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천마신공-252화 (252/254)

그의 선택 (3)

대뜸 가슴을 찌르는 강준우의 행동에 니드호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는 안도했다. 이제는 죽으면 이 치욕을 떨쳐낼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만족했다.

콰직.

"크아아아아!"

안도하던 니드호그는 처절한 괴성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겪은 고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강준우는 사시나무 떨 듯이 거대한 몸을 잘게 떨며 괴로워하는 니드호그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이겼다."

[뭐, 뭐라고?]

"네가 이겼다고. 너는 차원을 넘어라."

[무슨 뜻이냐?]

[지금까지 내 노력을 수포로 돌릴 셈이냐?]

강준우의 말에 흐레스벨그는 질겁하며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을 지적하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지만, 강준우는 그의 말을 일축했다.

"닥쳐! 우리들 뜻도 묻지 않고 멋대로 움직인 네놈이 할 말은 아니니까."

강준우의 일갈에 허공에서 생겨난 흐레스벨그의 형체가 출렁거렸다.

침묵하는 그의 모습에 강준우는 니드호그를 향해 물었다.

"내가 포기하면 너희들은 차원을 넘을 수 있는 거 아니냐?"

[포기라고? 설마, 죽겠다는… 끄아악!]

"내가 미쳤냐?"

[…."]

"너희들이 차원을 넘을 수 있도록 공격을 하지 않겠다. 그렇게 되면 상관없는 것 아닌가?"

너무나 신박한 개소리에 니드호그와 흐레스벨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네놈들은 계획대로 내가 살았던 세계를 침공해라."

[무슨 소리냐? 너희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남길 일이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뭐야? 네 동족이 사는 곳이다! 네놈은 인간 모두를 위험에…]

"그럼 먼저 죽은 사람들은 뭔데? 그들은 개죽음을 당한 채 그냥 두라고?"

[….]

"그 희생이라는 것도 네놈이 갖다 붙인 말이잖아? 우리는 선택도 못하고 두 병신들 싸움에 끼어든 거고."

신랄한 강준우의 말에 흐레스벨그는 침묵했다.

강준우는 그를 뒤로하고 다시 니드호그를 향해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너와 저 새의 맹약은 이곳에 온 방해자를 쓰러뜨려야 차원을 넘을 수 있는 거였지?"

[아직 네가 방해자로 남아 있다는 것을…]

"내가 방해하지 않겠다잖아! 저 산맥에 있는 놈들처럼 그냥 방관할 거다. 그럼 된 거 아닌가?"

[그건 억지다!]

생각지도 못한 발에 흐레스벨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흐릿한 형체가 크게 출렁일 정도로 격한 모습을 보였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네놈들은 인간에게 복수를 하려고 차원을 넘는다고 한 거잖아? 내 말대로라면 그래도 목적은 달성할 수 있는 거고, 맹약도 어기지 않는 것 아닌가?"

[크큭. 그렇군. 그렇게 해서 네게 소중했던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거냐?]

니드호그와 흐레스벨그의 맹약은 차원을 넘을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당연히 그들을 방해할 인간들을 쓰러뜨려야만 했지만, 강준우는 방관한다는 말로 맹약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천마흡기공을 통해서 흘러들어온 니드호그의 기억에서 맹약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릴 정도의 가벼운 맹약이 아니었지만, 니드호그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목숨을 부지하고, 염원했던 일을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강준우는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안타까운 죽음을 되돌리는 것을 택했다.

인류를 위한다면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이었지만, 니드호그는 그의 생각에 나름 흡족해 했다.

[그게 전부인 것이냐?]

"네가 여는 차원의 문을 통해서 나도 같이 들어간다는 것만 보장해주면 된다. 너희들은 계속 침공을 한다면 여기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시 그곳에서 되살아나는 것이겠지?"

[… 그렇다.]

"좋아. 그럼 이 조건으로 그 맹약이라는 걸 맺도록 하지."

새로운 조건과 맹약이라는 말에 니드호그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그런 수작이었나? 교활한 놈이구나. 무엇보다 고작 인간 따위가 나와 맹약을 맺는 다는 것은… 끄윽.]

"이 병신은 생각이 없는 건가?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고 몇 번을 말하냐?"

