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놈 (3)
'따로 자아가 있는 건… 아니겠지?'
정작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강준우는 새로운 의문을 품었다.
지금 그의 몸이 보이는 행동은 마치 다른 자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몸이라면 이런 식의 함정을 판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질문에 답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따로 그 존재를 찾아봐도 답을 해오는 사람은 없었고, 지켜보는 그로서는 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쉬이익.
고민하던 강준우는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상념을 떨쳐냈다.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공격을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피, 피했어!'
기습을 펼친 수르빈은 상대의 죽음을 확신했다.
유령보를 펼치면서 뒤를 잡을 때까지 상대는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앞에 있는 남자뿐만 아니라 그를 공격하고 있는 다크 엘프도 그녀의 존재를 몰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 허를 찌른 완벽한 기습이었다.
당연히 기습은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강준우는 너무나 쉽게 공격을 피해냈다.
허공을 가르는 검격에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크큭."
"우, 웃어?"
괴소를 흘리는 강준우의 모습에 이 모든 게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보인 연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기 무섭게 숨이 턱 막혀왔다.
"끄윽."
기습을 피한 강준우는 그녀의 품을 파고들며 그녀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빠르게 몸을 두드리며 그녀의 몸을 구속했다.
'미친!'
순식간에 점혈을 펼치며 그녀를 묶었고, 그 틈을 노리며 다크 엘프가 달려들었다.
그로서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그대로 강기를 뽑아내며 검을 내지르자 상대의 살을 파고드는 확실한 감각이 전해졌다.
푸욱.
다크 엘프가 내지른 검은 그대로 강준우의 몸을 꿰뚫었다.
파고든 강기는 내부를 휘저을 게 분명했고, 공격을 받아낸 인간은 그대로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게 뻔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행동에 밝았던 다크 엘프의 표정이 구겨졌다.
"크큭."
"이게 무슨!"
강준우는 그대로 검을 찔러 넣은 다크 엘프의 팔을 붙잡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움직이는 그의 행동에 기겁한 다크 엘프가 뒷걸음질 쳤지만, 그 순간, 강한 음기가 파고들었다.
소수마공이 가진 극음의 기운이었다.
잡힌 팔을 구속하려는 듯이 강한 힘에 깜짝 놀랐지만, 그는 남은 손으로 강준우를 후려쳤다.
터엉.
기운을 가득 담은 손이 그대로 강준우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대로 머리통을 깨부술 것 같은 강한 위력이었지만, 강준우의 또 다른 손에 막히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느새 수르빈을 내려놓은 강준우가 엘프의 손을 막아냈다.
다른 손에는 혈수마공의 힘이 가득 담겨 있었고, 곧 살이 익는 누린내가 퍼져나갔다.
치이이이익.
"크윽."
다크 엘프도 나름 기운을 뽑아내며 강준우의 혈수를 막아냈다.
하지만 마주한 강준우의 힘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10성으로 올라선 소수와 혈수는 가공할 위력을 내보였다.
거기에 강준우의 손을 벗어난 현철보검이 스스로 움직이며 다크 엘프의 가슴을 꿰뚫었다.
화끈한 고통에 다크 엘프의 몸이 꺾이는 순간, 그의 양팔을 붙잡은 강준우는 천마흡기공을 이용해서 다크 엘프의 기운을 뽑아냈다.
파츠츠츠츠.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내공에 다크 엘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가슴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양 손은 시린 한기와 열기에 묶인 상황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괴로워하는 게 전부였다.
다크 엘프의 기운을 모두 뽑아낸 강준우는 겨우 서 있는 놈의 목을 베어냈다.
소수마공으로 만들어낸 수강이 길게 늘어나자, 그 기운이 유지되며 검을 만들어냈다.
형상기검을 응용한 방법이었다.
일양지뿐만 아니라 소수마공을 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지만, 이제는 그런 응용이 놀랍지도 않았다.
강준우는 전과는 다르게 담담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서걱. 까드드득.
[다크 엘프를 처치했습니다. 7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만들어낸 기검으로 다크 엘프의 목을 베어냈다.
소수마공을 이용한 기검은 강한 음기를 품고 있었다. 그대로 상처가 얼어붙으면서 피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속성을 섞을 수 있구나.'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지만, 곧 쓰러져 있는 다른 사람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조금 전에 사로잡힌 그 여자였다.
'동남아 쪽 사람인가? 아니면 인도?'
까무잡잡한 피부색으로 봐서 대충 어디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전에 상대한 사람들은 아프리카 쪽이었고, 이제는 동아시아 쪽 사람들이었다.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았다.
'그만큼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대단하다는 건가?'
문득 스치는 생각에 강준우는 씁쓸해했지만, 그런 감정도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끄으으으!"
통제를 벗어난 몸은 쓰러진 여자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천마흡기공을 펼치면서 기운을 회복하기 무섭게 복부의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유령보를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유령보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유령보가 6성으로 올라섭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결국 수르빈도 목숨을 잃었다.
제대로 상대를 확인하지 않고, 욕심을 부린 결과였다.
다른 일행들과 함께 움직였다면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을 지도 몰랐다.
적어도 도망갈 기회를 잡을 수 있었겠지만, 결국 그녀 역시 그녀가 쓰러뜨린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됐다.
어렵지 않게 둘을 처리한 강준우의 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운기를 했던 방향이었다.
수르빈이라는 여자가 뒤를 쫓아왔던 곳으로 남은 일행을 찾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의 몸이 다시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강준우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뭔가 이상하게… 변한 것 같은데.'
