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7화
<통로가 이어진 곳>
강준우가 내공을 회복하는 사이, 권우철은 앞에 있는 놈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터엉. 터엉.
방패를 앞세운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 역시 상당한 성장을 이뤘지만, 앞에 있는 놈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다.
유형화 된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두어 놈이면 상관없겠지만, 그 수가 너무나 많았다.
연신 부딪치는 공격에 그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이곳에 오면서 이런 식의 어려움을 겪은 적은 처음이었다.
따로 홀리 쉴드와 웨폰으로 신성력을 부여하고 있었지만, 앞에 있는 놈들은 여전히 강한 충격을 건넸다.
"하압! 홀리 라이트!"
받아낸 무기를 튕겨낸 그는 곧장 마법을 사용했다.
새하얀 빛이 그대로 오크의 머리에 꽂혔지만, 놈은 크게 비틀거릴뿐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일격에 무너지는 좀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제대로 붙으면 동시에 두 놈을 상대하는 것도 힘드려나?'
어느 정도 힘을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오크들의 힘에 그는 다시 방패를 들어올리며 공격을 흘렸다.
쿠웅. 쿠웅.
"기다려! 내가 도와줄 테니까. 하압!"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키코는 곧바로 바닥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그리고 빠르게 손을 뻗으며 시린 기운을 쏟아냈다.
까드드득. 콰과광.
내지른 장력에는 극음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주변을 얼리며 쏟아진 힘에 적중당한 오크의 몸이 딱딱하게 얼어 붙었다.
콰앙. 와장창.
굳어버린 몸뚱이에 권우철의 둔기가 꽂히자 언데드 오크의 일부가 바스라졌다.
하지만 놈은 죽지 않았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이었지만, 쓰러진 와중에도 그를 물어 뜯으려고 공격을 감행했다.
콰직.
권우철은 그대로 발을 내디디며 오크의 머리통을 부쉈고, 동시에 날아드는 공격에 크게 밀려났다.
터엉.
사람 몸통만한 둔기를 든 놈이 그를 후려쳤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받아낸 공격에 그의 몸이 크게 튕겨져 나갔고, 그 틈을 비집고 언데드 오크들이 벽을 빠져나왔다.
"노움! 놈들을 막아!"
쓰러진 권우철을 대신해서 백선화가 정령을 부렸다.
그녀의 명령에 중급 정령이 바닥을 움직이자, 굵은 돌기둥이 솟아 오르며 오크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그 힘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콰앙. 콰앙.
놈들이 무기를 휘두르기 무섭게 앞을 가로막고 있던 돌기둥이 부서졌다.
잠깐의 시간도 벌지 못 했지만, 그 사이 몸을 수습한 권우철은 다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우선 막는데 집중하는 게 좋겠어.'
일행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강준우가 힘을 회복하면 놈들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권우철이 앞을 막는 사이, 유키코와 백선화가 그를 도왔다.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세 사람은 그저 강준우의 힘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게 최선이었다.
"근데, 바람 마법이라면 괜찮지 않아?"
"큰 도움이 못 되더라고."
"……."
"네 마법은?"
"여기에서 펼치면 욕만 얻어먹을 거야."
"……."
동병상련을 느낀 둘은 말을 아꼈다.
어느새 강준우는 김연희에게서 손을 뗀 채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그들 차례가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움직인 강준우는 곧장 바닥을 밟으며 천마군림보를 펼쳤다.
콰과광.
권우철의 전방에서 강한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갑작스러운 기운에 움찔거린 그를 스치며 한 사람이 튀어 나왔다.
강준우는 그대로 일양지를 쏘아내며 휘청거리는 언데드 오크의 머리를 노렸다.
쐐에엑. 콰직.
예의 지력이 선두에 선 오크의 머리를 꿰뚫었다.
놈이 다급하게 손을 들어 올리며 머리를 보호했지만, 일양지는 그 손을 관통하며 오크의 머리를 헤집었다.
다시 형상기검을 만든 그는 기운을 날리며 뒤에 있는 오크를 노렸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통로가 흔들리자, 그는 현철보검을 꺼내들며 빈자리에 내려섰다.
"크와아아!"
그 와중에 버틴 놈이 포효했지만, 놈을 향해 빠른 검격이 날아들었다.
일섬을 섞은 무영검.
거기에 천마복룡파가 섞이자, 공격을 막기 위해 널찍한 도를 들어 올린 오크가 무너져 내렸다.
콰드득.
검기가 회전하면서 만들어낸 와류는 앞을 가로막은 도를 밀어냈다.
비슷한 기운이 서린 대도였지만, 강준우의 검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힘에 밀리며 도가 치워지기 무섭게 그의 검은 그대로 오크의 머리를 날렸다.
"저건 또 뭐야?"
"오민중이 쓰던 기술이잖아?"
"저게 민중이가 쓰던 기술이라고?"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가 사용했던 천마복룡파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위력을 내보이고 있었지만, 강준우가 사용하는 힘은 오민중이 사용했던 힘과 닮아 있었다.
확실히 그가 오민중을 처리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유키코는 말을 아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움직였던 다른 사람들도 침묵했다.
그들에게는 오민중 역시 동료였다.
비록,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 전해 들었지만, 마음속 한편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왜 이래?"
"……."
"누차 말하지만 그놈이 먼저 우리를 죽이려고 했다고!"
"누, 누가 뭐라고 그랬어?"
"유키코, 네 눈빛이 이상하니까 그렇지."
"내, 내가 뭘?"
"괜히 경계하지 마. 다른 마음만 안 품으면 저 인간만큼 든든한 아군도 없으니까."
"……."
다이스케는 그런 그들을 일깨웠다.
함께 했던 강준우는 냉정하고 무뚝뚝했지만, 나름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츤데레지. 츤데레.'
