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216화 (216/254)

비슷한 처지들 (5)

강준우의 질문에 황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은 알고 있지요.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

"우리가 왜 여기에 불려온 건지는 알고 있나요?"

"대충은요.

"오히려 대화가 더 편해졌을 지도 모르겠군요."

황 노인은 차라리 잘됐다는 반응이었다.

이곳이 다른 세계고, 인간에게 적의를 가진 자들에 의해서 차원을 넘어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도 쉬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대화하는 게 편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내심 놀라워했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이런 사실을 알아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강준우와 일행들이야 엘프들과 엮이면서 그들을 통해서 단편적인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엘프들의 일을 도우면서 어렵게 알아낸 사실들이었다.

앞에 있는 노인이 비슷한 임무를 받거나 따로 엘프들과 친분이 있을 리 없었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런 정보를 얻지 못할 이유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은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그걸 밝히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군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고요."

"더 중요한 게 있다니요?"

그의 질문에 황 노인은 뜸을 들였다.

쉽게 할 말이 아니었는지, 잠깐 시간을 들인 황 노인인 다시 운을 뗐다.

"이곳의 상황을 알고 있다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도록 하죠. 우리 인간들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지요?"

"…."

"앞으로 상대할 놈들은 더 강해질 것 같더군요. 어느 정도 힘을 합쳐야 제대로 된 대항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죠?"

노인의 말에 강준우는 침묵했다.

당연히 그 말에 공감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노인을 믿을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강준우의 모습에 노인은 다시 운을 뗐다.

"서로 힘을 합치는 건 어떨까요?"

"힘을… 합친다? 앞으로 같이 움직이자는 뜻입니까?"

"같이 움직이는 건 힘들지 않겠습니까? 실질적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잡음이 끊이지 않을 테죠."

"…."

황 노인의 말처럼 이만한 사람들이 계속 함께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임창현이 구심점이 돼서 사람들과 체계적으로 움직였던 상황이 아니었다.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과정에서 부딪칠 가능성이 높았다.

황 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앞으로의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과감하게 내칠 줄 아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괜한 분란을 만들 일이라면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어차피 목표는 같지 않나요?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서로가 적대적인 행위를 줄이자는 뜻입니다."

"적대적인 행위를 줄인다라."

"불가사의한 일의 전모가 어느 정도 밝혀졌으니, 인간들끼리 싸우는 일은 되도록이면 지양하자는 뜻입니다."

"…."

죽은 윤적평은 물론이고, 일의 전모를 알게 된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적대적인 행위를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서로의 목숨을 취하면서 힘을 키워왔던 그들이었다.

그저 한 번의 약속으로 그 일을 방지할 수 있었다면, 서로가 죽이는 일은 진즉에 멈출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말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지만, 이어지는 황 노인의 말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물론, 여러 가지 정보도 교환하면 더 좋겠죠."

"정보?"

"서로가 모르는 것들이 많지 않을까요? 가령, 저쪽에는 어떤 종족이 살고 있는지에 관한 내용들 말입니다."

단편적인 대화를 나눴지만, 앞에 있는 노인이 알고 있는 정보도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정보 교환이라.'

무엇보다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타티아나를 넘겨주면서까지 싸움을 피하려고 했던 노인이라면 완전히 못 믿을 상대는 아니었다.

가만히 그 말을 곱씹던 그는 뒤에 있는 일행들을 바라봤다.

"따로 시간이 필요한 겁니까? 잠깐 시간을 갖도록 하죠. 나 역시도 일행들과의 대화가 필요할 것 같으니."

"그렇게 하죠."

황 노인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타티아나를 잃고, 동요하고 있을 일행들을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 ★ ★

"페데리코라고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나는 정은수라고 해요. 아무쪼록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네요."

어색한 인사가 이어졌다.

결국, 서로가 적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황 노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굳이 싸워서 좋을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어디로 움직일 생각이죠?"

"글쎄. 준우 군은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저쪽은 엘프들의 영역이었다고? 이미 그 의지가 확고하다면 저쪽으로 갈 수는 없을 것 같고."

"영감님이 온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드워프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지."

황 노인과 일행들이 지나온 곳은 드워프들의 영역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드워프들이 실제로 존재했지만,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드워프들은 유난히 산이 높아 보이는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황 노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드워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곳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다.

강준우와 그 일행들과 다른 점이라면 드워프들과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비교적 다른 무리들에 비해서 빠르게 움직였던 강준우였지만, 엘프들과 그들을 공격하려는 인간들 사이에 끼면서 상황이 꼬였다.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늦춰졌고, 결국, 두 무리는 두 종족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마주한 것이다.

"그렇다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네. 우선은 힘을 키우고, 사람들을 모으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떤가?"

"힘을 키울만한 곳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모두가 적절한 포인트를 손에 넣을만한 곳이 부족했다.

그나마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한 곳은 산을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다시 되돌아간다고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이을 지는 의문이었다.

황 노인과 일행들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황 노인의 노력으로 드워프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지만, 그들이라고 드워프의 구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두 무리는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제대로 된 사냥을 통해서 포인트를 확보하고, 힘을 키우는 게 문제였다.

강준우의 말에 황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적당한 장소가 있네."

"황 사부님!"