이번에 얻은 유령보는 물론이고, 일전에 얻은 혈영창법과 제왕검형까지 너무나 쉽게 손에 넣은 것 같았다.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쓰러뜨리면서 얻은 능력이 많았다.
동일한 힘으로 빠르게 성장을 했다지만,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많은 능력을 얻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사람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무공을 손에 넣는 것 같잖아?'
그저 운이 좋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천마강림을 펼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것도 가정일 뿐이었다.
따로 답을 해줄 존재는 없었고, 다시 의문을 품으며 지켜봐야만 했다.
★ ★ ★
"수르빈이 늦는데?"
"그러게. 좋은 거라도 찾은 건가?"
"설마, 또 혼자서 움직이는 건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이미 약속을 했잖아?"
일전에도 혼자 움직이면서 이익을 취했던 그녀인지라 이런 의심이 당연했다.
그만큼 수르빈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혼자 움직여도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약속을 했다고 지킬 년은 아니지. 그럼 이렇게 늦을 리가 없겠지."
"너무 속단하지는 마.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면 알겠지."
정작 기다리라는 말을 꺼냈지만, 수미트 역시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미 많은 전적이 있던 수르빈이었기 때문에 의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이제 다시 사람들 수를 늘려야 하지 않겠어?"
"글쎄."
"점점 버거워진다고. 그 까만 털을 가진 놈들한테 거의 학살당하사피 했잖아?"
일전의 기억을 떠올린 그들은 잘게 몸을 떨었다.
까만 털을 가진 웨어 울프들과 대전사라고 불리는 놈들을 상대하면서 죽을 위기를 넘겼다.
일행들이 모두가 힘을 합쳐서 상대했지만, 놈의 힘을 생각보다 강력했다.
급습을 감행한 웨어 울프들의 손에 그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까만 털을 가진 놈의 손에 절반이 넘는 일행이 쓰러지면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은 고작 네 명이 전부였다.
아직 목표한 곳까지 가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런 강적들을 만난 만큼 적절한 대비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함께 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
마냥 다른 사람을 믿기에는 그동안 겪었던 상황이 너무 치열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곧바로 뒤통수를 맞고 죽어 나갔기 때문에 그들도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
막막함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답답한 마음에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고개를 들어 올린 수미트의 눈이 커다래졌다.
"저, 저…"
"크큭."
우연찮게 올려본 하늘에는 한 사람이 떠 있었다.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 낯선 사람은 그대로 허공에서 검격을 뿌리며 강한 기운을 쏟아냈다.
"피해! 적이다!"
"이런 개 같은…"
급작스러운 기습에 모여 있던 세 사람의 급하게 기운을 끌어 올렸다.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막아내야만 했다.
"끄아아아아!"
그들은 사력을 다해서 강기를 뽑아냈다.
자세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콰과과광. 콰과과광.
엄청난 굉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커다란 폭발에 땅거죽이 뒤집히며 주변을 초토화 시켰다.
날아든 강기는 그저 한 번의 공격으로 멈추지 않았다.
다시 떠오르며 폭풍처럼 휘날렸고, 주변을 휩쓸었다.
[피어를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피어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피어가 10성으로 올라섭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이렇다 할 대응도 하지 못한 그들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곧바로 들려오는 알림에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강준우는 자비 없는 몸뚱이의 움직임에 혀를 내둘렀다.
'곧바로 천마기멸격을 쓰다니.'
은밀한 기습으로 택한 것은 천마기멸격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최강의 초식에 남아 있던 세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무자비한 공격이었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괜히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이렇다 할 변수도 만들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선 그는 어김없이 대환단을 입에 넣었다.
이제는 그 행동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족한 기운은 무조건 대환단으로 채우는 몸뚱이의 행동이 자연스웠다.
하지만 이어지는 알림에 깜짝 놀랐다.
[천마후(天魔吼)를 익혔습니다.]
'천마후를 익혀?'
새로운 무공이었다. 당연히 천마신공을 토대로 펼치는 무공이었다.
음공 계열의 무공으로 흔히 말하는 사자후나 청룡음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무공이었다.
피어가 10성으로 올라서면서 조건이 충족됐다.
천마신공과 관련된 새로운 무공을 익히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무공을 익힌 주체가 강준우가 아닌 그의 몸이라는 점이었다.
포인트를 사용해서 따로 무공을 익히지 않았던 놈이 천마신공과 관련된 무공은 자연스럽게 익혔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네.'
그동안의 움직임을 분석하면서 나름 정립해둔 것들이 하나씩 깨어나갔다.
이대로는 다시 몸을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응? 또 뭐야?'
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낯설지 않은 기운에 그의 몸이 반응했고, 빠르게 바뀌는 시야를 확인한 강준우는 다급히 자신의 몸을 저지했다.
'머, 멈춰!'
멀리서 느껴지는 또 다른 기운은 바로 정령의 힘이었다.
백선화가 부린 정령이 그를 살피고 있었고, 그의 몸은 곧장 바닥을 밟으며 정령을 공격했다.
콰과광.
사용한 천마군림보에 정령이 휩쓸려나갔다.
그대로 역소환 당하며 자취를 감췄지만, 그의 몸은 멈추지 않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향해 빠르게 몸을 날렸다.
'멈춰!'
강준우는 멀리서 느껴지는 사람들을 향해 움직이는 자신의 몸을 확인하며 다시 소리쳤다.
통제를 벗어난 몸뚱이가 왜 그곳으로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행이 위험했다.
적어도 그는 그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씨발, 멈추라고!'
조금 전에 죽은 자들을 떠올린 그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분개한 외침과 함께 움직이던 그의 몸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뭐야? 설마?'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던 몸은 다시 방향을 바꿨다.
도망가는 일행들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