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239화 (239/254)

그를 찾아온 자들 (4)

'도대체 어디까지 움직인 거지?'

유키코를 찾던 강준우는 생각보다 멀리 움직인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칸스로프와 상대하고 있는 도중에 도망을 갔다고는 하지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치열했던 칸스로프와의 싸움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서로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인 시간만 보자면 짧다고 느낄 정도였다.

"분명히 이쪽으로 움직였던 것 같은데…"

그녀가 움직인 곳을 가늠하던 그는 걸음을 멈추며 다시 기감을 펼쳤다.

혹시라도 모르고 지나친 부분이 있을 지도 몰랐다.

놓친 부분이 없는지 다시 살필 요량으로 신중하게 기운을 퍼뜨리자, 주변의 정황이 저절로 느껴졌다.

이제는 넓은 공간을 아우를 수 있었다.

그의 감각에 몇몇 생명체가 들어왔지만, 유키코와는 큰 상관이 없어 보였다.

강준우는 찬찬히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뭐지?'

특정한 공간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왠지 그 공간만 어긋나 있는 느낌이 강했다.

처음 마주한 상황에 그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숲이었다. 하지만 이질적인 기운은 더욱 확연해졌고, 강준우는 그 사실을 인지하며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흐음.'

확실히 이상했다.

뭔가에 가려져 있는 느낌에 그는 검을 꺼내들며 허공을 베어냈다.

서걱.

길게 늘어난 강기가 허공을 가르자 공간이 베이며 감춰졌던 곳이 드러났다.

'마법인가? 무슨 결계 같은 거였나?'

잘려나간 공간에서 익숙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유키코가 장력을 뿌리며 낯선 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살피던 강준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공격을 흘리던 낯선 자들도 강준우의 등장에 난처한 기색을 내비췄다.

'저 자는 여기 왜 있는 거지?'

개중에 한 명은 익숙했다. 일전에 마주한 적이 있는 자였다.

이제는 오롯이 그의 힘을 느낄 수 있게 된 강준우는 곧장 기운을 끌어 모았다.

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적의를 가지기 무섭게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자, 당황하던 그들이 강준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오해?"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런 식으로 저 인간을 격리시킨 것뿐이네. 다른 의도는 없었네."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굳이 결계를 만들지 않았을 거네."

"…."

"더군다나 이 인간은 이미 안면이 있지 않은가? 그대와 일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네."

그는 강준우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의 말에 강준우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

마주하고 있는 네 존재가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진 그들을 모두 적으로 돌린다면 결과는 자명했다. 이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따라야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엘프들은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닙니까?"

"맞네. 개입을 할 생각이 없네."

강준우의 물음에 그는 씁쓸해하며 답을 이어갔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존재들 중에 한 명은 바로 엘프들의 대장로였다.

마지막에 그렇게 좋은 관계로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로 대적할 관계도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대장로와 남은 세 존재가 유키코를 상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를 찾고 있던 강준우는 침음을 삼켰다.

그동안 함께 힘을 합칠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여차하면 그녀를 버리고 물러나야만 했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유키코는 연신 장력을 날렸고, 그녀를 상대하던 넷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해냈다.

콰과광. 콰과광.

결계가 깨지고나자 주변이 휩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대장로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강준우를 바라봤다.

"저 인간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건가? 그래도 그대 동료가 아닌가?"

"글쎄요. 정도 이렇다 할 방법이 없더군요."

"흐음."

"우리가 제압을 해도…"

"그럴 수는 없지요."

묘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아직 앞에 있는 자들의 의도를 알지 못 하는 강준우로서는 조금 강하게 나갔다.

얼마 전에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에 대장로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뒤에 있는 셋을 바라보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우선은 저 인간을… 어떻게 해주게."

"제가 그래야 합니까?"

"…."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겠군! 우리가 저런 인간 하나 잡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뒤에서 지켜보던 자는 흥분하며 소리쳤다.

낯설지 않은 외형을 가진 그의 모습에 강준우는 지지 않고 말했다.

"내 동료를 공격한다면… 나 역시 드워프들을 공격하는 걸로 복수를 해야겠지."

"뭐, 뭐야?"

"옆에 있는 자들을 믿고 나대는 건가?"

"이 건방진!"

흥분한 드워프는 노기를 드러냈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으며 옆에 있는 엘프 대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움직인다면 엘프들과도 척을 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죠."

"우리를 모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적어도 여기를 빠져나갈 수는 있을 것 같네요."

강준우의 말대로 그가 작정을 한다면 쉽게 잡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이 말을 꺼내는 의도는 너무나 분명했다.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질 경우에 엘프나 드워프들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엘프 전체가 싸우면 강준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마음을 먹고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확연히 달라진 그의 힘을 인지한 대장로는 끌어 올린 기운을 풀어내며 물었다.

"뭘 원하는 건가?"

"우선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개입하지 않겠다던 엘프가 왜 나선 겁니까?"

"흐음."

잠깐 고심하던 대장로는 남은 셋에게 의지를 전했다.

곧 의견을 조율했는지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우선 저 동료를 막아주게. 모두 말할 테니."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맹세하지. 세계수를 걸고."

쿠웅.

대장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준우는 가볍게 발을 굴렸다.