그의 말에 근처에 있던 정은수가 놀라며 그를 불렀다.

페데리코와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굳이 밝혀서 좋을 게 없는 말을 스스럼없이 알리는 황 노인의 말에 그들은 당황한 듯 그를 일깨웠지만, 황 노인은 그들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지금 우리들 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네."

"그래도…"

"이미 두 사람을 잃지 않았나? 파블로는 물론이고, 타티아나까지 잃었으니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네."

"…."

그의 말에 남은 사람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엇보다 파블로를 잃은 게 컸다.

정은수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던 파블로였지만, 경지를 뛰어 넘으면서 황 노인과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됐다.

다만, 불행하게도 이성을 잃으면서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은 황 노인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드워프들에게서 알아낸 소식들이네. 실제로 그들에게 임무를 받았다고 해야겠지."

"임무요?"

"기존에 얻었던 것처럼 따로 전해진 게 아니라, 그들과의 거래라고 봐야겠지."

강준우 역시 엘프들의 대장로와 그런 거래를 마친 경험이 있었다.

드워프라고 그런 거래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강준우의 모습에 황 노인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주 받은 힘을 받아들인 자들을 상대해 달라더군."

"저주 받은 힘? 다크 엘프를 말하는 겁니까?"

"다크 엘프뿐만 아니라 드워프 역시 비슷한 힘을 받아들인 자들이 존재한다고 했네. 그들은 타락한 존재들이라고 불렀네."

"…."

"그리고 그 타락한 존재들은 엘프와 드워프들의 구역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더군. 바로 이 근처지."

황 노인의 설명에 강준우는 말을 아꼈다.

저주 받은 힘을 가진 존재를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 부딪쳤던 다크 엘프들은 어려운 상대였다.

극마경에 올랐던 그조차 쉽게 잡을 수 없던 자들을 상대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나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기에서 다크 엘프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와 황 사부라고 불리는 노인뿐이었다.

일전에 만난 다크 엘프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힘든 상대였다.

물론, 서로가 힘을 합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문제는 이제 막 마주한 두 무리였다.

따로 답을 하지 않는 강준우의 모습에 황 노인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다.

"어떤가? 당분간은 함께 움직이면서 힘을 키우는 것이?"

"이미 사냥을 통해서 부딪칠 것을 우려하지 않았나요?"

"상황이 조금 특별하지 않은가? 우리들 힘만으로는 아무 희생 없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

"잡음이 생기는 걸 피할 수 없을 텐데요?"

"사냥감을 나눠야겠지. 어차피 원칙만 정하면 될 것 같은데?"

구미가 당겼다.

황 노인은 아직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목표를 정해주고 있었다.

'타락한 자들이라.'

작지 않은 포인트와 경험을 쌓게 만들어줬던 자들을 떠올린 강준우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 너희들 생각은 어때?

따로 하야테를 이용해서 각각의 생각을 확인했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힘을 키울 계기가 필요했다.

조금 힘들더라고 그만한 사냥감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안심을 할 상황은 아니었다.

말은 적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언제 상황이 달라질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원칙이라는 걸 정해보도록 하죠."

"… 알겠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부딪치지 않는 것이었다.

황 노인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아무래도 섞여서 움직이는 것은 힘들겠지? 나타나는 놈들에 따라서 순번을 정하지."

"예를 들면요?"

"짝수라면 반반씩 나누는 게 좋겠고, 홀수라면 번갈아가면서 처리하는 거지."

"괜찮겠습니까? 수는 그쪽이 더 많은데요?"

"자네들이 양보를 해준다면 우리가 조금 더 많은 놈들을 잡는 것으로…"

"좋습니다."

강준우는 너무나 쉽게 답을 했다.

뱀파이어의 성에서 봐왔던 그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무슨 꿍꿍이지?'

정은수는 의아한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봤고, 그녀를 통해서 그와의 일을 전해들은 황 노인도 내심 놀라워했다.

'은수 양이 말한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았다.

조금만 잘못했다면 죽었을 지도 몰랐다는 그녀의 이야기로 미뤄봐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황 노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차피 정보도 그쪽에서 제공한 거고, 수도 많으니 더 많은 놈들을 가져가는 건 당연하겠죠."

"이해해주니 고맙네."

"대신, 그 보상도 조금 나눴으면 좋겠네요."

"… 보상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드워프들과 했다던 거래요."

"…."

"어차피 우리도 도움이 되는 거니까, 그들에게서 받을 보상 중에 일부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말문이 턱 막혀왔다.

생각지도 못한 강준우의 말에 황 노인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정은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면 그렇지. 저 인간이 그냥 양보할 인간이 아니지.'

'흐음. 은수 양의 말이 틀리지 않았던 건가?'

황 노인은 뻔뻔한 강준우의 말에 침음을 삼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드워프와의 거래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 아,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렇게 많이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6:4로 하죠. 우리가 4로요."

"크흠. 그렇게… 하지."

마지못해 답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와중에 보상을 나누려는 강준우의 생각이 너무나 뻔뻔했지만, 정작 본인은 당당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권우철과 남은 일행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역시 강준우! 뭐, 우리한테 나쁠 건 없겠지만.'

왠지 창피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그저 차가운 눈초리만 잠깐 참으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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