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6화
<통로가 이어진 곳>
강준우는 재회한 사람들과 함께 통로로 향했다.
곧바로 돌산이 있는 곳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지만, 그곳까지 즐비한 좀비들이 문제였다.
수많은 좀비 떼를 일일이 상대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들을 피해서 드러나지 않은 공간으로 움직이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다행히 통로로 향하는 길까지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좀비들은 모두 강준우의 손에 쓰러졌다. 당연히 따로 그들을 막아낼 만한 놈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근데, 이 통로가 어디로 연결된 건지는…… 모르겠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물러나도 되지 않을까?"
다이스케의 말에 그들은 결국 통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의아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뭐하는 곳이지? 이런 곳에 이런 통로가 있다는 게…… 이상한데."
"우리도 잠깐 머물렀던 게 전부라."
"무덤이라고 하지 않았어?"
"옆이 무덤이었어. 그것도 고위급 뱀파이어의 무덤이."
"……."
인위적인 공간 옆이 무덤이라는 말에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꼈지만, 수많은 좀비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차피 그놈들에게는 효과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대로 움직였다가는 저 인간 좋은 일만 시킬 테니까.'
어차피 조금씩 전진하면서 놈들을 상대하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에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강준우가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기운을 갈취당하는 것 자체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통로로 들어섰고, 권우철이 방패를 든 채로 앞장섰다.
"선화야."
"알았어. 노움!"
권우철의 말에 백선화가 정령을 소환했다.
예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정령의 모습은 이전과는 또 달랐다.
"중급인가?"
"맞아. 중급으로 성장했어."
자신의 정령을 알아봐주는 강준우의 말에 백선화는 뿌듯해하며 말했다.
일전에 봤던 노움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크들을 상대했던 동굴에서처럼 백선화의 정령이 앞장서며 주변을 살폈다.
두어 명이 나란히 설 정도의 너비를 가진 통로였다.
따로 함정은 없었지만,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냥 길만 나있는 것 같은데?"
"……."
걸음을 옮기던 김연희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 의아해하며 뇌까렸지만, 그때 백선화가 일행을 멈춰 세웠다.
"노움 말로는…… 이 길에는 아무도 없대."
"그래?"
"근데, 벽 너머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했어."
"벽 너머에?"
따로 갈림길도 나지 않은 길이었다.
벽으로 막힌 그곳의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는 말에 일행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준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로 느껴지는 건 없었는데.'
이렇다 할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선화가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모두가 그 상태로 자리를 지키자, 하야테가 벽을 두드렸다.
터엉. 터엉.
"뭐야? 뭐라도 찾은 거야?"
"그냥 한 번 해봤어."
"……."
"영화에서는 이렇게 치더라고."
다른 의미라도 있는 줄 알았지만, 의미 없는 손짓에 불과했다.
다이스케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고, 강준우는 백선화를 향해 말했다.
"벽 너머를 확인할 수 있을까?"
"잠깐만. 노움!"
그녀는 곧바로 노움을 움직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있다는 벽 너머를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정령이었다.
특히 대지의 정령인 노움은 지하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중급으로 올라선 노움은 백선화의 부탁에 곧바로 벽으로 스며들었고, 강준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 공간을 떠올렸다.
'뱀파이어라는 놈이 있던 곳도 독립된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따로 벽이 부서지지 않았다면 이 통로와 이어질 수가 없었다.
무슨 이유로 성 지하에 있는 무덤이 이곳과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다른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도 뱀파이어와 같은 놈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고심하던 그의 머릿속에 일전에 받은 임무가 떠올랐다.
'전체 보상이…… 모습을 감춘 자들의 등장이었던가?'
죽은 자들을 영면에 들게 만들면 모습을 감춘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모습을 감춘 자들이 리치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 여기에서 상대한 놈들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놈이 바로 중급 리치였다.
'모습을 감춘 놈들이 리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럴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스치는 생각에 고민하던 강준우는 이어지는 굉음과 다급한 목소리에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콰앙.
