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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5화 (5/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5화

* * *

세인트 존 칼리지는 매주 월요일 교내 미사를 진행한다. 학교 이름에 성자(Saint)가 들어가는 만큼, 개교 이후로 거른 적 없는 대표 일정이었다.

세인트 존 칼리지 내부엔 오래된 신전이 있다. 후원금으로 시설을 새로 추가하고 공사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신전만큼은 700년 전 모습을 유지했다. 오래된 대리석 건물은 잿빛 건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흰색을 띠는 건축물이었다.

제단 가장 앞줄은 교사들의 자리였다. 학생들은 그 뒤로 높은 학년부터 줄지어 앉았다.

떠들썩하던 신전은 교수와 사제들이 들어올 때에 맞춰 말수가 점차 줄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 성스러운 여신상에 안경을 씌웠기 때문이다. 두꺼운 안경알은 여신의 눈을 우스꽝스럽게 굴절시켰다.

한순간 작아진 여신의 눈을 본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신실한 이는 경악을, 그렇지 않은 이는 폭소를 터트렸다.

눈썰미가 좋은 학생 몇 명은 곧바로 에드워드를 쳐다봤다.

저번 주 저녁, 한 소동으로 인해 에드워드가 학년 내에서 무시 받는 건 교내에 알음알음 퍼진 상태였다.

에드워드는 시선을 금방 알아차렸다. 등 뒤에서 찰스 무리의 비웃음이 들렸다.

“…….”

그날 사라진 안경은 수준 떨어지는 장난에 쓰였다. 하지만 유치한 행동과 별개로 여파는 클 게 분명했다.

에드워드는 입안 여린 살을 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신이시여…….”

신전 뒤편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런 망측한 짓을!”

신전 관리인 톰슨 씨가 흥분한 나머지 중앙 통로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세인트 존 칼리지의 교육 이념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신실’을 고를 톰슨 씨답게 그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범인을 잡아 징계란 징계는 전부 주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톰슨 씨의 신실함을 익히 아는 에드워드는 잠시 고민했다. 여신상 위의 안경은 깨지거나 삐뚤어진 곳 하나 없이 말끔했다.

하지만 제 것이라고 말하자니 톰슨 씨가 어떤 처벌을 내릴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피해를 받고 싶진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요? 자수를 안 한다면 전교생이 징계를 받아야겠군요.”

그 한 문장으로 주변 학생들은 대놓고 에드워드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톰슨 씨는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아침에 수업 있는데…….”

“톰슨 씨, 전교생이 징계를 받는 건 말도 안 돼요. 어머니가 이 소식을 전해 들으신다면…….”

모두 한마디씩 얹었다. 가뜩이나 성적 관리가 중요한 3학년 몇 명은 톰슨 씨에게 따지기까지 했다.

“저번 주 걔 안경 아니야?”

학생들은 ‘걔’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았다.

“안 나오고 뭐 한대?”

한마디씩 얹은 말은 금방 수십 마디가 되었다.

“에드너드, 지금 너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찰스가 위협하듯 에드워드가 앉은 의자 등받이를 발로 걷어찼다. 이목은 삽시에 에드워드에게 쏠렸다.

“헤럴드, 이건 미사가 끝난 뒤에…….”

“카를로 사제님! 이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범인을 잡아내야 다—시는 이런 불경스러운 짓을 안 할 거 아닙니까?”

사제가 난감한 얼굴로 톰슨 씨를 말려 봤지만, 그의 의지는 완강했다.

톰슨 씨의 히스테리는 한번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아는 학생들은 누군가 나서서 (정확히는 안경 주인이) 빨리 이 일을 해결하길 바랐다.

에드워드는 억울했다.

왜 자신에게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안경은 제 것이 맞지만, 잘잘못을 책망할 상대는 자신이 아닌 찰스였다. 하지만 모든 이가 자신이 나서길 바라는 것 같았다.

“조용, 조용!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 나오세요.”

그때, 참다 못한 학감이 외쳤다.

“…….”

에드워드가 주춤거리는 사이, 3학년 줄에서 또 다른 소란이 피어났다.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정하게 묶은 금색 머리카락이 에드워드의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만 보였지만, 에드워드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았다.

“달링 양이 왜……. 흠흠, 미사가 끝나면 따라오세요.”

톰슨 씨나 학생들은 안경 주인이 제네비브가 아닌 걸 알았다. 하지만 미사가 먼저라고 판단한 그는 당장 제네비브를 혼내는 대신 자리에 돌려보냈다.

“저게…….”

뒤에서 입이 찢어지도록 웃던 찰스가 얼굴을 굳혔다.

“야. 운 좋다?”

그리고 그는 부호마다 에드워드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쿡쿡 눌렀다.

예상치 못한 소동으로 미사는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앞자리에서 일전에 본 오웬이라는 남자가 제네비브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위로했다.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혼나는 게 싫었다. 저 때문에 그녀가 피해를 보는 것도 이번이 몇 번째인지.

‘……듣자마자 내가 한 거라고 나서야 했는데.’

늦은 후회였다.

에드워드는 식당에 가는 대신, 톰슨 씨의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조금 헤매긴 했어도 놓칠 정도는 아니었는데.

에드워드는 톰슨 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서 이 사건의 진상을 알려 주고 싶었지만, 1교시에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식당을 지나치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미사가 늦게 끝난 터라 식사 시간은 몇 분 남지 않았음에도 테이블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소동의 원흉으로 여겨지는 에드워드가 식당에 들어서니 몇몇은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에드워드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었다(미사가 늦게 끝나 학교는 식사 시간을 늘려 줬지만, 누구도 에드워드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땐 보복 심리일 거라고 결론 지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제네비브의 테이블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엔 그녀가 없었다.

