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4화
<모습을 드러낸 놈들>
자리한 모두는 강준우의 단호한 손속에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누구 하나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 했다는 점이었다.
잠깐 못 본 사이에 강준우의 힘은 또 달라져 있었다.
안드레이를 비롯한 그의 일행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마른침만 삼켰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따로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손에 넣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너진 사람을 뒤로한 강준우는 태연하게 몸을 돌리며 쓰러진 정우일의 갑옷을 바라봤다.
'견고한 판금 갑옷이면 내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건가?'
귀물을 손에 넣었지만, 이미 동일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일행을 둘러보던 그는 유키코를 향해 물었다.
"네가 입고 있는 갑옷은……"
"그냥 평범한 갑옷이야."
유키코는 미처 질문을 내뱉기도 전에 답을 했다.
묘한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이었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다이스케의 목소리에 그녀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여기에서 나만 유일하게 갑옷이 없어!"
"너는 충분히 얻었잖아?"
"크흠. 그냥 갑옷은 없다는 거야."
"……."
모두의 얼굴에 묘한 기대감이 어렸다.
비슷한 갑옷을 가지고 있는 권우철을 제외하고 모두가 평범한 갑옷으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매번 마나를 내어주면서……"
"그건 이미 써먹었거든! 우리가 같은 물약 신세라고!"
김연희는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언급하는 다이스케를 일축했다.
정우일이 사용했던 갑옷이 평범한 물건이 아닌 만큼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물건을 욕심내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다이스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갑옷이 없는 상황에서 귀한 물건을 손에 넣는다면 더 안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그럼 안하면 되겠네."
"좀 들어 봐! 나는…… 셔틀이었다고!"
"그건 무슨 개소리야?"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비장한 모습을 보이던 다이스케의 터무니없는 말에 김연희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다이스케는 그 물음에 잠깐 고민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사일런스를 배웠을 것 같아?"
"……."
"내가 그래비티를 왜 배우고……"
"그래비티는 원래 네가 손에 넣은 힘이잖아!"
"아무튼! 플라이를 왜 배웠을까? 플라이를 배워서 뭘 했을까?"
"…… 셔, 셔틀을 했다고?"
"그래. 내 어깨에 우리 강 상을 태우고 뱀파이어들을 물리쳤다고!"
"씨발, 너 다 해먹어라."
셔틀이라는 말에 김연희는 포기하듯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강준우를 '우리 강 상'이라고 표현하는 다이스케의 말에 포기하듯 말하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다이스케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이건 네가 가져라."
"자, 잠깐! 나야. 나! 다이스케라고!"
"…… 그런데?"
"그동안 너를 태우고 돌아다녔던 난데. 내가 아닌 유키코에게 그걸 준다고?"
"그게 싫으면 망토를 내놓든지."
"……."
"괜한 욕심 부리지 마. 너보다는 쟤가 더 잘 쓸 것 같으니까."
딱딱한 강준우의 말에 주변을 둘러본 다이스케는 말을 잇지 못 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차피 마법사가 저놈들하고 직접 부딪칠 일은 없잖아?"
"그, 그렇지. 그래! 나보다는 유키코가 사용하는 게 더 맞겠다."
"……."
"미안. 내가 보물에 눈이 멀어서…… 미안하다."
다이스케는 고개를 숙이며 곧바로 사과의 말을 건넸고, 남은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다이스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한 물건을 마주한 그들도 욕심을 냈고, 그에 비해서 피력할 부분이 적었던 것뿐이었다.
강준우는 나름 합리적인 방법으로 물건을 나눴다.
갑옷을 유용하게 쓸 사람은 가장 앞장서서 적들을 막는 권우철이었다.
차선은 유키코였고, 그 다음이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모두를 납득시킨 것 같았다.
대충 일을 마무리지은 그는 뒤에 있는 안드레이와 그 일행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지?"
"우, 우리? 그야 당연히…… 너와 함께 움직여야지.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고."
"따라와? 나를?"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안드레이는 오히려 그런 강준우의 물음에 황당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너랑 저 셔틀이 사라지고……"
"다이스케! 내 이름은 다이스케다!"
"그래. 다이스케가 사라지고 난리가 났거든."
"난리라니?"
"남은 놈들이 우리를 가만히 둘 리가 없잖아? 걔들 우두머리를 네가 모두 처리했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죽이고 다닌 거야?"
김연희의 말을 뒤로한 강준우는 뱀파이어들과 상대하면서 두 고수를 처리한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레이와 그 일행들과는 나름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남은 자들이 어떻게 나왔을지 눈에 선했다.
"그래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았어. 네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몰랐으니까."
"……."
"그리고 이쪽 인원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안드레이를 비롯한 니콜라이의 무리가 힘을 합친 상황이었다.
결코 작은 힘이 아니었다.
섣불리 부딪치면 서로가 큰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그들은 대치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게 안드레이의 설명이었다.
다른 길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내성으로 움직인 강준우를 뒤따르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에 그들 역시 이곳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차피 너랑은 힘을 합쳤었으니까. 다른 곳으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너와 함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어."
"……."
"이런 우리를 내치지는 않겠지?"
안드레이의 물음에 강준우는 권우철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움직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믿을 수 있는 거야?"
"글쎄. 허튼 짓은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르지."
"모르기는!"
뒤에서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안드레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나름 믿음을 줬다고 생각했었지만, 강준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리나를 내 손으로 처리하면서까지 네 말을 따랐었잖아?"
"그건 그랬지."
"나는 내 목숨을 걸었다고."
"그건 나도 마찬……"
강준우는 말을 아꼈다. 괜히 이 말을 꺼내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수긍하듯이 뇌까렸다.
