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3화
<월척>
공격을 쏟아내며 시선을 돌린 뒤에 빠져나가려는 정우일의 생각.
그걸 모를 강준우가 아니었다.
강준우는 일부러 검막을 만들어내며 공격을 받아냈다.
그 와중에 천마흡기공을 통해서 부딪친 힘을 흡수했고, 배진격을 이용해서 남은 힘을 손쉽게 떨쳐냈다.
정우일은 그런 그를 스쳐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 안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강준우는 곧장 일양지를 쏘아내며 그를 막아냈다.
쐐에엑. 푸욱.
허벅지가 꿰뚫린 정우일의 몸에 바닥에 처박혔다.
"끄으윽."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그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절뚝거리면서도 그와의 거리를 벌리려는 정우일의 처절한 모습에 강준우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촤아악.
"끄아악!"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기검을 만들어내며 손을 움직이자, 허벅지를 꿰뚫은 검이 그대로 그의 다리를 베어냈다.
붉은 피가 바닥을 가득 적셨다.
처참하게 구겨진 정우일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지만, 그는 곧바로 몸을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사, 살려주세요!"
"……."
그는 부복하듯 엎드린 채, 목숨을 구걸했다.
간절한 그의 목소리에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강준우의 표정도 좋지만은 않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
"제발!"
지금까지 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런 비굴한 정우일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모두가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은 강준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으며 손을 뻗었다.
푸욱.
다시 쏘아진 일양지가 그대로 정우일의 머리에 꽂혔다.
괜히 시간을 끌어봐야 마음만 괴로울 뿐이었다.
"흐음."
단호한 그의 모습에 뒤에 있던 누군가가 침음을 흘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권우철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들어온 힘을 확인하며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냈다.
[천마신공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천마신공이 9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견고한 판금 갑옷의 소유권이 바뀝니다.]
'성취가 곧바로 올랐단 건가?'
심법의 이해도가 충분한 것 같았다.
숙련도가 오르고도 심법에 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면 귀영심법의 성취를 올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떠올리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그런 수고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천마신공의 성취가 올랐습니다. 심법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단전의 크기가 확장됩니다. 가진 내공의 총량이 증가합니다.]
[내공의 운용이 더 정교해집니다. 하위 마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집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알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우일을 처리하면서 얻은 게 상당히 많았다.
그저 뒤를 잡을 놈들을 처리할 생각으로 움직였지만, 월척을 낚은 것이다.
'천마신공과 포인트. 거기에 갑옷이라는 귀물까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천마신공이었다.
운이 좋았다.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는 사람을 처리하면서 무공을 강탈할 수 있었고, 곧바로 성취까지 올릴 수 있었다.
9성에 오른 천마신공.
고작 1성 차이였지만, 그 1성이 가지고 온 변화는 작지 않았다.
[극마경(極魔境)의 경지로 올라섰습니다.]
[내기의 수발이 더욱 자연스러워집니다.]
[내기의 운용이 더 수월해지고, 효율적으로 변합니다.]
[강기(罡氣)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새로운 무리(武理), 강기(罡氣)를 얻었습니다.]
단, 한 번의 성장이었지만, 엄청난 변화가 생겨났다.
'강기까지 얻은 건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손에 넣은 힘은 그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강준우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스스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멍하니 서 있는 강준우의 모습에 김연희가 걱정스러운 둣이 그를 향해 다가가려 했지만, 권우철과 유키코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 쉿!
"……."
- 그냥 지켜 봐.
심상치 않은 상황에 유키코는 모두에게 주의를 줬다.
자리한 모두는 숨을 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봤고, 강준우는 다시 시작된 변화에 정신을 집중했다.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이루어집니다.]
[무공을 펼치기 최적화된 상태로 몸이 바뀝니다.]
'환골탈태!'
말로만 들었던 상황이 그를 찾아왔다.
우드드득.
새로운 알림과 함께 변화가 이어졌다.
그의 귀에만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바뀌었다.
온 몸의 형태가 다시 바뀌고 있었지만, 괴롭거나 고통스럽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던 내공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뻗어나가는 힘이 뒤틀리는 근육과 뼈에 스며들면서 모든 기맥이 뚫리고 확장됐다.
빠져나간 내공이 다시 채워졌다.
단전뿐만 아니라 온 몸에 스며드는 힘에 강준우는 놀라워하며 달라진 스스로를 확인했다.
급작스러운 변화가 당황스러웠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주변의 상황으로 가득 채워졌다.
따로 기운을 펼치고 있지는 않았다.
주변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초절정에서 극마경으로, 흔히 말하는 화경으로 변한 게 전부였지만, 그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왔다.
휘이이이익.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들 역시 변하는 상황에 놀라워했다.
주변에 있는 기운이 강준우에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얼마나 더 강해지려고 저러는 거야?'
강준우를 바라보는 모두의 생각은 달랐지만, 더욱 강력해지는 그의 변화가 나쁘지는 않았다.
강준우는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는 그의 모습에 뒤에 있던 백선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은 거야?"
"어? 어."
"어디 다친 건 아니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 해."
