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은 자들 (3)
강력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그게 강기라는 사실을 확인한 노인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이미 그가 날린 공격을 쳐낸 것 역시 같은 강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개입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쯧. 그 두 놈은 벌써 죽은 건가?'
"버러지 같은 놈들. 밥값도 못 하고!"
그래도 나름 시간이라도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데리고 있는 놈들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놈들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른 시간에 무너졌다.
그런 둘에 비하면 이들은 훨씬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수가 많았다지만. 쯧, 어쩔 수 없나?'
결국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자신 못지 않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강준우를 확인한 노인은 날아오는 검기를 향해 다시 주먹을 뿌렸다.
쐐에엑. 콰과광.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자 커다란 굉음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압!"
그는 다시 한 번 권강을 날리며 달려드는 강준우를 막아냈다.
전방을 가득 채우며 날아드는 강력한 기운들.
문제는 그런 공격을 피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허공에 떠 있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격을 받아내는 것뿐이었다.
만약 공격을 피한다면 뒤에 있는 두 사람이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건가?'
짧은 순간에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공격을 날린 게 분명했다.
작정을 하고 날린 권강에 강준우 역시 공격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콰과광.
다시 날린 검강이 마주오는 강기를 쳐냈다.
요란한 굉음이 주변을 뒤흔들었지만, 문제는 그가 허공에서 공격을 받아냈다는 점이었다.
그 충격에 몸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널따란 계곡을 뛰어넘은 그에게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곤란했다.
"크큭.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겠어."
아래로 떨어지는 강준우의 모습에 노인은 곧장 몸을 돌렸다.
이 상태로 부딪쳐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남아 있는 놈을 처리하고 물러날 생각이었다.
잠깐이지만 그의 움직임을 막아낸 권우철과 지금 나타난 놈이 힘을 합친다면 오히려 그가 낭패를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을 정리한 노인은 뒤에 있는 권우철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곧바로 일양지를 날렸다.
형상기검을 이용해서 몸을 추스를 생각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어쩔 수 없나? 다이스케!"
그는 몸을 비틀며 뒤에 있는 다이스케를 불렀다.
최소한 매직 미사일의 도움을 받아서 계곡을 건널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이스케의 상황도 좋지만은 않았다.
폭발에 휘말린 그는 김연희와 함께 멀리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빠르게 추락하는 몸에 강준우는 어쩔 수 없이 이후의 상황에 대비했다.
지금은 바닥으로 내려서서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백선화가 정령을 움직였다.
"물을 밟아!"
백선화의 외침과 함께 아래에서 강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물의 정령을 움직이면서 계곡의 물을 움직인 것이다.
분수처럼 솟구쳐 오른 강한 물줄기를 확인한 강준우는 그 끝을 밟으며 다시 몸을 날렸다.
"쯧. 이래서야 한 놈도 제대로 못 잡겠는데?"
다시 솟구쳐 오른 강준우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 혀를 찾았다.
그의 앞에는 방패를 앞세우며 신성력을 뿜어내는 권우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노인은 곧장 권우철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의 주먹이 권우철의 방패를 때렸다.
콰앙.
진심을 담은 일격에 권우철은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아무리 방패로 공격을 막아냈다고 하지만, 파고드는 충격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에 노인은 마저 강기를 두른 주먹을 내밀었다.
이대로 권우철을 죽여서 작은 이득이라도 취할 생각이었지만, 그의 등 뒤로 강한 기운이 날아들었다.
"쯧. 운이 좋은 놈이구나."
노인은 그를 끝내는 대신 날아오는 공격을 쳐냈다.
콰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노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끈 떨어진 연처럼 멀어지는 그의 모습.
노인은 도망을 택했다. 오히려 강준우가 날린 공격을 발판삼아 뒤로 물러난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욕심을 버리고 빠르게 물러나는 노인의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 괜찮아?
"나는 괜찮아."
-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
강준우는 곧장 노인의 뒤를 쫓았다.
'비슷한 경지에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적이라.'
