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과
"맞네. 이 새끼! 뭐야? 그동안 찾을 때는 없더니!"
"나를 알고 있나? 너는… 누구지?"
"나? 씨발, 네가 죽인 박형선이다!"
그는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쳤다. 이제야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듯이 외쳤지만, 정작 그 말을 들은 강준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 기억에 없는 이름이라."
"이 개새끼!"
원한을 가진 놈이 나타난 걸로 봐서 다행히 맹약은 지켜진 것 같았다.
차원을 넘을 때까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맹약을 져버릴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의 상황이 걱정이었다.
다행히 그런 걱정을 떨쳐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앞에 있는 놈이 거슬렸다.
박형선은 어느새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소리쳤다.
"이 개새끼! 우리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모르지?"
"나야 모르지."
"이 뻔뻔한 새끼 보게. 야, 빨리 애들 불러!"
"아, 알았어."
갑작스러운 변화에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놀라며 어딘가에 연락을 취했고, 강준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도기를 사용하던데, 저놈이 여기에서 그나마 실력이 뛰어난 건가?'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달라진 이곳 상황을 알아낸 것은 나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총구를 겨누는 박형선의 모습만 봐서는 사람을 죽여도 별다른 제제가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거냐?"
"왜? 못 죽일 것 같냐?"
"법은? 법은 무시해도 되는 거냐?"
"무슨 개소리야? 네가 죽은 건 저기 쓰러진 오크들 때문인데."
"아, 그렇구나. 그래도 상관없다는 거구나."
박형선의 태도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사회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급변한 상황에서 여러 법이 만들어지면서 적용되고 있었지만, 급하게 만들어진 만큼 맹점이 존재했다.
이들은 그런 빈틈을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많이 이용해 본 느낌이었다.
'이런 게 당연한 건가?'
서로가 죽여야만 힘을 얻는 아수라장에서 다시 살아나온 자들이 이곳에서도 힘을 가지게 됐다. 당연히 평범한 인간과 같은 수는 없었다.
누군가를, 그것도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이들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형선은 그를 죽이고 오크들의 소행으로 꾸밀 생각이었다.
그리고 굳은 강준우의 표정에 박형선은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씨발, 여기에서는 네가 죽는 거다! 이 새끼야."
"좋은 걸 알려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좋은 거? 고마워? 이 새끼가 어디서 허세야!"
"같이 움직이는 놈들도 너랑 비슷한 부류겠지?"
"뭐래? 미친 새끼가! 나보다 너를 더 기다린 사람이 있거든. 현수도 네가 죽였다며?"
"현수? 걔는 또 누구냐?"
기억에 있는 것 같은 이름이었지만,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그가 쓰러뜨린 사람만 하더라도 가볍게 두 자리는 넘어가고 있었다.
일일이 그들을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곧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권현수! 몰라?"
"아, 초반에 죽은 놈이었던가?"
"허! 이 새끼, 존나 답 없네."
"그 새끼도 살아있다?"
"그래 이 새끼야. 너는 죽었다고 복창해라. 널 죽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으니까!"
박형선은 담담한 강준우의 태도에 얼굴을 붉혔다.
문득 불안한 생각이 스쳤지만, 강준우의 복장만 봐서는 따로 위험하다고 할만한 것들이 없었다.
'총은 없는 것 같은데.'
개인 화기가 없는 걸로 봐서 그들처럼 헌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계속 나타나지 않던 그가 3년이 지난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걸로 봐서는 무슨 일을 겪은 게 분명했지만, 그런 생각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우철이 형은 어떻게 됐지?"
"누구?"
"권우철. 김연희랑 백선화도 여기에 있는 거냐? 모두 어떻지?"
"어,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그들을 언급하는 강준우의 질문에 박형선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왠지 동요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박형선은 그런 기색을 감추며 마음을 다잡았다.
강준우는 다시 총구를 겨누는 그의 행동에도 개의치 않으며 질문을 이어갔다.