제네비브가 아침을 못 먹은 데엔 제 책임이 명백하기에, 에드워드는 고기 파이 두 조각을 조심스레 포장했다.

* * *

“평소보다 늦게 시작한 관계로 시험은 수요일로 미루겠습니다. 139페이지를 펴 볼까요?”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에드워드도 그중 하나였다. 늘 그렇듯 준비는 완벽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시험에 집중할 자신은 전혀 없었다.

이후, 그는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노력과 실천 여부는 별개였다.

“……다음 수업은 144페이지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에드워드는 곧바로 강의실을 나갔다. 무작정 3학년 복도로 가니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다행히 제네비브를 찾는 일은 수월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퍽 친근해 보였다.

오웬도, 주말에 그녀와 카드 게임도 즐긴 사람도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그가 아침 미사에서 오웬 옆에 앉아 있던 남자라는 걸 깨달았다.

에드워드는 새삼 제네비브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며 멀찍이서 언제 끼어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제네비브와 대화를 주고받던 남자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포장을 풀어낸 제네비브가 내용물을 입에 넣는 걸 보니 음식인 듯 보였다.

제네비브가 자신과 같을 리 없는데.

일순 부끄러워졌다. 좋은 사람 주변엔 좋은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건만.

“에드워드! 여기엔 무슨 일이야? 나도 너 찾아가려고 했는데. 독심술을 쓰기라도 한 거야?”

에드워드가 귀 끝을 붉힌 채 손안에 쥔 포장된 음식을 내려다보던 찰나, 제네비브가 에드워드를 발견했다.

제네비브의 얼굴에선 원망이나 짜증은 읽히지 않았다. 그녀는 되레 밝은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괜찮아요?”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여기. 이거, 네 거 맞지? 톰슨이…… 아니, 톰슨 씨가 돌려줬어.”

제네비브가 안경을 건넸다.

“징계는요?”

미처 사과할 겨를도 없이 에드워드는 내내 걱정하던 걸 물었다.

“너도 참. 나 안경 안 쓰는 거, 톰슨 씨도 알고 계셔.”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설명을 들으며 안경을 꼈다.

가짜 안경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게 무색하게, 쓰자마자 선명해진 세상을 보아하니 제 것이 맞았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연두색인 줄 알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자세히 보니 노란빛이 섞여 있었다. 눈동자는 연두색보다 짙은 녹색에 가까웠다. 금빛 때문에 연두색으로 보였던 거다.

제네비브가 어색하게 웃고 나서야 에드워드는 뒤늦게 자신이 무례할 정도로 오래 쳐다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제가, 선배를 제대로 본 건 처음이어서요……. 그게, 그러니까…….”

첫날은 과제에 신경이 몰렸고, 그 뒤로는 시야에 생긴 금 하나 때문에 정확히 못 봤다. 놀란 에드워드는 다급히 변명을 했다.

“그동안 깨진 안경 쓰느라 고생 많았어.”

제네비브가 이해한다는 듯 깔끔하게 말을 잘라 줬다. 덕분에 구구절절 이어졌을 변명은 나오지 않아도 됐다. 민망해진 에드워드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매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상부상조하면서 사는 거잖아. 아! 까먹을 뻔했네.”

제네비브가 양팔에 안고 있던 책을 옆구리에 끼웠다. 그러고는 치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게 퍽 힘겨워 보여서 에드워드는 제네비브의 책을 들어 줬다.

“아, 고마워. 이거 주려고.”

제네비브가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찾던 물건이 나왔는지, 그녀가 왼쪽 주머니에서 흰색 물건을 꺼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채는 데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건…… 정말 안 주셔도 됐는데요.”

일주일 전에 자신이 엎은 잉크를 닦으라고 그녀에게 준 손수건이었다.

버릴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한 건지 잉크 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새것처럼.

“잉크 빼느라 고생 좀 했지. 근데, 아무리 해도 안 빠지는 부분이 조금 있더라고. 그래서 여기 부분은 자수로 가렸는데, 괜찮아?”

제네비브가 꽃을 수놓은 부분을 보여 주며 말을 이어 갔다.

“별로면 말해 줘. 오랜만에 놓은 거라 몇 송이는 못생겼거든.”

원래는 상표를 수놓은 부분이었다. 하늘색 상표 대신 자그마한 꽃 몇 송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제네비브의 말과 달리, 꽃은 멀쩡했다. 하지만 겸손을 떤 거라고 말하기엔 그녀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임을 느꼈다.

“네, 마음에 들어요.”

에드워드는 대답하면서도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엄격한 기준을 내세울까 궁금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제네비브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지도 생각했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았던 걸까. 제네비브가 마치 마음을 읽은 사람처럼 물었다.

“……아뇨.”

하나도 안 괜찮은 목소리가 나왔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원하던 것보다 목소리가 음울하게 나와서 낯이 뜨거웠다.

“그리고, 이거요.”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챙겨 온 것을 건넸다.

“……저 때문에 선배가 아침을 못 먹은 것 같아서, 가져와 봤는데…….”

역시 괜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이미 아침을 먹은 사람에게 아침을 주는 것도 이상했다.

에드워드는 내밀어 놓고 도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제네비브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녀가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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