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2화
<교활한 탑의 주인>
오필리아의 주변에 떠올라 있던 화염구가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런 마법이 상대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콰앙.
쏟아지는 마법이 터져나가면서 강한 열기를 뿜어냈다.
강준우는 화염구를 베어내면서 마법을 무력화시켰지만, 오필리아는 그의 생각과 다른 형태로 마법을 운용했다.
콰과광.
그에게 날아들 것 같던 마법이 갑자기 바닥을 두드렸다.
시야를 가리듯 쏟아지는 마법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오필리아의 새로운 마법이 펼쳐졌다.
"볼케이노(Volcano)!"
의미심장한 외침과 함께 강준우가 있던 자리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갈라진 바닥에서 뜨거운 열기를 품은 돌이 솟아나며 전방을 가렸다. 동시에 솟구쳐 오른 용암이 그대로 강준우를 휘감았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키기 무섭게 공격을 펼치는 오필리아의 마법에 강준우는 내심 놀라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이 뛰어났다.
'하긴, 여기까지 살아남은 사람들 정도라면 당연한 건가?'
다이스케만 보더라도 그저 단순하게 마법만 날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제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시의적절하게 마법을 펼쳤다.
앞에 있는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실력이 성장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됐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얕잡아 볼 필요는 없었다.
강준우는 솟아오르는 용암을 피하기 위해서 위로 뛰어 올랐다.
그런 그를 향해 오필리아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공중으로 움직인 만큼 그 공격을 피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받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콰앙. 콰앙.
허공에서 터져나간 마법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문제는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 몸이었다.
이글거리는 용암을 제외하면 따로 발을 디딜만한 곳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 고민하는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조심해!"
백선화와 하야테가 힘을 합치며 그를 도왔다.
정령을 통해서 내디딜 돌기둥을 만들어내기 무섭게 하야테의 마법이 돌기둥을 잘라내며 그 잔해를 날렸다.
후두두두.
어떻게 보면 그를 공격하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강준우는 그런 하야테와 백선화의 판단에 만족하며 몸을 비틀었다.
콰과광.
날아드는 돌덩이를 받아낸 그의 몸이 밀려났다.
두 사람이 날린 힘이 그를 도왔고, 강준우는 펼쳐진 용암을 뛰어 넘으며 곧장 손을 뻗었다.
쉬이익. 콰앙.
멀리서 쏘아낸 일양지가 오필리아의 미간을 노렸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화염구를 날리며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것만으로는 일양지의 힘을 상쇄시킬 수 없었지만, 눈앞에서 만들어진 실드가 관통한 힘을 받아냈다.
'흐읍!'
강한 충격에 마나를 쏟아부은 실드가 깨질 듯이 흔들렸다.
실드가 곧 깨질 것 같은 느낌에 그녀는 다시 실드를 만들어냈지만, 그 순간 쏘아진 기운에서 강한 힘이 전해졌다.
곧 사라질 힘이라고 생각했던 기운이었다.
하지만 검처럼 변한 기운이 다시 쏘아지면 실드를 깨뜨렸고, 기검이 그녀의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채앵.
'크흡.'
오필리아는 급히 머리를 비틀며 날아오는 기운을 피해냈지만, 강준우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촤아악.
그가 손목을 비틀기 무섭게 피가 튀었다.
그대로 상체가 베인 오필리아는 무릎을 꿇었고, 예의 알림이 전해졌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마력 지팡이의 소유권이 바뀝니다.]
'마력 지팡이?'
그녀의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분명했다.
오필리아가 쓰러지자마자 소유권이 바뀐다는 소리가 전해졌지만, 그 순간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났다.
쿠구구구.
그녀의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에서 강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얼마 전까지 쓰러진 해골들을 불러 모았던 마력이었다.
강한 힘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강준우는 곧바로 지팡이를 향해 기검을 휘둘렀다. 다른 변화가 생기기 전에 상황을 정리하려고 했다.
쉬이익. 서걱.
하지만 그가 휘두른 검은 지팡이를 부술 수 없었다.
이미 죽었던 오필리아가 몸을 내던지며 지팡이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다시 살아난 건가?'
