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1화
<교활한 탑의 주인>
파이어 볼이 날아드는 순간, 강준우는 또 다른 힘을 감지했다.
전방에서 모이는 강한 기운을 인지했지만, 그가 그 힘을 인지하기 무섭게 예리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쐐에엑.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날아드는 검격은 그만큼 빨랐다.
지금까지 롤란드가 보인 검격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순식간에 미간으로 쏘아지는 빠른 공격에 강준우는 급히 기운을 끌어 올리며 날아오는 검격을 쳐냈다.
채앵.
'흐음.'
일섬과 무영검을 극성으로 펼쳐야만 했다.
비록, 5성 밖에 되지 않았지만,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검을 휘두르고 나서야 간신히 롤란드의 공격을 쳐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해를 쏜다는 사일검법의 오의가 펼쳐졌다.
아직 롤란드의 화후가 부족해서 강준우의 미간을 꿰뚫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힘이 부족하기보다 상대의 힘이 더 대단하다는 게 정확했다.
롤란드는 오의를 펼치고도 강준우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를 갖췄다.
쉬이익. 콰과과광.
그의 공격이 막히기 무섭게 오필리아의 마법이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처음부터 이자는 나를 잡아둘 생각이었던 건가?'
뒤늦게 이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롤란드의 공격은 그를 붙잡기 위한 미끼였다.
그 미끼로 대어를 잡으면 대박이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러 시간을 번 것이다.
주변에 떠올라 있던 마법이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쏘아졌다.
수많은 좀비를 순식간에 소멸시킨 강력한 마법이었지만, 오롯이 한 사람을 향해 쏘아졌다.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없애려는 목적이었고, 이미 롤란드의 공격을 통해서 그를 묶어둘 수 있었다.
힘겹게 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이것만으로 강준우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겪어본 상대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오필리아는 마나를 아끼지 않았다.
화르르르.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불길이 강준우를 뒤덮였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수많은 화염구가 곧장 강준우를 노리며 쏟아졌다.
콰과과과광.
한 곳으로 집중되는 강력한 마법들.
사일검법의 오의를 펼치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롤란드도 다시 힘을 더했다.
전과 같은 오의를 펼치지는 못 했지만, 거리를 좁히면서 계속해서 검기를 날렸다.
콰과과광.
경천동지할 위력이 강준우를 두드렸다.
그 엄청난 위력과 터져 나오는 굉음에 탑의 주인을 상대하던 일행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설마, 강 상이?"
"그 괴물이 당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저런 공격이라면……"
강준우라도 무사하지 못할 위력이었다.
그만큼 저들이 사력을 다해서 쏘아낸 마법은 모두가 걱정을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아무리 강준우라지만 쉽게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에 모두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왔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롤란드와 오필리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상당한 내공과 마나를 소진한 만큼,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화르르르.
조금씩 사그라드는 불꽃에 전방의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과 그 주변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나타난 광경에 그들은 말을 잇지 못 했다.
"후우. 대단한데?"
"미, 미친! 이걸 막았다고?"
"……."
모습을 드러낸 강준우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주변에 붉게 닿아오른 막이 생겨난 것을 제외하고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빠르게 휘두르던 손을 멈추자, 빨갛게 달아 오른 현철보검과 갑옷이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런 열기를 뒤로하고 곧장 바닥을 박찼다.
"롤란드 위험……"
"이런다고 달라질 것 같냐!"
롤란드는 크게 소리치며 검격을 뿌렸다.
쉬이익.
마주 오는 강준우를 향해 쏘아진 날카로운 검격이 그대로 그를 꿰뚫었다.
하지만 손끝에 남은 감각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롤란드의 눈이 부릅떠졌지만, 강준우는 오히려 황당해하며 물었다.
"뭐하는 거냐?"
"미친, 신기루가…… 크윽."
극명한 온도 차가 신기루를 만들어냈다.
당황한 롤란드의 사력을 다한 일격은 허공을 갈랐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강준우의 모습에 그의 눈에 허망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강준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은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롤란드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손에 넣은 능력을 확인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섬을 획득하였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이미 익힌 무공은 숙련도로 대체됩니다.]
[일섬이 6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역시나 일섬이었나?'
상대가 펼친 무공은 낯설었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힘은 낯설지 않았다.
순간순간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날아오는 빠른 공격은 역시나 일섬이었고, 그는 필요한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저 일섬의 성취를 올리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무영검이나 보법에 힘을 더하는데 사용했던 일섬이었지만, 롤란드와의 싸움을 통해서 어떻게 힘을 사용해야 조금 더 위협적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무공이라는 거…… 알면 알수록 어려운 놈이잖아?'
이미 익히고 있는 무공이었지만, 사용할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다.
떠오른 상념을 떨쳐낸 그는 앞에 있는 오필리아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롤란드는 오히려 그가 자랑하는 쾌검술에 쓰러졌다.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그의 모습에 오필리아는 암담함을 느꼈다.
롤란드가 쓰러졌으니, 이제 상대의 검이 향할 곳은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마나를 소진한 그녀인지라 앞으로가 더 걱정이었다.
근처에는 그녀를 도울만한 일행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화르르르.
그래도 마냥 당할 생각은 없다는 듯이 오필리아는 곧바로 마법을 만들어냈다.
예의 파이어 볼이 다시 생겨나며 그녀의 주변에 떠올랐다.
상대가 준비를 갖추기 무섭게 강준우는 바닥을 박찼다.
하지만 앞으로 튀어나가려던 그는 다시 바닥을 박차며 몸을 비틀어야만 했다.
부우우. 콰앙.
