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의 의도 (3)
벌써 세 명을 처리해놓고 말로 하자는 강준우의 태도가 너무나 황당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제안을 하는 놈이 내보인 힘은 모두가 덤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화경을 넘은 실력자 둘을 가볍게 쓰러뜨리고, 뛰어난 마법사까지 처리한 것 치고는 강준우의 상태가 너무 멀쩡해 보였다.
죽을힘을 다해서 강준우를 겨우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뒤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요. 마, 말로 합시다!"
"우선 무기 좀 치우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끌어 올린 기운도 갈무리하고요."
"알았습니다."
한 차례 강한 모습을 보이자 대화가 통했다.
잔뜩 경계하던 그들은 강준우의 말에 따르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계속 저항을 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기세가 꺾인 그들은 대화를 고집하는 강준우의 말에 따라서 움직였고, 강준우는 바로 궁금한 점을 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뭡니까? 누군가는 텔레포트라고 하더군요."
"텔레포트라니. 그럴 리가요."
정작 갑자기 나타난 그들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반응이었다.
텔레포트라는 말을 처음 듣는 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우리도 갑자기 끌려온 겁니다."
"끌려와요?"
"대뜸 빛에 휩싸이면서 눈을 떠보니까, 당신들이… 무기를 들고 서 있었어요."
"흐음."
"혹시 그쪽에서 우리를 여기로 부른 건 아니죠?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이곳으로 올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요."
"아니요. 그쪽이 갑자기 나타난 겁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어중간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겠죠."
"… 그렇군요."
강준우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하고 물었지만, 앞에 있는 자들도 그들의 이동과는 관련이 없어 보였다.
역시나 누군가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이 사람들만 나타난 거라면 모르겠지만, 다른 무리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엄청난 실력을 가진 자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엘프하고 드워프들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든 건가?'
가장 의심이 가는 자들은 일전에 만나서 제안을 건넸던 놈들이었다.
아무리 인간에 대한 복수를 접었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발을 내디디면서 희생된 동료들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들의 복수는 물론이고,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격리시킬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어찌 됐든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콰과광. 콰과광.
연신 들려오는 주변의 굉음과 폭발에 강준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런 그에게 황 노인이 다가왔다.
"어떻게 상황은 잘 정리를 한 건가?"
"대충은요. 이 사람들도 갑자기 이곳으로 이동됐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말인가?"
"아무래도 다른 힘이 개입한 것 같네요."
"다른 힘이라."
황 노인은 강준우의 말을 뇌까리며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다른 자들의 개입을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대규모로 이동된 사람들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우리들끼리 싸울 거라고 생각하고 이런 수작을 부린 것 같군."
"엘드나 드워프들일까요?"
"그들을 의심하는 건가? 아무리 그들이 힘을 합친다고 하더라도 저 많은 사람들을 보내는 건 힘들지 않겠나?"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그들뿐이었지만, 황 노인은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가만히 그의 말을 곱씹던 강준우도 석연찮은 느낌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누구지? 엘프가 아니라면…'
생각을 해보면 엘프들이 그런 일을 벌일 것 같지 않았다.
세계수에 맹세하던 대장로가 그 맹세를 저버리고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한 놈이 개입을 한 게 분명했다.
'저 산에 있는 놈들 중에 힘이 있는 놈인가?'
가장 명확한 적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작지 않은 힘을 내보이는 놈이라면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들끼리 반목하게 만든다라.'
자리한 사람들 중에 벌써 절반이 넘는 자들이 쓰러졌다.
짧은 순간에 격렬하게 부딪친 사람들의 모습만 봐서는 뒤에 숨어 있는 자의 의도가 적중했다고 봐야했다.
"아무래도 다른 적이 수작을 부린 것 같네요."
"다른 적이라면?"
"저 산에 있을 놈들 중에 하나겠지요. 이렇게 사람들끼리 반목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낯선 상황은 아니니까요."
동굴에서 오크를 상대할 때도 그렇고, 웨어 울프들과 싸울 때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들은 종종 인간들끼리 반목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을 겪은 강준우로서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황 노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한 만큼 그의 말에 동의했다.
"이게 다 놈들의 농간이라니!"
"우선 저 사람들을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이 끼어들었다.
이제 막 이곳에 나타난 자들로, 그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야…"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건 어떻겠나? 이제는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고맙겠습니다."
그들은 황 노인의 제안을 반겼다.
답을 들은 황 노인은 강준우를 바라봤고,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황 노인의 말처럼 이제는 힘을 합쳐야 할 때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간들끼리 반목하면서 서로가 힘을 쌓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지만, 상대의 힘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힘을 전부 가져갈 수 없다는 거겠지?'
힘을 키울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전력은 줄어들었다.
어쩌면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놈들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일을 벌인 것 같았다.
