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화
<모습을 드러낸 놈들>
"일부러 저러는 거지? 우리 들으라고 그런 거지?"
"……."
"죽인 놈이 상급 리치였다잖아? 엄청 허접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저 말투는 뭐지?"
김연희는 황당해하며 투덜거렸다.
강준우의 혼잣말이 당연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자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한 힘을 쏟아내면서 겨우 소멸시킨 마법을 펼친 놈이 바로 상급 리치였다.
'아무리 마법사에게 가까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상급 리치라는 놈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쓰러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상성은 존재했다.
이미 놈은 강력한 마법을 날리며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근접한 싸움에서는 마법보다는 무공을 사용하는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급이라는 이름이 너무 무색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리치의 힘은 겨우 저 정도가 아니었다.
널따란 공간에서 수많은 좀비들을 조종하고, 그 뒤에서 강력한 마법을 날려대던 하급 리치는 경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놈보다 두어 단계나 더 높은 놈을 닭 모가지 비틀듯이 가볍게 비트는 강준우의 행동은 경악 그 자체였다.
더 얄밉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놈을 상대하고 내뱉은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권우철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우리한테는 나쁠 게 없잖아?"
"우리가 너무 쩌리 같잖아! 저 인간은 완전히 먼치킨이고."
"준우가 먼치킨은 맞지. 그게 부러우면 너도 강해지든가!"
"선배! 그걸 말이라고 해?"
김연희는 권우철의 말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곳에 와서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없었던 그녀인지라 신경이 예민해 질 수밖에 없었다.
강준우도 생각보다 쉽게 잡힌 놈의 실력에 의구심을 가졌다.
초절정에서 극마경으로 오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지만, 가진 힘을 제대로 확인한 적은 언데드로 변한 웨어 울프 대전사들을 상대했을 때가 전부였다.
상급 리치를 쉽게 처리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자각할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길을 막고 있는,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이 팔린 상급 리치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
조심스러운 질문에 강준우는 정신을 일깨웠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답은 하나였다.
"위로 올라가야지."
"……."
"괜찮을까?"
"글쎄."
딱히 정확한 답을 건넬 수 없었다.
무슨 장치가 되어 있는지 입구로 보이는 곳 너머에서는 별다른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봐야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 가진 힘으로는 남은 놈들을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문제는 남은 사람들이었다. 저들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수는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남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래도 저마다 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 쉽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 여기에 남든지, 밖으로 나가든지."
"……."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나?"
김연희의 물음에 그는 과감하게 걸음을 옮겼다.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향하는 그의 행동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곳에 남아있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만큼 밖이 위험하다는 건가?'
이미 상급 리치가 나타난 것만 봐서도 더 힘든 상대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서 움직이는 강준우의 행동.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비록, 함께하고 있었지만, 그는 모두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도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결국에는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었다.
***
밖으로 나온 강준우는 넓은 공간을 확인했다.
거대한 구조물의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뭐지? 탑 같은 곳인가?'
멀리서 봤던 돌산 같던 곳의 내부인 것 같았다.
원뿔 형태의 돌산은 실제로 탑이었다. 그리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알 수 없는 통로와 연결되어 있는 곳은 이곳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결국 돌산으로 보이는 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텅 빈 넓은 공간.
한없이 높은 천장의 끝은 뚫려 있었지만, 거리가 거리인 만큼 아주 작은 구멍으로 보였다.
'흐음.'
그는 생소한 공간에 침음을 삼켰다.
통로에 있던 남은 사람들이 그를 뒤따라오며 주변을 살폈다.
낯선 공간을 보는 그들의 표정도 강준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긴 어디야?"
"…… 왜 아무도 없는 거지?"
뭐라도 있을 줄 알았지만,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그들은 반대편에 닫힌 문을 확인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쪽으로 가야하는 건가?"
"저쪽은 나가는 길 아니야? 여기가 그 돌산 같은데."
"돌산?"
"처음에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
"……."
알 수 없는 공간에 의문은 커져갔지만, 가만히 자리를 고수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당장은 건너편에 있는 문으로 움직이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권우철은 곧바로 신성력을 부여하며 준비를 갖췄다.
그나마 방어력이 우수한 본인이 움직이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여차하면 준우가 움직이겠지.'
신성력으로 준비를 갖춘 그는 건너편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걸음을 떼기 무섭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뭐, 뭐야?"
"기다려. 놈들이 나타난 것 같으니까."
"놈들이 나타나다니?"
자신을 붙잡은 강준우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뒤늦게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쿠우우웅. 까드드득.
탑 안의 빈 공간에 강한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널따란 공간이 휘몰아치는 마력에 그 힘을 느낀 모두가 긴장한 듯 입술을 적셨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일어나는 수많은 무리들.
휑하던 빈 공간이 낯선 놈들로 가득 채워졌다.
"해, 해골?"
"스켈레톤이다!"
"……."
아무도 없던 공간이 해골들로 가득 채워졌다.
바닥에 잠들어 있던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개개인이 가진 기운은 일전에 상대했던 해골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완전히…… 군대 같잖아?"
완벽한 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놈들은 그저 앙상한 뼈만 가지고 나타난 게 아니라 갑옷과 방패, 무기를 소지한 채 오와 열을 맞춘 채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대열을 갖췄다.
권우철과 안드레이, 유키코를 비롯한 무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힘을 끌어 모으며 이어질 상황을 대비했고, 그 힘을 느낀 해골들이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처억. 처억.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움직이는 놈들의 모습에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놈들은 강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특히 선두에 서서 까만 갑옷을 입고 있는 놈은 멀리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흘리고 있었다.
강준우는 까만 갑옷을 입고 있는 놈을 바라봤다.
