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은 자들 (5)
강준우가 적의를 드러내자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베가르드는 그런 강준우의 모습에 침음을 삼켰다.
'저 정도의 실력자와 부딪친다라.'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를 처리하는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희생이 커진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이 공격받고 있는 지금…'
이런 상황에 부딪쳐봐야 좋을 건 없었다.
아직 강준우의 의도가 확실하게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그는 흥분한 동료들과 강준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 기다려라!"
"…."
"캐롤라인? 마을이 공격당했다면서 너희들은 왜 여기 있는 거지?"
"곳곳에서 놈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장로님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우리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콰과광.
상황을 알리려던 그녀는 옆에서 터져 나오는 커다란 굉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강한 폭발과 함께 뒤에 있던 엘프들이 튕겨져 나갔다.
그 사이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샌 작은 체구의 노인은 모여 있는 엘프를 확인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놈들이 남아 있잖아?"
흔히 볼 수 있는 인상의 노인이었지만, 그가 뿜어낸 힘은 경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공격에 휩쓸린 엘프들은 그대로 튕겨져 나간 상태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대로 절명한 동료들의 모습에 분개한 엘프들은 분노하며 화살을 날렸다.
"이, 이놈!"
강한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그대로 노인의 몸을 꿰일 것처럼 수많은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노인은 그 공격에 닿기도 전에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해냈다.
파바밧.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자였다.
범상치 않은 움직임에 베가르드는 그의 등장을 경계했고, 강준우도 비슷한 수준을 가진 고수의 등장에 그를 주시했다.
'점점 저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 자체가 치열한 싸움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엘프들과 마주한 이곳 자체가 난이도가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만큼 마지막에 가까워졌다는 뜻이겠지?'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떠올린 강준우는 나타난 노인을 주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엘프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느낀 노인은 곧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그는 혀를 차며 뇌까렸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들을 그냥 살려둘 걸 그랬나? 꽤나 귀찮아지겠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은 그는 무리를 훑었다.
그리고 상당한 기운을 흘리고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가 아니라 인간이잖아? 그나저나 저놈은 뭐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따로 움직인 놈들 중에서 저렇게 젊은 놈은 없었다.
의도적으로 드러낸 힘만 봐서는 무리를 이끄는 자들 중에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만큼 강준우는 강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노인은 그런 강준우의 정체를 의아해했지만, 곧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사람을 확인하며 침음을 삼켰다.
"흐음. 저놈이… 죽은 건가?"
팔이 잘린 채 쓰러져 있는 익숙한 얼굴에 나타난 노인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깔끔하게 베인 팔만 봐서는 검에 당한 게 분명했다.
이정도 실력자를 죽일 정도라면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 노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준우와 베가르드에게 향했다.
여기에서 그만한 힘을 가진 자는 둘뿐이었고, 공교롭게 두 사람이 가진 무기도 모두 검이었다.
'이곳에 모인 엘프들과 대치하는 젊은 놈이라.'
고민하는 노인의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도 굳어졌다.
조금 전에 뇌까린 그의 말에 이자 역시 조금 전에 쓰러진 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노인도 대리자라는 건가?'
상대의 정체를 대강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지만, 그 순간 노인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짧은 순간 상황을 파악한 노인은 곧바로 강준우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아는 체를 했다.
"먼저 와 있었구나! 내가 조금 늦었지?"
"…."
뜬금없는 말에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노인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곧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가 인사를 건네기 무섭게 적의를 드러냈던 여자 엘프가 곧바로 화살을 날리며 소리쳤다.
"역시! 네놈도 한패였구나!"
쐐에엑.
베가르드가 말릴 사이도 없었다.
캐롤라인은 함께 움직인 엘프들과 함께 강준우를 공격했고, 베가르드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멈춰라! 이건 저자의 농간이다!"
대동한 엘프들까지 동원하는 그녀의 모습에 베가르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캐롤라인은 물론이고 남은 엘프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엘프들이 그랬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거나 순진했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단순했다.
대부분의 엘프들은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만큼 가진 감정에 솔직했고, 순간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
그렇지 않은 엘프들도 존재했지만, 대부분은 곧바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미 강준우에 관한 적의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상대의 의도에 휘말리며 그를 공격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베가르드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괜한 사람을 적으로 돌리기 전에 막아낼 생각이었지만, 그가 움직이는 순간, 강력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콰앙.
나타난 노인은 그런 베가르드를 가로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을 망치게 둘 수는 없지. 네놈 상대는 나다!"
"… 모두 물러나라!"
"베, 베가르드?"
"어서 물러나! 그리고 캐롤라인에게 전해라. 싸움을 멈추고 곧장 마을로 향하라고!"
"아, 알았어요."
그는 일부러 주변의 엘프들을 떼어놨다.
상대의 힘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그에 관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다른 엘프들이 함께 한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오히려 짐이 될 지도 몰랐다.
베가르드의 기민한 대처에 노인은 혀를 차며 검을 뻗었다.
길게 늘어난 검강이 그대로 물러나는 엘프들을 노렸다.
콰과광.
베가르드는 그 공격을 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네 상대는 나다!"
"흥! 좋다. 어디 덤벼 봐라!"
쉬이익. 채앵.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근접한 둘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상대의 목을 베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고, 커다란 굉음이 뒤를 이었다.
콰과과광.
비슷한 실력을 가진 둘이 부딪치자 주변이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강력한 폭발에 베가르드의 의도를 깨달은 엘프들은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가 지시한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서 곧바로 캐롤라인과 다른 엘프들을 향해 움직였다.
"계속 공격해!"
피잉. 피잉.
캐롤라인의 지시에 맞춰 함께 한 엘프들이 화살을 날려댔다.
