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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3화 (3/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3화

“그…… 제 모습이 말이 아니죠.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과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있을게요.”

에드워드는 제 얼굴이나 안경이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고 짐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상처에 약은 발랐어?”

하지만, 제네비브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

에드워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네비브도 이미 답을 아는 듯 보였다.

“일단, 다친 곳부터 치료하고 과제 하자.”

“괜찮습니다. 안 아파요.”

“약 바르고 과제 해도 시간은 남아.”

“…….”

에드워드는 실랑이를 이어 가는 대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치료를 받을 때까지 버틸 기세였다.

과제를 위해서라면야.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네비브의 뒤를 쫓아갔다.

* * *

기숙사에도 비상약은 구비되어 있지만, 대부분 소화제나 감기약처럼 경증에 사용되는 약이었다. 이조차 ‘학생들의 무분별한 남용을 예방하기 위해’ 일반 약보다 효력이 미미했다.

“지금 병동이 열려 있나요?”

기숙사 비상약 구성에 연고가 있는지 생각하던 중, 그녀가 향하는 곳이 병동 쪽임을 눈치챈 에드워드가 물었다. 병동은 저녁이 되면 문을 닫았다.

“음…… 아니, 닫았을걸.”

제네비브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병동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녀가 문고리를 돌려 당겼지만, 덜컹거리는 소리만 날 뿐 열리진 않았다.

“전 정말 괜찮으니까, 돌아가서…….”

하지만, 이어지는 제네비브의 기행은 에드워드가 말을 채 끝내지 못하게 했다.

제네비브가 머리카락 사이로 실핀 하나를 뺐다. 이어 실핀으로 열쇠 구멍에 쑤셨다.

그렇게 몇 번을 돌렸을까. 병실 문이 힘없이 열렸다.

“1학년 때 자주 다쳐서. ……아, 병동 선생님께 말하지 말아 줘. 기겁하실 거야.”

에드워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자주 다쳤다는 그녀의 말대로 제네비브는 익숙하게 병동 입구 부근의 촛불을 밝혔다. 빛은 어둑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보기엔 충분했다.

제네비브가 찬장을 열었다.

“어어, 안 돼. 넌 앉아 있어.”

제네비브가 거즈와 약통을 꺼내지 못하는 걸 본 에드워드는 도우려고 했지만, 제네비브는 환자를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며 저지했다.

“이거 뺨에 대고 있어 봐.”

지시대로 의자에 앉자, 그녀가 차가운 천을 건넸다. 에드워드는 고분고분하게 천을 왼쪽 뺨에 댔다.

이후, 제네비브는 능숙한 손길로 필요한 물건을 전부 찾아냈다. 연고와 거즈를 꺼낸 다음 에드워드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경 좀 벗어 볼래?”

에드워드는 그녀의 청에 따라 안경을 내려놓았다.

제네비브가 집게 손끝으로 연고를 덜어 내 볼에 바르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이 닿자, 에드워드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아! 손은 비누로 닦았어! 위생이 걱정이라면 안심해도 돼.”

제네비브는 비누 냄새를 확인해야겠다고 말하면 기꺼이 손을 들이댈 기세로 말했다.

“……아까 물소리 들었어요. 그냥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거 발라. 거즈는 내가 붙여 줄게. 혼자 하면 어렵거든.”

에드워드는 제 뺨에 연고를 얇게 펴 발랐다. 따끔거리는 게 어쩐지 치료보단 상처를 덧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다 했어요.”

“으응, 고개 돌려 봐.”

거즈를 붙여 주던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유심히 쳐다봤다. 어두워서인지 연두색이던 눈은 진한 녹색으로 변했다.

“너…….”

그 녹색 눈에서 에드워드는 아주 잠깐 옅은 공포를 읽어 냈다. 그 감정이 공포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부정적인 감정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뭐지? 왜 그러는 거지? 뭘 잘못한 걸까?

에드워드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갈 때, 부드러운 손가락이 그의 뺨을 쓸었다. 떨어진 손가락 끝엔 축축한 피가 묻어났다.

에드워드가 미처 상황 파악하기도 전에 제네비브가 그의 앞머리를 넘겼다.

“여기도 다쳤잖아! 왜 말 안 했어?”

“여긴 제가…….”

에드워드는 몸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야. 잘못하면 더 벌어져. ……세상에, 상처가 엄청 깊잖아.”

상처를 본 제네비브가 작게 중얼거렸다.

“앉아 있어.”

아까와는 다르게 제네비브는 물러서지 않았다. 에드워드가 반항할 틈도 없이 능숙하게 치료를 해 줬다.

“약 발랐으니까, 괜찮을 거야. 딱지 생기면 뜯지 말고. 거즈는 매일 갈아 주는 게 좋긴 한데…… 선생님이 누가 치료해 줬냐고 물어보면 그냥 내가 해 줬다고 말해.”

“네.”

눈 깜빡하는 사이,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준 항생제를 먹으며 주의 사항을 듣고 있었다.

“상처에 물 안 들어가게 조심하고. 2주 정도는 불편하겠지만…… 여기, 안경.”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건네준 안경을 다시 꼈다. 두껍게 붙인 거즈 때문에 조금 거슬렸다.

