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화
<고성에서 이어진 길>
"다시 되돌아가지는 않는 거지?"
"가고 싶으면 혼자 가."
"그냥 물어본 것뿐이야. 근데, 그 안드레이라는 사람은 어떡할 거야?"
"알아서 하겠지."
"그 빚은 어떡하고?"
"요르문을 처리한 걸로 충분해."
"……."
원했던 것은 모두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괜히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김연희와 유키코 일행이 있고, 임창현의 무리가 움직이고 있다면 더 이상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
밀실과 같은 공간이었다.
따로 빠져나갈 곳은 처음 들어왔던 곳과 쓰러진 뱀파이어가 나온 곳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뱀파이어들이 있는 곳에서 얻을만한 것들은 다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밀실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남은 내기를 확인한 그는 아리엘이라는 뱀파이어가 나온 곳으로 향했다.
"길이 있었네?"
뒤따르던 다이스케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길이라기보다는 밀실이 부서지면서 균열이 나타난 것 같았다.
그림자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곳으로 강준우는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의 기감을 살폈다.
"뭐라도 있는 거야?"
"글쎼. 딱히 잡히는 건 없는데."
말을 아낀 그는 조금 전에 아리엘이라는 뱀파이어를 떠올렸다.
꽤나 강한 힘을 가진 그가 나타났을 때도 그 기운을 가늠하지 못 했다.
공간이라는 무리를 얻으면서 기운을 통해서 주변에 있는 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놈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 했다.
'그런데도 내가 알아채지 못한 거라면…… 다른 놈들을 찾는 게 쉽지는 않겠는데.'
평소 확인했던 마력과 같은 힘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낯설 수밖에 없었다.
다른 형식으로 존재를 파악하는 방법을 강구해봐야 할 것 같았다.
별다른 위협이 느껴지지 않자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부서진 벽을 뚫고 밖으로 나서자 기다란 통로가 그들을 맞았다.
"던전 같은데?"
"던전?"
"게임 같은 걸 하면…… 이런 곳으로 들어오잖아. 지하로 이어진 던전 같은 거."
다이스케의 말이 이해가 갔다.
처음 동굴 오크들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 아닌 인위적인 건물이라는 게 달랐지만, 우선은 이곳을 살피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강준우는 앞장서서 움직였다.
따로 방향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둘 중에 하나였다.
통로는 하나였고,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방향을 골랐다.
물론, 그 와중에 천장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뭘 알고 가는 거지?"
"아니. 그냥 움직이는 거야."
"……."
동굴에서 움직였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움직인 그는 계단을 발견했다.
위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이 입구였던 것 같은데?"
"입구라."
"안 올라가?"
"올라가야지. 우선 기운 좀 회복하고."
강준우는 곧바로 영약을 입에 넣으며 천마신공을 운기했다.
다이스케는 그런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법을 캐스팅하며 주변을 살폈고, 강준우는 기운과 체력을 회복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다 채운 거야?"
"대충은."
"……."
생각보다 빠른 운기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따랐다.
강준우는 계단으로 올라섰고, 열린 입구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휘이이잉.
황량한 곳이었다.
어딘선가 불어오는 바람만이 적막을 깨웠다.
"여기도…… 도시긴 도시였네."
"죽은 자들의 도시."
"완전히 그 이름에 딱 들어맞는 곳인데?"
도시라기보다는 폐허 같았다.
죽어 있는 도시였다. 곧 부서질 것 같은 건물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주변은 이미 부서진 건물의 잔해만이 나뒹굴었다.
"여긴 뭐…… 지하 세계인가?"
"무덤인 것만은 확실하네."
"무덤? 여기가?"
다이스케는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황사가 잔뜩 낀 것처럼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황량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제대로 된 햇빛도 보이지 않은 삭막한 곳이었지만,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이스케는 황당해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땅 일부분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비비며 다시 그곳을 살폈다.
"뭐, 뭐야? 뭐가 움직이는데? 지진인가?"
"…… 사람들이다."
"사, 사람들?"
