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고수들 (2)
같은 인간 중에 이렇게 그를 몰리게 만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반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강준우도 상대의 빠른 움직임에 이렇다 할 대처를 하지 못했다.
콰앙.
갑옷을 뜯어낸 노인은 곧바로 장력을 뻗었다.
그의 일격이 꽂히자 시린 한기가 파고 들었지만, 강준우는 그 힘을 버티며 반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반격은 노인에게 닿지 않았다.
쉬이익.
다시 떨어진 주변의 온도에 그의 몸이 영향을 받았고, 노인은 순식간에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공간을 격하며 움직이는 듯한 그의 모습에 강준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힘들겠는데? 어떻게 하지?'
짧은 순간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에 헤이스트가 떠올랐다.
김연희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부족한 속도를 높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다크 엘프를 처리했을 때처럼 마법의 도움을 받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지금은 남은 일행들이 그를 도울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콰과광.
"물러나라!"
지금 상대하는 노인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강한 힘을 내보였다.
베가르드는 익숙한 무공을 펼치는 노인을 상대로 비등한 모습을 보였지만, 다른 엘프들은 아니었다.
이미 궁지에 몰렸던 그들은 겨우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가르드와 비슷한 강자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엘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곧 쓰러질 정도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거기에 노인들과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오히려 일행들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기습을 펼치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주한 자들의 힘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까드드득. 콰앙.
다시 한 번 꽂히는 공격에 강준우는 생각을 달리했다.
성취가 낮은 혈수마공은 극음의 기운을 쏟아내는 규화보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음을 달리 먹은 그는 비슷한 기운을 이용하는 소수마공을 펼쳤다.
터엉.
완벽하게 달라진 무공에 장력을 뿌린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면, 강준우의 표정은 전보다 더 편안해졌다.
'같은 극음이라서 그런 건가?'
오히려 소수의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앞에 있는 노인을 압도할 수는 없었지만, 혈수마공을 사용할 때보다는 나았다.
노인은 그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어쭙잖은 수를 쓴다고 상황이 달라질까?"
노인은 다시 장력을 뿌리며 그를 압박했다.
이미 움직임에서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에 그는 더욱 강한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전보다 더욱 빨라진 움직임으로 강준우를 몰아붙였다.
터엉. 터엉.
순식간에 뒤를 잡으며 내뻗은 장력이 강준우를 덮쳤다.
미처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그 모습에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지만, 강준우는 아슬아슬하게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운이 좋은 놈인가?'
상대하는 젊은 놈의 움직임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노인은 자신이 있었다.
'윤 가도 버거워하던 공격을 제깟 놈이 막겠다고? 흥!'
속도에서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노인은 더욱 힘을 끌어 올리며 강준우를 몰아붙였다.
까드드득. 콰앙.
어느새 두 사람이 부딪치는 주변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동장군이 강림한 것처럼 시린 한기가 가득 새어나왔지만, 강준우는 작정하고 움직이는 노인의 공격을 모두 받아냈다.
터엉. 터엉.
'이놈이?'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하던 노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보이며 강준우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는 힘겹게나마 그의 공격을 받아내거나 흘려내고 있었다.
'내가 공격할 방향을 미리 알고 있잖아?'
속도에서 차이가 났지만, 그의 공격을 받아낸 이유는 하나였다.
강준우는 노인이 공격할 곳을 미리 알고 움직이고 있었다.
[야생의 감각이 9성으로 올라섭니다.]
[감각이 더욱 날카로워집니다.]
부족했던 숙련도가 채워지면서 야생의 감각의 성취가 높아졌다.
야생의 감각을 이용한 강준우는 이전보다 더욱 수월하게 노인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공격이 날아오기 전에 상대하는 노인의 살의가 먼저 전해졌다.
'그 사람을 상대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 건가?'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계곡 근처에서 싸웠던 자도 확연히 부족한 속도로 그의 공격을 잘 막아냈었다.
그 싸움을 복기하면서 그때 사용한 것이 야생의 감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의도적으로 야생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였고, 부족한 속도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콰과광. 콰과광.
계속해서 그를 몰아붙이던 노인도 약이 올랐는지, 더욱 빠른 속도를 끌어 올렸다.
점점 공격을 받아내는 게 힘들어졌다.
빠르기도 빠르기였지만, 파고드는 한기를 떨쳐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천마흡기공과 건곤대나이를 이용해서 버틸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에는 파탄이 드러나겠지만, 강준우는 묵묵이 그 공격을 받아낼 뿐이었다.
'점점 때가 오는 건가?'
공격을 받아낸 그는 점점 거칠어지는 노인의 숨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공의 상성이 좋지 않은 상대였지만, 오히려 그가 더 유리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나이였다.
연륜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마주한 노인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바로 체력이었다.
비교적 젊은 강준우는 공격을 받아내고 흘리면서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반면, 연신 공격을 뿌리며 강준우를 압박하는 노인의 체력은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내공만 있다고 이형환위를 펼칠 수는 없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상당한 체력이 필요했다.
강준우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환골탈태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그 부담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가 야생의 감각에 집중하며 공격을 받아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후우. 후우.'
일부러 감추려고 했지만, 노인이 숨소리는 거칠어져 있었다.
뒤늦게 상대의 의중을 확인한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그가 움직임을 멈추기 무섭게 매서운 일격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티잉.
섬전처럼 날아드는 검격.
경시할 수 없는 공격에 노인은 다시 힘을 끌어 올렸다.
'어린놈이 여기까지 생각했던 건가?'
자신이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을 깨달은 노인은 생각을 달리 먹었다.
이제는 방어에 집중하면서 체력을 비축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어차피 상대하는 놈의 공격이 매섭지는 않았다.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속도였다.
