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화
<고성에서 이어진 길>
플라이로 떠오른 다이스케는 다시 마법을 캐스팅하며 공격을 받아낸 놈을 바라봤다.
강준우의 검기를 간신히 막아낸 놈은 이어지는 그의 공격에 대응하며 마법을 날렸다.
콰과과광. 콰지직.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의 마법이 어느 정도 통한다는 점이었다.
좀비들과 다르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 그는 흡족해하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일깨웠다.
"가자!"
"아, 알았어."
작정하고 움직이면서 타라고 소리친 다이스케였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강준우의 모습에 울컥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놈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라이트닝 매직 미사일, 12연발!"
그 기분을 떨쳐낸 다이스케는 곧장 마법을 쏘아내며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일반적인 마법과는 상당히 다른 공격이었다.
그 공격을 맞은 자는 다시 검은 구체를 쏘아내며 날아오는 공격을 받아냈다.
콰과광. 콰지직.
'이 마법은 뭐지?'
정통한 흑마법사인 그로서도 이런 마법은 처음이었다.
평범한 매직 미사일에 전격이 섞인 마법에 그는 다시 블링크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누군가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호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강준우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그는 곧장 실드를 펼쳤다.
'실드!'
터엉. 콰지직.
아슬아슬하게 실드를 펼쳤지만, 상대는 어렵지 않게 그의 방어를 뚫어냈다.
푸슉.
가슴에 꽂히는 강력한 기운.
일양지가 실드와 그의 가슴을 꿰뚫기 무섭게 기검의 형태로 변했다.
서걱.
형상기검을 사용한 강준우의 일검이 그대로 상대의 몸을 베어냈다.
손끝에 남은 묵직한 감각에 제대로 된 충격을 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했다.
치명상을 입혔지만, 상대는 그 와중에도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제대로 들어갔는데."
"블링크로 움직였어. 왼쪽!"
"……."
꽤나 독한 놈인 것 같았다.
치명상을 입었을 상대가 물러나자 강준우는 다시 기운을 끌어 올리며 소리쳤다.
"다이스케!"
"너무 멀잖아!"
강준우와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었다.
다이스케는 움직이는 대신에 다른 방법을 택했다.
쉬이익. 콰앙.
날아든 매직 미사일을 발판 삼아 뛰어오른 강준우는 다시 한 번 일양지를 쏘아냈다.
강한 충격에 휘청거리던 상대는 급히 몸을 비틀며 공격을 피했지만, 예의 기검이 다시 한 번 그의 몸을 베어냈다.
거의 몸의 절반이 잘려 나갔다.
하체가 떨어져 나가고 가지고 있던 로브가 찢겼지만, 상대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드러난 그의 형태에 강준우와 다이스케는 말을 잇지 못 했다.
"해골바가지?"
"뭐야? 저런 상처를 입고도 움직이는 거야?"
"이놈들! 네놈들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는 없다!"
모습을 드러낸 해골의 정체는 리치(Lich)였다.
시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가 바로 리치였지만, 언데드 마법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불멸을 위해서 스스로의 몸을 언데드화 시킨 마법사로, 그는 정체가 드러나기 무섭게 뒤로 물러났다.
이미 강준우에 의해서 몸의 절반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하체는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놈은 큰 어려움 없이 움직였다.
생각지도 못한 놈의 등장이 놀라웠지만, 이어지는 리치의 행동에 강준우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일어나라!"
뒤로 물러난 놈의 외침과 함께 강한 힘이 휘몰아쳤다.
죽음의 기운이 그가 가르키는 주변을 뒤덮었다.
놈이 뻗은 팔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좀비들을 가리키자 검은 기운이 주변을 잠식했다.
까드드득. 까드득.
"그어어어어."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괴성이 흘러 나왔다.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듣기 싫은 목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내 검은 기운이 사라지고 놈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다이스케는 황당한 상황에 침음을 흘렸다.
"흐음. 해골이 해골을 깨웠네."
"……."