"죽은 자들. 무리를 지으면서…… 여기로 오고 있잖아."
"미친!"
뒤늦게 정체를 확이한 다이스케는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그는 메모라이즈 된 마법을 사용하며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다가오는 놈들의 정체를 조금 더 정확히 살폈다.
"그어어어!"
"……."
저금 더 거리를 좁히며 놈들의 모습을 살핀 다이스케는 말을 잇지 못 했다.
"이제는 좀비야?"
- 거기로 간 김에 수라도 줄여."
"……."
들려오는 전음에 그는 곧장 마법을 날렸다.
이번에는 체인 라이트닝을 이용해서 다가오는 좀비떼들을 상대했다.
"죽어라! 체인 라이트닝!"
콰지지지직.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뇌전이 그대로 좀비들의 몸에 꽂혔다.
강한 힘에 휩쓸린 놈들이 괴로워하며 크게 울부짖었다.
높이 떠 있는 곳까지 매캐한 냄새가 풍겨왔다.
'무리를 이룬 놈들이라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따로 조준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광역 마법을 펼치면 수십이 휩쓸려 나갔다.
자신감을 얻은 다이스케는 다시 마법을 뿌렸다.
콰지지직.
새하얀 뇌전이 계속해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휩쓸었다.
하지만 몇 번의 마법을 날리던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주, 줄어드는 놈들이 거의 없잖아?"
체인 라이트닝이라면 뱀파이어들도 쉽게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마법이었다.
어지간한 놈들은 한 번에 골로 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 다가오는 놈들은 아니었다.
'설마,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건가?'
강력한 뇌전이라면 머릿속을 헤집을 것은 분명했다.
아무리 좀비라도 그 충격에서 무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다이스케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이어지는 놈들의 모습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어어어."
요란한 괴성을 내지른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렸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력 질주를 하듯이 그를 향해 뛰어왔다.
보통 알고 있는 좀비와는 너무나 달랐다.
놈들의 모습에 기겁한 그는 다시 한 번 체인 라이트닝을 캐스팅하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매직 미사일, 12연발!"
쉬이익. 콰과광.
전격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물리력을 사용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이 주효했다.
여러 발의 매직 미사일에 몇몇이 머리가 깨지며 그대로 쓰러져 나갔다.
선두에 선 놈들이 넘어지자, 뒤따르는 놈들의 발이 쓰러진 놈들에게 걸리며 쓰러져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리적인 공격은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이었지만, 그마저도 막아내는 놈들이 존재했다.
모두가 비슷한 육체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놈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에 다이스케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움직이는 강준우의 모습에 그런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쿠웅. 콰과광.
커다란 울림과 함께 강한 폭발이 생겨났다.
넘어진 좀비들의 바닥에서 터져 나온 기운이 놈들을 휩쓸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놈들이 튕겨져 나갔다.
그 중심에 있었던 놈들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듯이 찢겨졌다.
"저건 완전히 사기잖아!"
다시 느끼는 거지만, 강준우의 공격은 그와는 궤를 달리했다.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이 오히려 마법을 사용하는 그보다 더한 파괴력을 내고 있었다.
쿠웅. 콰과과광.
그가 발을 구를 때마다 좀비들이 튕겨져 나갔다.
수류탄이 터져나간 것처럼 충격에 휩쓸린 놈들의 몸뚱이가 터졌다.
당연히 머리가 부서진 놈들은 다시 움직일 수 없었지만, 머리가 성한 놈들은 바닥을 기면서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 알았어. 조심해!"
천마군림보를 펼치며 놈들을 공격하던 그는 현철보검을 꺼내들며 좀비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무리 내공의 크기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천마군림보를 계속 펼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안으로 파고들며 직접 검을 휘두르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쉬이익. 푸욱. 푸욱.
유령보를 펼친 그는 무영검을 떨쳐내며 좀비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일검을 떨칠 때마다 앞에 있는 놈들이 쓰러져 나갔다.
[최하급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최하급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최하급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최하급 좀비를 처치했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미친듯이 올라가는 알림들.
