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상황 (1)
[운룡대팔식을 익혔습니다.]
'운룡대팔식이라.'
곤륜을 대표하는 경공이었다.
다른 것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공중으로 몸을 띄우면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운룡대팔식을 익히면 조금 더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거라고 확신했다.
파앗.
가만히 상청무상신공의 기운을 끌어올린 강준우는 가볍게 바닥을 박찼다.
운룡대팔식을 배우기 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허공에 떠오른 그는 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게 운룡대팔식인가?'
허공에서 자유롭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몸 안에 있는 내기를 순간적으로 방출하면서 불가능한 움직임이 가능했다.
찰나의 순간 허공에 부딪치는 희미한 기파를 발판삼아서 몸을 뒤집는 방식이었지만, 기를 운용하는 곤륜의 독특한 방식이라서 그 방식을 안다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동작은 아니었다.
상승 절기 중에 하나인 만큼 무공을 펼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무공을 펼쳐 보였다.
'이런 방식이라면… 허공답보도 가능하겠는데?'
경지가 달라진 만큼, 무공을 보는 자세나 취하는 형식도 변했다.
그저 신기해하며 운룡대팔식을 이용해서 움직인다는 것 자체만을 반기던 잔과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 더 본질을 살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힘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 게 좋을 지를 고민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게 도움이 된 건가?'
천마강림을 펼치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을 때, 가만히 지켜보면서 상황을 살피던 것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휘리릭.
몇 번의 몸을 뒤집으면서 기운을 흘리던 강준우는 다시 바닥으로 내려섰다.
공중에서 운신이 자유로워진 만큼 적들을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마음에 드는 경공까지 손에 넣었지만, 아직 고민이 남아 있었다.
이미 일행들과는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탈마경에 오르기 전에 봤던 것을 끝으로 멀어진 그들이었기 때문에 그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이제 정령이 움직이지 않는 걸보면… 다른 곳으로 움직인 것 같은데.'
뒤를 쫓아오던 일행들도 다른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정령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잘못하면 그의 손에 쓰러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냥 뒤를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갔을 게 분명했다.
'다시 합류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일행들과 다시 만나는 상황도 고려해봤지만, 강준우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상태로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좋을 것은 없어 보였다.
'같이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겠지?'
차라리 다시 만날 때까지 각자가 힘을 키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무조건 포인트를 몰아주는 것보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힘을 키우는 게 좋았다.
직접 경험한 만큼 일행들도 그런 식으로 성장을 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그냥 따로 움직이는 게 좋겠지?"
황 노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움직여야 한다면 혼자 움직이는 게 좋았다.
이제 서로의 실력에서 차이가 생긴 만큼 힘을 합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트롤을 상대하면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다.
이 정도 강한 힘을 가진 놈들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게 나았다.
"트롤이라."
마음을 정한 그는 가만히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3m를 넘는 거구를 찾는 게 먼저였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 거리가 배는 더 늘어난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트롤로 보이는 놈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공간 자체가 죽은 트롤의 영역이었는지 주변에 다른 생명체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정도 힘을 가진 놈의 구역이라면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한 건가?"
검강까지 받아낼 정도라면 어지간한 자들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상당히 넓은 공간을 살폈지만, 다른 생명체가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문득 이런 놈들이 많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 정도 힘을 가진 놈들이 단체로 모여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질긴 피부와 엄청난 회복력을 가진 놈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같이 싸울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게 중요했고, 남아 있는 놈ㄷ르이 더 있다면 빨리 처리하는 게 좋았다.
마음을 정한 그는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움직였다.
트롤이나 그에 준하는 놈들을 잡으면서 나중을 대비할 생각이었다.
★ ★ ★
"조심해! 그쪽으로 간다!"
"그래비티!"
황 노인의 경고에 다이스케는 곧장 마법을 사용하며 달려드는 다크 엘프를 묶었다.
주변의 중력을 가중시키면서 속도를 늦췄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미친! 중력을 받고도 저런 움직임이라니!"
"노움!"
쿠구구구.
느려진 다크 엘프를 묶기 위해서 백선화는 곧바로 정령을 부르면서 화살을 날렸다.
솟아나온 돌기둥이 다크 엘프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녀가 날린 화살이 다크 엘프를 향해 날아들었다.
김연희도 마법을 펼치며 다크 엘프를 압박했다.
채앵. 화르르르.
곧바로 파이어 월을 세우자, 하야테가 마법을 날렸다.
여러 개의 바람 칼날을 날리며 다크 엘프를 공격했고, 빠르게 움직이던 다크 엘프가 결국 걸음을 멈췄다.
속도를 잃은 다크 엘프는 그렇게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라이트닝 매직 미사일 12연발!"
"익스플로전(Explosion)!"
"윈드 블레이드(Wind Blade)!"
"죽어!"
기회를 잡은 그들은 연신 공격을 날려댔다.
수많은 마법과 다른 공격이 그대로 다크 엘프를 두드리자 놈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후우. 그만!"
"뭐야? 잡은 거야?"
"내가 잡았어."
"쳇! 죽 쒀서 개 줬네."
"뭐야? 내가 개라는 소리야?"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이스케는 김연희의 날선 물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한 말이었지만, 김연희는 유난히 날선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분위기가 이상해졌어.'
그들은 강준우를 포기하고 따로 움직이면서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경쟁을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강준우가 있었을 때는 나름 순번을 정하면서 적을 쓰러뜨렸다.
비교적 공평하게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그들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이전의 강준우 못지않은 황 노인이 있었지만, 그는 전부터 함께 해왔던 일행들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인간이 없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처음에 강준우와 황 노인이 정했던 원칙대로 그들이 상대의 절반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지금 그들의 전력으로는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다이스케! 뭐하고 있어!"
