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처지들 (2)
권우철을 튕겨낸 자는 다시 상대를 바꿨다.
밀려난 권우철의 뒤로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무공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그런 마법사들이 쉬운 상대였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모여 있는 일행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닿기도 전에 뒤에서 날아오는 강한 기운과 함께 괴인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쐐에엑. 콰앙.
강준우의 검격에 밀려난 자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구기며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유키코는 놀란 듯이 뇌까렸다.
"저 사람… 눈이 돌아갔는데?"
초점이 없는 그 모습에 유키코는 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강준우가 정신을 잃었을 때의 모습을 다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괴인의 모습을 살폈고,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을 감행하는 한 사람.
다시 몸을 일으키는 괴인은 유키코의 말처럼 이미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저 사람은 뭐지?'
갑작스러운 기습이 이제는 놀랍지 않았다.
같은 인간이라도 상대의 힘을 빼앗기 위해서는 이런 기습을 감행하는 게 당연했다.
힘이 있다면 약한 사람들을 공격해서 포인트와 다른 능력을 뺏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공격을 감행한 사람의 상태가 문제였다.
"크르르르."
적의를 드러내며 이상한 소리를 흘리는 상대는 정상이 아니었다.
다만, 상대의 실력은 다른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저걸 맞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건가?"
"일부러 힘을 빼놓을 생각이었나? 아닌데. 분명히 강기인 것 같았는데?"
"엄청난 고수인 것 같은데?"
상대는 강준우의 공격을 막아내고도 멀쩡했다.
가볍게 날린 공격이 아니었지만, 그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강자들과의 싸움도 낯설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은 다시 마음가짐을 달리하며 곧바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도 굳은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은데.'
콰앙. 콰과광.
몸을 일으킨 괴인은 다시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손에 두른 강력한 힘은 강기가 분명했다.
푸른빛을 띠고 있는 강기를 앞세우며 빠르게 쇄도하자, 권우철이 다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삐리링.
뒤에 있던 유키코는 파혼소를 펼치며 상대를 공격했고, 백선화는 정령을 불러내며 화살을 날렸다.
쐐에엑. 터엉.
백선화의 공격은 너무나 쉽게 상대에게 가로막혔다.
그대로 미간을 꿰뚫을 것 같은 공격이 괴인의 손짓에 방향을 바꾸며 튕겨져 나갔다.
마치 건곤대나이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파혼소까지 무시하고 달려드는 괴인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하야테와 김연희의 마법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상대는 그 공격 역시 어렵지 않게 튕겨냈다.
콰과광. 촤아악.
둥근 원을 그리며 공격을 흘리는 상대의 모습에 강준우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태극? 무당인가?'
일전에 상대한 적이 있었던 자와 비슷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무당파의 주된 무공인 검술을 펼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력을 내는 무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 괴인의 상태였다.
'정파의 무공을 사용하고도 저런 상태가 된 거라고?'
그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앞에 있는 괴인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정파의 무공을 펼치고도 저렇게 이성을 잃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천마신공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 곤륜의 절기인 상청무상신공의 힘을 키우고 있는 그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처절한 괴성을 흘리며 다시 공격을 이어가는 괴인의 힘에 권우철의 방패가 들썩였다.
터엉. 터엉.
괴인은 앞을 가로막는 권우철을 밀어내기 위해서 강한 공격을 쏟아냈다.
일격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았지만, 권우철은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터엉.
'크윽.'
그는 비스듬히 방패를 세우며 충격을 흘리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서 나름의 방패술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보다 괴인의 힘은 강력했다.
"그래비티!"
"조금만 더 버텨!"
그나마 뒤에 있는 일행들의 도움으로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뭐하고 있어?"
"…."
"안 나설 거야?"
힘겨워하는 권우철의 모습에 김연희는 뒤에 있는 강준우를 일깨웠다.
강준우가 개입하면 상황을 쉽게 풀어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조금 전에 든 의문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강준우는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냈다.
지금은 앞에 있는 자를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강준우는 곧바로 일양지를 쏘아내며 앞에 있는 괴인을 노렸다.
쐐에엑. 콰앙.
괴인의 미간을 노리며 날카로운 공격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괴인은 장력을 뻗어내며 공격을 튕겨냈다.
정면에서 받지 않고, 본능적으로 충격을 줄이는 그의 무공은 무당파의 무공이 확실했다.
전방에 선명하게 생겨난 태극 문양.
강준우뿐만 아니라 권우철과 유키코도 그 무공을 눈치채며 소리쳤다.
"태극? 저건 무당의 무공인데?"
"근데 왜 눈이 돌아가 있는 거지?"
"크아아!"
공격을 튕겨낸 괴인은 괴성을 지르며 다시 힘을 끌어 올렸다.
일양지를 막아내며 더 강한 힘을 끌어 올렸지만, 그런 그에게 강력한 일검이 날아들었다.
터엉. 터엉.
형상기검으로 기검을 만들어낸 강준우의 공격이었다.
그대로 몸을 베어낼 것처럼 강력한 공격을 날렸지만, 괴인은 어렵지 않게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수, 수강이잖아?"
"설마, 화경에 올랐다는 거야?"
뒤늦게 상대의 강함이 이해가 갔다.
더군다나 지금은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무서울 것이 없는 괴인의 모습에 모두가 머뭇거렸지만, 강준우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쇄에엑. 터엉.
그는 다시 일양지를 날렸다.
한 손으로 기검을 휘두르며 수강을 만들어낸 상대를 압박하고, 다른 손으로 일양지를 날리며 빈틈을 노렸다.
하지만 괴인은 다시 그의 공격을 받아냈다.
쉽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그는 무당 특유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흘렸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인가?'
