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상황 (3)
'흐음. 주화입마에 빠진 건가?'
가만히 유키코의 모습을 살피던 강준우는 침음을 삼켰다.
눈이 돌아간 그녀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천마강림을 펼치면서 그런 상황을 겪어봤던 그인지라 누구보다 그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와는 조금 달랐다.
경지에 오르는 과정에서 무공에 먹힌 그녀와 다르게 그는 신공의 도움으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상태였다.
'좋지 않은데.'
계속해서 내공을 쏟아내는 그녀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아직까지 힘은 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의 기운이 그녀에게 빠르게 모여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녀에게 대항하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여러 명이 그녀를 상대하고 있었다.
콰앙. 까드득.
"물러나!"
"크윽. 이 음기는 뭐야?"
"소수마공이야! 정면에서 막지 마!"
한 사람이 날아오는 장력을 막아냈지만, 소수마공의 한기는 상대하기 어려운 힘이었다.
유키코는 본능적으로 그 틈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이 그녀를 쳐내며 동료를 도왔다.
퍼엉.
급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유키코는 그 힘에 반응했다.
두 팔을 모으며 공격을 받아냈고, 별다른 충격을 입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남은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미치겠네!"
"그래도 잡기만 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거야 잡았을 때, 일이지. 이대로라면 쉽지 않겠어!"
강준우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개입을 할지, 가만히 지켜볼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오히려 유키코가 저들을 처리하면 성장을 이어가면서 주화입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먼저 시비를 건 쪽은 유키코겠지?'
제정신이 아닌 유키코가 먼저 그들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상황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유키코의 힘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상대하는 사람들 역시 만만치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화경인가?'
이미 그녀의 힘을 뛰어넘는 사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하압!"
콰과광. 콰지직.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순식간에 유키코와의 거리를 좁힌 사내는 그대로 주먹을 뻗으며 그녀를 후려쳤다.
강한 충격에 유키코가 밀려났고, 사내의 주먹에서 흘러나온 뇌기가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이미 정신을 잃은 유키코였지만, 그 충격에 신음을 흘렸다.
주변에 있던 사내의 동료들은 작정을 하고 나선 그의 모습을 반기며 말했다.
"아부하비. 벌써 나서는 거야? 조금만 더 힘을 빼면 그때 움직이지."
"계속 지켜보면 누군가는 다칠 것 같아서."
"그런 가?"
"어차피 마공을 익혔으니까, 저년은 내가 가져도 괜찮지?"
"당연하지. 우리가 잡아봤자 무공이 넘어오는 것도 아니니까. 네가 잡아야지."
나름 체계가 잡힌 것 같았다.
아부하비라고 불리는 남자가 나선 것은 유키코를 끝내기 위해서였다.
유키코 역시 상대의 힘을 느끼고 있었다.
아부하비라는 자가 숨겨놨던 힘을 드러내자 유키코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녀 역시 그의 힘을 인지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았는지 그녀도 지지 않고 힘을 드러냈다.
휘이이이이.
까드득. 콰지직.
두 사람이 내뿜은 기파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흘렸다.
만만치 않은 서로의 힘에 지켜보던 자들이 거리를 벌렸다.
"하압!"
먼저 움직인 쪽은 유키코였다.
그녀는 곧장 달려들며 장력을 뻗었고, 시린 기운이 아부하비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섬전 같은 일격이었다.
새하얀 기운이 아부하비의 몸을 후려쳤지만, 순간 아부하비의 몸이 사라졌다.
잔상이 사라지기 무섭게 남아 있던 뇌기가 그게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려왔다.
콰지직.
남은 기운이 유키코의 몸을 옭아맸다.
아부하비는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 내면서 놀란 유키코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앙. 우르르르.
강력한 일격에 유키코가 튕겨져 나갔다.
뇌성을 흘린 주먹은 그만큼 강력했지만, 정작 공격을 성공시킨 아부하비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걸 막았어?'
