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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9화 (9/140)

너드남의 흑화를 막아 보겠습니다 9화

‘이렇게 보니 제법…….’

두꺼운 안경을 벗자 눈이 커졌다. 희미한 빛을 받은 연갈색 눈은 금색처럼 밝게 빛났다.

‘안경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 있나?’

그저 안경 하나 벗은 건데 굉장한 미남이 눈앞에 있었다.

연고를 덕지덕지 바른 뺨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다. 로맨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앞머리 아래로 흐르는 피조차 사연이 있을 것 같…….

‘……잠깐. 피?’

볼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낸 제네비브는 급하게 에드워드의 앞머리를 넘겼다. 오른쪽 눈썹 위로 옴폭 패인 상처는 깊었다. 그냥 뒀으면 흉이 그대로 남을 정도로.

그 순간, 불안한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그는 동화 속 왕자님이었다. 그의 몸짓이나 어투는 상대를 죽일 때마저도 품위를 갖출 것 같았다. 두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 ……는 그 말에 동의했다. 신이 공들여 빚은 인간의 유일한 결점을 고르라고 하면 오른쪽 눈썹 위 상처일 거라고 ……는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흔한 머리 색이 갈색인 만큼, 흑막이 갈색 머리라는 정보는 제네비브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상처는 분명…… 소설 속 흑막의 것이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감은 맞다고 아우성을 쳤다.

‘미친.’

빙의 후 처음으로 제네비브가 애타게 찾던 소설 속 주인공이 제 발로 찾아온 상황이었다.

제네비브는 굳어지는 얼굴을 재빠르게 수습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라며 넘기고 싶었지만 상처의 위치나 정도가 너무나도 절묘했다.

그 후,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태연한 척을 이어 간 제네비브는 에드워드를 따라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싫어하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지가 부족하면 점수가 낮아지기도 하고.”

말이 늘어나는 걸 느끼며, 제네비브는 제가 긴장하면 말이 많아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나 혼자 시행착오 겪은 것도 있지만……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알려 준 것도 있…… 는데.”

뒤늦게 말실수를 깨달은 제네비브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장차 흑막이 될 인물의 아픈 곳을 찌르다니! 긴장한 나머지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그녀가 묻는 여러 질문에 말을 아꼈다. 그리고 제네비브는 제 질문이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며 과제로 시선을 돌렸다.

‘이러니까 몇 번 지나쳐도 못 알아봤지!’

제네비브는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렸다.

역시나 지금은 소설 기준으로 과거에 속했다. 그리고 과거는 소설 속에서 서너 줄쯤 서술된 게 전부였다. 황태자이자 흑막인 에드워드에게 학생 시절이 흑역사고, 지우고 싶은 괴로운 과거라는 정도?

소설에서 ‘과거의 에드워드는 지금과 달랐다’라는 문장을 읽은 기억은 있긴 한데…… 이건 조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게 ‘위험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이라는 묘사가 심상치 않게 나와, 흑막을 맞닥뜨린다면 내심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고작 안경 하나에 이렇게 사기 수준으로 달라지면 어떻게 알아보라는 거야!’

에드워드는 눈썹 위 거즈가 어색한지 살살 매만지고 있었다. 그저 소설 작가가 외모적 특징으로 넣어서 생긴 흉터를.

소설에서 남주는 흑막. 그러니까, 에드워드보다 한 학년 후배였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흑막이 맞다면 1학년에 남주가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검은색 머리에 보라색 눈은 세인트 존 칼리지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혹시,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바뀐 건가?’

그나마 가능성 있는 가정을 생각해 봤지만 말이 안 됐다.

그녀가 이 세계에 와서 한 거라고는 학교를 착실하게 다닌 것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라도 다르고, 이름 한 줄 등장하지 않은 조연에 빙의했는데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제네비브는 뇌 한구석에 묻어 둔 원작을 급히 복습했다.

‘세인트 존 칼리지가 내년에 불에 타서 없어지고……. 나는 올해에 졸업하니까…… 안전한데?’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름 한 줄 나오지 않은 조연답게 오늘 이후로 에드워드와 엮이지 않는 게 최고였다.

제네비브는 그에게 관심을 끄기로 결심했다.

“…….”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생각처럼 되는 건 아니었다. 한번 눈에 밟히니 계속해서 들어왔고, 그러다 보니 연민이 느껴지게 되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접점일랑 없던 것처럼 외면하고, 안전하게 졸업하고 싶은 동시에 에드워드를 돕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은 점점 후자로 기울었다.

몰랐더라면 마음 편히 졸업했겠지만, 눈앞에 훤히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하냔 말이다.

제네비브는 이유 없이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도 다른 학생들처럼 방관자인 양 앉아 있기 싫었다.

‘얽히고 싶지 않았는데…….’

학교생활을 도와주더라도 소설에 따르면 에드워드는 자신이 졸업한 뒤에나 방화할 예정이니 자신이 피해 볼 건 없었다.