부드러움이 강함을 누르고 있었다.
괴인은 무당의 오의를 활용하며 공격을 흘렸지만, 강준우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튕겨져 나간 일양지가 기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미 강준우의 손에서 멀어진 기검이었지만, 바닥에 처박힐 것 같던 기검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이, 이기어검!"
"이제 완전히 쓸 수 있는 거야? 저 힘을?"
모두가 놀라워했다.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펼친 공격이었다.
그 뒤로 이기어검을 연습하는 모습까지 확인했지만, 실전에서 능숙하게 사용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쳐낸 기검이 그대로 괴인의 뒤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대로 뒤통수를 꿰뚫을 것 같은 공격이었지만, 상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투웅.
괴인은 손을 들어 올리며 공격을 받아냈다.
그대로 몸을 꿰뚫을 것 같은 검격이었지만, 강기를 덧씌운 손은 부드럽게 날아드는 기검을 흘렸다.
상대는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서 강준우가 휘두르는 기검을 쳐냈다.
콰앙.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만들어낸 기검이 휘두르는 기검을 쳐냈고, 빈틈을 만들어낸 괴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엄청 까다로운 놈이잖아?'
어느새 품을 파고드는 괴인의 행동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제하고 있던 힘을 드러내야만 했다.
상청무상신공의 힘만으로는 화경에 오른 자를 막아낼 수 없었다.
계속해서 부딪치면 결국에는 결판을 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앞에 있는 자를 빨리 처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크아아!"
다시 괴성을 내지른 상대가 그대로 팔을 뻗었다.
잔뜩 끌어올린 기운에 양손에 머금은 기운이 더욱 진해졌지만, 강준우도 마냥 당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하압!"
커다란 기합과 함께 강한 기운이 상대를 밀어냈다.
오히려 유리한 상황을 맞은 상대가 튕겨져 나간 것이다.
순간 강준우의 몸에서 뿜어진 강력한 기운. 바로 천마반탄기였다.
고작 1성에 이른 천마반탄기였지만, 생각지도 못한 방식에 공격을 감행하던 괴인이 휩쓸려 나갔다.
"크으으."
아무리 무당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지만, 예상하지 못한 공격까지 무사히 받아낼 수는 없었다.
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자는 달라진 강준우의 기운을 확인하며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상대의 강함을 눈치챈 것이다.
"그래비티!"
머뭇거리는 괴인의 모습에 다이스케는 곧바로 그래비티를 사용했다.
만에 하나라도 도망갈 것을 염두에 두고 상대를 묶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김연희는 파이어 월을 만들며 그의 움직임을 제약했고, 하야테도 마법을 이용해서 솟아 오른 불길을 조절했다.
삐리링.
유키코도 상대를 압박하자, 모두의 힘을 받아낸 괴인은 다시 바닥을 박찼다.
강준우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상황이었다.
이성을 잃은 그는 강준우를 향해 달려들었고, 강준우는 손에 쥔 기검을 다잡으며 다시 검격을 뿌렸다.
'흐읍!'
그 와중에 허공에 떠 있는 기검을 움직였다.
쏘아진 기검이 다시 괴인의 뒤통수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 힘을 인지한 괴인은 곧바로 태극을 만들어내며 앞과 뒤에서 날아드는 날카로운 공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 순간, 허공에서 날아들던 기검이 모습을 감췄다.
'낚은 건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공격에 그 힘을 이용하려던 괴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주춤거리는 그의 목을 향해 강준우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이미 파훼당한 수법을 다시 사용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만들어낸 기검은 다시 흩어낼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염두에 둔 강준우의 노림수가 통했고, 맹렬하게 날아드는 검격에 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괴인은 뒤늦게 몸을 비틀며 강준우의 공격을 받아냈다.
비록, 원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없었지만, 날아드는 공격을 흘리는 것은 충분했다.
오히려 한쪽 방향에서만 날아드는 공격이 더 수월했다.
예의 태극이 형상을 갖추며 강준우의 검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번에 받아내는 공격이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콰드득.
날아드는 검격은 평범한 검강이 아니었다. 천마복룡파였다.
주변의 강기들이 회전을 하면서 와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공격을 흘려내는 수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의도적으로 천마복룡파의 힘을 끌어낸 것이다.
"끄아아아!"
처절한 비명과 함께 괴인이 비틀거렸다.
회전하는 강기에 몸 절반이 날아갔고, 그 충격에 괴인은 피를 토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괜히 천마신공이 아닌가?'
상청무상신공을 토대로 무공을 펼쳤을 때와는 위력 자체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익힌 무공의 성취가 다른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천마신공이 뿜어내는 힘 자체가 대단했다.
천마신공의 힘을 확실히 느낀 강준우는 이미 무력화 된 무인을 보며 고심했다.
처음에는 유키코에게 상대를 돌리는 것을 염두에 뒀지만,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무당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면…'
유키코에게 큰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유키코의 상태도 불안했다.
그녀가 익히고 있는 소수마공이라면 언제 그 힘에 잠식당할지 알 수 없었다.
'굳이 힘을 키워줄 필요는 없겠지.'
마음을 정한 그는 비틀거리는 괴인의 목숨을 취했다.
따로 기운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천마흡기공의 사용을 자제했다.
[새로운 무리(武理), 유능제강(柔能制剛)을 얻었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유능제강?'
다행히 무당의 오의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무당파라면 괜찮은 무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 무공이라면 가지고 있는 천마신공의 불안함을 떨쳐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상대의 상태를 떠올린 강준우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당의 무공을 익히고도 정신을 잃을 수가 있는 건가?'
정파의 무공이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새롭게 알아낸 사실에 그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그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또 누구지?'
일련의 무리들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