거대한 대검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대로 그를 양단하려는 듯이 수직으로 떨어진 대검은 그와 오필리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갑자기 목표를 바꾸는 놈의 행동이 확실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길지 않았다.
쐐에엑.
멈칫거린 그에게 리치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거대한 해골 대가리에 자리를 잡은 놈이 위협적인 공격을 쏘아냈다.
까만 어둠이 그를 덮치듯 날아들었고, 강준우는 뒤로 물러나며 날아오는 마법을 쳐냈다.
쉬이익.
허공을 격하며 날아든 검기가 그대로 어둠을 베어냈다.
곧장 어두운 원을 터뜨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넓은 호수에 떨어진 돌덩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전에 상급 리치가 보였던 힘이었다.
공격을 무로 돌리는 그 모습에 강준우는 다시 검격을 뿌렸다.
이번에는 전과 다른 공격이었다.
더욱 진해진 기운이 그대로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과광.
어둠과 부딪친 검강은 까만 원을 터뜨렸다.
다른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의 모습에 리치는 다시 마법을 쏟아냈다.
그가 강준우에게 집중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거대한 해골을 노렸다.
"하압!"
콰과광. 콰앙.
모두가 날린 마법이 그대로 해골을 두드렸다.
위협이 됐던 대검은 반대편에 떨어져 있었고, 리치의 마법도 강준우만을 노렸다.
강준우는 다시 바닥을 박차며 거대한 해골과의 거리를 좁혔다.
현철보검에서 뽑아낸 검강을 휘둘렀고, 그는 대검과 연결된 해골의 팔을 베어냈다.
콰앙. 콰앙.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뼈를 이룬 해골들이 잘려 나갔다.
그런 그를 노리며 리치의 마법과 오필리아의 파이어 볼이 날아들었지만, 강준우는 급히 몸을 비틀며 날아오는 마법을 피해냈다.
콰과광.
오필리아가 날린 마법이 그대로 상체만 가진 놈의 팔에 부딪쳤다.
강준우를 노린 공격이었지만, 그의 기민한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다.
콰앙. 콰앙.
위협적인 공격을 쳐내며 분주히 움직인 그가 놈의 시선을 붙잡는 사이, 남아 있던 파상적인 공격이 탑의 주인이라는 놈에게 쏟아졌다.
콰과과광.
연신 터져 나오는 폭음에 거대한 놈의 몸뚱이가 기울었다.
비산하는 뼛조각의 수가 늘어났고, 리치라는 놈의 몸에 꽂히는 공격이 더욱 많아졌다.
이제는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도 충분히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이 와중에도 나를 노린다고?'
빠르게 무너지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는 의구심을 품었다.
제 몸을 보호하는 게 먼저였지만, 놈은 무조건 강준우만을 노렸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안중에도 없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피해를 늘리면서까지 강준우를 잡으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확실히 이상해.'
처음부터 석연찮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었다.
이걸로 그 이상한 느낌을 조금 더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죽어라!"
콰앙.
거의 쓰러질 것 같은 놈의 모습에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이 강한 공격을 쏟아냈다.
막타를 노리면서 무리한 공격을 감행해자, 강력한 힘을 머금은 일격이 그대로 해골의 머리 위에 있던 리치의 몸을 터뜨렸다.
쿠구궁. 후두두두.
놈의 몸뚱이가 터져나가자, 지탱하고 있던 해골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쓰러지는 그 모습에 모두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어렸다.
하지만 정작 놈을 쓰러뜨린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무슨 일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황당해하는 그 모습에 강준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탑의 주인이라는 놈을 쓰러뜨리는 방법은 생겨난 해골들을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쿠오오오오.
그 사실을 깨닫기 무섭게 다시 주변에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임무가 주어지면서 탑의 주인이라는 놈이 나타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탑 안에 휘몰아치는 마력과 함께 해골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몇몇이 마법과 무공을 쏟아내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해골을 두드렸다.
완전히 가루로 만든다면 조금이라도 방해를 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모이는 마력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공격하지 마! 오히려 힘을 흡수한다고!"
"……."
이미 경험이 있던 김연희가 주의를 주자, 그들은 공격을 멈췄다.
휘몰아치는 마력들.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지만, 강준우의 시선은 다시 모이기 시작하는 해골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있었다.
'지팡이를 든 여자라.'
탑의 주인이라는 놈이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지팡이에서 마력이 일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서 마법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은밀하게 움직인 마력이 흘러간 곳은 탑 중앙에 있는 해골이었다.
그 마력이 움직이기 무섭게 주변에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힘의 시발점이 된 힘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리치라는 놈들…… 따로 생명을 보관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는 흐릿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리치들은 따로 생명을 보관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대했던 하급이나 상급 리치에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인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만약에 이 탑의 주인이라는 놈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생명이 되는 것을 다른 곳에 그런 것을 보관하고 있다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놈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내공이 무한할 수는 없을 테고. 결국에는 쓰러질 수밖에 없었겠지.'
새삼 이 주인이라는 놈의 생각이 고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행동을 방해했던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여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오필리아를 공격하려고 했을 때,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에 맞춰서 방해를 했던 기억을 떠올린 강준우는 확신했다.
탑의 주인을 쓰러뜨리는 것은 지금 만들어지는 놈이 아닌, 지팡이를 든 여자를 처리하는 거라고.
'교활한 자식!'
오필리아라는 여자에게서 따로 이상함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저 다른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힘을 품고 있었지만, 이상한 점을 인지한 만큼 가만히 둘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적의를 가진 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결국에는 끝장을 봐야 했기 때문에 강준우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곧장 오필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오필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만들어낸 마법을 쏘아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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