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존재들 (4)
새하얀 털을 가진 웨어 울프.
등장만으로 강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와 황 노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어디서 저런 놈이 나타난 거지?'
'나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놈인가?'
경악하는 둘과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놈들 대부분이 그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강자가 나타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황 노인이나 강준우가 나서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이 한참 위에 있는 웨어 울프의 수준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잔뜩 긴장한 두 사람의 모습에 뒤늦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우가… 긴장을 한다고?'
강준우의 이런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초반에 한창 몰릴 경우를 제외하고 근래에는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라미아를 상대할 때에도 당당했던 그였지만, 웨어 울프의 등장과 함께 그의 신경은 곤두 서 있었다.
"준우야? 괜찮은 거야?"
"…."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는 답이 없었다.
강준우의 시선은 오롯이 새하얀 털을 가진 웨어 울프에게 고정돼 있었다.
'극마경? 설마, 그 이상인가?'
앞에 있는 놈의 경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따로 기운을 흘려봤지만, 흘린 기운은 라이칸의 주변에서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고 앞에 있는 놈이 힘을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기운이 흩어졌다.
확실한 것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놈의 모습에 강준우는 황 노인을 향해 은밀히 뜻을 전했다.
-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쉽지 않을 것 같네.
- 모두가 힘을 합쳐야겠네요.
- 그래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군.
황 노인도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만난 상대들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었다.
상대했던 대부분이 그들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막막함을 느끼게 된 상대는 처음이었다.
'흐음. 어쩔 수 없나?'
꼭꼭 숨겨놨던 패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최대한 사용하지 않을 힘까지 염두에 뒀지만, 그렇다고 지금 내보이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 잠깐 시간을 벌어주세요.
- 시간을?
강준우는 황 노인의 답을 듣기도 전에 바닥을 박찼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새하얀 털을 가진 웨어 울프가 팔을 들어 올렸다.
쐐에에엑.
가벼운 손짓과는 다르게 강맹한 기운이 쏟아졌다.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기운이 그대로 강준우를 향해 날아갔다.
허락 없이 움직인 것에 대한 응징이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그 힘은 또 다른 힘에 터져 나갔다.
콰과광.
황 노인이 주먹을 뻗으며 날아가는 기운을 쳐냈다.
커다란 폭발에 공격이 흩어졌지만, 웨어 울프의 기운을 쳐낸 황 노인의 표정은 침음을 삼켰다.
'흐음. 뭐지? 이 반발력은?'
경시하는 마음을 버리고 진지하게 임하며 공격을 쳐냈다.
어느 정도 충격이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충격이 남았다.
황 노인은 진탕되는 내부를 진정시키며 빠르게 움직이는 강준우를 확인했고, 새하얀 털을 가진 웨어 울프는 황 노인을 노려봤다.
'크흡!'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다.
황 노인은 내기를 끌어 올리며 그 힘에 대항했고, 라이칸은 그런 황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쐐에엑. 콰과광.
예의 기운이 다시 날아들었다.
강력하면서도 빠른 힘에 황 노인은 분주히 움직여야만 했다.
황 노인이 라이칸을 붙잡는 동안, 강준우는 기운을 끌어 올리며 남아 있는 웨어 울프 대전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하야테, 모두에게 황 노인을 도우라고 전해!
- 아, 알았어.
"크아아!"
그가 전음을 보내기 무섭게 달라진 대전사가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강준우는 놈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쳤고, 굉음과 함께 대전사의 몸이 둘로 쪼개졌다.
콰앙.
양단된 대전사를 뚫은 강준우는 곧장 검격을 뿌렸다.
현철보검에서 튀어나온 검강이 허공을 격하며 남아 있는 대전사를 노렸고, 놈은 기운을 뽑아내며 공격을 받아냈다.
터엉.
"지금 뭐하는 거야?"
다짜고짜 남은 웨어 울프들을 쓰러뜨리는 강준우의 행동에 페데리코가 황당해하며 소리쳤다. 이미 하야테를 통해서 그의 말을 전해들었지만, 굳이 강준우를 따를 이유가 없었다.