문제는 놈들을 쓰러뜨려봐야 고작 10포인트만 얻는다는 점이었다.
고블린을 처리하고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고블린들보다 더 까다로운 놈들이었다.
몸놀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맷집도 더 대단했다.
머리통을 부수지 않으면 죽지 않은 놈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혀를 내둘렀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손을 뻗었고, 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두어 놈의 머리통이 꿰뚫리며 무너져 내렸다.
'후우. 후우.'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놈들이 남아 있었다.
고작 10포인트만 주는 놈들이었지만, 놈들은 물량으로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뱀파이어라는 놈들보다 더 까다롭잖아?'
상대적으로 강한 뱀파이어들도 치명상을 입으면 목숨을 잃었다.
심장이 꿰뚫리고 목이 베이며 까만 재로 변했지만, 앞에 있는 놈들은 정확히 머리통이 부서져야 움직임을 멈췄다.
"하압!"
이대로는 먼저 지칠 거라는 생각에 그는 검기를 쏟아냈다.
현철보검으로 힘을 증폭하며 앞에 있는 놈들의 머리를 노리며 공격을 날렸다.
콰과과광. 콰과과광.
곳곳에서 강한 폭발이 뒤를 이었다.
검기에 휩쓸린 좀비들의 수가 빠르게 줄었지만, 그 공격에서도 놈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검기를 날려도 머리통을 부수지 못하면 큰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 무영검을 펼치며 일일이 놈들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놈들이 쓰러졌지만, 이런 공격을 계속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공격을 감행한 강준우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는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통을 붙잡으며 기운을 뽑아냈다.
[죽은 자들의 힘이 스며듭니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죽은 자들의 힘을 이겨냅니다.]
하급이라지만 놈의 저주가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바둥거리며 팔을 붙잡는 놈의 행동만으로도 저주가 전해졌지만, 그에게 큰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기운을 뽑아내던 강준우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이놈들 가진 기운이…… 없잖아?'
뽑혀져 나오는 기운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 잡았던 아리엘이라는 놈은 작은 힘이라도 뽑아낼 수 있었지만, 지금 상대하는 놈들은 그 낯선 힘조차 없었다.
우선은 놈들을 통해서 내공을 대신하려고 생각했었다.
그 힘으로 공격을 퍼부을 생각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과 마주했다.
콰과광.
다시 한 번 검격을 떨치며 아귀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떨쳐낸 그는 뒤로 물러나며 연신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콰과광. 콰과광.
계속해서 쏟아지는 검기가 전방을 초토화시켰다.
남은 내공이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으며 공격을 뿌렸다.
콰과광.
계속 들려오는 폭음과 함께 달려드는 좀비들의 수급이 잘려나갔다.
그 와중에도 놈들은 그를 잡기 위해 맹목적으로 기어왔지만, 빠르게 물러나는 강준우를 잡을 수는 없었다.
"후우. 후우."
"괘, 괜찮아?"
멀리서 보기에도 그는 상당한 내공을 소모한 것 같았다.
다이스케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지만, 강준우는 곧바로 상점창에서 단약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자! 먹어."
"나? 나보다는 네가 먼저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뜬금없이 영약을 건네는 강준우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갑자기 단약을 건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것도 강준우가 건네고 있었다.
계속되는 권유와 공짜라는 사실에 다이스케는 그가 건네는 단약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그는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잠깐만 버텨."
"그게 무슨…… 끄읍! 무슨 짓이야?"
"이게 빠를 것 같더라고."
강준우는 대뜸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동시에 그의 손으로 다이스케의 마력이 빨려 들어갔다.
소진한 내공을 채운 강준우는 다시 좀비 떼를 향해 달려들었고, 기운이 빨린 다이스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개자식! 내가 물약이야?"
단약을 건넨 강준우의 의도.
마법이 통하지 않는 그의 마력을 대신 사용할 심산이었다.
당연히 다이스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단약을 입에 넣었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젠장!"
이 상황을 너무나 쉽게 수긍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는 다시 마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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