그리하여 제네비브는 그날 이후로 에드워드와 대화를 시도해 봤는데…… 왜일까. 관계에 큰 발전은 없었다.

‘뭐지? 내가 불편한가?’

혹시, 뭔가 잘못하거나 심기를 거스른 건 아니겠지?

불안해진 제네비브는 그날부로 눈인사로 대체했다. 그마저도 처음엔 못 본 건지 받아 주지 않았지만, 목요일 정도엔 눈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2학년이 제출한 과제가 블라이스 군의 글보다 논리 정연합니다!”

오데인 교수가 사촌을 혼내는 걸 들으며 다행히 에드워드가 통치학 과제를 잘한 모양이라고, 제네비브는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었다.

“……저것도 돌려줘야 하는데.”

제네비브는 서랍장 위의 손수건을 보며 중얼거렸다.

며칠 전, 에드워드가 빌려준 손수건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그땐 왜 그렇게 안쓰럽던지.

누구나 할 법한 실수였음에도 에드워드는 심히 주눅 들었다. 소설에서 단 몇 줄로만 서술된 에드워드의 과거가 무성의하게 느껴질 만큼.

하여 제네비브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브라이언 교수님의 과제를 생각하면 힘이 빠졌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대했다.

새카맣게 물든 손수건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데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했다.

관련 지식이 부족했던 제네비브는 세인트 존 칼리지 청소 직원들로부터 방법을 알아내(직원들은 놀라며 본인이 하겠다고 말했지만, 제네비브는 거절했다) 간신히 어느 정도 복구했다.

웬만한 곳은 돌려놓는 데 성공했지만, 하늘색 실로 자수가 놓였던 상표만은 여전히 까맣게 얼룩졌다. 비눗물에 몇 번을 담가도 진전이 없어, 결국 제네비브는 그 부분을 자수로 덮었다.

나름대로 프리지어(약혼 이후, 신부 수업의 일환으로 배운, 유일하게 새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를 수놓으면서도 호들갑 떤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이건 두 번 할 짓이 아니었다. 손수건을 세탁한 제네비브가 아끼던 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린 건 예견된 일이었다.

“……언제 돌려주지.”

제네비브는 손가락 끝으로 톡톡, 손수건을 건드렸다.

* * *

에드워드와 대화다운 대화를 하게 된 건 일요일의 일이었다.

새벽은 서늘했다. 창틀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제네비브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양말을 신었다.

별로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팠다.

“세 시간…….”

아침까지 버티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숄을 대충 두른 채, 제네비브는 주방으로 갔다.

“하암…….”

제네비브는 능숙하게 스토브에 불을 붙인 후, 물을 올렸다. 보글보글 끓어오는 물소리는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일찍 일어난 탓에 머리가 무거웠다. 제네비브는 컵에 코코아 가루를 큼직하게 덜어 내고는 굳은 목을 좌우로 움직여 풀었다.

‘마시고 다시 자든가 해야지.’

제네비브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다시 떴을 땐 에드워드가 눈앞에 있었다.

“으앗!”

놀란 제네비브는 짧은 비명과 동시에 흠칫 튀어 올랐다. 그 탓에 코코아 통이 엎어져 주방은 난장판이 되었다.

“도와드릴게요.”

그녀와 마찬가지로 살짝 놀란 듯한 에드워드가 고맙게도 먼저 도움을 권했다.

거절하기엔 도움이 필요했고, 승낙하기엔 염치가 있었던 제네비브는 간단한 걸 부탁했다. 아무리 지금은 평민 신분이더라도 황실의 피가 섞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에드워드는 제네비브가 바닥을 닦는 동안, 테이블 위에 엎어진 코코아 가루까지 정리해 줬다. 방금 자신이 황족을 부렸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제네비브는 태연한 척했다.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

“춥길래 코코아 좀 마시려고 했지……. 너는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저도 나가기 전에 커피 좀 마시려고요.”

“외출하게?”

이미 한 번 나갔다 들어온 듯한 모습에 제네비브가 물었다.

“네, 안경 사려고요.”

그의 대답에 제네비브는 작게 동조했다.

눈인사로 대체한 그간을 생각하면 대화 없는 어색한 시간이 될 줄 알았건만, 에드워드는 의외로 말을 많이 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제네비브는 그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커피를 꺼냈다.

그렇게 그의 거절을 자연스럽게 거절한 다음, 다시 말했다.

“내가 커피 하나는 잘 타거든. 오웬한테 시달려서 배운 거라 맛은 괜찮을 거야.”

제네비브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공유했다.

끓는 물을 부으려다 말고 제네비브는 잠깐 멈췄다. 소설에서 에드워드가 뜨겁지 않은, 따뜻한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취향 맞춰서 나쁠 건 없지.’

일이 분 정도가 지나자 물은 적당한 온도가 되었다.

“잘 마실게요.”

“주말 아침부터 고생하네. 조심히 다녀와.”

“……네.”

이참에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무거워지는 눈꺼풀은 대화 대신 그녀를 침대로 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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