물론, 그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지만, 괜히 이상한 분위기로 어색한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여전히 강준우는 잘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천마복룡파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콰앙. 콰드득.
검격을 뿌릴 때마다 언데드 오크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일섬을 이용하며 쾌검을 뿌리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놈들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나름 힘을 가지고 있는 놈들은 늦게나마 공격을 받아냈다.
놈들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보호했다.
다시 살아났지만, 여전한 힘은 간신히 강준우의 쾌검을 받아낼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검을 감싸는 기운이 문제였다.
회전하는 검기에 앞을 가로막은 무기가 튕겨져 나갔다.
강한 파괴력을 가진 힘은 그대로 무기를 날리고 머리를 터뜨렸다.
기운을 가득 실었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쉬이익. 터엉.
강준우는 앞을 가로막은 도끼를 날리면서 드러난 언데드 오크의 머리를 터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괜찮아?"
"저 정도면 남은 사람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그, 그래. 고생했다."
그는 일부러 몇 마리를 남겼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몰랐다.
지금 상대하는 놈들보다 더 강한 놈들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놈들을 나 혼자서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었다.
권우철은 물론이고, 김연희와 백선화, 다이스케와 두 사람의 힘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힘은 더 강해진 것 같은데, 포인트는…… 더 짜진 건가?'
기존에 얻은 포인트의 1/10정도만 획득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능력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에서 큰 제약이 없었지만, 남은 일행들에게는 아쉬울 게 분명했다.
얻은 포인트를 살피던 그는 대뜸 손을 내미는 다이스케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봤다.
"뭐야?"
"빨리 뽑아.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더라고."
"……."
달리 생각은 없었지만, 거절을 할 강준우가 아니었다.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놈들뿐만 아니라, 동료인 이들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흡기공의 숙련도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와중에 기운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흔기공뿐만 아니라 천마신공과 건곤대나이의 숙련도까지 올릴 수 있었다.
"흐읍!"
강준우는 주저하지 않고 힘을 뽑아냈다.
그리고 반발하는 힘을 갈무리하면서 천마신공을 운용했다.
그가 기운을 회복하는 사이, 권우철과 남은 일행들은 남은 언데드 오크들을 상대했다.
이미 강준우가 많은 수를 처리한 만큼 남아 있는 놈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콰앙.
권우철이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면 유키코가 장력을 뿌렸다.
음기가 가득 담긴 힘이 언데드 오크의 움직임을 묶으면 백선화가 중급 정령을 이용해서 놈들을 공격했다.
뒤늦게 합류한 다이스케는 매직 미사일로 얼어붙은 놈들을 두드렸고,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에 오크가 쓰러지면 차례대로 포인트를 획득해 나갔다.
"뭐야? 포인트가 왜 이것 밖에 안 돼?"
"…… 그러게. 어렵기는 더럽게 어렵던데."
손에 넣은 보상을 확인한 그들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
노력에 비해서 얻은 게 많지 않았다.
언데드들을 상대하면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괴물 같은 놈들이라면 달라야 정상이었다.
"설마, 여기에 이런 놈들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소리 하지 마!"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서진 벽을 통해서 안을 살핀 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여기에서 대략 20마리가 나온 건가?"
"대충 그 정도였던 것 같았어."
"그 오크들이라면 20마리가 전부였겠지?"
"……."
어떻게 보면 20마리도 많아 보였다.
고블린을 처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오크를 상대하면서 모인 상황이었다.
그 아수라장을 버티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상대한 오크들의 수가 20이라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온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더 많지 않을까?"
"……."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있는 사람들까지 마주했다.
만약 이 일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면 오크 20마리로는 부족했다.
문제는 이곳에 그런 놈들이 더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오크들뿐만 아니라 죽은 고블린 족장이나 웨어 울프들 대전사가 남아 있을 경우를 생각해 보면 더 막막했다.
"설마, 이놈들이 모습을 감춘 자들은 아니겠지?"
"……."
다른 사람들도 강준우가 했던 비슷한 생각을 내비췄다.
그럴듯한 가정에 모두는 말을 잇지 못 했다.
장내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통로를 벗어나서 밖으로 움직이는 게 더 나을 지도 몰랐다.
"그냥 밖으로 나가서 좀비들을 상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차라리 그냥 길만 걷자. 굳이 벽을 부숴서 놈들을 깨울 필요는 없잖아."
저마다 제 생각을 말했지만, 정작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이런 상황이 달갑지는 않았다.
이미 쓰러뜨렸던 놈들을 다시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놈들이었다.
오히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놈들과 상대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어떡할까?"
"위로 올라가서 좀비라는 놈들을 상대해도…… 결국에는 이놈들과 상대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번 임무를 수행하고 나타날 놈들은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놈들인 것 같았다.
모습을 감춘 자들의 등장.
만약 보상을 얻고 이놈들과 다시 싸워야 한다면 차라리 지금이 나을 지도 몰랐다.
"이놈들을 단체로 상대하는 것보다는 각개격파로 쓰러뜨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만."
강준우의 말에 그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넓은 공간에서 이런 놈들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부분적으로 나오는 놈들을 상대하는 게 더 나았다.
"답은 정해졌네."
"다시 움직여?"
"우선 기운 좀 회복하고, 다시 움직이자고."
그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통로 자체는 따로 위험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벽을 부수고 안에 있는 놈들을 깨우지 않는 이상,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수에 맞춰서 단약을 건네는 그의 행동에 다이스케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뭐, 뭐야?"
"나눠가져. 필요할 것 같으니까."
"……."
너무나 뻔뻔한 행동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단약이라도 주는 게 다행이었다.
'이게 어디냐. 그냥 숙련도나 올린다고 생각하자.'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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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