"묻는 말에 답을 하면 죽이지는 않…"
"닥쳐! 이런 병신 새끼야! 제 상황도 모르고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계속되는 강준우의 황당한 말에 박형선 옆에 있던 자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대충 상황을 파악하려던 그는 더 이상 얻어낼 게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마음을 굳혔다.
"굳이 너희들이 아니더라도 물어볼 사람은 많겠지?"
"하, 씨발! 분위기 파악이 안 되냐?"
"그래. 어차피 너희들은 오크한테 죽은 걸로 하면 되겠네."
"무슨 개소리… 흐읍!"
그의 말에 황당해하던 세 사람은 천천히 떠오르는 오크들의 도끼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저절로 움직이는 도끼에 기겁한 박형선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강준우를 겪어본 그로서는 이 모든 게 강준우의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다투다가 죽었을 당시에도 앞에 있는 강준우는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총구가 불을 뿜자, 쏘아진 탄이 강준우를 향해 날아갔다.
탄두는 빠르게 회전하며 강준우의 미간을 노렸다.
'생각보다… 너무 느린 것 같은데.'
강준우는 너무나 선명한 그 움직임에 씁쓸해했다.
왜 오크들에게도 큰 영향을 줄 수 없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힘을 얻기 전에는 총구를 겨누는 것만으로도 기겁을 해야겠지만, 총알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그는 여유로웠다.
가볍게 기운을 흘리는 것만으로도 회전하던 탄두는 움직임을 멈췄다.
"미친! 저게 뭐야?"
"초, 초능력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힘이 분명했다.
아무리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도 총알을 막아내거나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절정인 박형선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강준우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총알을 막아냈다.
짧은 순간, 그의 힘을 파악한 박형선은 곧장 뒤로 내뺐다.
당장은 권현수가 올 때까지 버티고 힘을 합치는 게 최선이었다.
콰직. 콰직.
"끄어억!"
"끄아아. 발! 내 발!"
곧바로 물러나던 그의 정강이에 도끼가 박혔다.
오크들이 가지고 있던 도끼는 그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무인의 이마를 쪼갰고, 뒤에 있던 사람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순식간에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락없이 오크에게 당한 모습이었다.
상상도 못할 힘에 박형선은 잘게 몸을 떨었다.
다른 세상에서 죽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린 그의 바지가 축축해졌다.
여기에서 죽으면 완전한 죽음이었고, 그 공포에 사로잡힌 박형선은 애원하듯 소리쳤다.
"사, 살려주…"
퍼석.
담담한 눈으로 쓰러진 그들을 바라본 강준우는 들려오는 알림에 얼굴을 찌푸렸다.
'흐레스벨그라는 놈의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는 건가?'
아무리 그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놈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흐레스벨그가 니드호그와 맹약을 맺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도 없었다.
그의 개입으로 니느호그가 차원의 문을 열고, 막대한 기운을 쏟아냈다.
만약 놈이 본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생사경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드래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 하트까지 뜯어냈으니 그놈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는 니드호그에게서 뜯어낸 드래곤 하트의 힘을 이용해서 차원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의 간극이 생겼지만, 어쩌면 지금 상황이 그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지도 몰랐다.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빠르게 성장할 환경이 조성된 것과 같았다.
굳이 이런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진 힘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다시 적응하는 게 더 쉬울 것은 분명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던 그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상념을 떨쳐냈다.
"주, 준우? 강준우?"
"준우야!"
곧 그가 있는 곳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이런 선택을 하도록 큰 영향을 준 두 사람도 섞여 있었다.
권우철과 김연희가 밝은 얼굴로 뛰어왔다.
그런 그들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자리를 잡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 형은 여전하네."
그를 반기는 권우철의 모습은 희생을 결심하며 강준우를 살리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연희 역시 죽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모습 자체가 반가웠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얼마나 널 찾았는지 알아?"
김연희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훔치며 언성을 높였다.
혼자만 나타나지 않은 강준우의 모습에 걱정하던 그녀는 이 재회를 반겼다.
하지만 옆에 나타난 자들은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모두가 살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놈이 그랬냐? 이 사람들?"