그런 적을 놓친다면 나중이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노인이 가진 힘은 그가 찾고 있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힘과 비슷했다.
'대리자라는 놈들 중에 한 명인 건가?'
임무를 통해서 처리해야 할 대상 중에 한 명이 분명했다.
극마경에 이른 고수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임무를 완료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쓰러뜨릴 필요가 있었다.
빠르게 뒤를 쫓아오는 강준우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 혀를 찼다.
'쯧. 재수가 없으려니.'
괜히 아까운 놈들만 버리고, 오히려 상대의 힘만 키워준 것 같았다.
계곡 위로 떠오른 자가 마법사라는 사실에 너무 급하게 움직인 게 파탄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나름 허를 찌르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놈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둘을 통해서 그의 시선을 붙잡았다.
계곡이라는 큰 장애물이 있는 만큼 뒤에 남은 놈들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작은 성과도 얻을 수 없었다.
"어려 보이던 놈이던데. 강기까지 쓸 정도라니!"
작지 않은 반발력을 떠올린 노인은 씁쓸해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이곳을 빨리 벗어나는 게 중요했다. 여기에서 다시 부딪친다면 상황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방패를 든 놈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놈들의 시간을 번 것 같지만, 무언가가 날아들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쐐에엑. 푸슉.
그의 걸음을 붙잡으면서 바닥에 꽂힌 것은 화살이었다.
부르르 떨며 강한 위력을 내보인 화살과 함께 엄중한 경고가 뒤를 이었다.
- 이곳은 우리들의 땅…
"누울 곳을 보고 다리를 뻗어라. 이 토끼 같은 자식!"
쉬이익. 콰과광.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엘프의 모습에 노인은 곧장 공격을 날렸다.
그가 날린 공격은 그대로 숨어 있는 엘프와 그 주변을 초토화시켰고, 손도 쓰지 못한 엘프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 앞을 가로막히자, 노인은 분노를 참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꽤나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 상대가 그를 따라잡았다.
"동료는 버리고 온 것이냐?"
"그쪽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쯧. 매정한 놈이로구나. 다친 동료를 그냥 두고…"
"미친 영감탱이라고 그러더군. 그쪽 동료가."
"이놈!"
강준우의 도발에 노인은 참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달려들며 주먹을 뻗었고, 예의 권강이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에 있는 놈을 마저 쓰러뜨리고 물러나는 게 좋았다.
아직까지 놈은 혼자였기 때문에 빠르게 처리한다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기운을 가득 실은 권강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방을 빼곡히 채운 일격에 강준우도 검강을 뽑아내며 날아드는 공격을 쳐냈다.
콰과과광.
빠르게 내지른 검격에 날아드는 강기가 터져 나갔다.
하지만 이미 그 공격을 막힐 거라고 예상한 노인은 곧바로 강준우와의 거리를 좁혔다.
"죽… 흐읍!"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신이 없을 때, 몰아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날린 권강이 다시 그를 향해 되돌아왔다.
배진격으로 노인의 공격을 돌린 강준우는 멈칫거리는 모습을 확인하며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허리를 비틀면서 이어질 공격을 준비했다.
쿠웅.
상대가 상대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천마신공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천마군림보로 노인의 움직임을 묶은 그는 기운을 끌어올리며 강력한 공격을 뿌렸다.
전방에 떠오른 수많은 강기들.
바로 천마기멸격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힘에 노인도 사력을 다했다.
그는 양손에 서로 다른 기운을 끌어올리면서 만들어진 강기를 향해 공격을 뿌렸다.
쐐에엑. 콰과과과광.
두 기운이 부딪치면서 산이 흔들렸다.
경천동지할 위력에 땅거죽이 뒤집히고,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준우의 공격이 상대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강기가 사방에서 노인을 옥죄었다.
아무리 같은 강기를 펼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초식 자체에서 큰 차이가 났다.
콰과과광.
결국 그의 강기는 노인이 날린 상이한 기운을 뚫고, 그의 몸에 부딪쳤다.
강한 충격이 노인을 뒤흔들었고, 커다란 먼지가 피어올랐다.
