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9화
<월척>
"여기? 이 정도면 돼?"
"아니. 거기에서 더 들어가야 안전할 것 같아."
"……."
유키코의 제안과 함께 그들은 통로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선화가 근처에 있는 위치를 알렸고, 강준우는 그들의 간격을 조절했다.
그의 뒤로 권우철이 방패를 앞세우며 자리를 잡자, 유키코와 남은 일행들이 이어질 공격에 대비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지금 시작하면 될 것 같아."
"아, 알았어."
"잠깐만!"
권우철이 움직이려는 백선화를 불러 세웠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백선화와 강준우의 시선을 뒤로하고 가만히 힘을 끌어 올렸다.
"홀리 아머! 홀리 웨폰!"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신성력이지? 이 힘을 잊고 있었네. 고마워."
"고맙기는. 당연한 거지."
강준우의 말을 뒤로한 권우철은 뿌듯해하며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준비를 갖추자, 백선화는 정령을 이용해서 벽을 무너뜨렸다.
쿠구구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나온 곳의 벽이 무너졌다.
그 안에 있던 놈들이 그 소리에 반응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나타난 놈들의 모습은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열 마리의 짐승은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웨어 울프 대전사들이었다.
이미 죽어 있던 놈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나온 언데드 오크들이 강준우와 일행을 보며 달려들었고, 웨어 울프 대전사들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전방을 가득 채운 놈들의 기세만 보면 곧 휩쓸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강준우는 빠르게 달려오는 놈들의 모습을 살피며 곧장 바닥을 굴렸다.
쿠웅.
전방으로 퍼져나가는 천마군림보의 기운이 언데드 오크들의 움직임을 가로막았다.
놈들도 위협적인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힘을 떨쳐내기 위해서 움직임을 멈추자, 뒤따르던 웨어 울프 대전사들과 뒤섞였다.
그리고 그 순간을 노린 강준우는 곧바로 현철보검을 휘두르며 강한 기운을 뿌렸다.
쉬이익.
전방에 떠오른 수많은 검기들.
천마복룡파의 힘을 섞은 천마기멸격이었다.
거기에 미미하지만 신성력까지 담겨 있었다.
떠오른 검기 하나하나가 와류를 만들어내며 공중에서 움직임을 멈췄고, 커다란 기합과 함께 전방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압!"
쐐에엑. 콰과과과광.
강력한 힘을 가진 기운들이 전방을 휘저었다.
천마복룡파의 힘으로 더욱 강한 관통력을 가진 검기들이 언데드 오크와 웨어 울프들을 쓸어내자 통로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강한 힘을 견뎌내는 통로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강준우가 날린 공격이었다.
"미친!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볼 때마다 살 떨리네."
일행은 다이스케의 말에 공감했다.
만약 강준우와 붙어서 저런 공격을 받아낸다고 가정하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공격을 받아내는 언데드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졌다.
강준우는 생각보다 더 많이 소진된 힘을 느꼈다.
천마복룡파를 섞은 천마기멸격은 당연히 더 많은 힘이 필요했지만, 그만큼 더 강한 위력을 내보였다.
그래도 이번에 처리한 놈들을 통해서 정체되어 있던 힘들을 키울 수 있었다.
[만월의 축복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만월의 축복이 4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야생의 감각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야생의 감각이 6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두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쓰러진 놈들이 많은 만큼 비슷한 능력을 얻을 확률이 더 높아진 것 같았다.
나쁘지 않은 소득에 그는 남은 놈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동요하는 기운을 느끼며 의도적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이전보다 위력이 더 강해진 것은 분명했지만, 꽤나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에 뒤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유키코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나 때문에 무리를 한 건가?'
괜히 남은 놈들을 몰아서 잡자는 말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그녀의 걱정을 뒤로한 강준우는 전방을 주시하며 뒤로 물러났다.
강력한 공격 속에서도 세 마리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비교적 뒤쪽에 위치한 놈들로 모두가 웨어 울프 대전사들이었다.
