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5화
<내성의 괴물>
마지막 일격을 날린 정은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강한 충격과 함께 떨어져 나간 요르문을 결국 자신의 손으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작은 충격만 전해줘도 놈을 끝낼 수 있었다.
요르문의 마지막을 확신한 그녀의 표정이 환해졌지만, 들려오는 외침과 함께 환한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사일런스!"
한 사람이 요르문의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허공에 떠오른 사람은 그녀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강준우의 옆에 붙어 있던 일본인 마법사였다.
'사, 사일런스?'
익숙한 단어가 황당했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그녀는 말을 잇지 못 했다.
강한 힘을 싣고 쏘아진 음파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미친! 저런 개 같은 자식이!'
그녀의 무공은 음파를 통해서 충격을 가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매개가 원천 봉쇄되자 힘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원망어린 눈빛이 다이스케를 향했다.
'후우. 간신히 상황을 마칠 수 있었던 건가?'
요르문의 위에 떠오른 다이스케는 제때 시간을 맞췄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흐린 빛이 퍼져나가며 나타난 효과에 깜짝 놀랐다.
'이게 사일런스?'
곧 죽을 것 같던 요르문에게 날아들던 강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흥분한 정은수가 그를 향해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변이 무거운 적막에 휩싸였다.
치열하게 싸우던 곳이 그를 중심으로 고요해졌고,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번에도 저놈이 다 가져가겠네.'
사일런스가 펼쳐지기 전에 움직이고 있었던 한 사람.
바로 강준우였다.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정은수가 금을 튕기는 순간 강준우는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는 유령보를 밟으며 요르문과의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요르문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던 뱀파이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잔챙이는 떨어져!'
크게 일갈하며 공격을 날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새삼 사일런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그의 검은 수월하게 뱀파이어를 베어냈다.
그대로 재로 변하며 사라지는 놈을 뒤로한 그는 요르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 사이, 요르문은 근처에 있는 뱀파이어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요르문은 수하라고 할 수 있는 놈의 피로 상처를 회복하고 있었다.
넝마가 된 몸뚱이가 조금씩 치유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바닥을 박차며 힘을 전했다.
'커헉!'
강한 충격이 밀려들어오자, 요르문은 피를 토해냈다.
거력이 솟구쳐 오르며 요르문과 옆에 있던 뱀파이어를 휩쓸었다.
소리도 없이 치솟아 오른 강한 기운에 요르문의 몸이 들썩였다.
여전히 유지되는 사일런스의 힘에 만족한 그는 그대로 검격을 뿌리며 요르문의 몸을 꿰뚫었다.
그의 검이 너무 쉽게 놈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피를 토해내는 요르문의 경멸 섞인 눈빛이 그를 향했고, 강준우는 그 시선을 무시하며 더욱 힘을 끌어냈다.
파츠츠츠.
검에 맺힌 기운이 더욱 강해졌다.
현철보검은 그 기운을 증폭시켰고, 강준우는 힘을 주며 놈의 가슴을 베어냈다.
'끄윽.'
요르문은 그런 그의 검을 붙잡았다.
검기로 가득한 검신을 틀어쥔 놈은 날카로운 눈빛을 뿌렸다.
그 눈빛과 함께 불안한 생각이 스쳤다.
죽기를 각오한 것처럼 원독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거기에 놈의 마력이 흔들리자, 강준우는 지체 없이 검을 내던지며 뒤로 물러났다.
'쿠구구궁.'
굉음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폭발과 함께 주변이 휩쓸렸다.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요르문의 몸이 터져 나갔다.
자폭을 감행한 것이다.
몸에 가득한 피가 폭발을 일으켰고, 강준우는 그 와중에 지력을 날렸다.
의미 없는 공격일 지도 몰랐지만, 확실히 할 생각이었다.
무언가가 꿰뚫린 듯한 느낌과 함께 그가 바라던 알림이 전해졌다.
[진혈의 뱀파이어 요르문을 처치했습니다. 5000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완수됐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도시의 결계가 해제됩니다. 연결된 다른 도시로의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전체적인 보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은 보상도 뒤를 이었다.
[흡기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흡기공의 성취가 크게 상승합니다.]
[흡기공이 8성으로 올라섭니다.]
[흡기공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갈취하는 기운의 양이 늘어나고, 속도가 빨라집니다.]
'8성이라고? 흡기공이?'
짧은 순간에 서너 단계의 성취를 뛰어넘었다.
흡기공 자체가 최근에 익힌 무공이었지만, 성장 속도는 가장 빨랐다.
뱀파이어들을 상대하면서 흡기의 이해도가 계속 높아진 만큼 성장은 빠를 수밖에 없었지만, 한 번에 서너 단계를 뛰어넘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혈이라는 놈이라서 그런 건가?'
진혈의 뱀파이어.
다른 뱀파이어들의 우위에 있는 놈을 처리한 만큼 이런 능력을 얻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보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대한 공을 인정받아 새로운 무리(武理)를 얻습니다.]
[새로운 무리(武理), 균형(均衡)을 얻었습니다.]
[균형과 관련된 무공의 전반적인 능력이 향상됩니다.]
'균형?'
일전에 이부키라는 놈을 잡으면서 실마리를 얻었던 무리였다.
요르문과 균형의 상관관계를 알 수 없었지만, 새로운 무리를 얻은 것 자체가 나쁠 것은 없었다.
['요르문의 망토'를 획득하였습니다.]
'요르문의 망토? 귀물인가?'
요르문은 죽으면서 까만 재로 변한 채 사라졌다.
그리고 놈이 있던 자리에는 넝마가 된 까만 거적때기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름이 있는 걸로 봐서 귀물인 것 같았다.
