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고수들 (3)
규화보전을 익힌 노인을 쓰러뜨리면서 이미 승부는 갈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뒤에 있던 여성의 외침에 남은 자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로서는 지친 강준우가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노인을 처리하면서 얻은 포인트와 강준우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얻을 것은 자명했다.
운이 좋다면 상대가 가진 무공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들의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 기회를 빌어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면, 노괴들의 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저놈은 내가 죽인다!"
"내꺼야. 넘보지 마!!"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다이스케는 황당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을 압박하던 놈들 중에 일부도 강준우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미친놈들이… 너무 많잖아?"
"보고 싶었나 보지."
"보, 보고 싶다니? 뭘?"
"저승사자."
"…."
냉소 섞인 김연희의 말에 다이스케는 수긍하며 말을 아꼈다.
아무리 지쳤다고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서 훨씬 강한 사람이 바로 강준우였다.
그런 자를 상대로 눈이 뒤집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욕심에 눈이 먼 건가? 저 모습을 보고도…"
지금 보인 강준우의 지친 듯한 모습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일부러 어깨를 들썩이고 있잖아? 너무 오바야."
"그건 연희, 네 생각이고! 그래도 저 사람들은 잘만 달려 나가잖아?"
"으이그. 저 보조 배터리들."
"… 우리라고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아?"
이어진 백선화의 말에 김연희와 다이스케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들 역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활약보다는 보조 배터리적인 성격이 강했다.
구시렁거리는 세 사람의 모습에 유키코는 그들을 일깨웠다.
"집중해! 이 기회에 뭐라도 얻어야 물약 신세를 면하지!"
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두 사람도 힘을 끌어냈다.
유키코의 말처럼 지금은 남은 자들을 처리하면서 힘을 키우는 게 중요했다.
언제까지 강준우에게 기운을 나누어주는 신세로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연신 마법을 날리며 앞에 있는 자들을 압박해 나갔다.
콰앙. 콰앙.
날아오는 마법이 공중에서 터져나갔다.
지친 강준우를 노리며 몇몇이 위력적인 공격을 쏟아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받아냈다.
되도록이면 상대하는 자들을 끌어들이고 한꺼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체력을 비축하면서 적들을 상대하려고 했지만, 우선 뒤에 숨어 있는 마법사들을 먼저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린 강준우는 바닥을 밟으며 천마군림보를 펼쳤다.
콰과광.
급작스러운 공격에 휩쓸린 마법사들이 큰 충격을 입었지만, 다행히 실드로 충격을 줄였다.
공격을 허용한 그들은 겨우 몸을 추슬렀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던 강준우가 가까이 달라붙으며 그들을 휩쓸었다.
"미친… 커억."
강준우에게는 무공을 익힌 자들보다는 마법을 사용하는 자들을 상대하는 게 더 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통해서 내공을 회복하고, 그 힘으로 적을 상대하는 게 가장 좋았다.
어렵지 않게 마법사를 제압한 그는 천마흡기공을 이용해서 기운을 뽑아냈다.
빠르게 빨려 나오는 기운을 흡수하면서 내공을 회복했고, 남은 기운은 주변에 있는 다른 마법사들을 공격했다.
쐐에엑. 푸욱.
쏘아낸 일양지가 근처에 있던 다른 마법사를 관통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기검으로 변하며 목을 베어내자, 마법사는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뒤로 파고든 강준우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겨우 그의 움직임을 눈치챈 몇몇이 다급히 뒤를 쫓았지만, 다시 날아오는 일양지와 곧바로 변한 기검에 막혀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기로 만들어진 무기를 손에 쥔 강준우의 모습에 달려들던 사람들이 머뭇거렸다.
한 손에 마법사의 목을 틀어쥔 강준우는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끄으으."
강준우의 손에 잡힌 마법사는 괴로워하며 발버둥 쳤다.
따로 마법을 날리면 좋겠지만, 지금은 마법을 캐스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의지와 상관없이 뻣뻣하게 굳은 몸이 문제였다.
순식간에 점혈을 당한 마법사는 강준우의 우악스러운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노괴들보다 더 무지막지한 놈이잖… 끄윽.'
우두둑.
대강이나마 기운을 회복한 그는 마법사의 목을 비틀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반응하며 움찔거렸고, 강준우는 다시 천마군림보를 밟으며 상대를 옥죄었다.
쿠웅.
적을 묶은 그는 남은 힘을 기검이 쏟아부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난 기검을 날리며 앞에 있는 두 명을 노렸다.
쉬이익.
일섬으로 속도를 끌어 올린 무영검이 순식간에 그들을 향해 날아갔다.
쉽게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었지만, 상대 역시 초절정을 넘어선 자들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사력을 다해서 공격을 받아냈다.
다만, 그들이 뽑아낸 힘만으로는 강기를 막아낼 수가 없었다.
티잉. 서걱.
그대로 둘을 베어낸 강준우는 부릅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적들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지, 지쳤다!"
"그래도 두어 놈은 가볍게 죽이고 있잖아!"
"…."
상대가 지친 건 확실해 보였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지친 모습이었다.
괜히 잘못 나섰다가는 그대로 목숨을 잃을 판이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동료가 쓰러지자, 그들도 뒤늦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누구 하나 총대를 메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강준우는 고민했다.
'어떡하지?'
이대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근처있던 일행과 엘프들은 적들을 상대로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달라진 분위기에 그들도 전의를 불태웠지만, 이대로 그들을 지켜보기에는 임무가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많은 수를 줄여야 좋은 보상을 얻는 거잖아?'