지금까지 처리했던 좀비들이 해골로 변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수는 확연히 줄어 있었다.
아무리 앞에 있는 놈이 리치라고 하지만, 모두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었다.
개중에 완전히 부서진 놈들은 다시 일어날 수 없었지만, 해골로 일어난 놈들은 동료라고 할 수 있는 놈들의 뼈를 손에 쥔 채로 귀광을 토해냈다.
"죽여라!"
공중에 떠 있던 리치는 크게 소리치며 일어난 해골을 움직였다.
그 소리에 맞춰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거덕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놈들은 좀비였을 때와 다르게 확연히 느림 움직임을 내보였지만, 문제는 그 수였다.
아무리 일부를 깨웠다지만, 그 수를 경시할 수 없었다.
바닥으로 내려 선 강준우는 곧바로 힘을 끌어 올렸다.
일어난 해골을 바라보며 안도하는 리치를 먼저 쓰러뜨리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놈이 살아 있다면…… 계속 저런 놈들을 깨우겠지?'
죽일 수 있을지 확신을 할 수 없었지만,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힘을 끌어 올린 그는 곧바로 전방에 수많은 암기를 뿌렸다.
'만천화우!'
사천당문의 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암기가 그의 힘을 가득 실은 채, 하늘을 뒤덮었다.
심상치 않은 힘에 그 범위에 포함된 리치는 급하게 힘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소진한 기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마법을 펼칠 수 없었다.
이미 주변에 널브러진 사체를 이용해서 해골 병사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상황이었다.
'타격이 너무 컸어!'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받아내야 했지만, 느껴지는 힘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실드를 펼치면서 급하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해골 병사들의 뒤에 숨으며 만약을 대비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주변을 가로막은 해골 병사와 단단히 쳐진 실드.
적어도 한 번의 공격은 막아낼 거라고 확신했다.
단단한 준비를 갖추자마자 하늘을 빼곡히 채웠던 암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두.
쿠구궁. 콰과과광.
주변을 휩쓸며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암기들.
내공이 가득 담은 그 힘은 주변에 있는 해골 병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그저 한 번 쏟아지는 게 다가 아니었다.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듯 쏟아지던 암기가 다시 떠오르며 주변을 휩쓸었다.
내기를 가득 머금은 채 휘몰아치는 암기의 폭풍에 리치를 감싸던 해골 병사는 물론이고, 리치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중급 리치를 처치했습니다. 5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중급 리치? 이대로 목숨을 잃었다는 건가?'
따로 라이프 베슬과 같은 게 없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중급 뱀파이어에 비해서 100포인트를 더 남긴 것은 만족스러웠지만, 문제는 리치라는 놈의 행동이었다.
생각보다 중급 리치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일대일로 부딪치면 어려운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주변에 있는 죽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문제였다.
만천화우를 뿌리면서 놈을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살아남은 해골 병사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공격에 휩쓸리지 않은 놈들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후우.'
호흡을 고른 강준우는 달려드는 놈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다이스케를 향해 움직였다.
소진한 힘이 작지 않은 만큼 그를 통해서 기운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좀 괜찮은 단약으로 줘."
"…… 뭐?"
"나는 포인트도 못 얻었다고! 적어도 상급 단약이라도 받아야하지 않겠어?"
"그, 그래."
왠지 박력이 느껴지는 당당한 요구였다.
강준우는 그의 요구에 상급 단약을 건네며 다시 다이스케의 팔을 붙잡았다.
"흐읍."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마음을 준비를 갖춘 그는 스스럼없이 기운을 넘겼다.
너무나 빠른 체념이 오히려 낯설었지만, 지금은 뒤에 있는 놈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쐐에엑. 콰직.
그는 곧장 해골 병사를 노렸다.
일양지를 쏘며 놈들을 쓰러뜨렸고, 이미 파손된 놈들의 두개골이 그의 손에 부서져 나가며 무너져 내렸다.
