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 (1)
거림낌 없이 캐롤라인을 처리한 그는 경악하는 엘프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베가르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캐롤라인을 방패로 사용하면서 그와의 거리를 좁힌 이후였다.
거기에 베가르드의 지시로 그와 노인 주변에 있던 엘프들이 다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텅 비어버린 곳에서 강준우를 막아설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주변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전부였다.
"멈춰라!"
"저놈을 막아!"
티디딩.
날아오는 화살에 현철보검을 꺼낸 그는 모든 화살을 받아냈다.
건곤대나이의 공능과 착을 이용하자, 강한 힘을 머금은 화살이 오히려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들은 강준우를 향해 날린 화살들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뒤늦게 화살을 날리는 것을 멈췄지만, 그렇다고 베가르드와 고수의 싸움에 끼어들 수도 없었다.
이제 와서 끼어든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에게 근접한 강준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수와의 싸움에 피해만 입을 게 분명했다.
강준우의 손에 죽은 캐롤라인.
다른 엘프들은 그저 어깨를 꿰뚫는 것에 그쳤지만, 그녀만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노인과 싸우던 베가르드는 그런 상황을 모두 확인했다.
그런 강준우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의를 드러내고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를 살려두는 게 말이 되지 않았지만, 남은 엘프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왜지?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었을 텐데?'
캐롤라인이 죽었다는 분노보다 다른 엘프들을 죽이지 않고, 무력화 시킨 이유가 더 의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 허리를 숙여!
"…."
갑자기 파고든 전음.
그 소리의 주인공이 뒤에서 달려드는 강준우라는 사실을 확인한 베가르드는 순간 고민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캐롤라인을 죽이고 다른 엘프들에게 자비를 보인 인간이었다.
그 말을 듣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찰나의 순간, 고심하던 그는 강준우의 말에 따르며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그런 베가르드의 허리 위로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쉬이익.
강준우의 손에 들어갔던 엘프들의 화살이 앞에 있는 노인을 향해 쏘아졌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노인은 검을 휘두르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콰과광.
기습적인 공격에 놀란 노인의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공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틈을 노린 베가르드는 그대로 검으로 바닥을 쓸어내며 노인의 발을 노렸다.
"크흡. 이놈들이?"
갑작스러운 협공에 노인은 깜짝 놀라며 검을 내려찍었다.
채앵.
베가르드의 검격을 막아낸 그는 오히려 기운을 흘리며 엘프를 공격했다.
검을 타고 바닥으로 스며든 기운이 주변을 초토화시키며 베가르드를 향해 쏘아졌다.
콰과과광.
땅거죽이 터져 나가는 강한 위력이었다.
그대로 베가르드를 터뜨리기 위해서 강한 기운이 쏘아졌지만, 노인의 공격은 베가르드 앞에서 막혔다.
콰앙.
강한 폭발과 함께 흙이 튀어 올랐다.
뒤에 있던 강준우가 천마군림보를 펼치며 그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강한 공격을 날린 노인은 거친 호흡을 골랐지만, 앞을 가로막은 흙무더기 사이로 날카로운 기운이 날아들었다.
"크흡!"
터엉.
미간을 노리며 날아드는 공격은 일양지였다.
이런 기습에 당할 노인은 아니었지만, 그가 공격을 받아내기 무섭게 강한 검격이 가슴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콰앙.
곧바로 검을 회수하며 공격을 받아냈지만,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다.
나름 자신이 있던 노인이었다.
지금 엘프 마을을 공격하는 상황 모두가 계획된 일이었다.
힘을 얻은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상당한 포인트를 주는 엘프를 처리하면서 힘을 키울 생각이었고, 계약을 맺은 그들은 뜻을 모아서 한꺼번에 움직였다.
하지만 노인은 달리 생각했다.
조금 늦게 움직이면서 힘을 아낄 계획이었다.
따로 함께 움직인 놈들을 처리하면서 그들의 능력과 포인트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가 그리던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엘프들을 몰아붙이고 있어야 할 놈은 이미 죽어서 널브러져 있었고, 엘프와 치고받으면서 싸워야 할 놈은 오히려 엘프를 돕고 있었다.
