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6화
<강적들>
"그 활은 그대들이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물건이다.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
"……."
직설적인 그의 질문에 백선화는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녀 역시 이 활이 어떤 경위를 통해서 손에 들어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을 밝혀봤자 상황이 더 곤란해진다는 사실에 그녀는 말을 아꼈고, 다이스케는 머뭇거리는 그녀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주웠어요."
"주워?"
"예. 주웠습니다."
"……."
너무나 동떨어진 답에 엘프는 물론이고, 일행들 역시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시 그 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에 활을 겨누던 엘프들 중에 한 명이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걸 주웠다고?"
"주운 걸 주웠다고 하지 어떻게 말하라는 겁니까?"
다이스케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뻔뻔한 그의 태도에 남은 사람들은 말을 아꼈다.
그들도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남은 일행들은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한 이후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싸워봤자 좋을 건 없었다.
엘프들 역시 그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인간들을 포위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주웠다는 거지? 그 활을?"
"우리가 그런 것까지 밝혀야 하나?"
"뭐라?"
"우리가 왜 이런 추궁을 받아야하는 거지?"
싸늘한 말투에 루이지의 시선이 강준우에게로 향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눈치 없는 인간을 향해 그 역시도 차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무심한 눈빛을 마주한 그는 말을 잇지 못 했다.
'저 자는……'
실력이 있는 그도 대충이나마 상대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인간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까만 암흑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에 루이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상대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루이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다른 엘프들은 아니었다.
라르스라는 엘프는 루이지를 대신해서 적의를 드러냈다.
"죽고 싶은 거냐?"
"……."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 말에 두 무리 사이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곧 부딪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때 권우철과 루이지가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가로막았다.
"다짜고짜 이렇게 와서 우리를 겁박하는 이유가 뭡니까?"
"겁박? 우리는 두 엘프를 쓰러뜨린 자들을 찾고 있다. 그대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활을 들고 있는 상태지."
"……."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가 그대들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소린가?"
"……."
까칠한 반응이었다.
강준우의 말에 루이지는 고민했고, 또 다른 엘프는 참지 않았다.
쐐에엑.
강한 힘이 실린 화살이 강준우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저 위협으로 끝날 공격이 아니었다.
정확히 미간을 노린 화살이 쏘아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앞까지 다가온 화살에 강준우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빠르게 움직였다.
파앗.
날아든 화살이 그의 미간에 꽂혔다.
그 모습에 모두가 놀랐지만, 그 순간, 화살이 박힌 자리에 남아 있던 강준우의 모습이 흩어졌다.
"자, 잔상이다!"
"모두 조심해!"
잔상만 남기고 사라진 강준우.
이형환위였다.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으며 과감하게 움직였다.
그는 순식간에 화살을 쏜 엘프의 뒤를 잡으며 손을 뻗었고, 활을 쏜 엘프는 기겁하며 몸을 비틀었다.
촤아악.
쏘아낸 일양지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귀를 스쳤다.
길고 뾰족한 귀에서 피가 튀었지만, 강준우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날린 일양지가 곧바로 기검으로 변했다.
길게 늘어난 기검이 곧장 엘프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지자, 곧바로 피가 튀었다.
"크윽."
공격당한 엘프는 그 와중에도 몸을 비틀었지만, 온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기민한 움직임을 가진 만큼 공격을 피해내는 게 당연해 보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상대하는 자가 일부러 자신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화살을 날렸던 엘프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강준우는 중한 상처를 입은 놈의 목을 틀어쥐었다.
"커헉."
"무슨 짓이냐?"
"무슨 짓? 나를 먼저 공격한 놈은 이놈이다."
"……."
그의 말에 루이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조차도 쉽게 가늠하지 못한 힘을 가진 자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곧 죽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동료의 모습에 루이지는 경고하듯 말했다.
"그를 놓아줘라. 우리와 싸우고 싶지 않다면!"
"지금 협박하는 건가?"
"……."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크흡!"
잡힌 엘프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그의 목을 더 강하게 틀어쥔 강준우는 곧 천마흡기공을 이용해서 그의 기운을 뽑았다.
소진한 기운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차하면 그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괴로워하는 그 모습에 남아 있던 엘프들이 움찔거렸다.
이대로라면 동료를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다.
"그, 그를 놓아줘라."
"그전에…… 모두 무기를 버려라."
"무슨 말도 안 되는!"
"크윽."
"이놈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
치졸한 협박이었지만, 그들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강준우는 의도적으로 이런 모습을 내보였다.
나름 계산이 서 있었다.
일전에 두 엘프를 상대하면서 나름 돈독한 그들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전에 상대했던 자들이 독특한 건지도 몰랐지만,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 바로 엘프들인 것 같았다.
곧바로 상대를 죽이지 않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채로 붙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아직 상황이 명확해지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지도 몰랐다.
'최소한 다크 엘프가 되는 건 막아야만 하는데.'
다크 엘프로 변한다면 그조차도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이형에 관한 무리를 얻으면서 이형환위를 펼칠 수 있게 됐지만, 다시 다크 엘프를 상대한다면 변한 놈들을 잡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다크 엘프로 변할 수 있는 자들의 수가 다섯이라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손에 잡힌 한 놈을 처리한다고 해도 다섯의 다크 엘프를 상대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남은 사람들이 걱정인데.'