위력은 강한 것 같지만, 막아내기에 부담이 되는 공격은 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이제 네놈이 지칠 때까지 기다려주마!'
어차피 급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엘프와 함께 온 강준우의 상황이 더 급하다고 봐야 했다.
밀리는 쪽은 강준우와 일행들이었기 때문에 노인은 마음을 추스르며 강준우의 공격을 받아냈다.
티잉. 티잉.
달라진 노인의 움직임.
짧은 순간의 의도를 파악한 노인의 노회한 모습에 강준우는 쓰게 웃었다.
마주한 노인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흐읍!"
티잉.
검속에 더욱 신경을 쓰며 날린 일격이 튕겨져 나갔다.
맨손으로 검신을 튕겨내는 노인의 모습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지만, 강준우는 계속해서 비슷한 공격을 날렸다.
'멍청한 놈! 쇠심줄이라도 삶아 먹은 거냐?'
끝장을 보려는 듯이 한 곳만 노리며 공격을 감행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노인은 그를 비웃었다.
아무리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무모한 모습은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강준우는 연신 무영검을 펼쳤다.
조금씩 일섬의 강도를 조절하면서 속도를 늦췄고, 노인의 조소가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지금인가?'
그 표정을 확인한 강준우는 다시 검격을 날렸다.
쉬이익.
"흥! 어림없다!"
다시 빨라진 속도에 노인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강준우는 감춰왔던 힘을 드러냈다.
'천마복룡파!'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힘이었다.
검신을 쳐내려던 노인은 갑자기 생겨난 강기의 변화에 깜짝 놀라며 멈칫거렸다.
찰나의 순간,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계속 공격을 막아내는 상황이었다.
이제 와서 몸을 피하는 것은 너무 늦어 보였다.
'이런 약은 놈!'
이 상황을 노린 강준우의 모습에 노인은 이를 악물며 힘을 끌어 올렸다.
파츠츠츠.
순간, 진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강기를 쳐내기 위해서 강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범상치 않은 기운에 더 강한 힘을 끌어올린 것이다.
퍼억. 콰드득.
작정을 한 노인은 강한 힘을 쏟아 부으며 가까워지는 검신을 쳐냈다.
하지만 검신과 부딪친 노인의 손이 그대로 부서져 나갔다.
"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피가 튀었다.
차가워진 공기에 흘러나오던 피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지만, 노인의 얼굴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걸렸다!'
빠른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검신을 쳐내는 노인의 모습에 떠올린 방법이 바로 천마복룡파였다.
회전하는 강기를 쳐내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부딪치는 것을 그대로 부수는 무공을 염두에 둔 그는 완벽한 상황을 노렸다.
괜히 무공을 드러내봤자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아끼고 아끼면서 상황을 만든 것이다.
상당한 노력 끝에 앞에 있는 노인을 속일 수 있었고, 다행히 그의 한쪽 팔을 없앨 수 있었다.
"끄으윽."
극심한 고통에 신음을 흘린 노인은 강준우를 향해 장력을 뻗었다.
우선 앞에 있는 놈을 떨쳐내는 게 먼저였다.
파앙. 까드드득.
상당한 힘을 실린 장력에 주변을 얼렸지만, 노인의 공격은 허공을 때리며 허무하게 실패했다.
팔이 잘리면서 미묘하게 균형이 틀어졌다.
거기에 강한 살기를 느낀 강준우가 미리 움직이면서 공격을 피해내자, 오히려 공격을 감행한 노인의 몸에 치명적인 빈틈이 생겨났다.
강준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진각을 밟으면서 천마군림보를 펼치고, 비틀거리는 노인을 노렸다.
하지만 그를 막기 위해 강력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위급한 상황을 확인한 노인의 동료가 곧바로 마법을 날렸다.
'마법사라.'
엘프를 상대하던 사람이었다.
중년의 여성으로 보이던 그 여자는 곧장 강준우를 견제했지만, 날아오는 공격을 확인한 강준우는 그대로 현철보검을 내던지며 공격을 막아냈다.
쐐에엑. 콰앙.
강기를 머금은 보검이 날아오는 마법을 터뜨렸다.
제대로 된 무기를 잃은 셈이었다.
그 모습을 반긴 노인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강준우의 손짓과 함께 강력한 지력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흐읍!"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노인은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몸을 비틀었다.
파앗.
쏘아진 지력이 아슬아슬하게 쇄골을 스쳐 지나갔다.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그대로 목이 꿰뚫렸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쿠웅.
안도한 노인은 다시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기운을 튕겨냈다.
몇 번 당한 수법을 계속 당할 정도로 부족하지 않았다. 파고든 기운을 떨쳐낸 그는 뒤로 몸을 날렸다.
우선 물러날 생각이었다.
제법 중한 상처를 다스리며 나중을 기약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던 그의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끄윽. 혀, 형상기… 끄르륵."
쏘아진 지력이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강준우가 형상기검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리 없던 노인은 생각보다 쉽게 공격을 허용했고, 결국 그의 목이 베였다.
쿠웅.
고목나무 쓰러지듯이 넘어가는 노인의 모습에 강준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당히 어려운 상대였다.
일전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무공이 아니었더라면 쓰러진 사람은 노인이 아니라 자신일 지도 몰랐다.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들려오는 알림에 적을 확실히 죽였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포인트가 전부인 건가?'
만족한 결과는 아니었다.
힘든 상대 치고는 얻은 게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다행이었다.
강준우와 상대하던 노인이 쓰러지자, 장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초절정을 뛰어넘은 고수의 수가 줄어들자, 남은 자들이 동요했다.
하지만 여자 마법사는 동요하는 그들을 일깨우며 소리쳤다.
"놈이 지쳤다! 놈을 공격해라. 이미 내공이 바닥났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