천마군림보를 펼치자, 그 힘에 반응한 유키코가 화들짝 놀라며 강준우를 바라봤다.

- 이리 와.

"…."

단, 한마디였지만, 그녀는 힘을 줄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이지를 잃었다고 하지만, 호되게 당한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 쉽게 말을 따르는 유키코의 모습에 어쩌면 그녀의 상황이 호전됐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상태보다 마주한 자들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그저 살기를 뿌리는 것만으로 유키코를 막아선 강준우의 모습에 대장로는 놀라워했지만, 곧 그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어차피 그대를 찾아가려고 했었네."

"나를 찾으려고 했다고요?"

"그렇네. 그대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들을 찾을 생각이었지."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는 의아한 눈으로 대장로를 바라봤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드워프 역시 낮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옆에 있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소머리를 한 인간과 여러 개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기운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흐음. 죽은 그놈에게 뒤지지 않은 실력을 가진 자들이 인간을 찾는다?'

강준우는 대장로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저 설명을 해보라는 듯이 대장로를 바라볼 뿐이었고, 그 눈빛에 대장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온 인간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네."

"위협이요?"

"그렇네. 일부는… 우리 엘프들을 공격하더군."

"우리 신수들도 공격하고 있더군요. 이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우리도 살기 위해서 인간들을 상대할 수밖에 없어요."

신수라고 밝힌 여자는 정중한 말투로 끼어들었다.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여자의 마력이 상당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강준우는 머릿속에 한 존재를 떠올렸다.

"구미호?"

"맞아요. 한때 그렇게 불렸었죠. 물론, 인간들에게요."

"나는 미노타우르스라고 불렸다."

"흐음."

모두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모두가 신화 속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었다.

엘프나 드워프뿐만 아니라 신화나 오래된 이야기에서 나올 법한 존재들도 여기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처음 마주한 자들과의 대화가 신기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의도였다.

의아해하는 강준우의 표정에 대장로는 마저 말을 이어갔다.

"일전에 내가 한 말은 기억하고 있는가?"

"어떤 말을 말하는 겁니까?"

"우리 엘프들은 이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는 말말이네."

"그런데 지금은 끼어들고 있군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대장로는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여자가 대신해서 말했다.

"말했다시피 이곳으로 온 인간들이 점점 우리들을 공격하고 있죠. 힘을 모은 인간들은 마냥 무시할 수준이 아니고요."

"그래서 개입을 하겠다?"

"아니요. 그래서 제안을 하려고 한 겁니다."

"제안?"

"그렇네. 제안이네."

진중한 그들의 눈빛에 강준우는 침묵했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지만, 딱히 답을 내놓기는 너무 애매했다.

"이곳으로 넘어온 인간들에게 길을 내어주지."

"길이요?"

"그래. 길이네. 우리 엘프들은 물론이고, 이 일에 관심이 없는 모두가 길을 내어주겠네. 이 산맥에 있는 우리와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네."

"…."

"대신, 우리가 인간들을 적대하지 않도록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할 거네."

한마디로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쉽게 움직이지 않을 대장로가 이렇게 직접 움직인 것을 보면 아마도 산맥으로 들어선 인간들의 수가 생각보다 더 많아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준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 말을 나한테만 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대는 우연찮게 만난 것뿐이네. 지금은 다른 인간들을 찾아다니고 있지. 힘을 모은 인간들을 말이네."

"흐음."

"하지만 그대는…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군. 어쩌면 무리를 지은 인간들보다 그대의 뜻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지."

강준우의 힘을 확인한 남은 세 존재들도 대장로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 중에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힘을 합치는 인간들보다 이런 자가 더 곤란하지.'

'저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아우른다면… 과거의 일이 되풀이 될 터.'

우연찮게 만났지만, 중요한 만남이었다.

그만큼 강준우의 의도가 중요했다.

남은 셋이 대장로의 의견에 동의하며 강준우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여기에서는 싸우지 말라는 뜻입니까?"

"굳이 적의를 보이지 않는 자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뜻이네."

"타락한 자들은 상관없네. 어차피 그들은 우리에게도 골칫거리니까."

"우리와 뜻을 달리한 자들도 여럿이죠. 그들을 공격하는 것까지는 말을 못하겠네요."

문제는 뜻을 달리한 자들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강준우는 그것을 물었고, 그들은 나름 강구한 대책을 내놨다.

"먼저 공격을 하지 않으면… 그들을 공격하지 마라?"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일 것 같군."

"만약 그 뜻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우리도 인간들을 적대할 수밖에 없네."

"…."

"그대들이 상대할 자들은 만만치 않은 자들이네. 여기에 우리들까지 힘을 합친다? 그대들 세상이 멀쩡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대장로의 설득에는 위협까지 포함돼 있었다.

물론, 그런 상황을 꺼리는 것 같았지만, 이들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강준우는 이곳에 모인 넷의 뜻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들과 싸워서 좋을 건 없었다.

조금의 포인트를 얻느니, 강한 적을 만들지 않은 게 더 중요했다.

수긍하는 그의 모습에 넷은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강준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래서 나한테 돌아오는 건 뭡니까?"

"… 뭐라?"

"그 제안에 따르면 나는 뭘 얻을 수 있는 거냐고요. 설마, 염치없이 아무 대가도 없이 그 말에 따르라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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