남아 있는 웨어 울프들은 그들의 몫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 약속을 무시하자 페데리코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런 페데리코를 무시했다.
당장은 웨어 울프 대전사를 빠르게 처리하고, 새하얀 털을 가진 놈에게 집중하는 게 나았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강준우의 모습에 페데리코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도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놈을 압박하세요!"
이어지는 정은수의 당부에 화를 삭인 그는 황 노인을 돕기 위해 기운을 쏟아냈다.
띠리링. 삐리링.
정은수는 유키코와 함께 음공을 펼치며 라이칸을 견제했다.
최대한 놈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게 중요했다.
위협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공격도 아니었다.
라이칸은 귀찮은 존재를 확인하며 다시 팔을 휘둘렀다.
예의 강한 기운이 그들을 노리며 날아들었지만,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그 공격을 받아냈다.
콰과광.
"크윽."
"괜찮아요? 힐!"
그들은 힘을 합쳐서 공격을 막아냈다.
강한 위력에 공격을 쳐낸 자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처박혔지만, 권우철과 사제로 보이는 다른 사람은 순식간에 그들의 상처를 치유했다.
황 노인을 필두로 모두가 라이칸에게 집중했다.
강준우는 그 사이, 남은 웨어 울프 대전사들을 모두 처리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이 라이칸이라는 놈을 견제하는 동안, 그는 마지막 남은 대전사의 목을 취했다.
[웨어 울프 대전사를 처치했습니다. 1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만월의 축복을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만월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만월의 축복이 10성으로 올라섰습니다.]
남아있던 대전사들의 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월의 축복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높지 않았던 성취가 순식간에 10성으로 올라섰다.
그만큼 상대한 웨어 울프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만월의 축복이 10성으로 오르면서 부가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만월의 힘이 몸 곳곳에 스며듭니다.]
[힘과 체력이 상승하고, 빠른 회복이 가능해집니다.]
나쁘지 않은 알림이었다.
달라진 스스로의 몸 상태를 확인한 강준우는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상념을 떨쳐냈다.
'저놈이 우두머리겠지?'
아직 범상치 않은 놈이 남아 있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놈이었다.
"파이어 필드!
"트윈 토네이도!"
쿠구구궁.
바닥이 불바다로 변했고, 그 위에 만들어진 토네이도가 불길을 끌어 올렸다.
김연희의 화염 마법과 하야테의 바람 마법이 펼쳐지면서 더욱 강력해진 마법이 웨어 울프를 향해 날아갔다.
황 노인이 물러난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사용한 마법이었다.
시간을 벌기에는 그 위력이 강력한 것 같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웨어 울프를 어쩌지 못했다.
콰과광.
강한 폭발과 함께 토네이도가 찢겨져 나갔다.
불길을 잔뜩 머금은 토네이도 사이로 새하얀 웨어 울프가 튀어나왔다.
라이칸은 뒤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그들을 먼저 제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라이칸을 맞이한 것은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래비티!"
"죽어라!"
"하압!"
기다리고 있던 다이스케가 라이칸의 몸에 압박을 가했다.
유키코는 소수를, 백선화는 기운을 가득 실은 화살을 날리며 라이칸을 공격했다.
콰과광.
강력한 힘을 실은 공격이 새하얀 웨어 울프의 몸에 적중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정은수와 다른 사람들도 강한 공격을 뿌렸지만, 라이칸은 멀쩡했다.
"미친! 맨몸으로 저걸 다 받아낸다고?"
"호, 호신강기예요."
"호신강기?"
새하얀 털에 은은한 빛이 스며있었다.
그게 강기와 비슷한 힘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정은수는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아무리 호신강기라지만, 이 공격을 모두 막아낼 수 있다니!'
새하얀 털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작은 그을음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놈이 뿜어내는 기운만 더 거칠어졌다.
강한 살기가 주변을 잠식하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제야 놈의 힘을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일었지만, 멀쩡한 라이칸에게 강력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쐐에엑. 콰과광.
허공을 격하며 날아든 강력한 기운은 강준우가 날린 강기였다.
