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1)
"어떻게 됐어?"
"대충은 다 알아낸 것 같아."
"다 알아냈다고?"
"응. 대충은."
따로 그를 찾아온 백선화의 말에 강준우는 내심 놀라워했다.
일이 잘 풀려서 백선화의 매혹이 먹혀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의외라는 표정을 보이는 강준우의 모습에 백선화는 뿌듯해하며 알아낸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했던 그녀의 말대로 백선화는 꽤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
"노인들이 힘을 합쳐서 움직였다라."
"윤 노사라는 사람이 주축이었다나 봐.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 손에 배신을 당한 것 같고."
"그 사람만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니."
결정적으로 그들을 찾아온 다른 존재의 제안 때문에 그들이 뜻을 달리한 것 같았다.
윤적평은 그 제안을 거절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윤적평의 뜻에 맞춰서 움직였던 그들이 다른 생각을 품은 것이다.
'도움을 준 사람을 오히려 죽이다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지금 처한 상황 자체가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이게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
윤 노인이라는 사람을 쓰러뜨리면서 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일 지도 몰랐다.
그런 그들의 선택을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는 강준우는 스스로의 생각에 씁쓸해했다.
"그래서? 그들이 모인다는 곳은 어딘데?"
"여기에서 북서쪽으로 더 들어가면 절벽이 나온다고 했어. 절벽 근처에 동굴이 있는데, 거기에서 생활했다고 하더라고."
강준우는 백선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능력으로 일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확인을 해보는 게 먼저겠지만.'
매혹이라는 능력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사로잡은 자의 힘을 모두 뽑아내고 점혈을 가하며 제압했다고는 하지만, 비슷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실토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했다.
"아, 그 사람은 어떻게 할 거야?"
"그 사람이라니? 네가 처리한 거 아니었어?"
당연히 백선화가 쓰러뜨렸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백선화가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는 강준우가 그 사람을 처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오히려 그 사람을 양보하고 있었다.
그 말에 잠깐 고민하던 백선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나보다는 네가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괜찮겠어?"
"그 사람도 무인인 것 같더라고. 어차피 내가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거라고는 포인트뿐이니까."
백선화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고, 강준우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나야, 네 덕에 활까지 손에 넣었잖아."
손에 쥔 활을 들어 올리는 그녀의 말에 강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상을 생각하면 차라리 본인이 놈의 목숨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다른 걸로 대신하면 되겠지.'
대충 생각을 정리한 그는 백선화와 함께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넋을 놓은 채로 축 늘어져 있는 사내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강준우는 곧장 검을 휘두르며 그의 목숨을 취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하지!"
"…."
대뜸 칼부림을 하는 그의 모습에 놀란 일행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 말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사내를 쓰러뜨리고 얻은 힘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탈심색혼공(奪心色魂功)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마공의 영향으로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탈심색혼공?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오르다니!'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비슷한 힘을 가진 고수들을 상대하면서 어쩔 수 없이 천마신공을 사용해야만 했다.
다행히 천마신공의 성취가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예상과 다르게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올랐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무공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그 무공이 어떤 계열인지 알 수 있었다.
'색공 같은 건가?'
뒤늦게 사내가 가지고 있던 기운이 혼탁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색공의 한 계열인 무공을 익히고 있는 만큼, 여러 기운이 섞여 있는 것은 당연했다.
썩 내키지 않은 무공을 손에 넣었지만, 그것을 손에 넣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상생(相生)에 관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상생(相生)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새로운 무리(武理), 상생(相生)을 얻었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무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조화신공을 익히기 위한 마지막 조건이 채워진 것이다.
탈심색혼공.
음양합일을 이루고 상대가 가진 혼을 빼앗는 마공으로, 강준우가 생각했던 색공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색공이 그렇듯 상대가 가진 기운을 품어야만 했다.
당연히 상생과 관련될 수밖에 없었고, 강준우는 생각지도 못한 무리를 얻게 됐다.
변화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중요한 것들을 손에 넣었지만, 부가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천마신공의 공능이 피어나는 음심을 억누릅니다.]
'미친! 음심이라니.'
탈심색혼공을 익히게 된 것만으로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
초절정에 이른 무인이 백선화의 목소리와 외모에 반응을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괜찮은 거야?"
"… 괘, 괜찮아."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은데? 열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얼굴이 붉어?"
조금 달라진 강준우의 변화를 걱정하며 김연희가 손을 뻗었다.
평범한 손길이었지만, 달라진 변화에 미처 적응을 하지 못한 강준우는 그 손을 막아내며 자리를 피했다.
"어디가?"
"자, 잠깐 확인해 볼 게 있어."
"…."
조금 당황한 듯한 강준우의 모습이 낯설었다.
처음 보이는 듯한 그 모습에 김연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 했지만, 강준우는 자리를 피하며 스스로의 상태를 살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고작 무공을 얻은 것만으로도 몸이 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달라진 변화에 강준우는 호흡을 고르며 익숙한 노래를 되뇌었다.
'뭐야? 엄청 이상한 무공을 얻었잖아?'
이런 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공을 내버릴 수도 없었다.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낸 그는 완전히 충족된 조건을 확인하며 익히지 못하고 있었던 무공을 살폈다.
조화신공(造化神功).
등급 외에 분류되어 있는 무공을 확인한 그는 곧장 포인트를 지불하며 그 무공을 익혔다.
