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에 모이는 사람들 (2)
"여기가 끝이야?"
"여기에서 헤어졌어. 그 뒤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마지막에 싸웠던 곳까지 움직인 유키코는 걸음을 멈췄다.
그녀 역시 기감을 펼치며 주변을 살폈지만, 원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근처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벌써 길을 내어준 것 같은데?"
"그만큼 산맥으로 들어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겠지."
강준우의 말에 동의하는 유키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은 그만큼 서로 부딪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주할 사람들도 앞으로를 위해서 서로가 힘을 합쳐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짜고짜 싸우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겠지? 같은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게 그만큼 매력적이니까.'
다른 생명체를 처리하고 포인트를 얻는 것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쓰러뜨리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컸다.
강탈하는 포인트도 다른 생명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다른 능력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당연해진 이곳에서 조금만 얕보이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옆에는 든든한 사람이 함께 하고 있었다.
유키코는 옆에 있는 강준우를 바라봤다.
여전히 무뚝뚝한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관계를 맺은 만큼 조금 각별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생각을 뒤로한 유키코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어떡하지?"
"천천히 움직여야지. 어쩌면 이런 상황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네."
의미심장한 강준우의 말에 유키코는 불안해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강준우가 앞장섰다.
그는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상태로 움직였고, 주변에 있던 자들도 그와 유키코의 존재를 눈치채며 그들을 살폈다.
따로 속도를 끌어 올리거나 몸을 숨기지 않았다.
강준우는 유키코와 함께 당당하게 움직였고, 일련의 무리가 그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졌다.
"저것들은 뭐지?"
"대놓고 잡아먹어 주라는 식이잖아?"
먼저 그들을 발견한 자들은 오히려 황당해했다.
고작 두 명이 움직이면서 너무나 당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따로 다른 일행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만히 지켜봤지만, 그들은 겨우 두 명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이 모여들기 전에 빨리 처리하는 건 어때?"
"저 여자… 보통이 아니야. 나와 비슷한 힘을 가진 것 같은데?"
"그 정도야?"
무리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에 함께 한 일행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뒤늦게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경이라.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저렇게 당당하게 움직이겠지?"
"그래도 너무 과한 자신감인 것 같은데?"
"어차피 저 여자만 잡으면 되잖아? 저 남자는… 어때?"
"글쎄. 크게 위험한 것 같지 않은데. 모르겠네."
여자가 흘리는 기운이 강해서인지 상대적으로 옆에 있는 남자에게서는 별다른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만만찮은 기운을 가진 여자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 쪽에는 화경이 두 명이잖아?"
"소피아까지 포함해야지. 7서클에 올랐다면 화경 아닌가?"
"오히려 화력은 소피아가 더 강하지."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차피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대화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경에 오른 두 명의 무인과 그에 준하는 강력한 마법사의 조합.
거기에 초절정을 넘어선 자들까지 포함하면 두 명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앞장 설 게!"
"저 둘을 잡는 거야?"
"다른 놈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지."
곧바로 결정을 내린 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주변에 있는 다른 놈들이 모이기 전에 저들을 잡을 생각이었다.
은밀하면서도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행동에 앞장서서 걷던 강준우는 뒤에 있는 유키코에게 언질을 줬다.
- 뒤에서 기습을 해 올 거야.
- 기습?
- 그래. 준비하고 있어.
- 알았어.
유키코는 강준우의 말에 천천히 내기를 돌렸다.
극마경에 오른 만큼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강준우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힘을 끌어올리는 사이, 강준우는 손에 넣은 무공을 떠올렸다.
'천지역전. 이럴 때 사용할 수도 있겠지?'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무공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공격을 해오는 쪽은 저들이었고, 조금 확실히 할 필요도 있었다.
'숨어서 지켜보는 놈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큰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힘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괜히 어설프게 상대했다가는 숨어 있는 놈들까지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도 제대로 된 힘을 끌어 올렸다.
타앗.
나무를 박찬 낯선 자들이 순식간에 그들을 덮쳤다.
사방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그들의 모습에 유키코는 곧장 손을 들어 올렸지만, 그녀보다 강준우의 대처가 더 빨랐다.
'흐읍!'
손을 들어 올린 그가 힘을 쏟아내기 무섭게 달려들던 자들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무형의 힘에 가로막힌 그들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고, 강준우가 손을 내리는 순간 그들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쿠구궁.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위에 떠오른 자들은 강한 힘에 짓눌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자, 모두의 눈이 커다래졌다.
"크윽. 뭐야?"
"마법사야! 이상한 힘을 쓰고 있어."
"먼저 저놈 먼저 죽…"
쿠웅.
그들이 말을 나누기도 전에 강준우는 바닥을 구르며 힘을 흘렸다.
콰과과광. 콰과광.
천마군림보를 펼치자, 바닥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터져나가며 주변을 휩쓸었다.
당연히 강한 폭발에 휩쓸린 자들 중 일부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천마군림보가 7성으로 올라섭니다.]
[천마군림보의 위력이 증가합니다.]
따로 무공이나 다른 능력이 손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천마군림보의 성취가 올랐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이상한 힘을 느낀 몇몇은 허공으로 뛰어 오르며 그의 공격을 피해냈고, 일부는 강한 폭발을 버텨냈다.
