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8화
<뒤늦은 깨달음>
다른 일행들은 다시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리를 잡았다.
강준우는 그들의 주변을 지키며 처리한 엘프들과의 대화를 곱씹었다.
'마을이라. 이곳에서 더 들어가면 그놈들 마을이 있다는 소린데.'
문제는 엘프들의 마을로 움직이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죽은 엘프의 말대로라면 조금 전까지 부딪쳤던 놈들은 그 마을에서도 가장 약한 놈들인 것 같았다.
전사라는 말을 꺼낸 걸 보면, 제대로 된 싸움을 하는 놈들이 따로 존재하는 게 확실했다.
당연히 지금의 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상대했던 놈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라.'
이번에 쓰러뜨린 엘프들도 제대로 붙었다면 큰 희생이 뒤따랐을 지도 몰랐다.
하물며 그들보다 더 강한 자들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강준우와 비슷한 경지에 이른 놈들이 나타날 지도 몰랐다.
다행이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은 모두 그보다 낮은 경지에 오른 자들이었다.
만약 비슷한 힘을 가진 자와 부딪친다면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함께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되도록이면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당장 얻은 임무는 숨어 있는 놈들을 대신해서 움직이고 있는 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굳이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갈 이유는 없었지만, 놈들을 피한다고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괜찮은 거야?"
"괜찮아. 기운은 다 회복했어?"
"나야 거의 지켜본 게 전부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난 권우철은 강준우에게 다가오며 그의 옆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강준우는 의아한 눈으로 권우철을 바라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그 엘프들…… 그대로 뒀으면 그냥 물러나지 않았을까?"
"……."
조금 전에 처리한 엘프들을 언급하는 권우철의 말에 강준우는 말을 아꼈다.
그 역시도 마음에 편하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그와는 많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권우철은 마음이 더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그냥, 상황을 보니까 저놈들도 피해자인 것 같아서."
"피해자?"
"우리는 아니지만…… 인간에게 배신을 당해서 이곳으로 내몰렸다고 하잖아.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것 같았어."
"……."
"물론, 우리도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곳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하는 입장이지만, 무조건적인 적대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권우철의 말에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도 이곳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생존이 더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위협을 줄이고 변수를 없애야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가던 그는 채 말을 잇지 못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뒤늦게 달라진 스스로의 모습을 인지한 것이다.
말을 아끼는 강준우의 모습.
그가 내뱉은 말을 곱씹은 권우철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쓰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너무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 여유?"
"그래. 이런 상황에서라면 누구라도 그런 반응을 보였겠지만…… 저들을 믿었다면 상황이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
"네 판단이 틀렸다는 게 아니야. 다른 결정으로도 일을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권우철의 말에 강준우의 생각이 깊어졌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의 말을 통해서 너무 많이 변한 스스로를 인지했다.
'기운을 먼저 움직인 건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었나? 아닌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가?'
아무리 이어질 공격에 대비를 한다고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의 그라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생명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에는 고블린도 제대로 죽이지 못 했는데.'
그런 감정은 무뎌진지 오래였다.
이제는 다른 종족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모습에 권우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괜한 말을 꺼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강준우의 부담을 줄어주려는 듯이 말했다.
"네 덕에 모두가 안전할 수 있었어. 따로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방법으로도 일을 풀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뿐이야."
"……."
"고맙다. 준우야."
"고맙다니?"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진즉에 죽었을 것 같거든. 내가 너무 무르잖아. 손에 넣은 게 신성력이라서 그 영향을 받은 건가?"
"……."
고맙다는 말을 건네면서 멋쩍어하던 권우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신성력이 영향을 준다?'
손에 넣은 능력이 영향을 준다는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멍한 그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권우철은 그를 일깨웠다.
"괜찮은 거야?"
"어? 어. 괜찮아."
"조금 쉬어. 이제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 그래. 알았어."
"……."
강준우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익힌 무공이 영향을 준다는 말을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다.
새삼 그 사실을 인지한 그는 관련된 내용을 떠올렸다.
'김연희 성격이 처음부터 급했었나?'
처음 마주한 김연희를 떠올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민국이라는 놈과 함께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꽤나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제는 많이 친해졌다는 생각에 제 성격이 나온 건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이 쓸데없는 고민인 지도 몰랐지만, 이상함을 느낀 그는 스스로의 무공을 떠올렸다.
'주력으로 익힌 무공이 천마신공이라면?'
마공의 정점에 선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이 무공이 영향을 끼쳤다면 확연히 달라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정이라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인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매번 사용하는 이 무공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했다.
꽤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의 귀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 왜 이래? 이전에는 안 그런 것 같더니!"
"내가 뭘?"
"그냥 구경만 하겠다는 거잖아!"
"싫다고!"
"왜 이렇게 쌀쌀한 거야? 내가 알던 상냥한 유키코가 맞는 거야?"
다이스케와 유키코의 말에 강준우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상냥한 유키코라니?"
"어? 아니, 그게……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
"예전에는 어땠는데?"
"누구보다 상냥했었어. 친절했었고. 뭐랄까? 요조숙녀였달까?"
"……."
"그냥 저 피리 좀 한 번 보자고 하는데, 싫다고 그러잖아."