밀려난 유키코는 어느새 양 팔을 모으고 있었다.
성취가 오를수록 양 팔이 금강불괴에 가까워진다는 소수마공이었다. 아무리 뇌기를 가지고 있다지만, 그녀의 무공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멀쩡한 유키코의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던 자들이 조금씩 힘을 더했다.
아부하비 역시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이런 상황을 많이 접한 것 같았다.
아부하비는 거리낌 없이 움직이며 기회를 엿봤다.
쐐에엑. 콰앙.
유키코는 옆에서 날아오는 평범한 마법을 쳐내야만 했다.
파이어 볼뿐만 아니라 검기가 날아들면서 그녀의 시선을 빼앗았다.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고 막아내면서 대응을 이어갔다.
아부하비는 그 틈을 노리며 바닥을 박찼다.
순식간에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고 다시 주먹을 내지르자, 뇌기를 잔뜩 머금은 강기가 그대로 유키코를 후려쳤다.
콰앙.
미처 막아내기도 전에 옆구리를 파고드는 일격에 유키코가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커헉!"
"드디어 잡은 건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만약 제대로 경지가 오르고 부딪쳤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였던 것만큼 오히려 더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쉽게 일어서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아부하비는 마저 기운을 끌어 올렸다.
상대가 쓰러졌다고는 하지만, 경시하는 마음을 버렸다.
많은 상황을 겪었던 만큼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유키코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부하비의 신중함이 결국 그녀를 살렸다.
"거기까지!"
"…."
갑작스러운 소리에 아부하비와 남은 일행들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낯선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따로 한 곳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누구냐?"
"미안한 말이지만, 이 사람은 내가 데리고 간다."
"미친!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다 잡은 사냥감을 빼앗아 가겠다는 말에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개의치 않았다.
강준우는 어느새 유키코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갑자기 나타난 그의 모습에 아부하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 나타난 거지?'
바로 앞에 있던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귀신처럼 유키코의 옆에 나타난 강준우의 모습에 그는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미안하군. 얼마 전까지 일행이었던 사람이라."
"미친 자식!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어!"
"개소리 집어 치워!"
나름 미안한 기색을 내비친 강준우의 말에 뒤에 있던 자들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부하비는 그들을 가로막았다.
- 함부로 움직이지 마!
전음을 보내면서도 가만히 손을 들어 올리며 일행들을 막아선 그는 가만히 강준우를 바라봤다.
'뭐, 뭐야? 아무 것도… 느껴지지가 않잖아?'
그 역시 극마경에 오른 고수였다.
마공이라고 할 수 있는 무공을 익히면서도 주화입마 없이 극마경에 올랐다.
그런 그가 강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그마저도 앞에 있는 사람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다.
'설마, 나보다 더 경지가 높은 놈인가?'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매번 놀랄만한 상황을 맞았던 그인지라 이런 상황을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을 그냥 내어준다면, 그쪽에서는 뭘 줄 거지?"
"…."
"먼저 공격한 쪽은 그 여자였다. 우리는 피해를 입었고, 적절한 대응을 한 것뿐이었지. 그 여자를 데리고 가려면 그에 따른 대가를 줘야 하지 않나?"
아부하비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힘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한 고수라면 어느 정도 빚을 지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어갔다.
"좋아. 이 여자를 넘겨주는 대신에 그냥 보내주지."
"… 뭐, 뭐라고?"
"저 미친 자식! 죽어라!"
"바트란! 멈춰!"
강준우의 말에 흥분한 그의 동료는 곧장 검기를 날렸다.
별다른 힘도 느껴지지 않는 놈의 허세를 마냥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쐐에엑.
순식간에 날린 검격이 허공을 가르며 강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모두는 말을 잇지 못했다.
터엉.
강준우는 가볍게 손을 뻗으며 날아오는 검기를 붙잡았다.
그저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 공격을 무로 돌렸고, 그 모습에 모두가 경악했다.
"이것까지만 그냥 넘어가 주지."
"…."
