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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8화 (8/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8화

“제네비브 달링 선배, 맞으시죠.”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제네비브의 이름을 발음했다.

제네비브는 그가 학교 후배일 거라고 짐작하며 습관적으로 머리 색과 눈 색을 확인했다. 도수 높은 안경 뒤로 연갈색 눈동자가 보였다. 머리카락은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연한 갈색이었다.

남학생은 다소 낡았지만 관리가 잘된 교복을 입고 있었다. 순진하면서도 검소한 모습에서 제네비브는 이질감을 느꼈다.

‘누구였더라?’

친하거나 같은 카르디르 출신 후배들을 제외하면 제네비브는 주변에 퍽 무심한 편이었다. 주인공들을 바쁘게 찾아다니던 학기 초에 몇 번 스친 것 같기도 하고.

제네비브는 한 박자 늦게 남학생을 무례할 정도로 오래 쳐다봤다는 걸 알아차렸다. 또, 현재 제 몰골이 사람답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미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네비브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모습을 정돈했다.

‘머리카락이라도 다시 묶고 싶다…….’

하지만 머릿속과 달리, 제네비브는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남학생은 정중하게 <군주의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학년이 되어도 이름을 들어 볼까 말까 한 사상가를 후배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제네비브는 흔쾌히 빌려주고 싶었지만, (비록, 당사자는 과제를 안 하고 싶어 하는 눈치여도) 오웬이 써야 했다.

제네비브가 제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자, 남학생은 쉬이 수긍했다.

“통치학 오데인 교수님 수업이야?”

제네비브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교수의 이름을 꺼냈다. 그러자 남학생이 어떻게 알았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출 기한이 수요일이면 얼마 남지도 않았네! 같이 봐도 괜찮아. 아, 물론 너만 좋다면! 불편하면 거절해도 돼. 이름이…….”

제네비브는 아직 통성명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에드워드예요.”

“에드워드구나.”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을 때, 제네비브는 왜인지 기시감을 느꼈다.

‘……뭔가 익숙한데.’

하지만 에드워드는 이곳에서도 전생에서도 흔한 이름이었다. 제네비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과제에 집중했다.

에드워드는 대화를 이어 가기 힘든 상대였다. 사람 자체는 정중했지만, 사람을 대할 때 벽을 치는 기분이 들었다. 제네비브는 에드워드와 친해지긴 다소 어렵겠다고 느꼈다.

‘과제를 안 하고 시시덕대는 것도 이상하지.’

깊게 흘러가려는 의식의 흐름을 멈춘 후, 제네비브는 다시 과제에 시선을 돌렸다.

오래 안 걸릴 거라는 계산과 다르게 제네비브는 세 시간이 지났음에도 과제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쓰면서도 수정을 반복하니 아직도 7페이지에 머물러 있었다.

‘벌써 여섯 시잖아.’

시간을 확인한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힐끗 쳐다봤다. 매끄럽게 글씨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식사 시간임을 알린 제네비브는 그에게 동석을 권했지만,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거절하고는 휴게실을 나갔다. 친한 척해서 불편했던 걸까? 제네비브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 제네비브는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식당으로 갔다. 아침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과제는 안전한 가방에 넣었고, 뒤늦게나마 단정한 모습을 연출하고자 머리카락은 깔끔하게 하나로 땋았다.

식당은 아침과 비교하면 활기가 돌았다.

제네비브의 테이블은 2학년 구역과 비교적 가까웠다. 동석 중 클럽 부장이 둘이나 있었기에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자리 선정이었다.

블랑카와 제임스가 먼저 도착해 앉아 있었다. 둘은 밥을 먹는 대신, 가져온 미니 체스보드로 게임 중이었다.

“제네비브, 과제는 다 끝났어?”

“거의 다 끝나 가는 중이야.”

제네비브는 짧게 대답하며 누구 것인지 모르는 흰색 비숍을 옮겨 줬다. 그 수는 흰 말이 이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거만 막으면 이기는 거였는데!”

“고맙다. 덕분에 1운트 벌었어.”

판돈이 걸린 게임이었는지 블랑카가 아쉬운 티를 내며 제임스에게 동전 한 닢을 건넸다.

제임스가 동화를 주머니에 넣을 때 즈음, 오웬이 도착했다. 체스를 본 오웬이 저도 합류하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팀전이 시작되었다.

“C4에 두라니까!”

“여기가 더 나아.”

“먹혔잖아!”

“원래 게임이라는 게…….”

넷이 팀전으로 체스를 두어 판 이어 갈 때였다.

“넌 사람을 때리라고 배웠니?”

2학년 구역에서 싸움 소리가 들렸다.

말다툼의 주인공은 두 학생이었다. 남학생은 덩치가 굉장히 컸다. 2미터에 달하는 위협적인 거구에 짧게 자란 회색 머리카락과 상대를 노려보는 표정은 불량하기 그지없었다. 선이 굵은 얼굴은 그런대로 볼만했지만, 입을 열 때면 천박함이 느껴졌다.