'흐음. 뭐가 잘못 된 거지?'
어긋난 상황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채앵.
쳐낸 지력이 어느새 검으로 변한 채, 그를 짓눌렀다.
노인은 곧바로 검강을 뽑아내며 그 기검을 베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 역시 비슷한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이 없는 놈이냐? 앞에 있는 엘프를 공격해야…"
콰앙.
자신을 압박하는 강준우의 행동에 노인은 크게 소리쳤지만, 베가르드는 그런 노인의 입을 막기 위해서 강한 공격을 떨쳐냈다.
'여기에서 저자를 적으로 돌린다면… 모두가 죽는다.'
강준우가 다른 마음을 품으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 그들을 돕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의 도움을 받아서 앞에 있는 늙은 인간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그런 베가르드의 귓속으로 예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 저놈은 내가 처리한다.
"…."
- 동의 한다면 물러나는 노인을 압박해. 네가 가진 강력한 기술로!
말을 마친 강준우는 손에 쥔 기검을 늘어뜨렸다.
강기로 검이 길게 늘어나며 창으로 변했고, 그는 곧장 창을 내지르며 노인을 공격했다.
티디디딩. 콰과광.
빠르게 늘어나는 창두에 노인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혈영창법으로 압박을 가하자, 노인도 힘을 아낄 수 없었다.
"이놈들! 하압!"
그 역시 제대로 된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광분한 그는 제대로 된 검초를 뿌리며 전방을 가득 채운 창영을 잘라냈다.
한번 내지른 검이 분열되며 그의 공격을 모두 베어냈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종남파를 대표하는 검법이었다.
서른여섯 번의 변화를 거친 그의 검격에 강준우는 물론이고, 베가르드도 놀라는 눈치였다.
제대로 된 힘을 내보인 노인은 강준우의 창격을 모두 베어내는 것도 모자라서 그를 공격했다.
천하삼십육검을 막아내기에는 그가 익힌 혈영창법의 성취가 너무 부족했다.
날아드는 검격에 강준우는 곧장 뒤로 물러나며 다시 기창을 휘둘렀다.
콰과광.
둘의 무기가 부딪치면서 주변이 흔들렸지만, 노인의 상대는 강준우 혼자가 아니었다.
"하아!"
베가르드도 기합을 터뜨리며 검격을 뿌렸다.
따로 특정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경지에 이른 그의 검도 수많은 검영을 만들어냈다.
노인이 휘두른 천하삼십육검에 비견될 정도로 수많은 검영이 상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거 참… 미치겠군.'
한 놈을 막아내면 또 다른 놈이 공격을 이어갔다.
작은 틈도 놓치지 않는 이들의 협공에 노인은 다시 검격을 뿌리며 날아오는 엘프의 검을 막아냈다.
콰과광. 콰과광.
연신 부딪치는 검을 통해서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노인과 베가르드 모두 그 충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만큼 서로가 비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콰앙.
크게 일격을 나눈 둘이 서로 밀려났다.
남은 충격을 떨쳐내면서 호흡을 고를 생각이었지만, 노인에게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쐐에엑.
"이 치졸한 놈!"
콰앙.
그대로 기창을 내던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노인은 분개하며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절묘하게 날아드는 창을 쳐내야했지만, 강한 충격과 함께 다시 베가르드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 그 자리에서 계속 강기를 날려라. 마무리는 내가 지을 테니까.
"하압!"
베가르드는 강준우의 말에 따르며 계속해서 검강을 날려댔다.
이미 그의 공격을 받아낸 노인은 끊임없이 날아드는 강기를 모두 쳐내야만 했다.
미친 듯이 휘두르는 천하삼십육검에 베가르드의 검강이 부서져 나갔다.
서로가 의미 없는 소모전을 펼치고 있었지만, 정작 초조한 사람은 노인일 수밖에 없었다.
'이놈이 분명히 기회를 노릴 텐데.'
날아드는 공격을 받아내는 와중에도 노인은 주변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그의 뒤로 흐릿한 형체가 은밀히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기운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하압!"
상대를 확신한 노인은 이를 악물며 뒤에서 달려드는 놈을 향해 검격을 뿌렸다.
