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234화 (234/254)

예견된 상황 (2)

시린 강풍은 한참동안 계속 이어졌다.

심상치 않은 유키코의 모습에 그녀와 함께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숨을 죽이며 그녀를 주시했다.

"뭐하는 거야? 정신들 차려!"

차라랑.

정은수는 곧바로 검을 흔들며 그들을 일깨웠다.

검신에 달린 둥근 고리가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흘러 나왔다.

유키코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고, 황 노인도 그들을 일깨웠다.

"모두 싸움에 집중하게!"

"알았어요."

정신을 차린 그들은 남은 다크 엘프들을 상대했다.

다크 엘프들 역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것 같았지만, 황 노인의 일갈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최대한 거리를 벌리게.

"예?"

- 그 여자에게서 멀어지게. 가까이 있어봤자 좋을 것은 없으니까.

권우철은 황 노인의 말에 일행을 대동하고 거리를 벌렸다.

유키코는 여전히 강하게 휘몰아치는 기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뒤로 물러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괜찮을까?"

"…."

강준우에 이어서 유키코까지 이런 모습으로 변하자 모두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콰앙.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다시 싸움이 이어졌다.

유키코가 빠져나간 만큼 위험은 더 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다크 엘프들의 수를 어느 정도 줄였다고 하지만,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다.

"조심해!"

"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견제할 테니까."

"연희야? 상황을 봐서 헤이스트를 걸어 줘."

"알았어."

권우철은 다시 방패를 세웠고, 남은 사람들도 다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되도록이면 소극적인 움직이면서 놈들의 공격을 피할 생각이었다.

콰과광.

황 노인이 권강을 뿌리며 다크 엘프를 몰아붙이고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유리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다른 변수가 생겼다.

"유키코! 위험해!"

그들과 대치하고 있던 다크 엘프들 중에 한명이 유키코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몰아치는 기운을 뚫고 근접한 다크 엘프는 곧장 단검을 휘두르며 그녀의 목숨을 노렸다.

절체절며으이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유키코의 심장이 꿰뚫릴 게 분명했지만, 그 순간, 유키코가 눈을 떴다.

달려드는 다크 엘프를 확인한 그녀는 곧바로 손을 뻗으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과과광.

그저 손을 뻗은 게 전부였지만, 내보인 위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달려들던 다크 엘프는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밀려난 다크 엘프의 몸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드러난 광경만으로도 유키코가 내보인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보다 더 강해진 거지?"

"설마, 경지를 뛰어 넘은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유키코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이 까만 빛으로 물어들어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눈 전부를 차지한 것 같은 섬뜩한 모습이었다.

쐐에엑. 콰앙.

펼치던 공격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가벼운 손짓에 강력한 장력이 쏟아졌다.

"가, 강기잖아?"

"저게 강기라고?"

새하얀 섬광이 조금 더 짙어졌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겨우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다크 엘프였지만, 놈도 쉽게 받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압!"

커다란 기합과 함께 유키코의 장력이 전방을 가득 채웠다.

앞에 있는 다크 엘프를 향해 수많은 수강이 쏟아졌고, 다크 엘프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콰과과광. 콰과광.

"크윽."

쏟아지는 장력은 평소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누구보다 기민한 움직임을 내보이는 다크 엘프라면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모, 몸이!'

공격을 받아내면 받아낼수록 몸이 굳어가고 있었다.

지독한 음기에 노출되면서 움직임이 무뎌졌고, 그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냈다.

콰과광. 콰광.

승기를 잡은 유키코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목숨을 끊으려는 듯이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커헉!"

시간이 지날수록 다크 엘프의 움직임은 더 굳어졌고,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다크 엘프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강한 충격에 피를 토했지만, 그마저도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쓰러진 다크 엘프의 주변은 이미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였다.

동장군이 강림한 것처럼 유독 그곳만 냉기가 가득했다.

곳곳에 만들어진 얼음들은 유키코의 공격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 알려줬다.

"조심해! 그쪽으로 몰려간다!"

동료의 죽음에 다른 다크 엘프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다른 사람을 상대하던 그들이었지만, 몇몇은 곧바로 목표를 달리했다.

권우철과 일행을 공격하던 다크 엘프도 곧바로 유키코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인지한 유키코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콰앙. 까드드득.

그녀는 다시 장력을 뻗으며 다가오는 다크 엘프들을 막아냈다.

강력한 음기에 쏘아진 장력은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주변이 얼어붙으며 기다란 얼음 기둥이 생겨났고, 만들어진 기둥은 그대로 유키코의 손에 들어가며 얼음 창으로 변했다.

채앵. 파사삭.

날카로운 얼음 창은 다크 엘프의 공격에 너무나 쉽게 깨져나갔다.

하지만 비산하던 조각은 다시 쏘아진 장력과 휩쓸리며 강한 와류를 만들어냈다.

"저건 준우가 사용했던 그 수법이잖아?"

"준우가 사용한 수법?"

유키코의 공격은 강준우가 사용한 천마복룡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부서진 얼음 조각이 쏘아낸 장력에 휩쓸리면서 더욱 위력을 높였다.

강기의 조각에 비하면 그 위력은 한참 모자라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다크 엘프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콰앙.

공격을 받아낸 다크 엘프는 큰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그들 역시 만만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녀의 공격이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막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계속해서 날아드는 다음 공격들이었다.