“……아비게일?”

반대로 여학생은 아는 얼굴이었다.

“폴로부 아니야?”

그녀는 아비게일 리트먼으로 제네비브와 같은 폴로 클럽 학생이었다.

아비게일이 화내는 걸 본 적 없는 제네비브는 대체 상대가 무슨 짓을 했길래 그녀를 저토록 화내게 하는지 궁금했다. 입학하고 처음 보는 소동이었다.

“찰스 콜린스잖아?”

남학생을 알아본 듯, 제임스가 언젠가 들어 본 듯한 이름을 읊었다.

“아는 사람이야?”

블랑카가 물었다.

“작년에 조정부에 가입했던 애야. 몸이 좋아서 합격은 시켰는데…… 성격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2군으로 내렸거든. 발화점이 낮다고 할까? 조정은 팀워크가 생명이잖아. 근데 강등되니까 바로 퇴부 하더라고. 지금은 아마…… 딜런 말로는 펜싱부래. 콜린스 가문이 펜싱 클럽에 지원을 많이 해서 1군이라더라.”

제임스의 설명은 찰스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 가게 했다.

“에드너드!”

찰스는 소동을 마무리할 생각이 없는지, 신경질적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에드너드?’

제네비브는 자식 이름에 얼간이(Nerd)를 넣는 부모의 취향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그게 멸칭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였다.

두 사람은 실랑이를 주고받았다. 분위기는 가면 갈수록 험악해졌다. 이따금 들렸던 웃음소리가 줄어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저런 애들이 문제라니까.”

찰스의 손이 위협적으로 올라가는 걸 본 제임스가 혀를 찼다.

“저래도 되는 거 맞아?’

블랑카는 질색하며 답이 무의미한 질문을 했다.

“누가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오웬, 내가 콜린스 쪽을…….”

“너, 지금 식당 혼자 쓰니?”

제임스와 오웬이 누구를 맡을지 정하던 중, 제네비브가 먼저 나섰다. 제네비브는 언짢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으며 찰스를 한심하게 쳐다본 채 말을 계속했다.

“분풀이는 혼자서 해. 애먼 사람 잡지 말고. 다른 사람 식사 분위기도 그만 망치고. 창피하지도 않아?”

제네비브는 말을 마친 후, 바닥을 더듬거리는 에드워드를 힐끗 쳐다봤다.

찰스는 그런 제네비브를 매섭게 노려보고는 기분이 나쁘다는 걸 가감 없이 표출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패거리들은 그녀가 이상하다는 투로 비난을 했다.

「쟤네가 뭔데 네 욕을 해? 이걸 확!」

그들이 나눈 대화를 들은 블랑카가 당장이라도 따질 것처럼 모국어를 토해 냈다.

“블랑카, 진정해. 난 괜찮아.”

“어떻게 진정해! 오, 제네비브. 나였더라면 징계 받을 각오로 싸웠을 거야.”

제네비브는 자신보다 더 흥분한 친구를 진정시켰다.

식당은 곧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시시콜콜한 대화가 채워졌다.

‘어디로 간 거지?’

제네비브는 뒤늦게 에드워드를 찾았다.

하지만, 언제 사라졌는지 모를 그의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 * *

식당은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시콜콜한 대화가 채워졌다.

“나 먼저 일어날게.”

내내 깨작거리던 제네비브는 스푼을 내려놓았다.

“과제 하러?”

제네비브는 대충 고개를 끄덕인 후, 학생 휴게실로 걸음을 재촉했다.

에드워드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휴게실엔 사람 하나 없었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가 어디에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

“쫓아갈 걸 그랬나…….”

신에게 맹세컨대 이곳에서도 학교 폭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사람 사는 곳이 비슷하다곤 해도 체면을 위해 가식적인 친절이 주를 이룰 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본 에드워드의 모습이 떠올라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인기척이 느껴지면 고개를 들고, 입구를 서성거리는 걸 얼마나 반복했을까.

복도 끝에서 에드워드가 보였다.

교복과 마찬가지로 관리가 잘된 스웨터를 입은 그가 가까워지자 향긋한 비누 향이 났다. 기숙사에서 샤워라도 했는지 머리카락엔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깔끔한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왼쪽 뺨은 퉁퉁 부어올랐고, 멀쩡했던 안경알은 가로로 금이 가 있었다.

“그…… 제 모습이 말이 아니죠.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과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있을게요.”

괜찮은지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가관이었다.

‘네가 왜 사과를 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제네비브는 기가 막혔다.

한사코 괜찮다고 말하는 에드워드를 병동으로 끌고 간 다음, 제네비브는 좀도둑에게나 어울리는 기술을 보여 주고는 치료를 개시했다.

제네비브는 거즈를 붙여 주고 나서야 에드워드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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