죽은 그녀가 다시 움직였다.
이미 눈은 초점을 잃었지만, 그녀와 손에 쥔 지팡이가 공명하며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흐음.'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준우는 다시 손에 쥔 기검을 휘둘렀다.
일섬을 섞은 무영검으로 그녀를 지우려는 듯이 공격을 감행했지만, 그때 뒤에서부터 강한 살의가 느껴졌다.
'누구지?'
갑작스러운 공격을 감지한 그가 몸을 비틀기 무섭게 익숙한 검이 스쳤다.
빠른 검격을 뿌린 사람은 조금 전에 그가 쓰러뜨린 롤란드였다.
이미 죽었던 그도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뿐만 아니라 탑의 주인으로 알았던 놈의 손에 죽은 자들이 다시 일어났다.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이제는 이런 변화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았다.
놀랍지도 않은 상황에 그는 곧장 검을 뿌렸다.
오필리아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부수는 게 먼저였다.
그것만 부수면 모든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터엉.
그가 내뻗은 기검이 검은 막에 막혔다.
어느새 지팡이를 손에 쥔 오필리아가 다시 마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드?'
그녀가 만들어낸 마법은 살아있을 때 사용한 마법보다 더 강력했다.
검은 기운을 줄줄 흘리며 펼치는 마법.
거기에 되살아난 롤란드의 합공에 강준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죽었던 자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강준우에게 혈수를 빼앗겼던 자는 물론이고, 거대한 해골의 대검에 쓰러진 자들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죽었던 자들이 되살아나자, 권우철과 니키타는 곧장 신성 마법을 펼치며 그들을 견제했다.
"크아아아!"
다시 되살아난 자들이 신성 마법에 괴로워하며 괴성을 질렀다.
좀비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그들은 살아 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되살아난 롤란드가 강준우를 막아내는 사이, 오필리아는 천천히 떠오르며 탑 위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강준우는 다이스케를 찾았다.
"다이스케! 저년을 막아!"
"아, 알았어. 그래비티!"
강준우의 외침에 다이스케는 곧장 마법을 펼쳤다.
예의 중력 마법이 떠오르는 오필리아를 막아 세웠지만, 그녀는 그 힘을 떨쳐내며 다시 움직였다.
"뭐야? 어떻게 그 리치보다 더 강한 마력을……"
다이스케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고, 그의 견제에 남아 있던 일행들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오필리아!"
그들 역시 그녀와 롤란드가 다시 살아난 것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쉽게 내칠 수는 없었다.
다이스케의 마법을 떨쳐낸 그녀의 몸이 점점 위로 솟구쳐 올랐고, 강준우는 앞을 가로막은 롤란드를 향해 검격을 뿌렸다.
어느새 진한 기운이 그의 검신을 빼곡히 채웠다.
그리고 그의 검격이 되살아난 롤란드의 몸을 휩쓸었다.
후두두두.
단, 일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연신 검격을 떨치자, 롤란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쓰러진 그는 다시 되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를 떨쳐낸 강준우는 떠오른 오필리아를 향해 그대로 암기를 뿌렸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위로 향하는지는 몰랐지만, 우선 그녀를 막아낼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펼치는 비도술이 그녀를 따라잡았지만, 주변에 생겨난 검은 막이 그의 공격을 튕겨냈다.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일전에 날린 검기도 막아낸 걸보면 강기를 이용해야만 했다.
문제는 거리를 벌리는 그녀의 의도였다.
이미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고민하던 강준우는 현철보검에 기운을 흘려보냈다.
점점 진해진 기운을 확인한 그는 몸을 젖히며 곧바로 다이스케를 불렀다.
"다이스케!"
"준비됐어!"
"하압!"
커다란 기합과 함께 젖히 허리를 비튼 강준우는 곧장 검을 내던졌다.
쐐에엑.
강기를 머금은 현철보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필리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비도술을 응용한 비검술이었다.
따로 관련된 무공을 익힌 것은 아니었지만, 연비도라는 비도술과 만천화우라는 암기술을 사용하면서 대강이나마 파악한 무리를 섞어낼 수 있었다.
