니까!"
콰아앙. 콰과광.
놈이 크게 소리치기 무섭게 주변의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함께 싸웠던 동료들 중에 일부가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당황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같은 동료끼리 싸우는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 사람들은 또 왜 저러지?"
"요르문이라는 놈 때문인 것 같은데."
"아! 설마, 요르문 개새끼를 안 외친 거야?"
"……."
쉬운 판별법이 있었지만, 모두에게 공유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 요르문에게 잠식된 자들은 그들의 동료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갔다.
사람들 대부분이 많은 힘을 사용한 상태였다.
외성에 있는 뱀파이어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큰 힘을 쏟은 직후에 요르문이라는 놈이 나타난 것이다.
거기에 동료라고 생각한 자들의 공격까지.
상황은 더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죽여라."
"저놈들 피를 빨아라!"
더군다나 내성으로 들어갔던 놈들이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흐음."
가만히 주변을 살피던 강준우는 안드레이를 불렀다.
- 위로 올라와라.
"……."
갑작스러운 전음에 당황하던 그는 뒤늦게 무리를 이끌고 계단으로 올랐다.
우선 이 상황을 피하는 게 먼저였다.
높은 곳이라면 놈들의 공세를 쉽게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빠져나가기 무섭게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서 움직였다.
외성의 성벽 위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고, 그들의 뒤를 쫓는 뱀파이어들에게 강한 공격이 꽂혔다.
콰지지직.
지켜보던 다이스케는 몰려드는 놈들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강한 마법이 주변을 휩쓸자, 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놈들을 공격했다.
콰과과광.
그들의 엄호를 받으며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성벽 위로 올라왔다.
성벽 위에 있는 공간은 어지간한 대로와 비슷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도 거뜬할 정도였다.
너비도 너비였지만, 길이도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놈들을 상대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막아야지."
"……."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이미 위로 올라온 만큼 배수의 진을 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따로 도망을 간다고 해도 따로 뱀파이어들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요는 얼마나 힘을 합칠 수 있냐는 건가?'
힘을 합쳐서 요르문과 뱀파이어를 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몰려드는 놈들을 처리하는 게 중요했다.
거기에 돌변한 사람들도 상대해야만 했다.
"주저하지 마! 저놈들은 이미 요르문이라는 놈한테 먹혔으니까."
"아, 알았어."
누군가가 돌변한 동료를 확인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줬다.
괜히 주저하다가는 남은 사람들만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이 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압!"
쐐에엑. 콰과광.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그들이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개의치 않으며 공격을 감행했다.
더러 마음에 걸리는 사람은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노렸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성벽 위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서는 뱀파이어들의 움직임이 막혔다.
그 중간에서 놈들을 막아내는 무인들이 어느새 교대를 하며 체력을 보존하기 시작했고, 위에 있던 마법사들은 마나를 아끼지 않았다.
콰과광. 콰과광.
연신 터지는 폭음에 뱀파이어들이 휩쓸렸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몇몇을 확인하며 고심했다.
'따로 요르문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제법 강한 힘을 내던 자들이었다.
무리를 이끄는 자들 중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자들로, 각자가 독자적인 힘을 펼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눈치를 보면서 쉽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강준우 역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먼저 움직이면 그만큼 불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고 이 상황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강준우는 마법을 쏟아내는 다이스케를 불렀다.
"나는 따로 움직일 거야. 너는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 혼자서?"
"어차피 뒤에서 마법만 뿌리면 되잖아."
"그래도 불안하잖아. 저 중에 미친놈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라면 곧바로 표적이 되지 않을까?"
"……."
다이스케는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강준우가 옆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가만히 그 말을 듣던 그는 한쪽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무서우면 안드레이라는 사람하고 같이 움직이든지."
"이 와중에 나를 받아줄까?"
"빚을 갚으라고 해. 그러면 받아주겠지."
"…… 빚? 빚이라니? 설마 네가 지운 그 빚?"
그에게 지운 빚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라는 말에 다이스케가 놀라워했다.
당연히 요르문을 상대하면서 도움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말을 건넨 것이다.
'하긴, 누가 돕는다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놈은 아니니까.'
요르문이라는 놈은 강한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안드레이와 다른 사람들이 돕는다고 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강준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다이스케는 강준우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내심 뿌듯해하던 다이스케였지만, 강준우는 담담하게 물었다.
"배우라던 마법은?"
"그거 꼭 배워야 되는 거냐? 등급이 너무 높던데. 포인트가 너무 많이 필요해."
"조만간 필요할 거야."
"……."
"싫으면 말고."
"알았어. 배운다고! 배우면 되잖아!"
그 대답을 듣기 무섭게 강준우는 모습을 감췄다.
제 할 말만 하고 물러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새로운 마법이었다.
'도대체 이걸 왜 배우라는 거지?'