'후우. 후우.'
작정하고 뿌린 천마기멸격에 강준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광경에 공격을 날린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걸 막았어?'
주변은 초토화 됐지만, 노인이 있는 곳만 멀쩡했다.
노인의 주변에 어린 강기로 된 막을 확인한 강준우는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호신강기?'
"끄윽. 생각보다 엄청난 놈이잖아?"
"…."
"쯧. 10년만 젊었어도. 쿨럭!"
혀를 찬 노인은 붉은 피를 게워냈다.
아무리 호신강기를 펼쳤다지만, 천마기멸격을 무사히 막아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 강기의 폭풍 속에서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다.
강준우는 놀라워했고, 충격을 받은 듯한 그의 모습에 노인은 남은 힘을 쥐어짰다.
쐐에엑.
양 주먹에서 일어난 서로 다른 기운이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상극의 기운이 강한 위력을 내보이며 그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쳐냈다.
콰앙.
'허초?'
당연히 사력을 다한 일초를 날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이 날린 기운은 고작 권기일 뿐이었다.
터져 나가는 권기를 뒤로한 노인이 강준우에게 달라붙었다.
강준우는 그런 노인을 떨쳐내기 위해서 검격을 뿌렸고, 순식간에 노인의 팔이 잘려나갔다.
하지만 노인은 남은 손으로 그를 붙잡았다.
"크큭. 나 같은 노인이 무서운 이유가 뭔지 아냐?"
"…."
"곧 죽을 놈이라 무서운 게 없다는 거지."
노인은 게워낸 핏물에 붉게 변한 이를 드러내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붙잡은 강준우에게 남은 기운을 몰아넣었다.
'내력 싸움을 하자는 건가?'
이미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쳤다.
이대로는 가망이 없다는 사실에 노인도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나름 적절한 판단이었다.
아무래도 가진 힘은 본인이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놈들과 계약을 한 만큼… 내공에서는 압도할 수 있을 테지.'
팔이 잘린 건 아쉬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미 내공을 쏟아낸 상황이었다. 상대 역시 호응한 만큼 그를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뒤따라올지도 모르는 놈의 동료들이 개입을 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앞에 있는 놈을 죽일 생각이 없다면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나름 최적의 상황을 만들었지만, 곧 노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크윽. 이놈은 뭐지?'
계속해서 내공을 쏟아내며 상대를 압박했다.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놈들과 계약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내공에 버금가는 힘을 손에 넣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상대를 압도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내력 대결을 펼치는 놈의 표정이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뭐, 뭔가 잘못 됐다!'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제 와서 상대를 떨쳐낼 수도 없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오히려 그가 큰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택한 방법이었다.
한쪽 팔까지 버리면서 상황을 만든 만큼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 상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비장한 노인의 각오와 다르게 강준우는 오히려 그의 힘으로 부족한 내공을 채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천마흡기공을 펼치면서 기운을 흡수해야 했지만, 마냥 당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파츠츠츠츠.
연신 내력을 뿜어내던 노인은 별다른 피해 없이 그 기운을 흡수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뒤늦게 그가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놈은 지금… 내 힘을 흡수하고 있는 건가?'
신의 한 수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결정이 오히려 상대를 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노인은 좌절했다. 하지만 이대로 남 좋은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노인은 남은 기운을 끌어 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내가 혼자만 죽을 것 같더냐?"
"…."
독기가 가득한 노인의 말투에 강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흡수하지 못한 기운을 노인에게 되돌렸다.
쿠웅. 쿠웅.
"커헉!"
내부에서 부딪치는 강한 충격에 노인은 피를 토해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기운을 뒤흔들며 자폭을 택했지만, 그보다 강준우의 동작이 더 빨랐다.
서걱.
그는 노인이 가진 기운을 흔들기 무섭게 그를 밀어내며 검격을 뿌렸다.
섬광과 함께 노인의 몸이 쓰러졌고, 익숙한 알림이 뒤를 이었다.
[음양신공을 획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