다시 움켜쥔 드래곤 하트에 니드호그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동등한 입장에서, 오히려 굴욕적인 상황에서 맹약을 맺는 것 자체가 드래곤인 그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극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말을 아꼈다.

결국 아쉬운 쪽은 강준우였다. 이미 원하는 것을 밝힌 만큼 계속 버티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았을 강준우가 아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착각?]

"나도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다. 알겠냐?"

[크큭. 그런 허세는 안 통한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대로 네놈을 이종족이라는 놈들 앞으로 끌고 가서 족치다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무슨 소리냐? 나를 끌고 가다니?]

"아, 네놈에게는 물리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 치명적인 것 같더라고. 여러 종족들이 보는 앞에서 뒤지게 쳐맞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네놈이 오줌을 질질 싸면서 빌빌대는 모습을 구경시켜 주는 것도 재미는 있을 것 같네. 위대하신 드래곤 나리."

[미친 것이냐?]

황당한 말에 니드호그는 다급해졌다.

치욕도 그런 치욕이 없었지만, 강준우는 그저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제압당한 니드호그를 질질 끌며 들어서지 않은 산으로 향했다.

"어차피 네놈을 죽이면 또 다른 놈이 나타나겠지. 그놈하고 맹약을 맺고 차원을 넘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어쩔 수 없지. 깔끔하게 모두를 포기하는 수밖에."

[자, 잠깐! 잠깐만 멈춰라!]

강준우의 담담한 말에 니드호그는 그를 불렀다.

다급한 목소리가 그의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지만, 강준우는 개의치 않으며 놈의 거대한 몸을 끌면서 산으로 움직였다.

이대로라면 모두에게 이 치욕적인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그동안 로드라고 불리던 니드호그였다.

모두에게 위엄이 가득한 모습을 보인 그로서는 죽었으면 죽었지 이런 치욕과 수모를 보일 수 없었다.

[알았다! 알겠다! 네 뜻대로 맹약을 맺겠다.]

"이미 늦었어!"

[원하는 게 뭐냐? 뭐든 말만 해라!]

[니드호그! 너는 드래곤이다. 편법으로 나와의 맹약을…]

[닥쳐라! 네놈이 다른 뜻만 품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치욕도 없었다!]

니드호그는 의념만 남은 흐레스벨그에게 소리쳤고, 강준우는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것이다.

'상황은 당연히 나한테 유리해야겠지? 어떤 조건이 좋을까?'

그는 심각하게 맹약의 내용을 고민했다.

드래곤이라는 놈도 맹약에 묶여서 쉽게 움직이지 못한 상황이라면 엄청난 구속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것에 발목이 잡히는 상황은 없어야했다.

★ ★ ★

새하얀 빛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강렬한 빛은 하늘을 꿰뚫듯이 치솟아 오르며 사그라들었고, 그 중심에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되돌아 온 건가?"

상당히 오래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이었다.

생소한 곳으로 끌려가기 전까지 있던 대학교 안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던 그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휑한 곳에 덩그러니 남게 된 강준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침음을 흘렸다.

"흐음."

계획대로라면 모두 그의 뜻대로 됐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주먹만 한 돌덩이를 바라봤다.

"이게 가짜는 아닌데."

이미 모든 힘을 잃은 드래곤 하트는 그저 돌덩이 같았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물건은 아니었다. 비록, 온전한 드래곤 하트가 아닌 2/3정도의 크기였지만, 다시 힘을 회복하면 이만한 귀물도 없었다.

강준우는 가지고 온 무한의 식량 주머니에 드래곤 하트를 집어넣었다.

이제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는 식량 주머니였기 때문에 그저 보관의 용도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따로 그걸 갈무리한 그는 옆구리에 채워진 현철보검을 확인하며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걸로 봐서 확실히 시간 차이가 났다는 건데."

이종족들 틈에 끼어서 함께 움직였지만, 차원을 넘는 순간 그는 혼자 떨어졌다.

다시 그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왔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깊은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가지고 온 모든 물건이 멀쩡한 것을 보면 꿈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제자리에 서 있던 강준우는 텅 빈 건물을 나섰다.

오랜만에 다시 발을 내디딘 교정은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주변은 너무 고요했지만, 그렇다고 근처에 다른 생명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느껴지는 여러 기척을 확인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크아아!"