"조심해! 벽 너머에 누가 있어!"
"……."
백선화의 말에 그들은 곧바로 전방을 경계했다.
굉음이 터져 나온 벽을 확인한 모두의 시선이 강준우에게로 몰렸다.
"어떡할까?"
"……."
김연희의 물음에 그는 흔들리는 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백선화를 향해 물었다.
"여기야?"
"맞아. 노움. 물러나!"
답을 하던 백선화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오며 벽이 흔들렸고, 백선화는 피를 토해냈다.
꽤나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불러낸 정령에게 변고가 난 게 분명했다.
권우철의 힐이 쏟아지자, 백선화의 표정이 누그러졌지만, 벽 너머에 꽤나 강한 놈이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중급 정령을 강제로 귀환 시킬 정도의 실력을 가진 놈이라?'
강준우는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며 곧바로 벽을 후려쳤다.
콰앙. 후두두두.
강한 충격에 통로가 흔들렸다.
떨어지는 먼지와 쏟아지는 돌조각에 모두가 불안해했다.
"설마, 무너지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약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권우철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들의 뜻에 따른 강준우는 다시 힘을 쏟아냈다.
쿠웅.
내뻗은 장력이 벽에 내부로 스며들자, 두꺼운 벽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강력한 일격이 쏘아졌다.
쉬이익. 터엉.
뒤에 있던 존재는 벽이 무너지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벽이 무너지자마자 공격이 날아들었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생각했던 것만큼의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나타난 놈들의 정체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 반응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저놈이 왜 여기 있지?"
"……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벽 너머에서 나타난 존재는 그들에게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우르치라는 이름을 가진 오크였다.
오크 무리를 이끌던 놈의 주먹이 강준우의 팔에 붙잡혔다.
놈은 다시 주먹을 뻗으며 그를 노렸다.
검은 기운이 가득 실린 일격은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지만, 공격을 받아낸 그에게 다시 예리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콰앙.
다시 날아드는 공격에 뒤로 물러나자, 도를 든 또 다른 놈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저놈은 우리한테 죽은 놈이었어!"
유키코가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이들이 움직였던 지역에서 오크들을 이끌었던 우두머리인 것 같았다.
'이미 죽었을 놈이 다시 나타났다?'
이들이 여기에 나타난 것만 봐서는 그 지역을 지키고 있었던 오크도 명을 달리했을 게 분명했다.
이미 죽었던 놈의 등장에 모두가 놀랐다.
죽었던 놈들의 등장은 이곳이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문제는 모습을 드러낸 오크들이었다.
부서진 벽을 통해서 확인되는 놈들의 수만 하더라도 가볍게 두 자리가 넘어가고 있었다.
"죽은 놈들이 다 여기에 있었던 것 같은데?"
"……."
권기를 사용할 수 있는 우르치.
다른 놈들 역시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른 것은 분명했다.
각각 다른 무기를 손에 쥔 놈들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앞에 있는 우르치를 향해 주먹을 뻗으며 힘을 쏟아냈다.
콰앙.
강준우의 주먹과 다시 살아난 우르치의 주먹이 부딪쳤다.
강한 힘이 부딪치면서 강한 굉음이 흘러나왔지만, 더 큰 피해를 입은 쪽은 앞에 있는 우르치였다.
상대했을 당시에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놈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미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강준우였다.
권기를 펼칠 수 있는 놈이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공격을 받아낸 우르치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그대로 뒤로 처박히는 놈의 팔이 기괴하게 비틀렸지만, 놈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우르치는 따로 신음을 흘리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덜렁거리는 팔을 뒤로한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고, 그의 빈자리를 다른 놈이 대신했다.
'흐음. 이놈들도 언데드라는 건가?'
이미 죽은 놈들이 되살아난 것만 봐서 정상이 아니었다.
