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0화
<선을 넘은 자들>
활을 버린 백선화는 자처하며 앞장섰다.
강준우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그녀는 정령을 앞세우면서 주변을 살폈다.
이런 식으로라도 일행에 도움이 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 그녀의 선택을 무시할 수 없던 강준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따로 기감을 퍼뜨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그들은 백선화의 제지에 걸음을 멈췄다.
"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아."
"……."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그 사실을 인지한 강준우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그는 앞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집중했다.
'만만치 않은 놈들인 것 같은데.'
전방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들.
먼저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강준우는 그 면모를 살피면서 침음을 삼켰다.
모두 모습을 감추고 있었지만, 흐릿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일전에 마주한 엘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흐음. 결국에는 만난 건가?'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전방에 숨어 있는 자들 중에서 한 명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일정한 공간을 막아서고 있는 자들 중에 중심에 있는 자의 힘을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런 반응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준우가 가지고 있는 힘을 확인할 수 없었는지 은밀한 기운이 몇 차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따로 그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서 상대가 힘을 흘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귀영심법이 가진 힘으로 가진 기운을 더 은밀히 숨길 수 있었다.
비슷한 경지에 이른 만큼 가진 능력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는지 상대도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피잉. 푸슉.
멈춰선 그들 앞으로 한 대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대로 바닥에 박힌 채, 부르르 떠는 화살대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시에 낯선 언어가 경고의 말을 전했다.
- 이 앞은 우리들의 땅이다. 이방인들은 되돌아가라.
"……."
직접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꽤나 위협적인 경고였다.
순순히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공격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숲의 사방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일행들의 시선은 강준우에게로 향했다.
"어떡하지?"
"부딪쳐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아."
"그래? 그럼 이대로 물러나는 거야?"
"그게 좋겠지."
"알았어."
그의 판단에 그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지만, 강준우는 그 자리에 서서 숨어 있는 자들을 바라봤다.
정확히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쪽을 향했고, 그에게 물었다.
"이 산 전체가 그쪽 땅인가?"
"……."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오히려 물러나던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쪽이 지키고 있는 구역이 어디까지지?"
- 그걸 왜 묻는 거지?
"그래야 그곳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대강이나마 그 범위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
"……."
저들의 힘이 미치는 곳을 알아내는 게 먼저였다.
되도록이면 그쪽을 피해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와 일행들의 힘을 합치면 앞에 있는 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상당한 성장을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곳을 지키는 엘프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힘에 제약이 생겼다.
천마신공보다는 다른 무공을 주력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아직 제대로 부딪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제약으로 어느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유키코까지 익숙하지 않은 음공을 펼쳐야 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전력은 줄었다고 봐야만 했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저들과 부딪치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나았다.
- 이 자리에서 오른쪽에 있는 계곡까지가 우리들의 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계곡? 그 이후로는 그쪽 땅이 아니라는 건가?"
- 우리와 상관없는 곳이다.
"좋아. 주의하도록 하지."
"……."
말을 마친 강준우는 남은 일행들과 함께 그가 말한 곳으로 움직였다.
물론, 뒤에 남은 엘프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숨어 있는 엘프들을 경계했고, 다행히 한참 떨어진 곳까지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제 괜찮은 건가?"
- 말을 아껴.
"……."
주변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꽤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조금 더 확실히 하는 게 좋았다.
'우리를 그냥 두는 것도 이상하겠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근처까지 온 자들을 가만히 두고 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꽤나 신중한 놈들인 것 같았다.
이런 자들이 일전에 있었던 일을 알아봤자 좋을 건 없었다.
먼 곳에서 움직이는 그들을 뒤로한 강준우는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마주했던 자들이 그저 제 자리를 지키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직 따라붙은 자들의 목적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면서 빠르게 그 구역을 벗어나는 게 좋았다.
"계곡을 넘어도…… 괜찮을까? 거기도 다른 놈들이 지키고 있는 구역일지도 모르잖아?"
"……."
엘프들이 지키는 곳을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곳의 상황이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이곳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남은 사람들도 강준우를 따라서 속도를 높였다.
***
계곡이 가까워지자 따라 붙었던 자들의 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 근처를 빠져나갈 때까지 지켜보는 게 그들의 목적인 것 같았다.
깊게 파인 지형을 확인한 그들은 생각보다 계곡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여길 건너는 것도 일이겠는데?"
"무슨 걱정이야? 셔틀이 있는데."
"셔틀이라니!"
"너만 고생하면 나머지가 편해지잖아. 좋은 능력을 이럴 때 써먹어야……"
"내가 미쳤냐? 그런 소리를 듣고 너를 태워주게?"
다이스케는 유키코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들은 네가 챙겨라."
"……."
두 사람은 희비가 엇갈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런 둘의 모습을 뒤로한 강준우는 거리를 가늠하더니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간격이라는 무리를 얻으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물러서는 것을 멈추더니 그대로 산길을 내달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막을 겨를도 없어 강준우는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널따란 계곡 위를 날았다.
"미친!"
"저게 가능한 거야?"
"저 인간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진짜로 넘었어!"
경공만으로 뛰어넘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키코도 흉내를 내볼까 생각을 했지만, 괜히 일을 더 크게 만들 거라는 생각에 곧바로 생각을 접었다.