남은 해골 병사들을 처리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따로 근육이나 살점이 없는 놈들은 좀비와는 또 달랐다.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놈들은 머릿속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마력과 비슷한 힘으로 그것을 깨뜨리면 놈들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확인한 강준우는 남은 놈들을 다이스케에게 넘겼다.
그도 조금의 포인트라도 얻어야만 했다.
다시 살아난 놈들은 10포인트를 넘겼고, 다이스케는 좀비와는 다르게 효과가 있는 마법에 만족하며 놈들을 쓰러뜨렸다.
"속성 마법은 효과가 없는 건가?"
"모르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테니까."
"앞으로는 네가 좀비를 상대하고, 나는 해골을 상대하면 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공격이 통한 만큼 해골을 도맡아서 처리하면서 포인트를 얻을 생각이었다.
다이스케가 해골을 상대할 수 있다면 강준에게도 나쁠 것은 없었다.
그 시간동안 체력과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을 하기도 전에 또 다른 놈들이 다가왔다.
'벌써 여기까지 온 건가?'
아무래도 죽은 리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던 놈들이 어느새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놈들의 모습을 확인한 다이스케는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쉴 틈이 없는데?"
상대하는 놈들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수가 문제였다.
물량으로 몰아붙이는 놈들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봤다.
"괜찮겠어?"
"글쎄."
"힘들면 뒤로 물러나자.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면 놈들을 상대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일양지를 염두에 둔 다이스케의 말에 강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 하나뿐인 통로라면 오히려 놈들을 상대하는 게 더 쉬울 지도 몰랐다.
'문제는 그 통로가 어디로 향한지 모른다는 건데.'
고민을 했지만,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놈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가오던 좀비 떼들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그어어어."
들려오는 놈들의 괴성.
그저 전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소리는 아니었다.
콰앙. 콰앙.
그들을 향해 움직이던 좀비들의 움직임이 어색했다.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움직임을 멈춘 놈들의 한쪽 축이 무너져 내렸다.
빠르게 쓰러지는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강준우는 안력을 돋우며 떨어진 곳을 살폈다. 그리고 낯선 복장을 한 사람을 발견했다.
"사람이야! 우리 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
다이스케도 그 사람을 발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시선은 좀비 사이를 파고든 사람에게 향했다.
온 몸을 갑옷으로 보호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상황에서 좀비 떼를 향해 뛰어든 그는 양손에 나누어 쥔 기다란 둔기를 휘두르며 놈들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두어 마리의 좀비들이 쓰러져 나갔다.
크게 힘을 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흐릿한 빛이 어린 둔기는 너무나 쉽게 좀비들을 쓰러뜨렸다.
둔기에 스친 놈들은 괴성을 질러댔고, 갑옷을 입은 자는 빠르게 움직이며 놈들을 꿰뚫었다.
"너랑 비슷한 사람이 또 있었네?"
"여기로 오는 것 같은데?"
"여, 여기로?"
좀비를 휩쓴 사내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던 좀비들이 갈라지며 길을 만들어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상태에서도 경공을 펼친 것처럼 빠르게 움직인 자는 좀비들을 휩쓸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마주한 세 사람.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앞선 자는 강준우와 다이스케의 모습을 살피며 말을 아꼈고, 두 사람은 은연중에 힘을 끌어 올리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좀비들의 살점이 묻은 기다란 망치를 손에 쥔 자는 얼굴을 가린 투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생존잔가?"
"……."
"용케도 살아있었네."
낯선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알고 있는 사람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가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긴, 우철이 형이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움직였겠지.'
그라면 진즉에 아는 체를 했을 게 분명했다.
마주한 자를 바라본 강준우는 말을 아꼈고, 다이스케는 조심스럽게 웃어보였다.
"반갑네요. 우리는……"
"크큭. 반갑다라. 나도 반가운데? 오랜만에 보는 먹잇감이!"
"……."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투구를 내리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예의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 남자는 그대로 다이스케를 향해 살점이 묻은 망치를 휘둘렀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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