"미, 미안!"
유키코는 상념에 빠져있는 다이스케를 일깨웠다.
멍하니 서 있던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그 짧은 실수가 큰 균열을 만들었다.
"조심해! 한 놈이…"
"그래비티!"
"크윽. 다이스케!"
빠져나온 다크 엘프를 묶는다는 것이 권우철도 함께 묶었다.
중력의 영향을 받은 권우철은 다크 엘프를 놓쳤고, 놈은 일행들 사이를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조심해!"
"노움! 막아!"
백선화는 곧장 노움을 불러내며 다크 엘프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움직임을 예상한 다크 엘프는 바닥을 박차며 위로 뛰어 올랐다.
쿠구구궁.
솟아오른 돌기둥을 뛰어 넘은 놈은 그대로 백선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캐스팅 시간이 필요 없는 정령을 사용하는 인간을 먼저 처리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이미 힘을 사용한 그녀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이렇게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강준우의 도움으로 뒤에서 안전하게 정령 마법을 사용했던 그녀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고, 곧 다크 엘프의 검이 날아들었다.
"선화야!"
쉬이익. 터엉. 촤아악.
다크 엘프는 백선화의 앞에 내려서며 검을 뿌렸다.
기운을 잔뜩 머금은 검격이 그녀를 베어냈지만, 한 사람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야테!"
"크윽."
갑옷을 입고 있던 그가 크게 베이며 휘청거렸다.
강준우가 건넸던 판금 갑옷으로 충격을 줄였지만,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검에 베인 갑옷이 벌어졌고, 그 사이로 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일격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하야테가 비틀거리자, 다크 엘프는 다시 검을 회수하며 그의 가슴을 노렸다.
"죽어라! 인간!"
살기 가득한 외침과 함께 다크 엘프의 검이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그 순간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빠르게 다가왔다.
"헤이스트!"
"저리… 꺼져!"
콰앙.
유키코가 빠르게 달려들며 다크 엘프를 튕겨냈다.
김연희의 도움으로 속도를 끌어 올린 그녀는 소수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장력을 뿌렸고, 다크 엘프는 그 공격에 밀리며 하야테에게서 멀어졌다.
"괜찮아?"
"크윽. 괜찮…"
"권 상!"
"걱정하지 마! 리스토레이션!"
권우철은 곧바로 회복 마법을 사용하면서 그를 치료했다.
창백했던 안색에 다시 제 색을 찾았지만, 아직 다크 엘프는 건재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놈의 모습에 유키코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우선 내가 저놈을 상대하고 있을 게."
"되도록이면 마공을 쓰지 말라고…"
"네가 한 눈을 팔아서 이런 사단이 일어난 거잖아!"
"… 미안."
유키코는 걱정어린 다이스케의 말을 일축했다.
이미 강준우가 정신을 잃은 모습을 봤던 그녀였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소수마공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저 사람들도 따로 도와줄 여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어쩔 수 없지!'
그녀도 내키지 않았다.
9성에 머물러 있던 소수마공은 어느새 10성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숙련도 대부분이 차 있는 상황에서 되도록이면 소수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성취가 낮은 파혼소만으로는 놈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나마 헤이스트를 이용해서 속도를 끌어올린 지금이 기회였다.
유키코는 곧장 다크 엘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밀려난 다크 엘프는 파고든 한기를 떨쳐냈지만, 그 순간 강한 힘이 다시 그를 짓눌렀다.
"홀리 라이트!"
"크윽."
권우철의 신성 마법이 다크 엘프를 두드렸다.
저주 받은 힘을 간직한 다크 엘프에게는 꽤나 큰 피해를 남기는 마법이었다.
그동안 쉽게 맞출 수 없었지만, 머뭇거리는 지금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적중시킬 수 있었다.
"하압!"
주춤거리는 다크 엘프의 모습에 유키코고 곧바로 힘을 쏟아냈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장력을 뻗자, 시린 기운이 쏘아졌다.
까드드득. 터엉.
주변을 얼리며 쏘아지는 강한 장력에 다크 엘프는 검을 휘두르며 공격을 쳐냈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다크 엘프였기 때문에 큰 피해를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의 공격이 부서져 나갔다.
깨져나간 얼음 조각이 허공에 흩어졌지만, 그 틈을 노리며 뒤에 있던 일행들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익스플로전!"
콰과광.
쐐에엑. 채앵.
곧바로 김연희의 화염 마법과 백선화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두 사람의 공격이 밀리고 있는 다크 엘프를 흔들었고, 다시 권우철이 홀리 라이트를 날리며 다크 엘프를 두드렸다.
"크윽."
충격을 받은 다크 엘프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에 우선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지만, 그 순간 다이스케의 마법이 그를 옥죄었다.
쿠웅.
늘어난 중력에 다크 엘프의 얼굴이 구겨졌다.
유키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남은 힘을 쥐어짰다.
"하압!"
커다란 기합과 함께 예의 시린 장력이 쏟아졌다.
날아든 장력 주변으로 수증기가 얼어붙으며 힘을 더했다.
예전에 웨어 울프 상급 전사를 처리했을 때, 사용했던 그 기술이었다.
콰과광.
소수마공의 오의가 펼쳐졌고, 그 힘이 그대로 다크 엘프의 가슴을 꿰뚫었다.
엄청난 공격에 결국 다크 엘프가 뒤로 넘어가자, 모두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정신 차려! 아직 다른 놈들이 남아 있어!"
김연희는 남은 사람들을 일깨웠다.
아직도 상대할 놈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을 살피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기온이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의 중심에는 유키코가 서 있었다.
그런 그녀의 상태는 평소와 달라 보였다.
까드드득.
그녀의 주변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김연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뭐야? 유키코, 괜찮아?"
"크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