사일런스.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주변의 소리를 막는 마법이었지만, 그래봤자 마법사의 주문을 막아내는 게 전부였다.
따로 마법을 영창하지 않으면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그저 위력을 줄이는 게 최선이었다.
알 수 없는 요구에 다이스케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그때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설마, 그 여자를 염두에 둔 건가?'
소리를 묶는 마법.
그 마법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정은수였다.
나름 도움이 됐던 여자였다.
이제 와서 굳이 그 여자를 적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모습을 감춘 그를 찾아가서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다.
'모르겠네. 뭔가 생각이 있겠지.'
다이스케를 뒤로한 강준우는 빠르게 움직였다.
빼곡히 들어찬 뱀파이어들을 스쳐지나간 그는 내성 근처에 있는 놈을 바라봤다.
'요르문.'
다른 뱀파이어들은 모두 성벽 위로 올라서거나 외성 밖으로 빠져나간 놈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요르문이라는 놈만 내성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우두머리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대부분이 주변에 호위라고 부를만한 놈들을 대동하고 있었지만, 놈은 혼자였다.
'일부러 유인을 하고 있는 것 같잖아?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인가?'
확실히 놈의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놈들이 옆을 지키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요르문과의 거리를 좁혔다.
유령보를 밟은 그는 은밀하게 요르문의 뒤를 잡았다. 그리고 곧장 손을 뻗었다.
새하얀 뒷목을 노리며 섬전 같은 검격이 쏘아졌다.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다는 무영검이었다.
예리한 검격이 그대로 요르문의 뒷목을 꿰뚫었다.
쉬익.
'…… 뭐야?'
완벽히 뒤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뒷목이 꿰뚫린 요르문의 모습이 흩어졌다.
처음 겪는 일이 당혹스러웠지만, 그 순간, 야생의 감각이 경종을 울려댔다.
쉬이익.
검격을 뿌린 그는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뒤로 물러났고, 그가 있던 공간이 찢겨져 나갔다.
날카로운 손톱을 앞세운 요르문은 허공을 가르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일으킨 강준우는 놀란 눈으로 놈을 바라봤다.
'뭐지? 어떻게 움직인 거지?'
아무리 기습을 펼쳤다고 하지만, 놈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강하다고 생각되는 놈들에게는 이런 식의 기습이 막힌 적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쉽게 간파당한적은 처음이었다.
적어도 놈이 공격을 받아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곧바로 천마군림보를 밟으면서 놈의 힘을 빼낼 상황까지 염두에 뒀지만, 작은 타격도 남길 수 없었다.
허상처럼 흩어져버린 요르문.
너무나 빠른 대처에 강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너무…… 강한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강적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곧장 내공을 끌어 올렸다.
쿠웅.
우선 작은 타격이라도 남겨야만 했다.
가진 힘을 이용해서 놈과 싸우다가 보면 기회가 올 게 분명했다.
곧바로 천마군림보를 사용한 그는 요르문을 공격했다.
은밀한 기운이 바닥을 타고 스며들었지만, 놈은 가볍게 뛰어 오르며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큰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 공격을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허무하게 공격을 날렸지만, 강준우는 곧장 현철보검을 손에 쥐며 검격을 뿌렸다.
쉬이익.
일섬을 섞은 무영검이었다.
허공에 떠오른다면 운신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천마군림보를 피해서 몸을 날렸다면 반드시 공격을 받아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쐐에엑.
빠르게 검격을 떨치자 전방이 검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는 빠르게 검을 뿌렸고, 수많은 검기가 뛰어 오른 요르문을 찢어발길 것처럼 쏘아졌다.
콰과과광.
하지만 그가 날린 검격은 허공을 갈랐다.
요르문에게 닿지 못하고 그 뒤에 있는 바닥에 꽂히며 요란한 굉음을 흘렸다.
'피해? 안개처럼 흩어…… 크흡.'
터엉.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공격을 피해내는 요르문의 모습에 강준우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 뒤를 잡고 공격을 감행했을 때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놈은 안개처럼 흩어지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것도 모자라서 곧바로 공격을 감행했다.
흩어진 몸이 제 모습을 갖추기 무섭게 핏빛 창이 날아들었다.
어느새 요르문의 주변에 수많은 핏빛 창이 떠올랐다.
블로쟈라는 놈이 사용했던 그 마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날아오는 공격을 쳐낸 강준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쉽지 않겠는데?'
공격을 쳐내고 남은 충격이 작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은 채, 충격을 떨쳐낸 그는 다시 쏘아지는 핏빛 창에 내공을 끌어 올렸다.
요르문의 공격에 전방을 가득 채우며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전방을 살핀 강준우는 놈의 뒤에 보이는 사람들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띠리링.
익숙한 음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강한 기운을 실은 음이 요르문의 뒤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작품 후기]
코멘트, 추천,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