권우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차하면 힐을 사용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최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벼운 손짓만으로도 상대를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걱정이 가득한 모두의 시선에 그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오히려 좋으니까 걱정하지 마."
"저, 정말?"
"설마, 더 강해진 거냐? 그건 아니지?"
"……."
다이스케는 그런 강준우에게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놀란 듯이 바라보는 일행의 시선을 뒤로한 강준우는 뒤에서 느껴지는 불안정한 기운을 확인하며 시선을 돌렸다.
뒤쪽에는 점혈당한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일전에 잡은 마법사와 사제로, 그들을 확인한 강준우는 곧장 둘을 향해 다가갔다.
'으으읍!'
그가 오자 두 사람의 눈이 커다래졌다.
점혈을 당한 상황이라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부릅뜬 눈은 그들의 뜻을 대신했다.
가볍게 둘을 들어 올린 그는 개중에 한 명을 권우철을 향해 내던졌다.
투욱.
"갑자기 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신성 마법을 사용한 것 같더라고. 형이 처리하면 될 거야."
"……."
"그리고 이 사람은 마법사 같았어."
잔인한 말이었지만, 모두에게 이런 상황은 익숙했다.
하지만 권우철은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올려보는 그 사람의 눈빛이 그의 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가만히 그의 반응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권우철의 모습을 뒤로하고 남은 세 사람 사이에 남은 한 명을 던졌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해?"
셋은 권우철과 다르게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에게 결정을 내려주라는 듯이 물었고, 잠깐 고민하던 강준우는 다이스케를 향해 말했다.
"네가 처리해라."
"그렇지! 그래야지!"
"왜? 기준이 뭔데?"
"……."
김연희는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대신해서 다이스케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저 인간하고 함께 움직인 시간이 얼만데! 나는 줄곧 마나를 빨려왔다고!"
"……."
그 말 하나로 상황이 정리됐다.
굳이 셔틀로 활동했다는 말까지 꺼낼 필요가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말에 침묵했고, 다이스케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처리하며 그 힘을 손에 넣었다.
권우철은 같이 움직였던 사람을 앞에 놓고 주저했지만, 결국 그의 목숨을 취했다.
앞에 있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의 힘을 취할 게 분명했다.
강준우는 굳이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자를 넘겨줬다.
그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권우철이 잡힌 사람을 처리하는 사이, 강준우는 스스로의 상태를 살폈다.
확연히 달라진 몸 상태와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감각 역시 달라져 있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흐릿한 기운들은 그동안 주의를 기울여도 느끼지 못한 죽은 자들의 기운이 분명했다.
'벽 너머에 있는 놈들이라. 이제 그 힘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건가?'
아직도 많은 수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경지가 달라진 만큼 저들을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그의 감각에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또 다른 놈들이 남아 있었던 건가?'
통로의 뒤쪽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앞으로 나섰고, 달라진 그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유키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누가 오고 있는 것 같은데."
"누가 오고 있다고?"
그의 말에 남은 일행들이 저마다 기운을 퍼뜨리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오긴 누가 온다는 거야? 확실한 거야?"
"기다려 봐. 곧 나타날 것 같으니까. 아니면 이놈들처럼 뒤에서 기다릴 지도 모르지."
"……."
그 역시도 기운을 느낀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 지는 알 수 없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 중에는 익숙한 자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도망친 놈인 것 같은데.
정우일과 함께 그들을 공격하다가 도망간 놈 같았다.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거라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을 잡기 위해서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생각과 다르게 뒤에 있던 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 안드레이?"
"뭐야? 여기에서 다시 보네?"
나타난 무리를 확인한 다이스케는 깜짝 놀라며 아는 체를 했다.
모습을 드러낸 자들은 그에게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고, 그들 역시 다이스케와 강준우를 잘 알고 있었다.
"뭐야?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그야 당연히…… 근데, 상황이 좋지 않네."
그들을 확인한 안드레이와 남은 일행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유키코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저 사람하고 일행인 것 같은데?"
"아, 너는…… 정성철!"
갑자기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안드레이와 무리들 사이에 끼어 있는 정성철은 그들에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함께 하다가 정우일과 함께 공격을 감행한 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안드레이는 함께 움직인 정성철과의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여기로 오면서 만난 사람이야.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
"듣자하니 너희들이 이들 무리를 기습했다고 하던데. 그런 거야?"
"……."
졸지에 두 무리 사이에 끼인 정성철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뒤에 나타난 자들이 이들과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갑자기 만난 이들에게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죽음은 면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올 수밖에 없었다.
'씨발, 그냥 바로 도망갈 걸 그랬나?'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정성철은 아꼈고, 안드레이는 해명을 하듯 말했다.
"무리를 공격한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도울 생각으로 이렇게 움직였는데."
"……."
황당한 말에 그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성철은 곧바로 바닥을 박차며 뒤로 내달렸다.
이미 정우일도 죽은 마당에 이곳에 남아 있어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앞에 있는 강준우보다는 뒤를 가로막고 있는 자들을 밀어내고 도망가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는 곧바로 움직였지만, 걸음을 떼기 무섭게 날카로운 힘이 그의 목을 스쳤다.
서걱.
그림자도 보이지 않은 검격.
정성철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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