콰과광. 까드드득.

"크윽."

노출된 음기가 그들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따로 기운을 흘리며 파고든 음기를 떨쳐낼 수 있었지만,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을 때의 일이었다.

유키코는 미친 듯이 그들을 몰아붙였다.

내공이 무한인 것처럼 계속해서 쏟아내는 기운에 결국 다크 엘프들이 꺾여나갔다.

"엄청나잖아?"

"대박! 정말로 경지를 넘은 것 같은…"

"무, 물러나!"

경천동지할 위력을 뿜어내는 유키코의 모습에 놀란 김연희가 중얼거렸지만, 권우철이 다급히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크 엘프를 쓰러뜨린 유키코의 시선이 어느새 그들을 향해 있었다.

강력한 살기가 그들을 옥죄었다.

같은 편이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살기에 권우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아!"

유키코는 곧장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얼마 전까지 친근했던 동료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권우철은 방패에 신성력을 더했고, 김연희는 곧바로 헤이스트를 사용하며 그를 도왔다.

콰앙. 까드드득.

강한 장력을 받아내기 무섭게 그의 방패가 얼어붙었다.

방패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음기에 기겁한 권우철은 신성력을 끌어올리며 힘을 떨쳐냈다.

"유키코! 정신 차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차라랑. 콰앙.

주변에서 지켜보던 정은수가 곧바로 검을 떨쳤다.

독특한 힘이 그대로 유키코를 공격했다.

음파에 기운을 담은 위력적인 공격이었지만, 유키코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녀는 오히려 공격이 날아든 쪽을 향해 장력을 뻗었다.

어느새 투명하게 변한 손이 수많은 잔영을 남기며 강력한 공격을 쏟아냈고, 새하얀 수강이 정은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과과광.

그녀로서도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이었지만, 검은 인형이 그녀의 앞을 막으며 날아오는 공격을 쳐냈다.

"후우우."

"황 사부님!"

"물러나 있게."

황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말에 정은수는 지체 없이 뒤로 물러났지만, 권우철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짓인가?"

"유키코를 죽일 생각입니까?"

"…."

권우철의 행동에 황 노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잠깐 겪어본 권우철은 유키코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처한 상황에 맞지 않은 그의 성정을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따로 말을 하지는 않았어도 그가 무슨 이유로 앞을 막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어요."

"허어."

권우철뿐만 아니라 김연희와 다이스케도 같은 생각을 내비췄다.

이들의 굳은 결의에 황 노인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그건…"

"그냥 쫓아내죠."

"쫓아내?"

"그 파블로라는 사람도 그냥 쫓아냈다면서요?"

"그거야 싸우는 과정에서 그가 물러난 거였네."

"으리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차마 그들 손으로 유키코를 처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다이스케의 표정은 단호했다.

'나 때문에 유키코가 저렇게 됐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이스케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면서 유키코가 전면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여긴 다이스케는 적극적으로 나섰고, 황 노인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에 따랐다.

이미 파블로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진 유키코를 잡자고 모두를 버릴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강준우가 걱정이었다.

그가 제정신을 찾았을 때, 그의 동료였던 사람을 처리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어쩔 수 없나? 모두가 너무 물렀어. 쯧쯧.'

혀를 찬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그냥 물러나게 만드는 걸로 하지."

"감사합니다."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거네. 파블로와는 또 다른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같은 주화입마라고 하더라도 가진 힘이 달랐다.

소수마공은 상대하기 어려운 무공이었고, 지금의 유키코는 그 힘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 ★ ★

주변을 둘러보는 강준우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도 안 보이는 거지?"

쓰러뜨린 트롤이나 그에 준하는 놈을 찾아서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 생명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꽤나 넓은 지역을 살폈다.

하지만 그가 확인한 곳에는 상대할 수 있을만한 놈이 없었다.

"이쪽에는 생명체 자체가 없는 것 같은데?"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맥 너머에는 적으로 보이는 놈을 찾을 수 없었다.

상대했던 트롤이 가진 힘을 보면 놈을 상대할 수 있을만한 존재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넓은 구역을 혼자 차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여기가 특별한 곳인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더 강한 상대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산을 넘었지만, 오히려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그로서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이대로 산으로 가?'

이제 남은 곳이라고는 목표했던 높은 산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깐 고민하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산에 자리 잡은 놈이 얼마나 강할지 짐작할 수 없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모든 일을 꾸민 놈이라면 지금 힘만으로는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무래도 조금 더 힘을 키워야 할 것 같았다.

'최소한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가는 게 좋겠지?'

곧 마음을 정한 강준우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직은 많이 부족했다. 다른 놈들을 상대하면서 무공의 성취를 올리는 게 먼저였다.

주변에 생명체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다시 산맥으로 들어섰다.

"타락한 놈들을 마저 처리하는 게 좋으려나?"

개체 수가 적은 트롤을 찾는 것보다 다크 엘프나, 다크 드워프를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기감을 펼치며 주변을 살폈다.

콰앙. 콰앙.

멀리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누군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강력하게 느껴지는 힘을 확인하며 유령보를 펼쳤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확인하며 깜짝 놀랐다.

'뭐야? 쟤가 왜 여기 있지?'

시린 장력을 뿌리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유키코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일행들과 함께 있어야할 그녀가 혼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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