후두두둑.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검격이었다.
달려든 자를 분쇄하듯이 베어낸 노인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에 만족했다.
콰과광.
등 뒤로 강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이미 각오를 한 일이었다.
작정을 하고 호신강기를 최대한 끌어 올린 노인은 흩날리는 피에 만족해하며 진탕되는 내부를 다스렸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 이어졌다.
"캐, 캐롤라인!"
"저런 쳐 죽일 놈이!"
분개하는 엘프들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캐, 캐롤라인?'
뒤늦게 이상함을 느낀 노인의 시선이 베어낸 상대를 바라봤다.
"이, 이년은!"
"눈치 빠른 노인네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네?"
"이런 미친…"
죽은 여자 엘프를 움직여서 눈을 속인 강준우의 심계에 절로 몸이 떨려왔다.
자신을 농락한 어린놈에게 분노한 노인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지만, 그의 등 뒤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다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힘은 경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
점점 진해지는 기운과 살기에 노인은 힘을 끌어 올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와 함께 수많은 반월의 강기가 그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쐐에엑.
천마기멸격이었다.
허공섭물을 응용해서 죽은 캐롤라인의 시체를 이용한 강준우는 노인의 눈을 속였다.
그가 뒤에서 달려드는 캐롤라인을 처리하는 사이, 확실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당연히 마지막을 장식할 무공은 가장 강력한 초식이었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 없을 만한 공격으로, 강준우는 검증된 무공을 쏟아냈다.
콰과과과광.
노인도 뒤늦게 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남은 힘을 쥐어짰다.
보법을 이용해서 자리를 벗어남과 동시에 호신강기에 힘을 더하며 공격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날아드는 공격은 쉽게 피하거나 맨몸으로 막아낼 공격이 아니었다.
강기의 폭풍이 그를 휩쓸었다.
천마신공의 초식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초식에 노인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후우."
"끄으윽."
거친 숨을 몰아쉬던 강준우는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노인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자신하던 천마기멸격을 펼치고도 적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상대했던 둘 모두가 이걸 버티네.'
같은 경지에 호신강기를 사용하면 그래도 시신을 보존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노인은 일전에 상대했던 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에 있는 노인도 천마기멸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로 버티고 서 있었다.
다시 힘을 쏟아낼 수 없을 정도로 넝마가 된 모습이었다.
몸 곳곳이 꿰뚫린 상태로, 손쉽게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 공격에도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강준우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천마기멸격을 펼치고도 호신강기를 이용하면 이전의 노인과 비슷하게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나한테는 다행인가?'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지만, 겨우 목숨을 부지한 노인의 상태는 나쁘지는 않았다.
강준우는 곧바로 노인에게 달려들며 그 목을 틀어쥐었다.
"크흑.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끄윽."
"무사하더라고. 아직까지는!"
그는 노인의 말을 일축하며 천마흡기공을 펼쳤다.
노인이 가지고 있던 내공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지금은 미미한 내공조차도 아쉬울 판이었다.
다행히 베가르드가 그의 말에 따랐지만, 공통된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우선 기운을 회복하는 게 먼저였다.
강준우는 노인의 기운을 뽑아내면서도 점점 모여드는 엘프들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멈춰라!"
"베가르드. 저놈은 캐롤라인을…"
"멈추라고 했다! 캐롤라인은 내 명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어차피 징벌을 피할 수 없어!"
"하지만 그녀를 죽인 놈을 이대로 두고 보라는 겁니까?"
"저자는 캐롤라인을 죽였지만… 우리 모두를 살렸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베가르드의 말에 그들은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엘프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저자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가 죽었을 거다."
"…."
뒤에서 그 말을 들은 강준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흡수되지 않은 기운을 되돌리며 기검을 뽑아냈다.
마저 노인의 목숨을 취할 생각이었지만, 그때 생각지도 못한 알림이 전해졌다.
[형상기검이 6성으로 올라섭니다.]
[형상기검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6성으로 올라선 형상기검.
점점 원하는 것에 가까워지는 능력을 확인한 그는 노인의 가슴에 기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강한 충격에 노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리고 상대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