별다른 초식을 펼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내던진 검은 오필리아를 꿰뚫듯이 쏘아졌다.
위협적인 공격에 오필리아가 다시 마법을 날렸다.
검은 불길을 잔뜩 머금은 화염구가 날아오는 검을 쳐냈다.
하지만 강기를 가득 품은 검을 떨쳐낼 수 없었다.
콰과광.
강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강준우가 날린 검은 계속해서 오필리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은 실드가 앞을 가로막았지만, 강기를 머금은 검은 그대로 실드를 뚫어냈다.
날아든 검은 그대로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꿰뚫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이번에도 자신의 몸으로 그의 검을 막아냈다.
'흐음. 부족했나?'
미처 닿지 못한 공격에 아쉬워한 그는 다시 바닥을 박차며 뛰어 올랐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다이스케가 그를 받아내며 플라이로 몸을 띄웠고, 떠오른 오필리아를 향해 그래비티를 펼쳤다.
어떻게든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오필리아를 멈춰 세울 수는 없었다.
"괜히 힘 빼지 마."
"괜찮을까? 이대로 도망갈 것 같은데."
"지켜봐야지."
"……."
확신을 하지 못하는 강준우의 모습도 오랜만이었다.
다이스케는 남은 마력을 끌어 올리며 속도를 높였지만, 강준우와 함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를 밟고 올라……"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어."
"인성하고는!"
스스럼없이 답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혀를 찼다.
강준우는 그런 투정을 뒤로하고 빠르게 올라서는 오필리아를 주시했지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놓칠 수는 없는데.'
고민하던 그는 다이스케에게 뜻을 전했다.
"준비하고 있어."
"아, 알았…… 크윽."
강준우는 주의를 주자마자 곧바로 다이스케를 밀어냈다.
강한 힘에 밀려난 다이스케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튕겨져 나갔고, 몸을 세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다이스케를 밀어낸 강준우는 간신히 닿을 것 같은 오필리아를 확인하며 손을 뻗었다.
그대로 그녀의 발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 순간 강한 마법이 날아들었다.
콰앙.
일부러 이런 상황을 기다린 게 분명했다.
오히려 더 속도를 올리며 마법을 쏘아내는 오필리아의 표정이 환해졌다.
충격을 받은 강준우의 몸이 멈췄고, 오필리아는 다시 마법을 쏘아내며 그를 밀어냈다.
콰과광.
급하기 기검을 펼치며 공격을 받아낸 강준우는 이를 악물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몸을 확인한 그는 다시 일양지를 쏘아냈다.
쉬이익. 콰직.
마지막 일격까지 피해낸 오필리아는 계속해서 몸을 띄웠다.
그리고 끝이 뚫려 있는 탑 위로 올라서며 강한 마력을 뿜어냈다.
- 일어나라!
들어 올린 지팡이에서부터 강력한 마력이 쏟아졌다.
검은 빛이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쏘아졌고, 그 부름에 답을 하듯 기괴한 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어어어어!"
탑이 울리듯 휘몰아치는 소리에 아래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준우의 마지막 공격이 실패로 끝나고, 오필리아를 잠식한 탑의 주인이라는 놈이 강한 마력을 뿜어내기까지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괴성이 터져 나오기 무섭게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미미하게 흔들리는 바닥.
뭔가가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야? 이건 또 뭐지?"
"그, 글쎄."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불안해했지만, 그런 그들의 걱정이 곧 현실로 나타났다.
"그아아아!"
탑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에서부터 커다란 괴성이 들려왔다.
마치 지옥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처럼 끔찍한 소리가 연신 탑을 울렸고, 그 모습을 확인한 사람들은 경악했다.
"조, 좀비다!"
"미친!"
열린 문을 빼곡히 채우며 달려오는 놈들은 바로 좀비였다.
그제야 탑 위로 올라선 놈이 외친 일어나라는 말의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놈은 흩어져 있던 좀비들을 불러 모았다.
따로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여전히 건재한 놈과 그들을 잡기 위해서 몰려드는 좀비들까지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믿었던 강준우의 공격도 실패로 끝난 마당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천장을 바라보던 안드레이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야? 허공답보라도 펼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죠? 허공답……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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