"뒤를 맡길 게."
"아, 알았어."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 물러나는 강준우를 뒤로하고 권우철이 앞으로 나섰다.
"홀리 쉴드! 홀리 아머! 홀리 웨폰!"
곧바로 신성력을 덧씌운 그가 자리를 잡자, 그를 돕기 위해 유키코가 기운을 끌어 올리며 공격을 감행했다.
자신의 의견 때문에 무리를 한 강준우를 대신해서 앞에 있는 놈들을 확실히 처리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언데드라지만, 놈들의 힘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하압!"
낭랑한 유키코의 목소리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동시에 그녀는 시린 장력을 내뿜었다.
까드드득.
주변을 얼리며 날아드는 시린 기운.
소수마공이었다.
극음의 기운을 가진 힘이 주변을 얼리며 얼음 조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대로 세 마리의 웨어 울프를 때렸다.
콰아앙.
강한 위력과 함께 차가운 기운이 통로를 가득 채웠지만, 그것만으로는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크아아아!"
놈들은 마력이 담긴 목소리로 울부짖었고, 그 소리에 놀란 깜짝 놀란 김연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준우에게 기운을 건네면서 힘을 회복하려던 순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리에 앉았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게 분명했다.
"이제는 마나도 제대로 회복 못 하겠는데?"
"그건 내가 막아줄 게."
"네가?"
다이스케의 말에 김연희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찮게 보는 듯한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이스케는 보란 듯이 힘을 사용했다.
"사일런스!"
그를 중심으로 기운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주변의 소음이 사라졌다.
"……."
무거운 적막 속에서 유키코의 공격이 이어졌다.
주변에 생겨난 얼음 결정이 그녀의 손짓과 함께 쏟아지면서 언데드 웨어 울프들의 몸이 밀려났다. 하지만 별다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주변에 펼쳐진 사일런스는 그런 잡음까지도 집어 삼키고 있었다.
별다른 굉음이 나오지 않자, 위력적인 공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상황에 당황한 유키코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강력한 힘을 쏟아낸 그녀를 대신해서 권우철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밑을 게! 하압!'
크게 소리치며 앞으로 튀어나왔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돌진하는 그의 행동에 유키코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고,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다이스케를 노려봤다.
"……."
오히려 소리가 끊기자, 의사전달이 힘들었다.
그 눈빛에 멋쩍어하던 다이스케는 말을 아꼈다.
대신, 조심스럽게 사일런스를 풀어내며 강준우에게 팔을 내밀었다.
"기운은 나중에 회복하는 게 좋겠다."
"그, 그래. 알았어."
"대단한 마법이네. 이딴 걸 왜 익힌 거야? 포인트가 넘쳐나나 봐?"
"이게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비꼬는 듯한 유키코의 말에 다이스케는 억울해하며 소리쳤지만, 뒤를 잇는 처절한 괴성에 말을 아꼈다.
"크아아아!"
유키코를 대신해서 앞장선 권우철이 세 마리의 웨어 울프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콰앙. 콰앙.
날카로운 발톱으로 방패를 두드리는 놈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강력한 공격을 날렸다.
터엉.
신성력이 어린 둔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웨어 울프들이 괴로워했다.
이미 유키코의 힘으로 놈들의 움직임이 느려진 상황이었다. 소수의 한기가 놈들의 몸을 얼렸다.
권우철은 무뎌진 움직임에 공격을 성공시키면서도 홀리 라이트를 펼치며 놈들에게 강한 충격을 전해줬다.
콰앙.
결국 개중에 한 놈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둔기에 찍히며 쓰러지는 놈의 모습에 남은 두 놈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콰앙. 콰앙.
연신 그의 방패를 두드리며 괴력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그 순간, 백선화가 노움을 이용해서 놈들을 공격했다.
쿠구구구. 콰앙. 콰앙.
죽창처럼 솟아난 날카로운 돌기둥이 그대로 두 놈의 몸을 꿰뚫었다.