이미 넝마가 된 것 같았지만, 공격을 버텨낸 자는 힘겹게 자리를 지켰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공격을 피하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다시 한번 천지역전을 펼치며 뛰어 오른 자들을 끌어내렸다.
쿠웅. 쿠웅.
"미친! 이게 무슨 힘이야?"
"우선 저놈을 노려!"
생각지도 못한 고수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마냥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강준우를 노리며 가장 강한 초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상대는 강준우 혼자가 아니었다.
까드드득. 콰앙.
"크윽!"
뒤에 있던 유키코가 곧바로 장력을 뿌렸다.
새하얀 수강이 날아들었고, 강기를 뽑아낸 자는 다급하게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순식간에 주변의 온도가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들이 적응을 하기도 전에 강준우는 검을 날리며 남아 있던 자들을 노렸다.
거기에 소진한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겨우 버티던 자를 향해 다가갔다.
순식간에 상대의 목을 틀어쥔 그는 천마흡기공을 이용해서 기운을 보충했다.
"이, 이기어검이다!"
"조심…"
콰앙. 콰앙.
혼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현철보검에는 강기가 씌워져 있었다.
처음 보는 형태로 회전을 하는 강기는 도저히 받아낼 수 있을만한 성질이 아니었다.
그의 공격도 문제였지만, 뒤에서 작정을 하고 장력을 뿌리는 유키코도 문제였다.
탈마와 극마에 오른 두 고수의 맹렬한 공격에 그들은 쓰러져 나갔다.
푸욱.
"끄윽. 혀, 현…"
훨씬 윗줄에 있는 고수의 정체를 인지한 사내는 끝내 그 말을 내뱉지 못하고 쓰러졌다.
동시에 들려오는 알림에 강준우는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피어를 획득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는 동일한 능력으로 피어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피어가 12성으로 올라섭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쓰러뜨린 자들 중에 한 명에게서 피어를 얻을 수 있었고, 완성된 능력과 함께 보상이 뒤따랐다.
[관련된 무공의 성취가 100% 상승합니다.(무작위)]
[형상기검이 8성으로 올라섭니다.]
화경에 오른 두 명이 포함된 자들을 상대하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강준우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유키코도 강력한 힘을 내보였다.
'건곤대나이도 대단하잖아?'
이번에 손에 넣은 천지역전이라는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했다.
공중에 떠 있는 자들은 물론이고, 바닥에 있는 자들까지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위력적인 힘이었다.
그가 발출한 힘은 곧바로 주변을 휩쓸었다.
무형의 힘으로, 흔히 말하는 염동력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위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다이스케가 그래비티를 이용하면서 상대를 짓누른다면, 이 힘은 강제적으로 상대를 패대기치는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용한 힘에 만족한 그는 아직 남아 있는 한 사람을 인지하며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뭐야? 어딜 가는…"
콰과과광.
강준우가 사라지자마자 커다란 폭발이 이어졌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기습을 감행한 자들 중에 아직 움직이지 않은 사람이 존재했고, 강준우는 그 사람을 찾아서 움직였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굳이 후환을 남겨서 좋을 건 없었다.
'말도 안 돼! 그 둘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한다고?'
소피아는 준비한 마법을 날리기도 전에 쓰러진 일행의 모습에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그녀가 물러나는 순간 상대도 모습을 감췄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한 그녀는 곧바로 마법을 날렸다.
상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저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자신을 노릴 거라고 확신했다.
상황을 예측하며 곧장 마법을 날리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 화염이 주변을 불태웠다.
하지만 강준우는 그 화염을 뚫고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이익!"
기겁한 그녀는 다시 한번 마법을 쏟아내려 그를 막아냈다.
7서클에 오른 마법사의 힘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마법이었지만, 순식간에 허공을 빼곡히 채운 화염구가 강준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겠지?'
따로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 하겠지만, 시간을 끌 수는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사이에 블링크를 이용해서 자리를 피하는 게 좋았다.
소피아는 만들어낸 화염구를 날리며 나중을 기약했다.
콰과과광. 화르르르.
수많은 화염구가 강준우의 앞에서 터져나갔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폭발을 만들어내며 그의 걸음을 붙잡았다.
강력한 폭발에 불길이 주변을 휩쓸었다.
하지만 시린 기운과 함께 강력한 불길이 씻은 듯이 사그라들었다.
콰과광. 치이이익.
새하얀 섬광이 불길을 휩쓸었고, 주변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어마어마한 힘에 소피아는 다시 한번 놀랐고, 무언가가 그녀의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크윽."
준비했던 블링크를 써볼 겨를도 없었다.
그림자도 남기지 않은 검격과 함께 그녀의 뒤에 나타난 강준우는 검신을 털어내며 쓰러지는 소피아를 바라봤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
[마력 구슬의 소유권이 바뀝니다.]
가지고 있던 상대의 귀물을 손에 넣은 강준우는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다.
많은 포인트는 물론이고, 다른 무공의 성취까지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달라진 주변의 분위기였다.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자들이 조심스럽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릴 것을 염려하며 몸을 낮추는 그들의 모습에 의도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