제네비브는 꺼냈던 물건을 하나둘 정리했다. 제법 높은 곳에 있어 에드워드에게 도움을 청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도움을 바라지도 부탁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두면 되는 건가요?”

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제네비브가 혼자 정리하는 걸 보니 양심이 찔렸다.

“응, 고마워.”

다행히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제가 감사하죠. 정말 괜찮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치료는 제때 받아야지.”

제네비브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문만 잠그고 가자.”

그녀는 병동을 나와, 한 번 더 핀을 열쇠 구멍 안에 넣어 돌렸다.

“얼마 안 걸렸지? 고생했어.”

문을 몇 번 흔들며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한 후, 제네비브가 웃으며 말했다.

* * *

“오데인 교수님은 A+ 절대 안 주시잖아. 글이 완벽해도 ‘개인적으로’나 ‘필자가 생각하기엔’ 같은 묘사가 문단마다 들어가면 점수를 깎으시더라고. 분량 늘리는 편법 같아서 싫어하셔. 또,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지가 부족하면 점수가 낮아지기도 하고.”

3학년 차석과 함께하니, 과제는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갔다.

제네비브는 (비록 본인은 모르는 것 같지만) 오지랖이 넓은 편이었는데, 그 성향 때문인지 그녀는 에드워드가 묻지도 않은 여러 정보를 전수했다. 예상치 못한 팁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나 혼자 시행착오 겪은 것도 있지만……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알려 준 것도 있…… 는데.”

말이 끝을 향할수록 목소리가 흐려졌다. 조금 전 소동으로 자신의 인간관계가 어떤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귓가는 붉게 물들어 갔다.

“그…… 괜찮아?”

제네비브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제가 뭘 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요. 졸업할 때까지 버텨야죠.”

에드워드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일 년만 지나면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다.

“안경은…….”

“이건 다른 안경이에요. 쓰던 건 방금 식당에서 잃어버렸어요.”

“안경도 같은 애들이 한 거야?”

제네비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염려하는 마음과 별개로 질문하는 개수가 늘어나니 꼬치꼬치 캐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드워드에게 있어 호의는 낯설기만 할 뿐이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주말에 하나 새로 살 생각이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되세요.”

하여 에드워드는 날카롭게 대답한 다음,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이상 말하기 싫다는 무언(無言)의 신호였다.

이후,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과제에 도통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 제네비브에게 받은 도움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호의를 베푼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했다니. 에드워드는 조금 전 모난 자신을 있는 힘껏 때리고 싶었다.

“에드워드, 책 잠깐 볼 수 있을까?”

다행인지 아닌지, 제네비브는 아까와 똑같은 어조로 말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에드워드는 공책에 필요한 단어 몇 개를 베껴 쓰고는 책을 다시 제네비브에게 건넸다.

툭.

그 순간, 책 끄트머리가 잉크통을 건드렸다. 에드워드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제네비브가 팔로 엎어진 잉크를 막았다.

“…….”

그 덕분에 <군주의 책임감>이나 에드워드의 과제는 잉크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제네비브의 옷소매와 과제는 무사하지 못했다.

“……잉크통을 닫았어야 했는데.”

제네비브가 자신에게 화를 내며 책과 함께 떠나갈 거라는 최악의 상상과 다르게 돌아온 반응은 담백하기 그지없었다.

무조건 에드워드가 잘못한 상황임에도 제네비브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내보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에드워드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뇌가 멈춘 것처럼 말이 횡설수설했다.

“그 옷은, 아니, 과제는…….”

에드워드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제네비브가 그런 에드워드의 양팔 부근을 붙잡으며 그를 진정시켰다.

“과제는 어차피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쓰려고 했어. 옷이야 세탁하면 되는 거고. 그나저나, 네 과제는 괜찮아? <군주의 책임감>은 괜찮아 보이는데……. 다행이야. 프란시스 부인에게 잔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해 봐.”

끙, 도서관 사서의 잔소리를 상상한 듯 제네비브가 앓는 소리를 냈다.

화를 내고도 남을 상황에 남의 과제나 걱정하고 있었다. 제네비브는 이상했다. 마음이 넓어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걸로 닦으세요.”

에드워드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제네비브에게 건넸다.

대신 닦아 줘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만난 지 고작 몇 시간 된 사람을 문지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제네비브는 그런 걸 크게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판단했다.

제네비브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손수건을 받곤 제 소매 부근과 책상을 닦았다. 낡은 손수건은 곧 까만 얼룩이 졌다.

“세탁해서 돌려줄게.”

“……버려도 괜찮아요.”

“농담도 참.”

진심이었다. 서랍 속에 있는 안경 몇 벌처럼 손수건도 똑같은 게 서너 개쯤 있었다.

하지만 제네비브는 버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는 걸레짝이 되어 버린 과제를 쓰레기통에 버릴 때에도 그의 손수건은 손에 꼭 쥔 채였다.

“다시 열심히 해 보자.”

제네비브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에드워드는 그녀의 말대로 과제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까매진 옷소매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부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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