강준우의 놀라운 경신술을 확인한 그들도 분주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뛰어넘은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 다이스케는 어쩔 수 없이 플라이를 펼치며 일행들을 옮겨야만 했다.
그가 남은 사람들을 옮기는 사이, 반대편에 내려선 강준우는 곧바로 주변을 살폈다.
엘프의 말대로라면 계곡 너머는 그들의 관할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일까?'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지켜보다가 다시 되돌아간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자들인 것 같았다.
새삼 일전에 쓰러뜨린 루이지라는 엘프와 무리들과의 관계를 떠올렸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 같았다.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낸 그는 조금 더 먼 곳을 살폈다.
이곳 엘프가 아닌 다른 존재들이 남아 있을 경우를 배제할 수 없었다.
'드워프나 뭐 이런 놈들이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엘프를 만난 마당에 드워프라고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적어도 그에 준하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주변을 살폈고, 그런 그의 기감에 낯선 기운을 가진 자들이 걸렸다.
'흐음. 누구지?'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가진 힘만 보자면 일전에 만난 엘프들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이 움직이는 쪽은 지금 그가 있는 방향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자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히 수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고작 둘이 전부인 것 같았다.
지금 그가 느낄 수 있는 기운은 두 명뿐이었다.
점점 더 명확해지는 기운에 가까워지는 자들의 기운을 가늠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마신공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멀리서도 그들의 존재를 정확히 파악한 것을 보면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적어도 화경이나 극마경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들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뭐, 붙어보면 되겠지."
둘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남은 일행들이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강준우는 뒤에 있는 일행들을 향해 주의를 줬다.
"누가 오고 있어. 조심해."
"여기로? 누군데?"
"모르지. 부딪칠 수도 있으니까,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아, 알았어."
계곡을 넘자마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낯선 존재들의 행동에 그들은 긴장하며 앞으로의 일을 준비했다.
먼저 계곡을 넘은 유키코는 옆에 있는 백선화를 향해 말했다.
"권 상을 먼저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그건 그렇지만……"
"여긴 걱정하지 마. 그동안 내가 맡지 뭐."
"괜찮겠어?"
"다이스케한테 곧바로 권 상을 데리고 오라고 하면 되잖아."
"그래. 그게 좋겠다."
당장이야 강준우가 앞에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유키코는 곧바로 다이스케에게 전음을 보냈고, 백선화는 조심스럽게 정령을 불러냈다.
따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적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녀가 정령을 불러내기 무섭게 강준우가 말했던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역시, 잘못 본 게 아니었네."
"잘못 볼 리가 없지!"
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는 자들을 그들과 같은 인간이었다.
두 명의 중년인들로 그들은 강준우와 함께 서 있는 유키코와 백선화의 모습을 확인하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겠는데?"
"우선 저놈을 먼저 쓰러뜨려야겠지만 말이야."
"크크큭.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자신만만해하는 그들은 그 말을 끝으로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과감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무모한 모습에 강준우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그런 둘을 동정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겠는데?"
"그러게."
적들의 등장을 전해들은 다이스케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나타난 놈들이 강준우를 향해 달려든 것만 봐서는 어렵지 않게 상황이 정리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압!"
커다란 기합과 함께 번뜩이는 섬광들.
하지만 곧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달려들던 두 남자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다이스케는 옮기던 하야테를 마저 내려두고 곧바로 반대편을 향해 움직였다.
나타난 놈들이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면서 걱정을 덜 수 있었지만, 저들이 전부라는 보장은 없었다.
우선 유키코의 말처럼 권우철을 옮기고 상황을 주시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다이스케가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강준우는 두 사람을 떨쳐내며 기검을 손에 쥐었다.
일양지를 쏘아내며 형상기검을 만든 그는 변한 형태를 확인했다.
기로 만들어진 창.
지금까지 뽑아낸 기검의 형태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손에 쥔 것은 최대한 창의 형태를 구연하려고 노력한 형태였다.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네.'
차라리 혈영창법을 버리고 다른 방식을 취하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그래도 앞에 있는 자들을 상대로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저 놈. 요상한 힘을 쓰는데?"
"얕볼만한 놈은 아니야. 긴장해!"
한 번 부딪치면서 크게 밀려났지만,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런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차이를 확인했을 게 분명한데. 다른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저들이라고 목숨이 여러 개일 리가 없었다.
상대와의 격차를 확인했다면 진즉에 물러나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이들은 끝까지 자리를 고수했다.
분명히 이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 무슨 일을 저지르기 전에 상대를 처리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곧바로 바닥을 박찬 강준우는 손에 쥔 창을 내던졌다.
갑자기 무기를 던지는 그의 모습에 기겁한 자들은 곧바로 흩어지며 공격을 피했다.
콰과광.
바닥과 부딪치며 터져 나가는 기창이 커다란 굉음을 흘렸다.
그리고 서로 떨어진 자를 확인한 강준우는 개중에 한 명을 노리며 그대로 검격을 뿌렸다.
'크흡!'
티잉. 서걱.
섬전과도 같은 일격이었다.
엄청난 쾌검술에 겨우 반응하며 일격을 막아냈지만, 강준우는 튕겨져 나온 검을 다잡으며 다시 일격을 뿌렸다.
반응하지도 못할 공격에 달려든 자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동시에 익숙한 알림이 그의 죽음을 알려왔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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