"꼬우면 다시 덤벼보든지."
쿠구구궁.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기운을 뿜어냈다.
작정을 하고 흘린 기운이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웠다.
강력한 살기가 그들을 옥죄었고, 강한 압박에 모두의 무릎이 절로 꺾였다.
'끄으윽. 어떻게 살기만으로…'
그나마 아부하비는 그 힘에 대항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무릎을 꺾지 않으려면 이 힘에 저항하며 공격을 날려야 했다. 하지만 상대를 공격한다면 그 끝은 자명했다.
"그만! 멈춰라!"
"멈춰라?"
"… 그만 합시다."
"합시다?"
"끄으윽."
"알았습니다. 아니, 알겠습니다."
아부하비가 공손한 태도를 취하자 힘이 풀렸다.
뒤에 있던 일행들은 그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아부하비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대로 물러가면 되는 거…"
"되는 거냐?"
"겁니까! 겁니까? 라고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다시 살기를 뿜어내는 강준우의 모습에 아부하비는 손사래를 치며 그를 막았다.
이상한 걸로 꼬투리를 잡는 가준우의 행태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항의라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통하는 이곳에서 약자는 부당한 일에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보내준다는 것만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크흠. 이대로 물러가면 그냥 보내주는 겁니까?"
"왜? 싸우기라도 하게?"
"그럴 리가요!"
"그럼, 그만 가 봐!"
"… 알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빨리 가기나 해."
단호한 강준우의 말에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모두는 말을 아끼며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억울했지만,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들은 강준우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벗어났고, 강준우는 옆에 있는 유키코를 바라봤다.
"하아압!"
가만히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강준우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 일부러 유키코에게 살기를 뿌리지 않았던지라 그녀는 강준우의 힘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공을 끌어 올리며 곧장 소수를 날리는 그녀의 행동에 강준우는 가만히 손을 뻗었다.
투두둑. 투두둑.
유키코는 연신 장력을 뿌리며 강준우를 공격했지만, 그는 수월하게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 와중에 소수의 음기가 그의 내부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강준우는 어렵지 않게 그 기운을 흘려냈다.
'흡수하기에 쉬운 힘은 아니네.'
건곤대나이를 응용하며 기운을 흘리자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그래도 유키코의 마성은 여전했다.
강준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한 그녀의 모습에 가만히 기운을 끌어 올리며 손을 휘둘렀다.
짜악.
"크윽."
가벼운 따귀였지만, 유키코는 그대로 튕겨져 나가며 바닥에 처박혔다.
"너무 강했나?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해라."
"크아아!"
조금 미안해하는 그의 말에 유키코는 바닥을 박차며 다시 달려들었다.
내뻗은 양 손에서 시린 장력이 터져 나오면서 주변을 얼렸지만, 그녀가 뻗어낸 장력은 강준우의 가벼운 손짓만으로 튕겨져 나갔다.
터엉. 쿠웅.
공격을 쳐낸 그는 달려든 유키코의 밀어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녀가 다시 튕겨져 나가며 바닥에 처박히자, 유키코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아무리 주화입마에 빠졌다지만, 본능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주저앉은 채, 눈을 굴리던 그녀는 다시 강준우를 향해 장력을 날렸다.
쐐에엑. 콰과광.
강한 기운을 쏟아낸 유키코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도망가던 그녀의 앞을 강준우가 가로막았다.
"어딜 가려고?"
"이익! 크아아!"
순식간에 앞을 가로막은 강준우의 모습에 유키코는 다시 장력을 뿌리며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역시나 강준우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몇 번의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자, 강준우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제압했다.
투두두둑.
빠르게 혈을 점하자 유키코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점혈을 이용해서 그녀를 묶은 그는 눈알을 굴리는 유키코의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떡하지? 주화입마라니.'
마공을 익힌 만큼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릴 때까지 두드려 패야 하나?"
"크흡."
순간 느껴지는 살기에 유키코가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멈칫거렸고, 강준우는 그 모습을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