"아니. 오크가."
태연한 반응에 권현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오히려 그런 강준우의 모습에 흥분하며 소리쳤다.
"이 개자식! 그동안 잘도 도망다녔겠다?"
"뭐라는 거야?"
"난 권현수다! 네가 죽였던 권. 현. 수!"
"나를 잊지 않았겠지? 너한테 죽었던 김기철이다. 이 개자식아!"
"그래서?"
"뭐, 뭐라고?"
"다시 뒈지기 싫으면 찌그러져 있어."
"이 미친 새끼가!"
"멈춰! 뭐하는 거냐?"
권우철은 흥분한 권현수를 가로막았고, 그의 개입에 권현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일전에는 벌레 보듯이 대하던 그였지만, 못 본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당신은 빠져!"
"일을 만든다면 정식으로 항의를…"
"저 새끼들 죽여도 되지?"
"죽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중에 뒤통수를 칠 것 같거든. 굳이 후환을 남길 필요는 없잖아?"
강준우의 싸늘한 말과 함께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잔해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가 드러나기 무섭게 강한 살기가 주변을 뒤덮자, 모두가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강준우의 힘은 여전했다.
아무리 강준우라고 하지만, 이런 힘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떻게 된 거지? 다시 되돌아왔을 때는 모두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었는데!'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권우철도 아직 예전의 힘을 되찾지 못했다.
되돌아온 누구도 화경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강준우는 여전히 탈마경에 올랐던 모습 그대로였다.
오히려 지금 내보인 모습은 그때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았다.
"주, 준우야? 잠깐만!"
"여기에서 저놈들을 죽이면 일이 복잡해진다고!"
"어차피 오크들이 죽인 걸로 하면 되잖아?"
"미친!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여기에서 살인을 하면 쫓기게 된다고. 정부랑 싸울 생각이야?"
"먼저 덤빈다면… 못 싸울 것도 없지 않나?"
진지한 그의 말에 김연희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정부와 부딪치면 정부가 풍비박산 날 게 분명했다.
세계적인 재난에 모든 나라가 서로 힘을 합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을 돕고 있는 주변국까지 힘을 더한다면 오히려 강준우의 손에 세계가 멸망할 것 같았다.
"그냥 무시해! 저 새끼들도 생각이 있겠지."
"그래. 미쳤다고 덤비겠어?"
"…."
"밥은? 밥은 먹었어? 오랜만에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나도 배가 고, 고프네. 아, 배고파라."
여전히 어색한 권우철의 연기에 강준우는 힘을 거뒀다.
살기가 걷히자마자 모인 사람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요단강에 발을 살짝 담갔다 뺀 그들은 강준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잘게 몸을 떨었다.
압도적인 강함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앞에 있는 놈은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까마득한 간극에 복수는커녕, 눈도 제대로 마추지 못하며 납작엎드린 채 강준우의 눈치를 살폈다.
흉흉한 분위기에 김연희는 화제를 돌렸다.
"아, 선화한테 연락해야겠다."
"백선화?"
"그래. 선화도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유키코랑 다이스케한테도 연락해 봐."
"나 일어 못 하는데?"
"이제는 대화가 안 통하는 거냐?"
"당연하지. 여기는 그곳이 아니니까. 뭐야? 그런 것도 몰랐어?"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그들은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강준우는 남은 자들을 뒤로했고, 두 사람을 통해서 이곳 상황을 알아갔다.
3년간 있었던 일에 관해서 묻는 그의 질문에 권우철은 성심성의껏 답을 했다.
김연희도 그의 궁금증을 풀어줬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그의 상황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여전히 시끄러운 김연희였지만, 이런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소란스러움에 강준우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가야겠지?'
다시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려울 것도 없었다.
여전히 그는 대성한 천마신공과 함께였다.
완결
후기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연참을 이어가면서 글을 완결 지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요.
빠르게 쓴 만큼 부족한 부분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애정 어린 눈으로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 한편 남겨주신 댓글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지적한 부분들을 보완해서 다른 글에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글로 보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