강한 충격이 전해졌을 게 분명했지만, 놈들은 개의치 않으며 권우철을 노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놈들의 모습에 백선화는 이를 악물며 다시 노움의 힘을 집중 시켰다.
"크아아아!"
위에서 솟아난 돌기둥이 그대로 놈들의 몸을 꿰뚫었다.
바닥이 아닌 천장에서부터 돌기둥이 내려왔다.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발상이었지만, 백선화의 공격은 성공을 거두지 못 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놈들은 머리를 보호하며 몸을 웅크렸다.
동시에 일전에 파드라스라는 놈이 보였던 공격을 감행해왔다.
콰과과광.
"크윽."
강한 충격이 주변을 뒤덮었다.
중급으로 성장한 노움이 강제로 역소환되면서 충격을 받은 백선화가 피를 토하며 힘겨워했다.
그녀도 걱정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앞에 있던 권우철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강력한 공격을 받아낸 그를 걱정한 모두의 시선이 전방으로 향했다.
"선배! 괜찮아?"
"크윽. 괘, 괜찮아!"
뒤에서 보는 권우철의 모습은 멀쩡했다.
하지만 그가 쥐고 있던 방패는 넝마로 변했다.
방패는 물론이고, 입고 있던 갑옷까지 구멍이 숭숭 뚫렸다.
암기처럼 쏘아진 놈들의 털에 관통된 갑옷에 그는 다급히 힐을 시전하며 스스로의 몸을 회복시켰다.
그 사이, 유키코가 다시 놈들을 향해 장력을 쏟아냈다.
멀리서 날린 장력이 강한 힘을 실으며 놈들의 머리를 터뜨렸다.
아무리 언데드라고 하지만, 그만한 힘을 쏟아내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개중에 한 놈의 머리가 부서져 나가며 무너져 내렸다.
소수의 강한 힘에 한 놈이 쓰러지자, 유키코는 생겨난 기다란 얼음 기둥을 손에 쥐며 남은 놈의 머리를 노렸다.
쐐에엑!
거력을 담은 힘이 남아 있던 놈의 얼굴에 박혀들었다.
하지만 짧은 순간, 다시 힘을 회복하며 움직인 놈은 양 손을 교차하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치잇."
유키코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서져 나가는 얼음 기둥을 아쉬워했다.
회심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지만, 겨우 버티던 놈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뭐, 뭐지?"
웨어 울프 대전사의 이마에서 뾰족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놈의 이마를 뚫고 나온 검첨.
뒤통수가 꿰뚫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놈이 쓰러지자, 그 뒤로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정우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너희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뒤쫓아 왔어."
"뒤쫓아 왔다고? 우리를?"
너무나 뜬금없는 등장이었다.
별다른 언질도 없이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유키코는 곧바로 강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그가 오해한다면 상황이 걷잡아질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걱정이 들어맞았다.
곧바로 강준우의 은밀한 전음이 뒤를 이었다.
-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
-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놈들은……
- 처음부터 뒤쫓아오던 놈들이었어. 은밀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
이어지는 그의 말에 그녀는 놀란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봤다.
'처음부터? 그럼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거야?'
정우일과 남은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은밀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은밀히 기회를 엿봤다고? 설마,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던 거야?'
기회를 엿봤다는 말은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유키코는 뒤늦게 강준우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마기멸격을 펼치면서 앞을 가로막은 놈들을 쓰러뜨리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던 모습도 모두가 의도한 모습인 것 같았다.
'하긴, 그런 공격을 서너번을 더 날리고도 멀쩡했던 인간이 위력을 높였다고 지치는 것도 이상하지.'
그동안 보인 강준우의 모습이라면 이렇게 저들의 움직임을 끌어낸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권우철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왜 너희들뿐이야?"
"……."
걱정이 가득한 권우철의 말에 정우일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거리를 벌리는 남은 사람들을 확인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죽었어."
"주, 죽어?"
"아니. 죽은 게 아니지. 죽였다고 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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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남은 연휴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