가볍게 시험을 해봤지만, 역시나 좀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어색한 것도 아니었다.
달려드는 놈들의 모습만 봐서는 살아있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을 모르는 몸뚱이로 변하면서 상대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놈들이 왜 여기에서 나오는 거지?"
"모르지."
"준우야 어때? 상대할 수 있겠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
"……."
놈들에 관해서는 좋은 기억이 없었다.
그들 역시 크게 성장을 했다지만, 일전에 마주했을 떠올리면 저런 놈들과 다시 상대하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몇 놈은 내가 상대할 게. 나머지는 알아서 해."
"아니. 그냥 혼자 다 처리해도 상관 없……"
뒤에 있던 김연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준우는 부서진 틈으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놈들 사이로 파고든 그는 곧바로 일양지를 쏘아냈다.
쐐에엑. 콰직.
강한 지력이 되살아난 오크의 몸통을 꿰뚫었다.
곧장 머리를 노리며 공격을 감행했지만, 놈들은 기민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그 뒤에 있던 오크의 몸이 꿰뚫렸다.
하지만 고통을 모르는 놈들은 오히려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터엉.
뒤늦게 형상기검을 펼치며 쏘아낸 기운으로 주변을 쓸어냈지만, 상대하는 놈들은 평범한 오크들이 아니었다.
기운을 끌어 올린 놈들은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놈들은 검기와 비슷한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두세 놈이 그의 공격을 잡기 무섭게 남은 놈들이 달려들었다.
놈들은 정중앙으로 뛰어든 강준우를 노리며 공격을 쏟아냈다.
"크와아아!"
괴성과 함께 빛무리가 쏟아졌다.
쉬이익. 콰과광. 콰과광.
그대로 강준우를 난도질하려는 힘이 주변을 가득 채웠지만, 정작 공격을 감행한 오크들의 무기는 그에게 닿지 못했다.
"후우. 쉬운 놈들은 아닌가?"
검막을 펼치며 공격을 받아낸 그는 손끝에 남은 충격을 떨쳐냈다.
건곤대나이로 충격을 돌리면서 곧바로 검기를 날렸고, 주변을 빼곡히 채운 놈들이 강한 충격에 튕겨져 나갔다.
가지고 있는 힘은 오크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수적인 우위를 앞세운 놈들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검기와 유형화 된 기운이 부딪쳤다.
위력은 달랐지만, 비슷한 여러 힘은 그의 기운을 막아냈다.
미처 막지 못한 힘은 몸으로 버텨냈다. 고통을 모르는 놈들은 그런 공격에도 개의치 않았다.
놈들은 제법 중한 상처를 가지고도 전과 다르지 않게 움직였다.
쉬이익. 콰과과광.
놈들은 오히려 전보다 더한 흉성을 토해내며 강한 공격을 쏟아냈고, 강준우는 그런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부서진 벽으로 물러난 그는 현철보검을 꺼내들었다.
"괜찮아? 우리가 도와줄까?"
"조금 뒤에."
"조, 조금 뒤라고?"
김연희는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괜찮다고 할 줄 알았던 강준우가 너무나 스스럼없이 도움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어지는 강준우의 공격이었다.
쉬이익. 콰과과과과광.
부서진 벽을 빼곡히 채우며 날아드는 검기들.
천마기멸격이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을 가진 힘이 전방을 뒤덮었고, 통로가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공격이었다.
일전에 확인했던 그 공격에 강준우가 말한 도움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뒤로 물러난 강준우는 권우철을 향해 말했다.
"형이 잠깐 놈들을 막고 있어."
"아, 알았어."
권우철에게 자리를 넘긴 그는 김연희를 향해 다가왔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온 그는 손을 내밀었고, 김연희는 체념한 듯 그의 팔을 붙잡았다.
'흐읍.'
가진 마나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강준우는 흡기공으로 그 기운을 회복하며 새로운 알림을 전해 들었다.
[흡기공이 9성으로 올라섭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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