지금의 유키코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 역시 험한 상황을 겪으면서 변한 것은 당연해 보였지만, 다이스케의 말을 들어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유키코가 익힌 무공이…… 소수마공이었지?'
그가 본 유키코는 요조숙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단어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어쩌면 얼음처럼 차가워진 것도 같았다.
어찌 됐든 달라졌다는 그녀의 성격에 강준우는 침음을 삼켰다.
우연찮게 떠올린 그의 가정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 하야테 성격은 어땠는데?"
"하야테? 글쎄. 저놈이랑은 그렇게 친하지가 않아서."
"나도 여기에서 처음 만난 놈이라."
함께 하고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이일 수는 없었다.
그런 강준우의 질문에 모두가 하야테를 바라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이 성격 그대로인 것 같은데? 조금 과묵해졌다고 해야 하나?"
"조금 과묵해져? 이게 조금이라고? 하루에 한 마디도 안하는 게?"
그의 설명에 김연희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야테가 직접 말을 꺼내는 상황이 많지 않았다.
따로 대꾸를 한다고 하더라도 단답형으로 말하는 게 전부였다.
"여기 와서 달라진 거야. 말이 많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
"하긴, 여기가 정상적인 곳이 아니니까."
"……."
어느새 기운을 회복한 모두는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있었다.
하지만 강준우만 멍하니 서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너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아니야. 쉬고 있어."
"곧바로 안 움직이는 거야?"
"생각 좀 정리하고."
"…… 생각? 그, 그래."
뒤늦게 확인한 사실이 그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짧은 권우철과의 대화를 통해서 중요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천마신공뿐만 아니라 다른 무공들이나 마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아무 것도 없었던 평범한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은 손에 들어온 이능이었다.
졸지에 그런 힘을 얻게 된 상황에서 영향이 없는 게 더 이상했다.
중요한 것은 천마신공을 통해서 스스로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마귀가 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단호하고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엘프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렇게 행동한 것 자체가 그저 처한 상황 때문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안에 있던 천마신공이 나를 변화시킨 건가?'
스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복잡하게 엉켰다.
그 와중에 드는 가장 큰 의문은 생각보다 그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이었다.
천마신공이 9성에 이르렀다.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유키코의 경우만 봐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키코의 소수마공이…… 8성이었던 것 같은데.'
고작 1성 차이였지만, 등급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더 높은 등급의 마공을 익히고 있었지만, 이전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그녀와는 다르게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진즉에 변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성취였지만, 비교적 멀쩡했다.
그렇다고 강준우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성격이 모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내보인 모습만 봐서는 마인이라 불렸을 무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천마신공은 다르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또 다른 능력이 영향을……'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또 다른 무공이 떠올랐다.
천마신공에게 견줄 수 있는 무공. 바로 건곤대나이였다.
하늘과 땅을 뒤집는다는 그 무공이 아무런 영향이 없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완전히 달라졌을 지도 모를 그의 성격을 건곤대나이가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잠재력을 해방해주면서 들어오는 힘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공능.
등급 외의 무공인 건곤대나이라면 어떻게든 영향을 줬을 게 분명했다.
'형상기검하고 만천화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은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건가?'
그 와중에 익힌 또 다른 무공이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다행인 지도 말랐다.
하지만 조금씩 달라진 성격을 보면 마냥 안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천마신공에 먹히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그는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이대로라면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은 싫었다.
강준우는 곧바로 상점창을 확인했다.
천마신공으로 변화를 한 만큼 다른 무공을 통해서 이런 변화를 늦추거나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마신공의 힘을 막아낼 무공이라.'
가장 처음 떠올린 수단은 마공과 반대쪽에 있는 정파의 무공들이었다.
제대로 익힐 수 없었던 무공들.
마공이라고 할 수 있는 천마신공과 부딪친다는 사실에 눈에 두지도 않았던 것들이었다.
'정신을 보호할 만한 무공을 익힐 수 있을까?'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충분했다.
엘프들을 처리하면서 얻은 포인트도 상당했고, 리치를 상대하면서 얻은 포인트는 거의 최상급 귀물을 손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모아놓은 상황이었다.
문제는 천마신공과 크게 부딪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림의 무공이었다.
'금강부동심결(金剛不動心訣)이라.'
아무래도 높은 등급에 등재되어 있는 무공이라면 그런 걱정을 덜어줄 지도 몰랐다.
마공과 상극인 불문의 무공을 염두에 뒀지만, 그것을 익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강준우의 상태는 마공이나 중립적인 무공만 익힌 상태였다.
정종 무공이라고는 하나도 익히지 않았다.
금강부동심결을 익히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 중에 일부는 소림의 무공들이었다.
그것들을 차근차근 익혀야 했지만, 그것을 익힌다고 하더라도 어떤 효과가 나올 지는 알 수 없었다.
'흐음. 어떡하지?'
조금 더 확실한 효과가 필요했다.
상극이라고 할 수 있는 무공을 익히면서도 별다른 반발이 없을 조치를 먼저 찾는 게 중요했고, 그런 그의 눈에 생소한 무공이 가득 들어왔다.
'조화신공(造化神功)?'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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