가장 가까이에 있던 놈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날이 선 도끼를 들고 있는 놈은 그 역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놈들이었다.

"동굴 오크들."

되돌아온 곳에서는 나타나지 말아야 할 놈들이었지만, 세 마리의 오크 전사는 그를 노리며 달려왔다.

놈들의 모습에 강준우는 니드호그와 흐레스벨그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확실해질 것 같은데.'

오크들만 봐서는 정확한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권우철이나 김연희를 만나야 신중하게 맺은 맹약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았다.

그가 주변의 기척을 살피는 와중에도 오크들은 멈추지 않았다.

강준우를 발견한 오크들은 흥분하며 달려들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인간이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별다른 기세를 뿜어내지 않는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가지고 있는 무기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놈들의 눈에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강준우는 살기를 드러내며 나타나는 놈들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았다.

놈들보다는 그 뒤에 나타난 사람들을 인지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

부우우웅.

잠깐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 동굴 오크가 도끼를 내던지며 그의 목숨을 노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커다란 도끼는 그대로 강준우의 머리를 박살낼 기세로 날아들었지만, 가벼운 그의 시선과 함께 날아오던 도끼가 바닥에 처박혔다.

쿠웅. 콰앙.

예상과는 많이 빗나간 도끼의 궤적에 공격을 감행한 오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귀찮은 놈들이네.'

강준우는 그런 놈들을 짜증스럽게 쳐다봤고, 세 마리의 오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형의 기운이 그들을 옥죄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 같은 강력한 살기가 그들의 짓눌렀지만, 강준우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런 오크들의 등 뒤로 세 사람이 나타났고, 곧 커다란 총성이 들려왔다.

타앙. 타앙.

"뭐야?총을 쓰잖아?"

현실로 넘어온 게 확실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기였다.

당연히 권총의 등장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총에 맞은 놈들이 크게 휘청거리며 괴성을 질렀다.

그렇다고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 타격을 줄 수는 있었지만, 단단한 피부는 총알의 충격을 분산시켰다. 교묘하게 화기의 힘을 흩어내는 놈들의 피부가 신기했다.

멍하니 서서 움직이지 않는 오크를 향해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콰앙. 화르르르.

불길에 휩싸인 오크는 괴로워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남은 두 놈은 나타난 인간들을 확인하며 흉성을 토해냈지만, 그렇다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준우가 뿜어내는 무형의 기운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뭐야? 사람이잖아?"

"우선 저 두 놈을 먼저 죽이자고!"

"알았어!"

타다당. 타앙.

그들은 다시 권총을 쏘아대며 오크들을 공격했다.

곧 두 오크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그저 피부를 꿰뚫는 게 전부인 건가?'

현대 화기 앞에서는 놈들도 어쩔 수 없을 거라던 생각이 깨졌다.

자신했던 화기는 그저 놈들의 움직임을 묶기 위한 보조 수단인 것 같았다.

나타난 세 사람은 곧 기운을 끌어 올리며 다시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기를 꺼내든 두 명과 마법을 캐스팅하는 한 명이 능숙하게 합공을 이어갔고, 강준우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되돌아오고 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실력을 확인한 강준우는 그들이 펼친 힘에 놀라워했다.

'검기를 뽑아내는 걸 보면… 절정인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았다.

차원을 넘으면 시간차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간극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절정에 오를 정도라면 짧은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거기에 기본으로 휴대하고 있는 권총까지 보자면 이 사회도 어느 정도 달라진 상황에 적응을 마쳤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아악!"

결국 두 오크는 그들에 의해서 쓰러져 나갔다.

난도질당한 채 피를 잔뜩 흘린 놈들이 움직임을 멈추자, 확실한 죽음을 확인한 세 사람은 뒤늦게 강준우를 바라봤다.

"이 사람 뭐지? 복장만 보면…"

"괜찮은 겁니까?"

방금 넘어온 강준우의 복장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재질의 조잡한 복장과 평범해 보이는 검을 가지고 있는 그의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가진 무기만 봐서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가만히 강준우를 살폈다.

서로는 찬찬히 서로를 살폈고, 그의 얼굴을 알아본 누군가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너, 너는! 강준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