이곳에 모여 있는 대부분이 숨어 있는 놈과 계약을 맺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일행이 함께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 보상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가만히 뇌까린 그는 손에 쥔 기검을 날렸다.
강기로 만들어진 기검이 공간을 격하며 한 중년인을 향해 날아갔다.
자신을 노리며 날아오는 강기에 중년인은 기겁하며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에 죽은 자들로 본 만큼 정면에서 그 공격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콰과광.
커다란 굉음과 함께 바닥이 들썩였다.
모양새는 좋아 보이지 않는 나려타곤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냈지만, 그래도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중년인은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일어나기 무섭게 낯선 인형이 나타났다.
"흐읍! 죽어라!"
기겁한 중년인인 그대로 도를 휘둘렀다.
펼칠 수 있는 절초를 뿌리며 앞에 나타난 인형을 베어냈고, 손끝에 걸리는 묵직한 감각에 나름 안도할 수 있었다.
"잡았다!"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뒤늦게 베어낸 자가 조금 전에 죽은 마법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압박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크으읍."
어느새 뒤를 잡은 강준우는 중년인을 제압하며 기운을 뽑아냈다.
이번에는 기운을 흡수하는 것보다 끌어 모으는 것에 중점을 뒀다.
크게 반발하며 튕겨져 나가는 낯선 기운을 억지로 끌어둔 그는 그 힘을 이용해서 곧바로 일양지를 날렸다.
쐐에엑. 티잉.
불시에 날린 공격이었지만, 이미 눈에 익었는지 상대는 어렵지 않게 일양지를 받아냈다.
하지만 강준우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 날린 일양지는 기검을 만들기 위한 준비 동작과 다름없었다.
강준우는 곧장 기검을 만들어내며 손에 쥔 자의 목숨을 취했다.
충분히 뽑아낸 기운으로 기검에 힘을 더하자, 진한 빛에 휩싸인 기검 주변으로 강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조, 조심해!"
의도적으로 형상기검을 만들어내면서 천마복룡파를 사용했다.
최대한 빨리 이들을 쓰러뜨리고, 뒤에 있는 다른 고수들을 상대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베가르드와 상대하는 노인의 무공이 마음에 걸렸다.
노인의 손에도 그와 비슷한 형태의 기검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형상기검이라니.'
베가르드와의 싸움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상대는 본 실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하지 않은 무공을 익힌 노인의 모습에 강준우는 다시 바닥을 박차며 남은 사람들을 상대했다.
"물러나지 마!"
"한꺼번에 노려! 놈도 사람이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규화보전을 익힌 노인도 저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휘둘러진 기검을 막아내기 위해서 그들도 최선을 다했다.
각자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을 펼치며 강준우를 막았지만, 강기라는 사기적인 힘을 막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콰과과광. 콰과광.
다수의 공격과 강기가 부딪치면서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여러 명의 공격이 한 번에 쏟아졌지만, 그들이 날린 공격은 다시 방향을 바꾸며 되돌아갔다.
그 와중에 배진격을 사용하며 힘을 되돌린 것이다.
콰과광.
다시 날아든 공격에 몇몇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묘하게 균형을 이루던 상황이 깨졌고, 강준우의 기검이 길게 늘어나며 그들을 휩쓸었다.
"끄아악!"
순간 달라진 길이에 휩쓸린 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천마복룡파가 덧씌워진 기검은 가로막는 공격을 모두 파괴했다.
회전하는 강기에 휘말리며 희생되는 수가 늘어나자, 그들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호신강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호신강기?'
쓰러진 자들을 통해서 얻은 것 대부분이 포인트였지만, 그동안 얻지 못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호신강기를 펼칠 수 없었던 강준우였지만, 이제는 가능했다.
"후우. 후우."
손에 들어온 힘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꽤나 지친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번에는 적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내공과 체력을 소진하면서 자연스럽게 호흡이 거칠어졌다.
작정하고 휘두른 공격에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몇몇이 중한 상처를 입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강준우는 곧바로 살아남은 자들을 향해 다가가며 기운을 갈취했다.
"끄으윽."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
중한 상처를 입은 그들은 간절한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괴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그는 기운을 갈무리하며 남은 자들의 목숨을 취했다.
"하아아!"
콰과과광.
그런 그와 떨어진 곳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기운이 휘몰아치면서 생긴 폭발에 잘 버티고 있던 엘프들이 크게 흔들렸다.
"요아니스!"
강한 위력에 베가르드가 크게 소리쳤지만, 그의 앞은 예의 노인이 가로막고 있었다.
커다란 폭발과 함께 엘프들이 쓰러져 나갔다.
힘겹게 버티고 있던 엘프의 몸이 꺾였고, 날아드는 마법과 폭발에 휩쓸린 그의 몸이 사라졌다.
"후우우. 이제 저놈을 막아라!"
"…."
"뭐하고 있어? 다들 죽고 싶은 거냐?"
"아, 아닙니다."
엘프들을 쓰러뜨린 자들은 그 여성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강준우를 향해 다가왔다.
어마어마한 힘을 내보인 강준우였기 때문에 그를 상대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는 노인들이 큰 위협으로 느껴졌다.
"시간을 벌어라. 제대로 된 마법을 캐스팅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 말에 남은 자들도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굳이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지는 않았다.
상당히 지친 모습인 것 같았지만, 의도적으로 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조금 전에도 그 모습을 보이며 달려든 자들을 도륙했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끌었다.
강준우는 가만히 기운을 갈무리하며 이 상황을 이용했다.
남은 실력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소진한 내공과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시간도 길지 않았다.
"공격해!"
쿠구구구궁.
커다란 외침과 함께 강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중년 여성의 모습을 한 마법사가 마법이 그를 노리며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