혼자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싸우다가 힘들면 물러나도 충분했지만, 남은 일행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고난을 함께 해왔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일행들을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그 와중에도 사로잡은 엘프의 기운을 뽑아낸 그는 머뭇거리는 엘프들을 바라보며 다시 소리를 높였다.
"무기를 버려라."
"……."
"이놈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끄아아!"
강준우는 일부러 잡은 엘프에게 고통을 가했다.
그에게서 뽑아낸 힘을 이용해서 일양지를 날렸고, 그 힘에 허벅지를 관통당한 엘프는 비명을 내질렀다.
괴로워하는 동료의 모습에 루이지는 손에 든 활을 내던졌다.
투욱.
"루, 루이지?"
"……."
아무 말 없이 무기를 버리는 그의 행동에 남아 있던 엘프들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라르스를 버릴 수는 없어."
"……."
그의 말에 다른 엘프들도 뒤늦게 무기를 내던졌다.
힘겨운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그들은 실행에 옮겼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내심 놀라워했다.
'뭐야? 생각보다 엄청…… 무르잖아?'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자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아니면 우리를 믿는다는 건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대부분이 조금만 틈을 보이면 곧바로 비수를 찔러 넣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당연히 이런 엘프들의 판단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모두는 의아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모든 무기를 내던진 루이지는 강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무기를 버렸다."
"……."
"이제 그만 그를 놓아줘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강준우도 갈피를 잡지 못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결국 이들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이자를 놓아주면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냐?"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저 활을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지?"
"…… 말했을 텐데. 우연찮게 주웠다고."
"우리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진실이 어떻든 싸울 생각은 없다."
"……."
사뭇 진지한 그의 말에 강준우는 고민했다.
이대로 사실을 밝힐지, 그냥 공격을 감행할 지를.
'싸울 생각이 없다라.'
짧은 순간 고민을 했지만, 답은 하나였다.
굳이 진실을 말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말은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 말을 실행하지 않을 것은 당연했다.
'우선 저놈들을 흔드는 게 좋으려나?'
마음을 굳힌 그는 흡수되지 않은 기운을 모으며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권우철을 향해 은밀하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 형이 나서서 사실을 밝혀.
생각지도 못한 강준우의 전음.
그의 말에 머뭇거리던 권우철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선배! 뭐하는 거야?"
"구, 굳이 싸울 필요는 없잖아. 말로……"
"그 말로 상황이 불리해진다는 걸 모르는 거야?"
"……."
권우철의 행동에 옆에 있던 김연희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순진한 그의 행동에 화가 났다.
권우철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 권우철의 행동에 김연희는 언성을 높였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엘프들의 분위기도 다시 달라졌다.
"거짓말을 했군. 주웠다고 하지 않았었나?"
"말했다시피 그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다. 죽이려고 달려든 자들에게 우리가 죽었어야 했다는 건가?"
"……."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루이지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결국에는 이들이 알브렘과 알브하를 처리한 자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렇다고 이들과 각을 세울 수는 없었다.
사력을 다해 싸운다고 하더라도 남는 게 없었다.
어차피 이들이 마을을 나온 이유는 인근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보기 위한 게 컸다.
"그렇군.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라르스를 계속 그렇게 잡아둘 건가?"
"그건 너희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우리는 그저 마을의 일부다. 가장 약한 존재지. 마을의 일원이 변을 당하면 남아 있던 전사들이 움직일 거다. 너도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이자를 놓아주지."
처음 듣는 말에 고민하던 강준우는 루이지라는 엘프에게 제안했다.
파격적인 그의 말에 남아 있던 일행들의 눈이 커다래졌지만, 그렇다고 싸우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 이대로 놓아줘도 괜찮겠어?
- 나는 괜찮지. 너희들이 문제지만.
"……."
뼈를 때리는 그의 말에 하야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강준우 정도의 실력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었다.
문제는 그를 포함한 남은 일행들이었다.
"어떡할 거지? 이대로 싸울 생각인가?"
"이대로 물러나겠다."
"루이지!"
담담한 그의 말에 함께 움직인 다른 엘프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알브렘과 알브함을 공격한 놈들이야!"
"그들이 먼저 공격을 했다고 하잖아?"
"그 말을 믿는 거야? 이미 거짓말을 한 놈들이라고!"
"그럼? 이대로 라르스를 버리자는 뜻이냐?"
"그, 그건……"
"어차피 둘은 마을을 버리고 나간 외부인이다.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자들이다. 라르스의 생명보다 그들의 목숨이 중요하지는 않아."
"하지만! 둘은 마을로 향하는 길을 지키기 위해서……"
"그만! 이미 결정은 내렸다. 따르지 않을 거냐?"
"……."
단호한 그의 말에 그는 말을 아꼈다.
꽤나 분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는 화를 삭였다.
체념하는 그의 모습에 루이지는 강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대로 물러나겠다."
"그 말. 믿을 수 있을까?"
"형제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세계수에 맹세한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나겠다."
"…… 좋아. 그 말, 믿어보지."
그들의 면모를 살펴보던 강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넣은 자를 내던졌다.
루이지는 그를 받아들였고, 남은 엘프들은 라르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때, 반발하던 엘프가 기운을 끌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지한 강준우는 곧바로 바닥을 밟으며 기운을 흘려 내보냈다.
콰과광.
강한 폭발이 주변을 뒤덮었다.
바닥에서 치솟아 오른 기운이 그들을 휩쓸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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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