그 폭발에서도 남아 있는 망토의 모습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을 뻗었다.
휘이익.
허공섭물을 이용해서 널브러진 현철보검과 망토를 손에 넣은 그는 망토의 상태를 확인하며 쓰게 웃었다.
요르문의 망토.
진혈의 뱀파이어 요르문이 착용한 망토.
소유자의 몸을 보호한다.
마법을 펼치는데 필요한 마나의 크기를 줄이고, 마법의 위력을 증가시킨다.
'나한테 그렇게 좋은 물건은 아니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그에게는 썩 좋은 물건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얻은 보상이 작지 않았다.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는 망토와 새로운 무리.
거기에 몇 단계 성취가 오른 흡기공까지.
'까다로운 상대였던 만큼 보상도 남다르네.'
가진 힘이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놈을 상대할 수 있었다.
실상 놈의 힘을 모두 빼놓은 것은 그를 포함한 세 사람이었다.
특히, 정은수는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큰 것 같았다.
거의 손에 들어왔던 요르문의 목이 강준우에게 돌아간 만큼 그녀는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여전히 공중에 떠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개자식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다이스케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강준우에게 죄를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아직 사일런스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공격을 날릴 수 없었다.
따로 음파를 날린다고 하더라도 아래에 있는 강준우를 생각한다면 그냥 미련을 떨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름 큰 역할을 한 다이스케는 환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강준우의 모습에 내심 뿌듯해했다.
정은수의 날카로운 눈빛을 일부러 모른 체하던 그는 뭔가를 말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는 거야? 말을 해야…… 아, 사일런스!'
아직까지 마법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사일런스를 해제했다.
사용했을 때는 상당한 마력이 필요했지만, 유지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긴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휘리릭.
본능적으로 그걸 잡았지만, 다 찢어진 거적때기의 모습에 그는 강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선물이다."
"서, 선물? 미친!"
나름 큰 도움을 줬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선물이랍시고 이런 쓰레기를 준다는 사실에 그는 절로 욕을 토해냈지만, 손에 넣은 물건을 확인하며 깜짝 놀랐다.
'요, 요르문의 망토?'
넘어온 소유권을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랐다.
생긴 것과 다르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사인 그에게 제격인 물건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 마나를 줄여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지만,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걸치기에는 너무 거지같지만……'
이런 귀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김연희가 가졌던 불사조의 깃털을 부러워하던 다이스케는 손에 넣은 망토에 흡족해하며 조심스럽게 어깨에 걸쳤다.
갑자기 넝마를 주워 입으며 환한 웃음을 보이는 다이스케.
정은수는 이상한 놈의 행동에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침음을 삼켰다.
"저런 미친……놈들."
강준우에게 요르문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두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과 도를 앞세운 그들의 모습에 정은수는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괜히 저들하고 얽혀봐야 좋을 것은 없었다.
지금도 강준우와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요르문을 상대하기 위해서 날린 공격에 꼬투리를 잡힐 지도 몰랐다.
그녀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주인도 없는 놈을 잡는 것에 눈치를 봐야하는 것도 황당했고, 이미 사일런스라는 마법까지 준비한 것을 보면 그녀를 견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아. 그래도 참아야지.'
힘이 없는 게 죄였다.
조금만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녀 역시 강준우와 크게 다르지 않게 행동했을 게 분명헀다.
그녀는 남은 미련을 떨쳐냈다.
이미 요르문이라는 목표를 잃은 만큼 남아 있는 다른 뱀파이어들을 처리하면서 포인트라도 얻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두 사람은 흥분하며 강준우를 노렸다.
"개자식 죽어!"
"감히 내 먹이를 가로채? 죽어라!"
그들은 검기와 도기를 뿌리며 그를 노렸다.
강력한 일격이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미친 건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건가?'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이스케는 놈들의 행동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준우를 노리며 달려드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자살을 하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굳이 목숨을 끊으려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었다.
강준우는 이미 요르문을 쓰러뜨렸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결국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진혈의 뱀파이어를 쓰러드렸다.
그런 그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생각과 다르게 둘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요르문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힘을 소진했을 강준우였다.
아무리 힘이 빠진 놈을 상대했다지만, 그가 보인 수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공격이었다.
거기에 둘은 따로 전음을 나누며 뜻을 함께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우선 강준우라는 놈을 쓰러뜨리고 이후에 보상을 나누자고 입을 맞춘 상황이었다.
나름 자신이 있었다.
지친 놈이라면 두 사람의 힘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라는 판단이었다.
쐐에엑. 터엉.
두 사람이 쏘아낸 강력한 공격이 그대로 강준우를 덮쳤다. 하지만 강력한 공격을 마주한 그는 날아드는 기운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력한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미친놈!"
만용에 가까운 그의 모습에 달려들던 둘은 그 모습에 황당해하며 소리쳤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말을 잇지 못 했다.
쐐에엑.
그들이 날린 검기와 도기가 방향을 바꾸며 다시 날아들었다.
작정하고 날린 강력한 공격이 아무런 피해도 남기지 못하고 오히려 되돌아오자 그들은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그들은 다급히 공격을 뿌렸다.
콰과광.
뒤늦게 다시 검과 도를 뿌리며 공격을 받아냈고, 그 충격에 밀려나며 진탕된 내부를 진정시켰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날린 공격이……"
"크윽. 이게 말이 돼?"
"안 될 건 뭐지?"
"……."
"씨발!"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그들이 소리쳤다.
멀리 떨어져 있던 강준우가 그들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오히려 섬뜩한 목소리에 질겁한 그들은 다급히 검을 뻗으며 그를 떨쳐냈다.
쉬이익.
예리한 공격이 강준우의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꽤나 지쳤을 거라고 여겼던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곧바로 반격이 날아들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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