곳곳에 나타난 여러 무리들은 아마도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전부인 것 같았다.
저만한 사람들을 한 곳으로 불러 모은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막대한 힘을 쏟아낸 게 분명했고, 그 의도는 충분히 먹혔다.
"이대로 지켜보고 있을 건가?"
"아니요. 다시 대화를 시도해봐야죠."
"대, 대화?"
"말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보였던 강준우의 뻔뻔한 말에 황 노인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말로… 풀어야겠지."
"남은 사람들을 부탁합니다. 저는 다른 곳으로 움직여보도록 하죠."
"알았네. 조심하게."
말을 마친 강준우는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다시 한번 그의 실력을 확인한 황 노인은 멍한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일깨웠다.
"우선은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괜히 불편한 상황은 만들지 않았으면 하네. 봤다시피 준우 군이 다른 마음을 품으면 쉽게 막을 수 없을 것 같거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확인한 강준우의 성격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황 노인의 지시에 따라서 신중하게 움직였고, 그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 ★ ★
강준우가 향한 곳은 안드레이와 임창현이 있는 곳이었다.
그나마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대화가 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공격을 막아낸다면 상황을 수월하게 풀어낼 수 있었지만, 빠르게 거리를 좁히던 그는 걸음을 멈췄다.
콰과광.
바닥에서부터 폭발한 기운이 날아드는 공격들을 튕겨냈다.
'천마군림보?'
여전히 도약하며 바닥을 내리찍는 임창현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천마신공을 익힌 그가 천마군림보를 펼치자, 무리를 향해 날아들던 마법이 터져 나갔다.
절묘한 순간에 공격을 상쇄시키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뒤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건가?'
임창현은 확실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안드레이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서로 다른 역할을 맡으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무인이 앞을 가로막고 마법사가 뒤에서 공격을 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전보다 더 진화된 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개중에 몇 명은 각자가 진을 형성하며 뒤를 지켰다.
그들은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언제든지 앞으로 나설 준비를 갖춘 채 기다리고 있었다.
임창현이 공격을 막아내자, 적들도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공격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상대하는 자들이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방어에만 최선을 다하자 그들도 이상함을 느끼며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상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도 같군요."
"나중에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임창현은 나서서 그들을 설득했다.
그런 그의 말에 상대하던 자들도 동요했고, 몇몇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대화를 시도했다.
'괜히 나선 건가?'
따로 개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임창현은 물론이고, 상대하는 자들도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아직 싸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이해시키기에는 너무 멀리 온 것 같았다.
계속해서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다시 무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쪽은 어떻게 됐는데?"
"내가 아니더라도 충분하더라고."
"하긴, 임창현, 그 사람도 보통이 아닌 것 같더라."
"그럼 이제 어떡하지?"
"남은 사람들을 막아야하지 않을까?"
"괜히 끼어들어봤자 좋을 건 없지 않을까? 싸움만 더 키우면 어떡해? 그냥 지켜보면 저쪽처럼 싸움을 멈출지도 모르잖아."
강준우의 말에 권우철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 그들이 개입한다면 일이 더 커질 지도 몰랐다.
물론, 강준우의 힘이라면 충분히 통하겠지만, 괜히 원한을 만들어서 나중이 힘들어지는 경우도 고려해야만 했다.
권우철은 그 점을 걱정했지만, 당장은 싸움을 말리는 게 중요했다.
"이 인간이 있는데 뭐가 문제야? 또 대화를 하겠지?"
"차라리 저쪽하고 힘을 합치는 건 어때? 그 정도 규모라면 남은 사람들도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 같은데."
권우철은 어느새 싸움을 멈춘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강준우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고 나서서 이목을 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강준우는 곧바로 임창현을 찾았다.
권우철의 생각을 밝히자, 임창현과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뜻을 반겼다.
모두가 일의 경중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움직이자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가 됐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그들도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엄청나네. 이 사람들이 모두 살아남았다는 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넘어온 거지?"
"지구 전체가 넘어온 거 아닐까요?"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요. 보니까 어린 아이들은 없는 것 같은데."
모두가 겪은 공통점은 어린 아이는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넘어온 것은 분명했다.
힘겨운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도 세 자리 수를 넘기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사실에 모두가 놀랐지만, 가만히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우는 다른 이유로 깜짝 놀랐다.
'크윽. 이건 뭐지?'
절로 몸이 떨릴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자리한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 힘을 먼저 인지한 강준우는 본능적으로 천마강림을 펼쳤다.
쿠구구궁.
갑작스러운 기의 폭발.
모두의 시선이 강준우에게로 향했다.
엄청난 기파를 내뿜은 그의 모습에 모두가 당황하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강준우는 모두의 시선을 무시하며 크게 소리쳤다.
"조심해! 엄청난 놈이 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