회색빛을 띄는 강기에 라이칸은 손을 들어 올리며 공격을 쳐냈고, 놈의 시선이 강준우에게 향했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었다.
믿을만한 수하가 목숨을 잃은 이유는 앞에 있는 놈과 옆에 있는 또 다른 인간 때문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웨어 울프 대전사를 쓰러뜨린 사람도 강준우였다.
모든 것을 목격한 라이칸은 그를 노려보며 노기를 토해냈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천마신공의 공능이 라이칸의 마력에 저항합니다.]
모두를 옥죄는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그 안에 담긴 마력이 그를 압박했지만, 이미 그 힘을 경계하던 강준우는 라이칸의 마력을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그는 오히려 놈을 도발했다.
"개새끼라 개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크아아!"
담담한 강준우의 반응에 라이칸은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강한 외침이 다시 주변을 뒤흔들었고, 일부 사람들이 그 마력에 충격을 받으며 크게 휘청거렸다.
"젠장, 이대로라면 사일런스를 사용할 수가 없잖아?"
"피어에 단단히 대비해!"
정은수와 유키코가 음공을 사용했기 때문에 따로 사일런스를 펼칠 수 없었다.
그나마 강준우가 놈을 막아내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지만, 강준우의 상황도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도 겨우 버티고 있는 게 전부였다.
휘이익. 터엉.
'크윽.'
라이칸의 앞발이 강준우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강기를 가득 머금은 강력한 힘을 최대한 흘려서 막아냈지만, 충격을 모두 떨쳐낼 수 없었다.
'최대한 힘을 흘린 게 이 정도라니!'
얼얼한 팔을 털어낸 그는 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천마군림보롤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라이칸을 괴롭힐 생각이었지만, 상대는 멀쩡했다.
- 이런 잡기가 통할 것 같더냐?
천마군림보를 잡기로 취급하는 라이칸은 더욱 힘을 끌어 올리며 강준우는 공격했다.
눈앞에서 동족을 죽인 놈을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콰과광. 콰과광.
연신 팔을 휘두르자 주변에 휩쓸려나갔다.
강한 위력이 그를 뒤흔들었지만, 찢어 죽이려는 놈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죽어라! 매직 미사일 12연발!"
"미친! 그런 걸로 죽을 것 같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다고 여기에서 라이트닝을 섞을 수는… 아!"
유키코의 타박에 대꾸하던 다이스케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다시 마법을 캐스팅해 나갔다.
그와 다른 사람들이 날린 마법은 라이칸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지만, 이번에 날린 공격은 조금의 효과를 보였다.
"매직 미사일 12연발, 그래비티!"
"무슨 개소리가 그렇게 유창…"
쿠구궁.
터져 나가는 마법에 라이칸이 휘청거렸다.
가벼운 매직 미사일에 그래비티를 섞으면서 중력을 다르게 적용한 것이 효과를 보였다.
그 틈을 노리며 황 노인이 달려들었다.
라이칸의 뒤를 잡은 황 노인은 금빛의 강기를 가득 두르며 장력을 쏟아냈다.
순간 생겨난 수많은 수영이 그대로 라이칸의 몸을 뒤덮었다.
천개의 장력은 바로 천수여래장(千手如來掌)이었다.
하나하나가 강한 힘을 머금고 있었다.
천개나 될 법한 여러 개의 수강이 그대로 라이칸을 향해 쏘아졌고,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콰과과광. 콰과광.
작정을 하고 펼친 강력한 공격에 지축이 흔들렸다.
라이칸이 있던 자리가 초토화됐고, 일행들의 놀란 표정이 밝아졌다.
"주, 죽은 건가?"
"조심해라. 아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
"크아아아!"
황 노인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커다란 포효가 뒤를 이었다.
강한 기파가 퍼져나가며 피어 오른 먼지를 날리자, 라이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머, 멀쩡하잖아?"
"…."
건재한 놈의 모습에 모두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거리를 좁힌 강준우가 수많은 강기를 뽑아내며 라이칸을 노렸다.
'천마기멸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