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의 위용 (3)
갑자기 상처를 회복하는 니드호그의 모습에 모두는 경악했다.
그를 쓰러뜨리고 강력한 힘을 얻기를 바랐지만, 멀쩡해지는 놈의 모습에 기세가 꺾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쫄지 마! 놈도 지쳤어!"
"맞아.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런 힘을 쓰고 멀쩡할 리가 없잖아?"
"죽여! 놈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
"으아아아아!"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그나마 강준우의 활약으로 놈도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적으로 보였던 놈이 바닥에 처박히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이 있었다.
사람들은 남은 힘을 쥐어짰다.
여기에서 도망을 간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이미 뒤가 투명한 막으로 막힌 만큼, 이제는 도망을 갈 곳도 없었다.
다시 살아난 인간들의 기세에 니드호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다행히 가장 위협적인 놈은 제거한 것 같았지만, 남아서 힘을 합치는 인간들 역시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내가 고작 이런 버러지들에게 위협을 느끼다니!'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한 것이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미 인간계로 이어지는 차원의 문을 만들어내면서 많은 힘을 사용한 상태였다.
거기에 남아 있는 인간들의 분열을 부추기기 위해서 곳곳에 있는 놈들을 한 곳으로 옮긴 것 역시 많은 힘을 필요로 했다.
본체로 현신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남은 놈들에게 브레스를 뿜어내면서 힘은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위협적인 강준우를 제거하기 위해서 다시 브레스를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마법을 펼친 것에도 작지 않은 힘이 들어갔다.
지금의 니드호그는 거의 대부분의 힘을 소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앞에 있는 인간들에게 쓰러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크아아아!"
주제도 모르고 달려드는 놈들의 모습에 분개한 그는 다시 포효하며 달려드는 놈들을 후려쳤다.
콰과광.
"끄아악!"
"조, 조심해!"
지금까지 마법이나 브레스만 사용하던 놈이 처음으로 물리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거대한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주변을 휩쓸자, 달려들던 사람들이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목과 몸이 기괴하게 뒤틀린 자들은 그대로 절명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거대한 몸뚱이에 걸맞은 위력에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던 자들도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생소한 공격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드래곤이 거대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는 위협적이었다.
"하아압!"
콰과광. 콰과광.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낯선 공격에 쓸려나간 사람들의 처참한 모습에 모두의 몸이 얼어붙었지만, 경직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한 사람이 뛰어 오르며 니드호그를 공격했다.
임창현은 천마군림보를 펼치며 강력한 공격을 뿌렸고, 살아남은 안드레이도 그를 따라서 강력한 공격을 쏟아냈다.
두 사람의 공격에 니드호그의 몸이 들썩였다.
큰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곧 날아드는 꼬리가 그들을 덮쳤다.
콰과광.
니드호그의 물리적인 공격은 어지간한 무공의 오의와 맞먹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꼬리가 날아든 곳이 순식간에 초토화됐지만, 다행히 두 사람은 제때 몸을 날리며 공격을 피해냈다.
임창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위로 뛰어오른 그는 다시 떨어져 내리며 힘을 쏟아부었다.
쿠웅. 콰과광.
떨어져 내리며 펼친 천마군림보가 니드호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기운을 집중해서 터뜨리자 놈의 꼬리에 큰 충격이 전해졌다.
"크아아아!"
고통스러워하며 괴성을 지른 놈은 위로 내려선 그를 떨쳐내려는 듯이 다시 꼬리를 휘둘렀다.
육중한 니드호그의 몸이 뒤틀렸지만, 임창현은 그대로 위를 내달리며 힘을 쏟아냈다.
콰과광. 콰과광.
그가 천마군림보를 펼치는 사이, 남은 사람들도 니드호그를 노렸다.
수많은 무공이 그를 두드렸고, 강력한 마법이 그의 몸에 꽂혔다. 하지만 니드호그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비늘 자체가 엄청 단단하잖아?"
"내부를 공격해! 침투경을 이용해!"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그들은 방법을 찾아냈다.
견고한 갑옷처럼 단단한 비늘을 뚫고 타격을 입히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작은 피해라도 누적시켜야만 했다.
니드호그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이 필사적인 만큼 니드호그도 필사적이었다.
콰직.
"끄아악!"
얼굴을 노리는 인간을 통째로 씹어낸 그는 여전히 위에서 충격을 가하는 임창현을 노리며 흡수한 기운을 움직였다.
파바밧.
"크윽."
자유롭게 움직이던 임창현의 발이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단단하던 드래곤의 비늘이 갑자기 일어서며 그의 발을 꿰뚫었다. 철질려처럼 변한 비늘에 피해를 입기 무섭게 떨어져 내린 그에게 거대한 꼬리가 날아들었다.
콰앙.
꼬리의 비늘 역시 날카롭게 세워진 상태였다.
큰 충격에 임창현은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고, 안드레이와 니키타가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임창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직 니드호그의 관심이 떠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임창현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한 니드호그는 그런 둘을 노리며 달려들었고, 니키타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그의 거대한 입에 짓이겨졌다.
아드득.
"이 개자식아!"
니키타를 통째로 씹어 먹는 놈의 모습에 분개한 안드레이의 이성이 끊겼다.
그동안 함께 했던 니키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황보세가의 절초인 천왕삼권을 뿌리며 곧장 니드호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콰앙.
경시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곧 니드호그의 몸에 강한 공격이 꽂혔다.
이전과 다르게 상당한 충격을 남겼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안드레이는 효과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콰지직.
니드호그는 정면에서 그의 공격을 받아내고, 곧바로 그를 집어 삼켰다.