견고한 투구 사이로 보이는 붉은 눈빛과 안에 품고 있는 힘은 여기에서 상대한 그 누구보다 강력해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한 상황이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준우는 곧바로 바닥을 구르며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쿠웅. 콰과광.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간 기운이 모여 있는 해골 병사들의 발아래에서 폭발했다.
강한 굉음이 터져 나오고, 큰 충격이 바닥을 뒤흔들었다.
작정을 하고 펼친 천마군림보였다.
기운에 휩쓸린 놈들이 그대로 튕겨져 나가면서 익숙한 알림이 전해졌다.
**
모습을 감춘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나타난 자들이 강한 적의를 드러냅니다.
되살아난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탑의 주인을 불러내야 합니다.
목표 : 되살아난 병사들의 영면.
전체 보상 : 탑의 주인 등장.
개인 보상 : 기여도에 따른 차등 지급.
**
새로운 임무였다.
제대로 된 길을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놈들과의 싸움이었다.
시작을 알린 강력한 공격이 병사들을 휩쓸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크지 않았다.
방패를 든 일부는 그 공격을 받아냈고, 무기를 쥔 놈들도 검은 기운을 휘두르며 쏟아지는 위력을 줄였다.
"쉽지 않겠는데?"
"……."
진지한 강준우의 말에 남은 사람들 모두 긴장했다.
문제는 그 공격에 휩쓸려 튕겨져 나간 놈들이 다시 몸을 일으킨다는 사실이었다.
부서진 뼈조각을 맞추며 다시 대열을 갖춰나가는 그 모습에 모두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강준우의 말을 기점으로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은 곧바로 진형을 갖췄다.
방패를 든 해골 병사가 앞에 서고, 그 뒤로 창을 쥔 놈이 자리를 잡았다.
양 손에 검은 불덩이를 만들어낸 놈들은 그들의 뒤에서 일행들을 노리며 기회를 엿봤다.
드러난 모습만 봐서는 쉬워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해골 병사 하나하나가 작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강준우는 곧바로 현철보검을 꺼내들었다.
쐐에엑.
그가 검을 꺼내들기 무섭게 뒤에 있던 놈들이 마법을 날렸다.
양손에 검은 불꽃을 쥐고 있던 놈들이 공격을 날리자, 강한 힘이 무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저건 내가 막을 게! 매직 미사일 12연발!"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이미 준비하고 있던 다이스케게 크게 소리치며 공격을 쏟아냈다.
쉬이익. 콰과과광. 콰과광.
그는 연신 마법을 뿌렸다.
수많은 매직 미사일이 쏟아지며 날아오는 공격을 받아냈고, 커다란 굉음과 함께 검은 불꽃이 흩날렸다.
화르르르르.
바닥에 떨어진 불꽃이 그 크기를 키우며 사그라들었다.
생각보다 강한 위력이었지만, 다이스케는 그 공격을 비교적 잘 받아냈다.
"역시 질보다 양인가?"
"질도 뛰어나거든!"
"대단한 셔틀이네."
"미친……"
감탄하는 김연희의 말에 다이스케가 발끈했지만, 움직이는 그녀의 마나에 말을 아꼈다.
김연희는 곧바로 마법을 펼쳤다.
불사조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파이어 월로 앞을 막았다.
화르르르.
놈들이 날린 검은 불꽃보다 더 강한 위력을 내는 불길이 앞을 막았다.
이제 막 움직이려고 했던 해골 병사들이 걸음을 멈췄고, 적절한 그녀의 선택에 강준우는 앞으로 나서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홀리 웨폰!"
"블레싱!"
그런 그에게 권우철과 니키타의 신성 마법이 쏟아졌다.
언데드에게는 치명적인 속성이 더해졌고, 강준우는 전방을 향해 검격을 뿌렸다.
쉬이익.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뿌려지는 검격이 허공에 진한 기운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뒤에 있던 사람들도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었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내는 천마기멸격을 펼친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챘지만, 이전에 보였던 모습과는 꽤나 다른 모습이었다.
"뭐, 뭐지? 검기가 이상한데?"
"……."
여러 개의 검기를 압축시킨 듯한 모습이었다.
유난히 진해 보이는 기운에 김연희가 놀라며 물었고, 그 정체를 확인한 유키코의 눈이 부릅떠졌다.
"가, 강기다!"
"강기? 강기라니?"
"검기보다 더 강한 기운이야. 저건…… 강기야!"
확신하듯 소리치는 그녀의 말에 남은 사람들도 경악했다.
이미 강준우의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강기까지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일행들의 놀람을 뒤로한 강준우는 빼곡히 채운 강기를 확인하며 호흡을 골랐다.
'어마어마하네.'
가진 내공의 절반이 줄어들 정도로 엄청난 힘이 필요했다.
제대로 된 천마기멸격이었다.
강기를 이용해서 펼치는 천마기멸격은 처음인지라 기대와 함께 묘한 두려움이 일었다.
허공에 떠 있는 영롱한 기운들.
하나하나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강기들이었다.
짧은 순간,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강기를 바라본 그는 마지막 검격을 뿌리며 전방을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천마기멸격!'
속으로 크게 외치며 의지를 더하자, 떠오른 강기가 앞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가 검격을 뿌리기 무섭게 김연희는 마법을 해제했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의 장벽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그 뒤에 있던 해골 병사들을 향해 강기 폭풍이 휘몰아쳤다.
쿠과과광. 콰과광.
쏘아진 강기가 주변을 휩쓸었다.
그저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방향을 바꾸며 주변을 휩쓸었다.
마치 만천화우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날아든 강기는 다시 떠오르며 주변을 휘저었고, 인근에 강기로 된 폭풍이 불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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