"그래. 너도 네 동료의 목을 걸었지. 그 정도면 믿음을 준 거 아니었……"
"잠깐! 동료의 목을 걸다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다이스케는 황당해하며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무엇보다 강준우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 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그, 그래."
"이렇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목숨을 걸다니?"
다이스케는 다시 되물었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침묵해야만 했다.
"그 망토. 굳이 네가 아니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
치사한 협박이었다.
다이스케의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왔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서로 통성명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아? 앞으로 함께 움직이려면."
"그, 그럴까?"
어색한 분위기에 권우철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안드레이도 이상함을 느끼며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안드레이와 니콜라이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열 명이었다.
강준우를 포함한 일행은 모두 일곱으로, 그렇게 열일곱 명의 사람들이 다시 움직였다.
작은 소란을 뒤로한 강준우는 앞장서며 기감을 펼쳤다.
극마경으로 올라서면서 벽 너머에 있는 자들의 기운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따로 정령이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했다.
"여기하고, 저기."
"곧바로 움직일까?"
"앞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 남은 한 곳은 모두가 손을 맞춰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
"그럴까?"
그들은 강준우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롭게 합류한 사람들과 합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다. 각자가 제 역할을 찾아야만 했고, 이곳에 있는 놈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강준우는 비교적 먼 곳에 있는 벽으로 다가갔고, 권우철은 앞으로 나서며 뒤를 바라봤다.
"제가 앞을 막죠."
"저도 앞에서……"
"우선은 어떤 놈들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그 이후에는 역할을 바꿔보죠."
"그, 그러죠."
정중한 권우철의 말에 안드레이도 수긍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웅.
가벼운 손짓과 함께 통로가 흔들렸다.
강준우가 움직이기 무섭게 백선화도 정령을 이용해서 벽을 무너뜨렸고, 그곳에서 죽은 웨어 울프 대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음."
그들의 등장을 확인한 안드레이와 무리들이 침음을 흘렸다.
대충 그들에 관한 설명을 전해들었지만, 직접 마주하자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크아아아!"
포효와 함께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우철이 놈들을 막자, 유키코와 남은 사람들이 조금씩 공격을 감행했다.
안드레이 쪽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일부가 틈틈이 공격을 날리며 서로 손발을 맞춰나갔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앞에 있는 웨어 울프를 밀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콰앙.
가벼운 장력에 앞에 있던 웨어 울프 대전사가 튕겨져 나갔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놈이 뒤에 있는 놈의 앞을 막자, 강준우는 곧바로 손을 들어 올렸다.
쐐에엑. 콰직.
가볍게 날린 일양지가 웨어 울프의 몸을 꿰뚫었다.
그 와중에도 놈은 치명적인 공격을 피해냈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서걱. 투두둑.
형상기검을 펼치자마자 웨어 울프의 몸이 잘려 나갔다.
그대로 머리를 베어낸 그는 확연히 진해진 기운을 확인하며 놀라워했다.
'이게…… 검강인가?'
형상기검을 이용해서 만든 기검.
이전에 만들어낸 기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 응축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검기가 압축된 것처럼 진한 빛을 흘리고 있는 힘은 바로 검강이었다.
가볍게 손을 휘둘렀을 뿐이었지만, 검강에 스친 웨어 울프 대전사의 몸이 너무나 쉽게 잘려나갔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검강을 마주한 놈들이 뒷걸음질치며 물러났다.
언데드로 변한 놈들의 본능적인 몸짓이 놀라웠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쐐에엑. 서걱.
그는 손끝에 모인 검강을 그대로 날렸다.
예의 검기가 날아가듯이 놈들을 향해 검강이 쏘아졌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검기를 날린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웨어 울프들은 날아드는 검강을 막아내기 위해서 발톱을 세우며 기운을 끌어 모았다.
급하게 그 공격을 쳐냈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다.
가벼운 실금이 그어지기 무섭게 그들의 몸이 잘려나갔다.
놈들을 베어내고도 여력이 남은 검강은 그대로 벽을 베어냈고, 이내 커다란 굉음이 방을 가득 채웠다.
콰과과과광.
그저 뽑아낸 검강을 날린 게 전부였지만, 그 위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이렇게 쉬운 놈들이었다고?'
놈들은 너무나 쉽게 쓰러졌다.
물론, 쓰러진 놈들 중 일부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터지지 않은 이상, 좀비처럼 계속 움직였지만,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가만히 놈들을 바라보던 강준우는 현철보검을 꺼내들며 기운을 흘렸다.
파츠츠츠.
기운이 검신에 모이며 점점 진한 기운을 만들어냈다.
검기보다 진한 기운은 검강이었다.
이제는 너무 쉽게 그 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경지가 오르면서 가지게 된 내공으로도 검강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다.
극마경에 오르면서 환골탈태를 경험한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가만히 검신에 맺힌 기운을 바라보던 그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일섬을 섞은 무영검에 바닥을 기는 웨어 울프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순식간에 주변을 정리한 그는 다시 한 번 검신에 맺힌 기운을 바라봤다.
'검강이라.'
결국, 말로만 들었던 기운을 손에 넣었다.
검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확인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힘을 이용해서 펼치게 될 힘이었다.
'이제 제대로 된 천마기멸격을 펼칠 수 있는 건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힘 중에서 가장 강력한 초식이 바로 천마기멸격이었다.
검강이 아닌 검기를 이용해서 그 무공을 펼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경악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이제는 그런 힘을 온전히 펼칠 수 있었다.
검강을 이용해서 펼치는 천마기멸격.
그 위력을 예상한 강준우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어지간한 놈들은 가볍게 골로 보낼 수 있겠는데?'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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