피해를 감내하면서도 그를 먹어치우는 놈의 모습에 누군가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회복한다! 놈이 기운을 회복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를 먹어치우면서…"
"미친! 마법이다. 피해!"
콰과광. 화르르르.
누군가의 외침에 답을 하듯, 니드호그는 곧장 마법을 날렸다.
예의 헬 파이어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날아들었고, 강한 폭발과 함께 주변이 불길로 뒤덮였다.
큰 피해를 입은 놈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공격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놈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막아! 놈이 기운을 회복한다!"
"이런 거지같은!"
날뛰는 놈을 막아낼 사람이 없었다.
화경에 오른 자들이 연신 공격을 날려댔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니드호그의 엄청난 위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몇몇이 자리를 이탈하자, 곧 무리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판단이 피해를 더 키웠다.
콰직. 콰드득.
"끄아아아!"
니드호그 입장에서는 흩어지는 인간은 더 쉬운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일방적인 학살이 이어지면서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졌지만, 강준우의 상태는 여전했다.
도저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선배의 치유 마법이 안 통하는 거야?"
"죽어가고 있어. 준우는… 죽어가고 있는 거야."
"뭐? 죽어가다니? 말도 안 돼! 준우가 죽어간다고?"
"모든 힘을 쏟아냈잖아. 브레스를 정면에서 받아냈으니… 무리도 아니지."
"그, 그럼 어떡해?"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강준우가 아니라면 놈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했다.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었지만, 일어나지 않는 강준우가 더 큰 걱정이었다.
황 노인과 다른 사람들이 사력을 다해서 니드호그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저 시간을 끄는 게 전부였다.
오히려 놈은 다른 사람들을 씹어 먹으면서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나마 믿었던 강준우가 죽는다는 사실에 모두는 좌절했다. 하지만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권우철이 유키코를 밀어냈다.
가진 기운을 끊임없이 흘려 넣던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망연자실한 눈으로 강준우를 바라봤다.
"뒤를 부탁한다. 다이스케."
"궈, 권 상?"
"선배? 무슨 소리야? 뒤를 부탁한다니?"
"모두들… 꼭 살아남아라."
"그게 무슨… 서, 선배!"
"오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권우철은 강준우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며 남은 기운을 쏟아냈다.
"희, 희생?"
옆에서 그 말을 들은 다이스케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권우철의 몸에서 시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을 집어 삼킬 정도로 강력한 빛이 그와 강준우를 휘감았다.
[이놈, 허튼 수작을!]
멀리 떨어져 있던 니드호그도 그 힘을 인지했다.
그가 숭고한 희생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당연히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위협적인 놈을 다시 살리려는 인간들의 모습에 그는 그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막아! 막아요! 놈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야 해요!
물러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하야테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상치 않은 변화에 황 노인은 정은수와 함께 니드호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든 놈을 막아요! 그래야 살 수 있어!"
정은수도 음공을 펼치며 상황을 알렸고, 도망가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맥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연희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니드호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권우철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준우를 살려야만 했다.
강준우가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강준우의 주변을 지키던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쳤고,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니드호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귀찮은 놈들!]
인간들을 먹어 치우면서 점점 힘을 회복하던 그는 남은 힘을 끌어 모으며 그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흩어지려는 놈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보다는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나으리라는 판단이었다.
일부러 공격을 받아내는 놈은 기회를 노렸고, 모두는 필사적인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린 강준우는 무거운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병신 같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목숨을 희생한 권우철의 상태를 강준우가 모를 리 없었다.
그가 희생하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그저 곧 죽을 상황만 막아낸 것뿐이었다.
그가 회복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남은 사람들은 니드호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사이 빠르게 몸을 회복해야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남은 대환단을 다 집어넣고도 여전히 회복은 더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놈이 다시 기운을 모으고 있어. 다시 브레스를 사용할 건가?'
니드호그가 노리는 공격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놈이 기운을 모으는 사이에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해야 했다.
적어도 놈의 공격을 막고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해야 했지만,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가, 강준우 씨."
한 사람이 운기를 이어가던 그를 일깨웠다.
이미 넝마가 된 발에 바닥을 기며 다가온 그는 강준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힘을… 가져가세요."
"…."
"저도 다시 회생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끄윽. 제 힘을 가져가세요."
힘겹게 입을 연 임창현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준우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고민할 게 있습니까?"
"…."
"사실, 당신이 두려웠어요. 같은 힘을 가진 나를 죽일 것 같았죠. 그래서 다른 길을 택한 겁니다. 당신 옆에 안전한 걸 알았지만… 죽기는 싫었거든요."
임창현은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마치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이 중얼거렸고, 강준우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크큭. 웃기죠? 사람들을 살리자고 했던 놈이…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쳤다는 게."
"이해합니다."
"끄윽. 고맙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어요. 대신,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나 대신 사람들이 죽어나갔거든요. 당신을 쫓아갔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을!"
"…."
"이제는 내 차례예요.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내 힘을 흡수하세요."
부담을 없애려는 그의 말에 강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준우는 곧바로 천마강림을 펼쳤다. 그리고 임창현이 내민 손을 붙잡으며 천마흡기공을 사용했다.
파츠츠츠.
임창현의 남은 내공이 강준우의 손에 흘러들어왔다.
그와 다르지 않은 천마신공의 힘이었다.
빠르게 뽑히는 기운과 함께 바라던 알림이 전해졌다.
[천마신공을 획득하였습니다. 기존에 가진 동일한 능력으로 천마신공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천마신공이 12성으로 올라섰습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강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