되도록이면 공격을 피하려고 했던 강준우였지만, 이제 와서 자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죽은 노인을 알고 있는 놈이라. 적이 확실한 건 분명한데.'
문제는 앞에 있는 엘프들이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음을 먹은 그는 곧바로 엘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날아드는 화살을 마주한 그는 곧장 음양신공을 펼쳤다.
일전에 쓰러뜨린 노인을 통해서 얻은 그 무공이었다.
왼 팔과 오른 팔에 상이한 기운이 만들어지자, 낯선 힘을 확인한 강준우는 그대로 팔을 떨쳐냈다.
쐐에엑. 콰과광.
시험 삼아서 무공을 펼쳤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날아오던 화살이 그 기운에 휩쓸리며 튕겨져 나갔다.
'왼쪽은 소수, 오른쪽은 혈수인가?'
그저 음기과 양기를 머금은 장력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에 어린 기운은 그가 생각했던 기운보다 더 강한 느낌이었다.
마치 무당의 양의심공을 펼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음양신공을 운용하면서 음기와 양기를 대표하는 기운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음과 양의 힘이 소수와 혈수라는 사실은 경천동지할 위력의 마공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콰과광.
다시 내지른 장력이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냈다.
오롯이 그를 향해 날아드는 엘프들의 화살 역시 강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정령의 힘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눈을 어지럽혔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미 한 차례 상대해 본 적이 있는 공격이라 낯설지가 않았다.
음양신공으로 공격을 떨쳐낸 그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공격을 감행하는 엘프를 향해 움직였다.
"모두 조심해! 놈이 가까이…"
"캐롤라인!"
"… 무슨 일이지?"
"지금 바로 뒤로 물러나라는 베가르드의 명이다."
"지금 저 모습이 안 보이는 건 아니지?"
"…."
"이대로 물러나면 희생만 커진다!"
그녀의 말에 베가르드의 명을 전한 엘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먼저 공격을 감행한 쪽은 그들이었지만, 강준우는 어느새 그들에게 가까워졌다.
근접한 그의 모습에 엘프들은 뒤로 물러나며 화살을 날렸다.
쉬이익.
미간을 노리며 날아드는 화살.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화살을 잡아냈다. 그리고 그대로 배진격을 이용해서 공격을 되돌렸다.
다시 되돌아오는 화살에 놀란 엘프가 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예의 지력이 날아들며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마음 같아서는 앞에 있는 엘프들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목표로 할 다른 상대가 나타난 만큼 생각을 달리했다.
"크윽!"
"떨어져라!"
일양지를 펼친 강준우의 공격에 엘프의 몸이 휘청거렸다.
손에 쥔 활을 놓친 엘프의 모습에 다른 엘프들이 분노하며 다시 화살을 날려댔다.
강한 힘을 머금은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대로 고슴도치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지만, 곧바로 형상기검을 펼친 강준우는 손에 쥔 기검을 휘두르며 쏟아지는 화살들을 쳐냈다.
콰과과광.
강한 힘이 실린 화살이 요란한 굉음을 흘리며 터져 나갔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받아낸 그는 다시 화살을 되돌리며 엘프들을 노렸다.
오히려 그들이 날린 화살이 그들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에 엘프들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으며 다시 일양지를 쏟아내면서 그들을 무력화 시켰다.
되도록이면 천마신공을 자제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상황을 우려하며 일부러 힘을 줄이고 있었지만, 천마신공이 아닌 다른 무공들만으로도 앞에 있는 자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크윽."
"아아악!"
다시 되돌아간 화살과 쏟아지는 지력에 엘프들의 몸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공격을 허용한 그들 중에 죽은 놈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만 강한 힘을 실으면 그들 역시 무사할 수 없었지만, 강준우는 일부러 그들을 봐주고 있었다.
"뭐, 뭐지?"
"베가르드의 말처럼 우선 물러나라."
"하지만 저 인간은…"
"네 판단이 잘못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흥! 그럴 리 없어! 이놈 무슨 꿍꿍이냐?"
생각과 다른 강준우의 움직임에 캐롤라인은 그를 향해 활을 겨눴다.
순식간에 다섯 개의 화살을 시위에 건 그녀는 가증스러운 강준우를 노리며 공격을 감행했다.
가진 힘을 모두 쏟아 부었고, 강력한 공격이 강준우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쐐에엑.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들던 화살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정령의 도움을 받은 그녀는 그대로 강준우를 죽이려는 듯이 강한 공격을 날렸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쩔 수 없나? 저놈들도 이해를 해 주겠지.'
되도록이면 엘프들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대전사라고 불리는 놈의 수가 한둘이 아닐 것은 분명했고, 거기에 장로라는 놈들까지 합해지면 꽤나 힘든 싸움이 이어질 것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임무를 완수하려면 이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아군으로 돌리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바꿀 생각이었다.
적어도 베가르드라는 놈과는 대화가 통할 것 같아서 일부러 엘프들을 죽이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엘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짧은 순간 고민하던 그는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동시에 그의 몸에 다섯 대의 화살이 꽂혔다.
파바밧.
그대로 몸을 꿰뚫은 공격에 캐롤라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곧 사라지는 그의 몸뚱이에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 잔상?"
"그래. 이년아."
"너, 넌… 흐읍!"
-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랬다고 했다. 깜도 안 되는 게 나대면 죽어야지!
"끄으읍!"
그녀의 목을 틀어 쥔 강준우는 기운을 갈취하면서 그대로 엘프들 사이를 내달렸다.
그의 손에 쥔 캐롤라인의 모습에 누구 하나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고, 기운을 흡수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목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우두둑.
[엘프 캐롤라이나를 처치했습니다. 7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