[조화신공(造化神功)을 익혔습니다.]
[상충된 무공의 힘을 완화시킵니다. 조화신공의 영향으로 관련된 무공이 영향을 받습니다.]
[음양신공의 성취가 크게 오릅니다.]
[소수마공의 성취가 오릅니다.]
[혈수마공의 성취가 오릅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여러 알림들.
그동안 조화신공을 익히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이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음양신공은 물론이고, 두 마공까지 곧바로 성취가 올랐다.
부족했던 부분이 모두 채워진 것 같았다.
탈심색혼공을 얻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조화신공을 비롯한 부가적인 효과는 만족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제 소림 무공을 익혀도 되는 건가?'
생각해뒀던 금강부동심결(金剛不動心訣)을 익히기만 하면 불안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필요했다.
원한다고 등급 외의 무공을 바로 손에 넣을 수는 없었다.
필요한 S등급의 무공을 익혀야만 했고, S등급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도 하위 무공을 익힐 필요가 있었다.
'후우. 이걸 익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살피면서 관련된 무공을 확인한 강준우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포인트만 있다고 무공의 성취까지 마음대로 올릴 수는 없었다.
하위 무공의 성취를 올리면서 금강부동심결을 익히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문제는 그 전에 천마신공이 10성으로 올라설 것 같았다.
탈심색혼공이라는 새로운 마공을 손에 넣으면서 천마신공이 반응을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걱정이 됐지만, 그런 고민도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고심하는 그에게 베가르드가 다가왔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지?"
"… 이제 움직여야지."
"곧바로 그곳으로 갈 생각인가?"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네가 앞장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네가 적임자 아닌가? 어차피 도망간 자들을 찾으려면 정령의 도움이 필요한 테니까. 무엇보다 이곳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고."
이 세계에서 살고 있는 베가르드가 제격이었다.
이곳 지형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숲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쪽은 엘프인 베가르드였다.
거기에 정렬을 부릴 수 있었고, 가진 힘도 강준우에게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적절한 대처가 가능했다.
강준우의 말에 베가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취를 감춘 인간들을 찾는 것에는 그가 제격이었다.
"알았다. 그럼 지금 바로 움직이지."
"그래."
불안한 마음을 뒤로한 그는 베가르들를 앞세우며 그의 뒤를 따랐다.
마음 같아서는 곧바로 소림의 무공을 먼저 익히고 싶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을 잡으면 정파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본으로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살펴봤다.
예전에 익히려다가 말았던 소림의 철비공을 확인했고, 생각했던 것처럼 달라진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비공을 익힐 경우, 가진 내공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공의 위력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조화신공의 공능이 서로 다른 두 무공을 조율합니다. 예견된 충돌을 제거합니다.]
다행히 다른 무공을 익히면서 얻게 될 충돌을 없앨 수 있었다.
이제 정파의 무공들도 익힐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과 같았지만, 그렇다고 정공 무공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우선 정공 무공을 익힌 자를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다행히 도망간 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공을 얻을 지도 몰랐다.
그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찼다.
그동안 걱정이 됐던 것들을 대부분 떨쳐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그런 생각도 계속 이어질 수 없었다.
앞장섰던 베가르드가 걸음을 멈췄다.
그동안 정령을 불러내면서 꽤나 신중하게 움직이던 그가 처음으로 걸음을 멈춘 것이다.
"뭐예요? 무슨 일이죠?"
"저기 인간이다."
"이, 인간? 어디요?"
그의 말에 김연희는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의아해했다.
강준우 역시 별다른 기감이 느껴지지 않자, 의아한 눈으로 베가르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침음을 삼키며 쓰러진 자를 바라봤다.
"누가 먼저 손을 쓴 건가?"
"손을 써? 뭐, 뭐야? 죽었잖아?"
"죽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뒤늦게 쓰러진 자의 모습을 확인한 유키코의 말에 모두는 깜짝 놀라며 그 모습을 살폈다.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채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이 모두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이 사람… 조금 전에 우리랑 싸웠던 그 사람인 것 같아."
"맞아. 이 사람! 거기에서 싸우다가 도망간 사람이야."
"근데, 왜 죽어 있는 거지?"
"…."
당연히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여러 의문을 자아냈다.
"서로가 서로를 죽였나?"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겠네."
"미친놈들이네. 어떻게 같이 싸운 동료를 죽이지?"
그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죽은 자가 그에 대한 답을 대신해 줬다.
'힘을 얻으려고 이런 건가?'
아무리 그래도 이런 판단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쓰러져 있는 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손을 쓴 게 분명했지만, 문제는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인이었다.
앞에 있는 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그 여자뿐이었다.
싸웠던 노인이 할망구라고 했지만, 중년 여성의 외형을 가진 여자가 이들보다 우위에 오른 상황이었다.
'그 여자는 마법을 사용했었는데.'
쓰러진 자는 마법이 아닌 검에 당한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앞에 있는 자를 죽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어떡하지?"
"…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지."
"그건 그렇지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앞에 있는 자는 마법이 아닌 검에 당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도망간 자들 중에서 검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상태였지만, 동료라고 믿었던 사람의 기습적인 공격이라면 이런 식의 상처가 가능할 지도 몰랐다.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낸 그들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쓰러진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 앞에 쓰러진 한 구의 시체.
송두안이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실력자가 검에 당한 채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자의 죽음에 모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장내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지만, 그 순간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주어진 조건이 완수됐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